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66화 (166/201)

〈 166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5)

* * *

#46

‘어떻게……’

나베리우스는 심히 당황했다.

저건 당연히 깨져서도 안 되고, 저렇게 금이 가서도 안 되는 결계였다. 마신이 나베리우스에게 친히 하사한 기물인 까닭이다. 즉, 마신의 초월적인 힘이 오롯하게 담겨 있는 성유물(??物)이었다.

본디 악마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악마의 좌(?)에 올라선 나베리우스가 마신의 신탁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단.

그것은, 나베리우스란 이름으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 이후 추방된 나베리우스에게 남은 제 주신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감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십 년 전에도 자길 치욕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이제는 행방조차 묘연해진 제 주신에게 있어 그 당시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여느 악마보다 믿음직스럽고 신실하며 우월한 보좌관이 되려고 했는데─ 또다시 나타나 자길 방해하는 스텔라의 목숨을 취하려 했을 때부터, 아니…

저 화신(化?)이 가면을 깨부쉈을 때부터.

나베리우스는 처음 약조─지킬 생각 따위 일말도 없긴 했지만─했던 대로 그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말을 전언 철회할 생각이었다.

마치 제단과 제 몸이 연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제단을 감싸고 있는 결계막에 쩌적─ 하고 금이 갈 때마다 나베리우스는 목청을 바락 긁으며 있는 힘껏 노호성을 터트렸다.

“불경한 놈! 당장 그 손을 떼라!”

꾸물꾸물.

먼 거리에서 검은 손이 공간을 도약하여, 에지오의 목덜미를 콱 쥐어 잡아 저 구석을 향해 내던지려 한다.

하지만.

─ 콰아아아앙!

“……! 뭐라?!”

타버렸다.

저 눈부신 광휘에 검은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불이 붙은 것처럼 타오르더니 그대로 재가 되어 먼지처럼 흩날려 버린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베리우스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저 불경한 손을 당장 떼어내야 하는데. 지배는 전혀 먹히지 않고, 에지오는 갈수록 타격의 범위와 세기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 쩌적, 쩌저적.

계란에 금이 가듯,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는 결계.

‘…위험하다.’

그 타격이,

고스란히 나베리우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심장 부근이 바늘로 찔리는 듯 따끔거린다. 마기(??)가 혈류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나베리우스가 손바닥을 전방으로 쭉 뻗었다.

“막아라!”

나베리우스의 명령에 따라 수십 수백의 시체들이 목을 반대로 꺾어 에지오 크라닐의 뒷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살아 있는 인간. 제 주인이 설정한 목표물. 남김없이 물어뜯고 생살점을 취한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가 움직였다.

─ 그으으아아아아!

타오르는 불꽃에 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무수한 언데드들이 팔과 다리를 휘적이며 에지오를 향해 무더기로 돌진한다.

죽은 인간의 시체를 그대로 부활시킨 것이기에, 제각기 골격의 크기도 다르고 있는 부위와 없는 부위의 종류도 갖가지였다.

─ 께르르르르륵!

─ 구오, 오오오.

─ 끼에에에엑……

크고 작은 해골바가지와 구울, 레이스 등의 언데드 마물들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가득 게워냈다.

공동의 천장까지 닿은 그 소리들은 곧 바닥에 주저앉아 속박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행들의 귀청에도 꽂혀 들었다.

“이, 새끼… 절대…”

아득바득.

뮤가 몸을 비튼다. 숨은 목구멍에 걸레라도 쑤셔 박은 것처럼 컥컥 막히고, 몸은 무거운 바위 밑에라도 깔린 듯 꼼짝도 할 수 없다. 내재된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도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게 고작이었다.

타닥, 타닥─. 과부하로 뮤의 주변에 스파크가 터진다. 뮤는 어금니를 까득 씹으며 귀기 어린 목소리를 쥐어 짜내었다.

“가만… 안, 둬……”

표독스러운 눈빛이 나베리우스를 꿰뚫는다.

