〈 162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1)
* * *
#42
“……그럼”
“기회는 지금뿐이긴 해.”
스텔라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의식의 준비가 전부 끝나고 이제 마신이 강림할 순간만 남은 상태. 본체의 혼이 내부로 잠들고, 본체를 지배하는 의식이 교체되는 그 찰나의 순간이…… 가장 취약할 때야.”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지금까지 때를 기다린 이유를 드디어 알려주었지만, 내 모든 신경은 방금 스텔라의 말 속에 섞인 한 단어에 죄 쏠려 있는 채였다.
마신(??).
그 이름이 가진 의미란……
“창졸간도 되지 않을 아주 짧은 그 순간을 노리면, 네비로스, 아니…… 나베리우스를 죽일 수 있어.”
나베리우스.
그것이, 네비로스의 본명이었을까.
“하지만, 그렇게나 중요한 의식이니만큼 당연히 외부의 방해를 일절 차단하려 할 거야. 그걸 뚫기 위해선……”
스텔라가 목걸이의 장식을 꾹 쥐고,
“내 목숨의 절반을 바치거나.”
나를 결연히 올려다본다.
“네 힘이 필요해. 에지오.”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가 내 귀에 꽂힌다.
바로 그때.
쿠구구구구구─
공동이 또다시 크게 뒤흔들렸다.
나베리우스와 전투 아닌 전투를 벌이던 루비아와 뮤의 움직임이 일시에 멎어 버리고, 우리 역시 곧 일어날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나.
“오오, 오오오! 오십니다! 오고 계십니다!”
환희에 잠긴 나베리우스의 목소리가 공동을 쩌렁쩌렁히 울리고.
“……크윽?!”
“모, 몸이.”
“콜록, 콜록…… 케윽.”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보였던 뮤의 다리는 제자리에 굳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덜컹, 덜컹.
제단이 흔들리고 있다.
대기 중에 섞여들었던 마기의 농도가 급격히 짙어지기 시작했을 때, 원래도 께름칙하고 불길한 느낌을 품고 있었던 제단은 더욱 검게 물들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기운을 출렁이며 내뿜는다.
“큭……”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이 숨을 옥죄인다. 솜털이 쭈뼛 솟고 닭살이 우수수 돋아날 정도로 차갑게 서늘해진 기온과, 무게를 갖기 시작한 공기가 우리의 작은 움직임마저 완전히 봉한다.
“놀랍게도, 주신께선 반항을 즐기십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권위에 도전하는 추종자를 얼마든지 환영하십니다! 그 배덕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원천이 되기에!”
공간 전체가 심해 속에 처박힌 듯 무거운 압력이 온몸을 짓누른다. 그런 우리에 반해 혼자서만 자유로운 나베리우스가, 과시하듯 걸음을 유연히 뚜벅거리며 크게 외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마땅한 인과가 따르는 법!”
이윽고.
주먹을 우악스레 꽉 쥔다.
“주제 넘은 반항의 대가를 치르십시오!”
꽈아악─
“컥, 커윽……”
“숨이, 안, 쉬……”
그런 나베리우스의 동작에 따라, 우리의 몸을 단단히 옥죄이던 무형의 압력도 그 세기를 차츰 더해간다.
“이 공간은 오롯이 저의 소유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 공간 안에 있는 여러분들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목울대에 핏줄이 사납게 돋는다. 폐를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짙고 어두운 마기에, 내 몸이 자연스레 반응해 버린다.
내부서부터 용암 같은 격정이 솟구친다. 그런데도 아직 움직일 수 없다. 짧게 자른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피가 주륵 흘렀다.
그때.
“에, 지오……”
스텔라가 얼굴을 찡그린 채 헐떡거리며 날 불렀다.
“내가, 말했던, 거… 기억……”
저벅, 저벅.
“쓸데없는 말을 하기는. 같잖은 수작이 통할 것 같습니까?”
그리 비웃던 나베리우스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정확히는,
스텔라의 앞으로.
“큭……”
스텔라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다.
─ 파들파들.
조금씩, 위로.
떠오른다.
내가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쥐어짠다.
“너, 이 새끼… 해칠, 생각, 없다고……”
역시 거짓말이었나.
나베리우스가 날 힐긋 내려다본다.
“…으음? 이건 불가항력입니다. 여러분들을 묶어 놓지 않으면, 방금처럼 무고한 저를 공격하려 들 테니까요. 저는 아직 여러분께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죽이려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으극, 끅……”
나베리우스가 손을 휘적이자, 스텔라는 제 목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더욱 강한 신음을 내었다.
“스텔라를… 놔…”
“스텔라, 라.”
내가 조금씩 몸을 일으키자 살짝 흥미로움을 드러내던 것도 잠시, 나베리우스가 그리 중얼거리며 가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이름이었습니까.”
영문 모를 말이 이어졌다.
“나베, 리우스……”
스텔라가 눈에 실핏줄을 돋군다.
