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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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그리고.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에지오 크라닐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끝끝내 증오스러운 악마의 상징인 검은 날개와 뿔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마족?’
아직, 이성은 남아 있다. 그러니까…
‘역시, 마족이었어.’
행동은 신속했다.
“일단 널 죽이고 다시……”
고오오오오─
나베리우스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손바닥 끝에 마기를 응집시킨다. 힘의 총량은 에지오의 것과 비할 바가 못 된다. 빛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집어 삼킨다. 힘의 차이가 난다면 절대적으로 그러할 수밖에 없다.
빛을 휘감은 채 자신에게로 돌진하는 에지오를 향해서, 응집시킨 마기를 그대로 레이저처럼 쏘아낸다.
‘시체는 잘 써주마.’
콰아아아아아아아!
암흑의 줄기가 공간을 일직선으로 꿰뚫었다.
죽어도 상관없다. 심장이 타 버려도 괜찮다. 저 놈은 위험하다. 산제물을 바칠 게 아니라, 여기서 그냥 죽여 버려야 했다.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훗날 마신께서 이 땅에 돌아오실 때 크나큰 방해물이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리고 에지오 크라닐은 주신께 너무나 불경한 짓을 저질렀다. 개인적으로도 감히 용서할 수 없었다.
“에지오!”
스텔라가 창백하게 질려 소리쳤다.
저것에 직격당하면, 죽는다.
일행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동일하게 떠올랐다.
나베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죽어라.’
그러나.
“……!? 뭐, 라고!”
콰아아아아아아!
츠츠츠츠츳……
에지오는 멈추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증오와 함께 온몸으로 받아냈다. 눈부신 빛을 휘감은 채, 주먹으로 응수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음이 터진 순간, 에지오의 심장 부근으로 쇄도하던 파동은 두 갈래로 나뉘어 공동의 외벽 쪽으로 쭉 나아갔다.
콰아아아앙!
먼지구름이 뭉실거리며 피어났다. 나베리우스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지고, 직후 에지오는 아티팩트를 발동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나베리우스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파파파팟─. 허공에 생성된 검은 가시들이 에지오를 요격했다. 몇 개는 피해내고, 몇 개는 손으로 잡아 부러뜨린다. 몇 개는 볼과 어깨 등에 긁혔다.
본디 상처가 나면 마기가 스며들어 중독 증세를 일으켜야만 했으나, 에지오에겐 일절 먹혀들지 않았다. 주륵 흘러내리는 선혈과 함께 진각을 밟고 쿵─ 하며.
“…!”
사라졌다…?
아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뿐.
존재감은 느껴진다.
바로 앞에서.
펄럭─
나베리우스가 급히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에지오의 주먹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른다. 파앙─. 찢어질 듯한 파공음이 후속으로 이어졌다.
콰아아아아!
콰드드드득!
나베리우스는 침착하게 마기를 응집시켜 다시금 쏘아내고, 손을 휘적여 바닥에서 검은 손아귀들을 일으켰다.
콰악, 콰악, 손아귀가 에지오의 다리를 꽉 붙잡고, 파동은 그대로 에지오의 무방비한 정수리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힌다.
“너희만… 없었어도.”
작은 중얼거림.
그리고.
“…!!”
콰아아아아!
빛을 방출하듯 뿜어내자, 손아귀들이 죄 불타 버린다. 파동 역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소멸한다.
‘…말도 안 된다.’
믿을 수 없다. 어떻게. 무려 대악마 수준에 이르는 마기(??)다. 그것을 멀쩡히 버텨낸다는 건가? 아니, 버텨내는 수준도 모자라서… 불태워 버린다고? 그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일이었던가? 설령 저 녀석이 현재의 역천자─ 화신(化?)이라고 해도?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쾅─ 에지오가 높이 점프하며 나베리우스의 날개를 잡아 뜯으려는 듯 손을 펼쳤다.
‘…마기는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육신의 힘으로 상대하는 수밖에.
짓쳐 들어오는 정권을, 발차기로 응수한다.
‘이건, 성공이군.’
꽈지직! 콰앙! 옆구리를 얻어맞은 에지오의 몸이 꺾였다. 나아가던 경로를 이탈한다. 지면을 향해 운석처럼 내다 꽂혔다.
“에, 지…!”
그 모습을 본 일행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명을 지르려 해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어서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나베리우스의 진정한 힘은 고작 고등부 1학년 수준의 학생들─에픽 클래스라는 걸 고려해도─이 버틸 수 있을 만한 게 절대로 아니었다.
쐐애애애액!
멈추지 않는다. 이 틈을 타서 몰아친다. 날개를 펄럭이며 에지오가 쓰러져 있는 지점을 향해 낙하하는 나베리우스. 목을 그대로 꿰뚫을 것처럼 손을 맹금류의 그것과 같은 모양으로 변형시킨 채였다.
바닥에 드러누워 꿈틀거리던 에지오의 목덜미가, 나베리우스의 손아귀에 붙잡혀 제멋대로 우그러지기 직전.
후우우웅! 콰아아앙!
