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7)
* * *
#48
「흐끅, 흑. 히끅… 흑, 흐윽…」
「……울지 말거라, 유리.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거짓마아알……」
「서른 번째 밤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네게 돌아올 테니, 그동안 아버님과 어머님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싫어어어……」
「…네가 좋아하던 간식, 돌아오는 길에 꼭 사오도록 하마. 자, 손가락에 걸고 약속하자……」
「필요 없어어어……」
「유리…」
「싫어어어… 가지마아아아……」
「……」
「다시 못 보는 거 싫어… 가지 마… 오빠아아아……」
「……유리, 나의 하나뿐인 동생아.」
「……흐끅.」
「이 오라버니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 보았더냐?」
「……아니.」
「그만큼… 너와의 약속은 세상 그 어느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반드시 지켜 보일 테니…… 그만 울거라. 나까지 품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으니…」
「왜 오빠가 가야 하는 건데…… 다른 사람이 가면 되잖아……」
「내가 가지 않으면, 너를 잃게 된다. 너를 잃을 수는 없으니, 내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나도, 나도… 오빠가 없어지는 거 싫단 말야…」
「그렇지 않다니까.」
「거짓마아알……」
「……유리.」
「……」
「하나 더, 약속을 하자.」
「……무슨, 약속?」
「그 리본을 곧 나라고 생각하거라. 그리하면, 나는 유리 네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여 그 리본을 네가 가지고 있는 한……」
바보.
멍청이.
거짓말쟁이……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너를 늘 지켜보고 있을 거란다. 유리.」
#49
……
일대를 울리던 폭음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모두의 숨이 일시에 멎었다.
「……아아. 밤이구나.」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다. 한 줌의 빛도 보이지 않는 완연한 어둠. 사물의 형체조차 구분할 수 없다. 그토록 깊고 어두운 밤이었다.
「서른 번째 밤이다.」
시력을 모조리 상실했기에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태양이 땅거죽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라고, 그리 착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아니, 알려준다고 해도, 스스로는 절대 깨닫지 못할 진실이었다……
「아직, 늦지 않은 건가……」
눈이 먼 맹인은 뭉개진 발성기관을 삐걱여 목소리를 내었다. 음의 높낮이는 잔뜩 어긋나고, 단어는 제멋대로 조각이 나 버렸다. 그 탓에 의미도 불투명하다. 간신히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실낱같이 애석한 희망을 담아 처연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아직, 지나지 않았다……」
이제야 서른 번째 밤이다. 평원 너머에서 동은 트지 않았다. 그러니,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어기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한데, 왜 이리 무겁고 슬픈 것일까.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서글픈 것일까.그 탓에 눈물이 주륵 흐르고 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약속’은, 대체 무엇인가.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 없다. 기억해 낼 수 없다.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 채 자리에 남아 떠돌고 있던 회한(??)과 염원. 그것을 그저 하염없이 좇을 뿐이다. 나의 백성. 나의 조국. 나의 가족. 모두 지켰는가. 지켰다. 승리했다. 그렇다면, 돌아가자. 나의 사랑스러운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어서 돌아가자……
소중히 보관되어 부패하지 않은 시체는 그때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핏물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채 굳어 버려 뻣뻣해진 머리칼. 사이사이로 비치는 머리카락의 색채는 누군가의 색을 꼭 닮았다. 제대로 씻긴다면, 태양처럼 찬연히 빛날 것이었다.
눈을 뜨고 있지만 그 속은 텅 빈 것처럼 혼탁하다.
온몸에 가득한 상흔.
너무나도 처절했던 전투의 흔적이었다.
창에 꿰뚫려 생긴 구멍, 칼에 베여 갈라진 살점 속에 드러난 뼛조각, 불타 지져진 상처, 역으로 비틀린 관절 등…… 결코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형체를 비로소 시야에 담은 루비아가 아연한 음색으로 중얼거렸다.
“에지오가…… 두 명……?”
누군가를 제외한 일행 모두는,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에 잠식되어 날것 그대로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던 에지오를 돌아보며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검붉은 핏물로 인해 원래의 색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머리칼을 제하면, 땅거죽 밑에서 몸을 일으킨 시체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던 것이었다.
