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63화 (163/201)

〈 163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2)

* * *

#43

주먹 끝에 확실히 느껴졌다.

닿았다.

타격에, 성공했다.

“크어어억!”

폭발하는 빛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간다.

─ 콰당탕탕!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나베리우스.

그 직후.

“……허어어억.”

일대를 잠시 명멸했던 빛무리가 사그라들었을 때, 스텔라를 비롯한 사람들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지배력이 일시에 힘을 잃었다.

“……컥, 컥. 주, 죽는, 죽는 줄. 알았.”

“하아, 하아, 하아아……”

유리가 바닥에 엎드린 채 가슴을 부여잡았으며, 루비아는 고개를 꺾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저, 미친, 새끼가…”

뮤의 경우,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일으키며 저 구석탱이로 날아간 나베리우스 쪽을 맹렬히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스텔라!”

가장 위험한 건 스텔라다.

여기가 오롯한 현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꿰뚫리는 것만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정도의 일격이었던 까닭인지, 이제야 제 기능을 펼친 이지스의 방패 뒤의 스텔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웅.

스텔라가 아래로 떨어진다.

“큭!”

재빨리 스텔라를 받아들고, 그녀의 볼을 두드렸다.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내가 급히 말했다.

“숨, 숨 쉬어. 숨.”

“……”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진다.

설마.

설마.

품에 안아 들었던 스텔라를 재빠르게 바닥으로 눕히고, 기도를 확보한 채 경동맥을 체크한다.

“……”

얼굴을 들이밀어 스텔라의 코에 귀를 바짝 대었다. 눈으로는 흉부를 관찰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부풀지 않는다.

호흡이, 멎었다.

“아, 안 돼. 야. 스텔라! 숨 쉬라니까!”

“……”

“씨발!”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너무 늦었나.

아니,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나답지 않다.

벌써 포기할 리가 없다.

짜악!

내 뺨을 세게 때렸다. 잘게 흩어지려던 이성을 되찾는다. 차갑게 가라앉은 의식.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늘 그래왔듯. 과열된 사고가 팽팽히 돌아간다.

뭘, 뭘 해야 하지?

“후우.”

당연히 응급처치다.

“콜록, 에, 에지오. 괘, 괜찮……”

루비아가 이 주변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그러더니.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말을 잇는다.

“스, 스텔라, 스텔라. 괜찮은……”

뭐라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스윽─

셔츠 팔소매를 걷고,

“후우.”

기억하는 대로. 당황하지 않고, 스텔라를 반듯이 눕힌 채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 뒤 손을 움직였다. 생명이 위험한 와중에 달리 신경 쓸 건 무엇 하나 없다. 온전히 소생에만 집중한다.

움푹 파인 쇄골이 드러나 있긴 하지만, 의복의 단추를 푸는 걸론 턱도 없다. 상의를 찢거나 말아 올려야 한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확─

“켈록, 야, 너. 지금… 뭐 하는…!”

유리의 목소리일까.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내 정신은 오로지 한 곳에 함몰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소중한 친구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쿵쿵거리는 심장을 끌어안고, 옅은 핑크빛의 브래지어를 마주하자마자 두 손을 하나로 겹쳤다.

직후.

빠르고, 세게.

꾸우욱.

깍지를 낀 손바닥 뒤꿈치로 짓누른다.

“후우, 후욱.”

한번 동작할 때마다 둔덕의 일부가 불규칙하게 뭉그러진다. 그대로 반복해서 스텔라의 가슴을 압박했다.

짧은 사이에 몇 회 반복했으나, 스텔라의 호흡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래도 아직, 살릴 수 있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꾸욱꾸욱꾸욱──

더 세게. 더 빠르게.

“제발, 제발.”

암시하듯 중얼거린다.

힘에 체중을 싣는다.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하지만 정말로 부러지지는 않게.

“제발……!”

스텔라의 몸은 언뜻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한번 손으로 짓누를 때마다 몸이 조금씩 덜컹거렸던 까닭이다.

“──감히.”

그때.

“감히이이이이이……!!”

저 멀리 처박혀 있던 나베리우스의 목소리가, 뾰족한 가시처럼 우리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 아윽.”

“귀, 귀가아아아……”

음성 자체에 힘이 담겨 있다. 나베리우스의 귀기 어린 노성을 들은 루비아와 유리가 침음성을 삼키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감히, 누구의 얼굴을──”

하지만.

“잘도.”

뮤는 그러지 않았다.

“잘도… 죽이려 했겠다.”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버텨 내었다.

“상처를, 내려 했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일어선다.

─ 스윽.

이어, 손을 옆으로 쭉 뻗는다.

“막아내지 못했으면… 죽었겠지.”

손바닥을 펼치고, 말아쥔다. 그러나 꾹 쥐진 않는다. 동그랗게 공간이 남도록. 그리 쥐었다.

그러자.

“다신 살아나지 못했겠지.”

─ 우우우우우우웅!

“용서… 못 해.”

뮤의 마력이 길길이 날뛰었다.

“절대……”

용암이 분출하듯 격렬하지만, 태풍의 눈처럼 고요히. 소용돌이치던 마력이 한 곳으로 응집된다.

그리하여 뮤의 손바닥에 맺히는 것은, 더없이 눈부신 백열(白?)의 마력.

우우우웅……

폭풍처럼 모여든 마력은, 곧 길쭉하게 늘어나며 하나의 형상을 띠었다.

그것은.

“용서 못 해.”

한 자루의 검(?).

“너는, 내가 죽인다. ──반드시.”

마력의 불꽃으로 휘감긴 검 끝을, 척­ 하고 겨눈다.