어찌나 살기와 분노가 가득한지, 지근거리에 있던 유리와 루비아의 피부 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용서 못 해.’

나베리우스를 용서할 수 없는 건 유리와 루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소중한 친구인 스텔라를 죽일 뻔한 것도 모자라서, 만일 그 공격을 막지 못했더라면 대신 에지오가 죽었을 것이었으므로.

그 꼴만큼은 절대로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대체로 루비아가─광경이었기에, 루비아 역시 투지와 살기를 가득 피워 올렸다.

…죽이고 싶다. 저 남자를 죽이고 싶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다. 스텔라를, 에지오를.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고민도 없이 죽이려 한, 저 가증스러운 남자를… 죽이고 싶다.

세상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고 사람 간의 대화와 화합을 중요시 여기는 루비아에게 있어선 정말로 생소한 감각이 아닐 수가 없었다.

─ 그으아아아아!

언데드들이 떼거지로 달려든다. 에지오를 뒤에서부터 덮친다. 아득한 숫자의 시체들에게 깔려 에지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눈이 멀 듯 찬란한 휘광도, 칠흑처럼 검고 사이한 마기에 죄 뒤덮였다. 그 광경을 목도한 일행들의 낯빛이 창백하게 식었다.

“…아, 안 돼! 에지, 오!”

루비아의 처절한 목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여기서, 또, 잃을 수는 없어…

‘…움직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루비아.

에지오가 제 목숨을 바쳐 너의 목숨을 구해줬으면, 너도 네 목숨을 걸어서 그를 지켜야지……

화르르르륵! 마력을 불태운다. 죽을 힘을 다해. 어쩌면, 죽는다고 해도. 생명의 불꽃마저 태워 버릴 심산으로 루비아가 눈에 불을 켰다. 웅대한 마력이 용오름친다. 주위의 어둠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그 마력의 빛은 태양보단 어둡지만, 칠흑보다는 밝았다. 옅은 자주색을 띠는 불가사의한 마력이 루비아의 몸을 휘감는다.

입매 사이로 피가 주륵─ 흘렀다. 우드드득. 강제로 구겨진 등골을 펴며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이건 또 무슨.”

나베리우스가 문득 뒤편으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급히 돌리자, 거기엔 좀비처럼 일어나고 있는 루비아가 있었다.

전력을 다하진 않긴 했어도 저들의 수준으론 해주가 턱도 없을 만한 위력의 속박이었다. 그걸 풀곤 기어코 일어서려 한다. 나베리우스의 마법 위계가 십(?)을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루비아는 지금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루비아가 피를 흘리며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본 뮤가, 적잖은 영향을 받아 더욱 강한 의지를 씹어 삼켰다. 잔잔한 마력의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 콰악─. 마기에 의해 형체가 일그러진 마력검을 지면에 박아 넣는다. 그것을 지지대 삼아 으득, 이를 갈며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형형한 자줏빛의 눈동자가 나베리우스의 머리통을 향했다. 무척이나 짙은 살기가 어린 눈빛이었다. 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달려가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 버리겠다는 것처럼.

“…가지가지 하는군.”

나베리우스가 미간을 구겼다. 한 손은 여전히 얼굴을 덮은 채다. 스텔라와 유리 역시 각자의 힘을 쥐어 짜고 있다. 대체 어느 무엇이 그들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것일까. 이래서 인간이 흥미로운 것이다…

잠시 흥미를 보였던 나베리우스가, 혀를 차며 홱 하고 뒤를 돌았다. 언데드 무리에 죄 뒤덮였던 에지오 크라닐. 그는 예상대로──

‘…솔직히, 놀랍구나.’

──콰아아아아앙.

썩은 살점과 뼈다귀들이 사방으로 휘날리며 비산했다. 빛의 폭죽이 터졌다. 시체들이 형성한 반구 형태의 막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더니, 곧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모든 언데드들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것으로 전멸이었다.

더 이상 에지오를 방해하는 시체가 없었다.

“흐읍.”

─ 콰아아아앙!