비단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까지 갖다 본뜬 것처럼 똑 닮았으니, 에지오가 두 명이 되었다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 빠.”
단 한 명.
유리 폰 아르티나만큼은, 저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서 에지오 크라닐을 돌아보지 않았다.
#50
나베리우스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의 오라버니다. 유리 폰 아르티나.”
“……오빠. 맞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무언가 뜨거운 감정이 울컥거리며 내부서부터 솟구쳤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왜, 왜 이래. 움직여. 유리가 팔딱거리며 어떻게든 제 오라버니에게 다가가려 했다.
“오빠, 오빠.”
「돌아가야, 한다……」
“오빠!”
유리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그러나 닿지 않는다. 분명 가까이 있는데. 오라버니는 동생의 부름에도 자길 내려다보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이제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오라버니는 전혀 반갑지 않은 걸까. 자긴 그렇지 않은데. 이제는 점차 희미해져 가던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여서, 눈물이 흐르는 걸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데. 벌써 십 년이나 넘도록, 매일 밤마다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오빠라니…? 아.”
아이델 폰 아르티나. 루비아는 그 이름을 며칠 전에 들어본 적 있었다. 아르티나 왕국의 제 1왕자. 유리의 하나뿐인 오라버니. 유리가 저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틀림없는 듯했다.
어째서 이 공동의 지하에 묻혀 있던 건지, 이유 따위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불투명했던 아이델의 사체가 결국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즉── 아이델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는 것.
그런 아이델을,
나베리우스가 언데드로 되살렸다는 것.
“너, 대체 무슨 짓을……!”
루비아는 경악을 삼킨 채 이를 갈았다. 죽은 이를 능멸하는 것도 모자라, 그 사체를 가지고 인질을 잡다니. 온몸을 찌르르 울리는 혐오감에 루비아가 치를 떨었다.
“무슨 짓─?”
나베리우스는 가늘게 조소하며.
“간절히 바라기에, 그 소망을 절반이나마 이루어주었을 뿐이다. 그것의 어느 무엇이 잘못된 건지 도통 모르겠군.”
태연자약한 낯빛으로 그리 말했다.
“오빠라니, 무슨……”
뮤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베리우스가 땅속에서 시체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 모습이 에지오를 꼭 닮아 있던 것도 모자라─ 갑자기 유리가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들은바, 아이델 폰 아르티나라는 이름을 가진… 유리의 오빠인 듯했다. 그러자 뮤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운명이라고 했던 게……’
같은 생각을,
스텔라도 하고 있었다.
스텔라가 봤다고 한 유리의 운명. 그곳에서 보였던 에지오의 얼굴. 그것은 에지오가 아니었다. 에지오라 착각할 정도로 똑같이 생긴 아이델 폰 아르티나의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조금 전 유리의 갑작스럽고 이상했던 반응도 명료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얼마 전 에지오에게 본인이 한 말의 일부를 떠올렸다.
─ 거기서 네가 보였어. 유니폼은 죄다 찢어지고 불타서 어디 갔는지도 보이지 않고, 넝마가 된 몸으로 너는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어.
둘을 구분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머리색은 고사하고 형체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장면도 찰나에 불과했다.
네크로맨서이자 사령술사인 나베리우스가 이 장소에 나타날 걸 알고는 있었으나, 설마 에지오가 아닌 이미 죽은 누군가의 시체였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누가 봐도 에지오 크라닐의 얼굴이었으니까……
거기까지는 어렵사리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된 거였구나.
결과적으로 진짜 에지오도 다치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예정된 운명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운명도 그대로 실현되리라. 예컨대 아이델 폰 아르티나의 시체가 등장하고 난 다음.
──유리가 저 시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오빠, 오빠아아아!”
“이런, 그러다 뼈 부러진다. 특별히 널 풀어주마. 감동적인 재회를… 마음껏 맛보도록 하렴.”
나베리우스가 손을 휘적이자, 유리를 속박하던 무형의 기운이 일시에 사라졌다. 불시에 자유로워진 몸을 벌떡 일으킨 다음, 유리는 썩은내를 풍기는 제 오라버니에게 비틀거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돌아가는 길이… 어디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손발은 달달 떨리고, 눈망울은 그렁그렁하다. 그런 유리를 향해 나베리우스는 혀를 차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사체를 습득했을 당시 청각과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부 뭉개진 상태였음에.”