“무슨……”

가면이 깨부숴져 맨얼굴이 드러난 나베리우스가, 제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춤거리다, 이윽고.

“오, 오오……”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오오오오오오! 이런, 이럴 수가아아아아! 보고 계십니까, 마신이시여어어어!”

스텔라의 가슴을 연거푸 짓누르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와중에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배교, 배교! 배교(??)해라! 너라면, 너라면!”

광인의 음성이 공기를 타고 저릿하게 전해진다.

“자(?)가 아닌 타(?)의 목숨이 더 중요해져 버린, 광(?)적일 정도의 어긋난 희생심을 가진 너라면!”

“그 본질이 검게 타락했을 때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마(?)에 가까워질지니!”

“아아, 아아아! 보입니다, 보여요!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검은 씨앗이! 영원한 겨울 속에서 끝끝내 개화하는 순간이! 제겐 아주 확실하게 보입니──”

“닥치고 죽어.”

─ 쐐애애액!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검(??)을 휘두르자, 반월의 잔상을 그리며 나아가는 검격이 나베리우스의 신형을 반으로 갈라 버린다.

나베리우스는 이전처럼 피하지 않았다.

─ 파가가가각!

검고 검은 장막을 펼쳐 막아낸다.

─ 콰앙!

뮤는 그쯤 예상했다는 듯, 검격을 날리자마자 진각을 밟으며 나베리우스에게로 뛰어들었다.

용솟음치는 마력과 함께 검을 내지른다. 연속으로.

그러자.

─ 쩌저저저적!

장막이 걷힌다.

이내.

─ 와장창!

산산이 깨져 버린다.

“이런!”

나베리우스는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으며, 뮤가 그 뒤를 빛살 같은 속도로 추격했다.

‘지금이… 기회야.’

뮤와 나베리우스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제발.”

뮤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일분 일초가 아까울 때다.

“후우, 후우.”

“에, 에지오. 이제 내가 할게. 내가 할 테니까…”

“후욱, 훅.”

다시 일어선 루비아가 덜덜 떨며 내게 그리 말해오지만, 저런 상태로 정상적인 심폐소생술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러니 나는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다.

‘일어나.’

식은땀이 차갑게 흐른다.

등줄기가 축축하다.

‘왜.’

왜, 숨을 쉬지 않는 거야.

‘눈을 떠. 스텔라.’

제발.

아직도 흐른다.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또옥, 똑.

새파란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하얀 살결 위에 뜨겁고 붉은 액체가 방울져 맺힌다. 둥글게 솟아오른 언덕을 타고 주륵 미끄러진다.

“루비아. 유리.”

“…어, 어?”

내가 낮게 말했다.

“너희는 뮤를 도와줘.”

그러자.

“아, 알겠어.”

루비아가 대답했고, 유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내 주변에서 영창을 외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동시에, 불가해한 힘의 흐름이 피부 위로 느껴진다. 유리의 염력이었다.

‘…이젠 해야 해.’

하아, 하아.

거칠게 흩어진 숨을 정돈한다.

스윽.

스텔라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갔다.

기도를 다시 확보하고.

‘……’

찰나에 생각한다.

‘할 수 있을까.’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걸로, 스텔라를 살릴 수 있을까.

…하지 않으면 모른다.

뭐라도, 닥치고 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스 필……”

숨을 최대한 끌어모은 뒤,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손가락을 움직여 스텔라의 코를 막았다. 나머지 한 손으론 턱을 붙잡았다.

구강을 밀착한 채.

대번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 흐읍.

입술을 밀착하자, 단순 의료행위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뇌리를 번갯불처럼 찔러오는 감각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드?”

후우욱.

숨을 불어넣는다. 천천히.

가슴이 올라가는지. 공기가 폐에 들어가고 있는지. 전부 확인하면서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흐읍.”

충분히 불어넣었다 싶을 즈음 입술을 떼고, 다시 입술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때.

“이, 뭔─ 지금 뭐 하는 거야! 죽고 싶어?!”

멀리서 뮤의 당황스런 목소리가 울렸다.

“…미, 미안해! 실수였어!”

“실수?! 평소엔 잘만 하면서── 큭!”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다. 스텔라의 얼굴과 밀착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후우욱.

‘일어나.’

이만큼 했으면.

이제 일어날 때 됐잖아.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스텔라가 우리에게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었는지. 그 비밀이 뭔지. 십 년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나와 처음 만났던 뒤로 어떤 일을 겪은 건지. 아직 하나도 듣지 못했다.

방금의 대화로,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게 있긴 해도.

스스로의 입으론 무엇 하나 듣지 못했다.

그걸 다 듣기 전에는.

이대로 보낼 수 없다.

그러니까.

‘일어나라고.’

후우우욱.

“──이, 썅, 너 그냥, 마법 쓰지 마!”

“……미안.”

“……루, 루비아? 무슨 일­”

‘일어나라니까.’

믿지도 않는 신을 애타게 찾는다.

‘스텔라. 제발.’

아니.

여기서 믿을 건 신 따위가 아니다.

나 자신이었다.

‘죽지 마.’

후우우욱.

강렬한 염원을 담은 숨을 깊숙이 전한다.

그때.

피눈물이 또다시 한 방울 떨어진다.

또옥.

스텔라의 입술을 타고 흘러 들어가서, 부드러운 혀끝을 촉촉이 적신다.

‘죽지, 말라고……’

식은땀이 흥건하다. 셔츠가 축축하다.

등골이 저릿하다.

“흐읍.”

다시, 한 숨.

─ 후우우우욱.

그 순간.

“……!”

“……흐으으으윽?!”

스텔라가 눈꺼풀을 바짝 들어 올리며, 내 입에서부터 나온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