나베리우스의 주먹이 딱딱한 바닥을 강타했다. 에지오는 나베리우스가 날아드는 타이밍을 맞추어 몸을 굴렸다. 자세를 다잡고 벌떡 일어나, 다시 한번 진각을 밟는다. 숨을 삼킨 뒤 돌진한다. 그 속도는 번개와도 같았다.
“네놈…!”
펄럭─ 나베리우스가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싸 방어막을 만들었다. 날개를 휘감은 마기가 방어력을 더해줬으나, 에지오의 주먹이 작렬하자 커다란 폭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 뒤편에서 카운터를 준비하던 나베리우스의 붉은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무, 무슨, 무슨. 어떻게.”
‘어떻게, 내가 밀리는 것이지.’
아직 완성되지 못한 화신이다. 그건 한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난 기계처럼 불안정하다. 심히 불안정하다. 한데, 그 불안정함이 무척이나 기괴한 밸런스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본체의 생명을 정도 이상으로 깎아 먹으면서까지 말도 안 되는 출력을 내고 있다.
이 정도의 막대한 신성이라면… 에지오 크라닐은 이미 반신(半?)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미완성된 화신이 반신에 버금가는 저력을 스스로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다른 누군가가 이 싸움에 개입하고 있다. 그 추론에 대한 짧은 해답은 정말이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강신(??).’
인과를 비틀고.
인계의 주신이 에지오의 몸에 깃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온전히 강신한 건 아닐 터다. 아마 힘의 일부를 빌려주고 있는 것일 터. 다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조각의 편린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터져 죽거나 혼(?)이 불타 버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화신들도 마찬가지다. 몇 없는 화신들 중에서도 신성을 전부 개방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저력을 낼 수 없을 터다.
그런데, 에지오 크라닐은……
‘이대로면 공멸(??)이다.’
나베리우스의 눈이 급하게 주변을 훑었다. 에지오와 나베리우스의 싸움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
‘이거다.’
“너희들의 소망을, 이루어 준다고 하지 않았나!”
나베리우스가 바락 외친다. 언뜻 감정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째서 이해해주지 않는 거냐는 듯, 악마화한 나베리우스는 누구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마신께서는 가능하시다! 죽은 자의 소생도, 영원한 자유도! 그 어떤 무엇도 이루어 주실 수 있단 말이다!”
그 순간.
두 가지의 키워드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면, 너희들의 신은 평생에 걸쳐 변하지 않는 신실함을 증명해 봐야 아무런 축복도 내려주지 않는다! 오직 공물과 공양을 바쳐야만 비로소 작디작은 축복을 내려주지 않는가?! 그마저도 그것이 끝이다! 가장 중요할 때, 가장 필사적일 때, 너희들의 신은─ 너희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단 말이다!”
나베리우스는 팔을 뻗으며 크게 외쳤다.
“그러나! 마신께서는 지금 이곳에 실재(??)하시나니─!”
제단이 덜컹거린다. 에지오가 미처 깨부수지 못한 그곳에서, 결국 응집되고 응집된 마기가 곧 하나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다.
불온한 공기가 일대를 지배함에 따라 나베리우스는 조금만 더, 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꿋꿋하게 일장연설을 이어갔다.
“…신실함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너희들의 뜻과 기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나니!”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나베리우스는, 마신께 제 영혼을 바침으로 본래라면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저 녀석은 동료를 지극히 아낀다.’
“네 소망은 무엇이냐!”
─ 화악!
나베리우스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리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걸 본 에지오가 급격히 분노를 토해내며 달려들었지만, 나베리우스가 유리의 내재된 욕망과 염원을 읽어내는 것이 더 빨랐다.
‘…보았다!’
유리의 눈이 한순간 멍해진다. 흐릿한 환상들이 수면 위로 붕 떠올랐다가, 즉시 가라앉는다. 무수한 기억의 범람 속에서 나베리우스는 숨겨진 염원의 조각을 끝끝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 이 상황을 뒤집기에 너무나 완벽해 보일 정도로, 간절하고 또 서글픈 염원이었다.
나베리우스는.
공간과 허상을 지배하는 대마법사.
이미지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구색을 갖춘 환영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라버니’의 허상을 급조하여 띄워내려 했다.
그런데.
‘……이 얼굴은.’
익숙하다.
에지오 크라닐의 얼굴과, 너무나도 똑같다.
얼핏 본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익숙한 이유는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체들의 군주로서, 전쟁 도중에 입수했던 ‘강인한 영혼’이자 고품질의 시체들 중── ‘데스나이트’로 만들기 위해 장기간 공을 들였던 시체가 하나 있었다.
‘…똑같다.’
다만 본체에 스며든 혼의 조각이 워낙 마(?)를 거부하고 항거했던 탓에, 시체를 다루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기억이 날래야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체는.
결국 실패한 채, 이 공동의 지하에 묻혀 있다.
‘…네놈은 여기서 함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나베리우스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직후─
“아이델. 아이델 폰 아르티나.”
손을 아래로 내리고.
다시, 위로 들었다.
“부름에 응답하라.”
꽈드드드득.
지면이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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