“사체라는 건……”
혹시.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살아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헛된 꿈이었구나.
“돌아온다며.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잖아……”
유리는 아이델의 처참한 몰골을 보았다. 소중한 가족이 잔뜩 상처 입은 모습을 보았다.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용맹히 뛰어든 왕태자의 최후를 보았다.
“바보야, 멍청아… 거짓말쟁이……”
눈을 뜨고 있는 게 여간 어려웠다.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제 오빠의 존재만큼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쯤, 나베리우스는 작게 조소했다.
“네놈은 거기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라. 네놈이 그 자리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딘다면, 그 즉시 이 녀석과 아이델의 시체를 터트려 버리겠다.”
“……”
비틀거리며 나베리우스를 노려보던 에지오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지금 유리와 아이델의 옆에 있는 나베리우스를 공격하려 들었다간, 그 둘이 같이 휘말리게 될 테니까. 본능과 이성의 경계에서 에지오는 후자를 간신히 택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른 부위에 비해 그나마 멀쩡한 아이델의 손.
약지 손가락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아이델의 투박한 오른손을, 유리는 덜덜 떨면서 제 두 손에 소중히 품어 보였다.
어느새 비슷한 나이가 되어 버린 탓일까. 전처럼 크기에서 엄청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다시 목구멍이 텁텁하게 메었다.
“오, 빠…”
그러자.
「유령, 인가.」
아이델은 부서진 턱을 움직여 간신히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금 나의 손을 잡은 건… 누구인가.」
주변을 경계하려는 듯 몸과 고개를 비틀어 보이지만, 너무나도 힘없기에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유리의 울먹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나야, 나라고… 오빠. 유리. 나 안 보여…?”
「한데… 유령은 아닌 듯하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에, 아이델은 그저 멍하니 읊조릴 뿐이었다.
「유령의 손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할 리가 없으니…」
하얗게 뜨인 눈에서부터 피눈물이 주륵 흘렀다.
“아, 아…”
유리의 눈가에서도.
투명한 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유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아이델의 손을 붙잡은 채.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뮤와 루비아, 그리고 스텔라는 나베리우스에 의해 속박되어 있다. 에지오는 나베리우스 쪽을 노려보며 죽일 듯 어금니를 씹고 있다.
‘끝났군.’
한편, 나베리우스는 평온하디 태연하다.
이걸로 되었다. 이제 에지오 크라닐은 자신을 방해할 수 없다. 곧 있으면 주신께서 오신다. 그리하면……
“이것도 한시적인 부활일 뿐,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순 없다. 보관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시체는 점차 부패할 테고, 부스러기만 남은 영혼도 자연히 소멸할 테지. 그렇게 되면 네 오라버니가 되살아날 기회는 영영 사라지게 된다. 유리 폰 아르티나.”
“……”
잠시 뒤.
유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죽인 거야…?”
“아니.”
나베리우스는 짧게 부정했다.
“나는 운반된 사체를 우연히 입수했을 뿐. 네 오라버니를 죽인 건 내가 아니다. …그러나 짐작 가는 악마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복수를 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무슨 수로.”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복수.
스텔라도, 나베리우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유리 역시 나베리우스를 용서할 수 없다.
소중한 친구의 부모님을 찢어 죽이고 그 앞에서 능멸을 했다니. 자연히 치가 떨리고 분노로 오금이 저린다.
하지만, 지금 나베리우스가 여기서 죽어 버리면, 서른 번째 밤을 한참 넘고 넘어서야 마침내 재회하게 된 제 오라버니를……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살릴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처럼 반쪽짜리 시체가 아니라…… 네가 기억하는 아이델 폰 아르티나의 모습을 되찾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진정한 의미로서의 부활을 가능케 할 수 있다.”
나베리우스의 악마 같은 속삭임에, 어깨를 움찔거리던 유리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따스한 품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가장 사랑했던 이를, 되찾고 싶지 않은가?”
“……”
“나 혼자로서는 불가능하다. 허나.”
다시 한번.
“주신께서는 가능하시다.”
날개를 펄럭이며.
“마신(??)을 따르라. 네 친구들을 설득해라.”
나베리우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하면… 네 기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