“너는, 내가, 반드시……”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이를 부술 듯 악물며.
“죽일, 거야.”
“하하하하하!”
나베리우스가 허리를 꺾으며 크게 비웃는다.
“무섭군요, 무서워요! 그 눈에 담긴 증오심! 저는 아직도 잊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 순간.
“끅, 끄윽…!”
“스물네 번째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주신께 새로이 부여받은, 나베리우스라는 명예로운 위(?)를! 그 이름을 더없는 치욕과 굴욕으로 더럽힌 자의 모습을! 제가 어찌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여유롭던 나베리우스의 목소리가 반대로 뒤집혀, 분노와 격정이 벽력처럼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러나… 전부 과거의 일이지요. 저는 넓은 마음으로 당신을 용서합니다, 스텔라.”
다시금 차분해진다.
정말로, 정신병자 같았다.
“저를 왜 그렇게나 잘 알고 계시나 했더니… 이거, 눈치를 채는 게 다소 늦었군요. 이제야 전부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나 곱게 성장하셨을 줄이야… 정말로 몰라뵈었습니다.”
“개, 소리… 하지, 마… 알고, 있었잖아.”
산소가 부족해진 탓에 안색이 파리해져 가는 도중에도, 스텔라는 허공에 매달린 채 발을 휘저으며 억눌린 음성을 내었다.
“알고 있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스텔라의 목숨이 위험하다. 어서 이걸 풀어야 한다.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금니를 으득 씹으며 오금을 조금씩 내뻗는다. 아직, 나베리우스는 내 쪽을 보지 않고 있다.
“제가 당신을 잊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허억, 아윽, 꺽……”
전신에 공급되는 산소가 다 떨어져 간다. 스텔라의 눈이 뒤로 슬금 뒤집히고 있었다. 주인의 위기에 반응하듯 목걸이의 장식이 옅게 빛나고 있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십 년 만인가요?”
나베리우스가 굳은 목소리를 낸다.
“제 부름에 응답해 힘겨이 몸을 일으킨 불사의 원혼들을 모조리 땅속으로 처박고, 하늘에서는 백열의 유성을 무한히 떨구며, 당시 입은 피해를 온전히 복구하는 데 십 년이 걸렸을 정도로, 제 보금자리를 무참히 망가뜨렸던…”
나베리우스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서부 마계의, 하얀 악몽.”
스텔라의 볼에 천천히 손을 가져간다.
“…제게 복수하고 싶었습니까? 시시콜콜한 원수를 갚기 위해? 그래서, 당신의 소중한 친구들을 끌어들인 겁니까?”
아니. 스텔라는 우리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 반대였다. 가능하면 우리가 나베리우스와 마주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기 나타났을 때 경악했던 거다.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고 했습니까? 그야 그렇겠지요! 운명을 거스르는 순간, 당신은 이곳에서 저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테니까.”
나베리우스의 손이 스텔라의 볼을 쓸어내린다.
“제게, 복수할 수 없게 되었을 테니까.”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결국 당신의 목적을 위해, 당신의 소중한 친구들을 끌어들였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이 어찌나 부정(?)한 일인지! 당신이 저와 같은 인간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멋대로 말하고 있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주신께서 더욱 마음에 들어 하실 테지만…… 당신이 계속 저를 방해하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짝 괘씸한 생각도 드는군요.”
“더군다나… 예전이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의 당신은 별로 쓸모도 없고.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별’은 주신께서 극히 싫어하시고.”
“그러니까, 당신은──”
나베리우스의 목소리가 얼어붙는다.
“필요 없습니다.”
푸욱─
나베리우스가 뻗은 손바닥에서 검은 가시가 꾸물거리며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이미 반쯤 의식을 잃은 스텔라의 경동맥을 향해 쭉 나아가고.
콰아악─
“얌전히 이곳에 잠들도록 하세……?”
전혀 다른 것을 꿰뚫었다.
“……요?”
나베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어, 떻게.”
어느새 속박에서 풀려난 나를 직시한다.
“……놓으라고, 했지.”
피눈물이 뚝뚝 흘렀다.
창졸간에 이르는 간발의 차로 가시에 내 손을 집어넣자,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며.
“무슨……”
찬란한 금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거대한 장막── 이지스의 방패가 전개되었다.
“……성유물(??物)?”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베리우스가 살짝 몸을 뒤로 뺀 사이에, 아직도 허공에 매달려 있는 스텔라를 돌아보면서.
‘죽인다.’
솟구치는 격정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파아아아앗!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흐르는 주먹을 더욱 세게 쥔다.
나조차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빛무리가 터져 나와, 일순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그 영향은 나베리우스도 피하지 못했다.
“크윽?!”
그리고, 나는.
저 터트리고 싶은 면상에.
“이, 개새끼야!”
“──?!”
주먹을 냅다 꽂았다.
콰자자작!
나베리우스의 가면이 산산이 깨져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