에지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먹질을 속행했다. 핏발 선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제단을 감싸고 있는 검은빛의 결계막 뿐. 그 이외의 것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금이 가면 갈수록 더욱 짙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자, 에지오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 화신으로서의 본능이 에지오를 자극시킨 것이었다.

죽음까진 아니더라도 큰 피해를 입었을 줄 알았던 에지오가 멀쩡히 살아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루비아와 뮤의 기세가 일순 누그러졌지만, 속박을 푸는 걸 멈추진 않았다.

더욱 거세진 마력의 불길 속에서 루비아와 뮤는 연거푸 고통에 겨운 침음성을 토해냈다. 하나, 이대로면 나베리우스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보였다. 덧붙여 지금이라면 나베리우스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 듯했다.

마력과는 미묘히 다른,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그들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으니까.

“크윽.”

─ 쩌적! 쩌저저저적!

정권이 작렬했을 때, 결계는 여느 때보다 큰 소음을 내며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에 따라 나베리우스도 쿨럭이며 제 가슴을 부여 잡았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주는 것이지만, 저 제단이 파괴되는 순간 주신과의 연결은 영원히 끊어질 터이기에… 나베리우스 자신은 그러한 결과를 절대 납득하지 못할 것이었다.

“장난은 이제 끝이다.”

─꽈드득.

그러니, 손을 쥐었다.

“끄으, 윽.”

“흐끄윽.”

뮤와 루비아가 털썩 쓰러졌다. 마기를 집어삼키며 크기를 불려 나가던 마력의 불길도 어느 순간 사그라들었다. 모종의 계기로 각성을 하든, 한계를 돌파하든─ 절대적인 힘의 차이란 본디 이런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절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그들 사이에는 존재했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열 살이 되었다 한들, 어른을 힘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 콰아아아아아앙!!

그러나, 또.

에지오 크라닐만큼은.

“떼라고 했을 텐데.”

지금이라면, 제단의 수복은 가능하다.

산제물이고 뭐고.

일단 저 녀석을… 행동불능으로 만든다.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놀랍게도, 함부로 다가설 수 없다.

‘…두려워한다? 내가?’

그럴 리가 없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 데구르르.

나베리우스의 눈알이 뒤로 굴러 넘어간다.

창졸간 흰자가 사라진다. 그 대신 암흑처럼 검은 자위가 나베리우스의 눈구멍을 가득 채웠다. 그 가운데, 동공은 피처럼 붉은 색으로 가늘게 찢어져 형형히 빛나기 시작한다.

고오오오─.

어줍잖은 방법으론 에지오 크라닐의 부근조차 다가갈 수 없다. 공간 지배 역시 먹히질 않으니, 이차원(???)으로 보내 버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빛마저 집어삼킬 만큼 더 짙고 짙은 마기를.

아니면─

더 강대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쿠구구구구……

대기가 불안정하게 진동한다. 마기의 농도가 더욱더 짙어진다. 숨이 막혀 질식할 듯한 메스꺼움이 섞여든다.

“……저, 저게… 뭐, 야.”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제적인 공포감이 일행의 감각 위에 덮어 씌워지고, 온몸의 뼈와 조직을 우득거리며 실시간으로 신체가 변화하는 나베리우스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의복의 등판이 쭉 찢어진다. 그 틈새로 핏물이 터지며 검은 거죽이 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피에 젖은 검은 날개가 좌우로 넓게 펼쳐지더니, 곧 펄럭거리며 풍압을 크게 일으켰다.

“……악마.”

누군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나베리우스의 두개골을 뚫고 나온 한 쌍의 쇠뿔. 악마를 상징하는 이 뿔이 두개골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까지는 십 분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의 나베리우스는 내로라하는 대악마들과 단순한 본신의 무력만으로도 견줄 수 있었기에.

그러므로, 그저 잡아 찢어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멈춰라. 불경한 놈.”

악마화(??化).

어린 시절의 스텔라가 기억하는 나베리우스의 진정한 모습이, 비로소 이곳에 현신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