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28)
* * *
#51
‘……위험해.’
스텔라는 생각했다. 유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분명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자신이 본 운명이 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아직 확신하긴 이르다. 에지오의 존재 때문이다. 에지오가 있기에 예정된 운명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관측된 운명에서 저 시체가 유리를 죽이게 된다는 건─ 나베리우스가 임의로 아이델의 시체를 조종하여 유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단 얘기였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속지 마! 유리! 모습만 본따 만든 인형일 수도 있어!”
스텔라가 목청을 긁으며 간신히 소리쳤다.
직후.
“아냐, 그럴, 그럴 리가 없어.”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내 오빠가 맞아……”
“맞다고 해도…! 저 녀석은 애초에 네 소원을 들어줄 생각 따위 처음부터 하고 있지도 않았다고! 그냥, 단순히 네가 처참히 능욕당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뿐이야!”
“……”
스텔라가 바락 소리쳤다. 다음 순간, 이를 악물며 나베리우스를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 때도 그랬어. 내가 보는 앞에서 나의 부모님을 무참히 죽여 버리고, 멋대로 되살려서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기억. 힘없는 농민들마저 죄 징집된 전쟁. 특히나 그 처절함이 심각했던 서부 전선.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밤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중, 처음으로 계시를 받고 달려간 그곳에서……
─좋은 표정을 짓는구나, 꼬마야.
결국, 바라던 이는 구하지 못했고.
대신 다른 사람을 구했다.
“절대로 믿지 마. 거짓말과 기만을 밥 먹듯 일삼는 악마니까. 분명 너를 구슬린 뒤 경계를 푼 다음, 네 오라버니의 시체를 가지고 널 죽일 생각──”
“따르면…… 어떻게 되는데.”
“유리!”
그에 소리친 건 루비아였다.
“─신실함을 증명하는 길을 걷게 되지요.”
그쯤 나베리우스는 다시 존대를 사용했다.
“인간의 몸으로 마신을 따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몸에는 안타깝게도 신성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기에. 그것을 온전히 배제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마신의 은총을 몸속 깊숙이 받을 수 있게 되지요. 그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강대한 신성의 소유자일수록 아주 살짝 고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곧 이곳에 강림하실 마신께서 당신의 신성을 직접 흡수해주신다면…… 하나도 아프지 않게 끝날 수 있습니다. 그냥, 심장 부근이 따끔한 정도겠지요.”
거짓말이다. 분신(??)과 동일한 고통이다.
하지만 나베리우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시간 끌기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멋진 뿔과 날개 역시, 신실함의 증명으로 하사받은 것…… 당신께서도 충분히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반인반마(半人半?)가 되라는 말일까.
“아 마신을 따른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의 일상은 늘 그렇듯 평온할 겁니다. 그저,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마신께 신실함을 증명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당신이 구태여 티를 내지 않는다면, 당신이 마신교도(???)가 되었다는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
“당신의 오라버니께서도…… 마찬가지겠죠. 비로소 다시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당신을 보곤 순수히 기뻐하실 겁니다. 당신의 부모님도요. 그렇게 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겁니다. 모두가 행복하죠. 하등 도움 될 것 없는 태양신 따위를 버리고, 단지 마신을 따랐을 뿐인데. 이 얼마나 보기 좋은 결말입니까? …제 말이 틀린 것 같나요? 천만에요. 제 모든 이야기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오롯한 진실입니다.”
“……”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유리 폰 아르티나.”
“……”
유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푹 숙인 고개는 여전히 아래를 향한 채. 시선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아이델의 차가운 손을 꼭 붙들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상념에 잠긴 모습이었다.
스텔라가 멈추지 않고 진심을 담아 외쳤다.
“유리! 거짓말이라니까! 어차피 저래 놓고 널 처참히 능욕한 뒤 마신의 제물로 바치고 버릴 생각……”
그때─
「간식을… 사오겠다고, 했는데…」
아이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구나…」
시장에 들렀다 돌아가면,
밤이 지나가 버릴 테니.
“……오빠.”
유리는 그리 목소리를 낸 다음.
입술을 깨물며, 겨우 말했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간식 같은 것 따위보다도.
제 오라버니의 존재가 훨씬 필요했다.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잖아……”
서른 번째 밤이 지나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다.
지금은, 사천 번째 밤도 가까워진 참이다.
먼 길 돌아 다시 만나게 되었어도…
너무, 늦지 않았나.
“나랑 약속한 게 가장 소중하다며……”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 없는 오라버니다.
그렇기에 믿었으나, 결국…
“내가 어디에 있든…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라며…”
생일 선물로 준 검은 리본.
잊지 않고, 항상 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바보야…”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보지 못한다.
「아, 아…」
그러나─
느낄 수는 있다.
「손…」
유리는.
아이델의 피로 얼룩진 창백한 볼에 손을 얹었다.
그 손등을 아이델이 제 손으로 소중히 감쌌다.
「작고… 따뜻한…」
고개를 든다.
안개가 낀 듯 뿌옇고 흐리멍덩한 시선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실루엣은, 분명 유리 자신의 것이었다.
피눈물이, 다시 한 방울.
……똑.
지면에 부딪혀 피보라로 흩어지던 순간.
「…유리.」
유리를 ‘본’ 것처럼.
아이델이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쿠우우웅!
제단 위의 성배가 크게 흔들렸다.
결계는 결국 깨부숴지지 못했다. 반쯤 파괴되긴 했으나, 그뿐이다. 나베리우스가 초기에 안배한 대로 강림 의식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나베리우스가 반색하며 뒤를 돌았다.
“……끝났어.”
스텔라가 아연히 중얼거렸다.
──쿠구궁, 쿠궁…!
검은 벼락이 제단 위에 내리쳤다.
격렬한 떨림이 지면을 타고 모두에게 전해졌다.
일대를 떠돌던 마기가 일제히 모여들어 제단에 스며든다. 그렇게 모여 응집된 마기는── 한순간에 공동 천장을 부술 듯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다시금 빙글 회전하여 나베리우스를 향해 내리꽂힌다.
“에지오!”
스텔라가 에지오를 돌아본다. 강신(??)하는 순간. 기회는 지금뿐이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나베리우스의 바로 옆에 아이델과 유리가 있다. 에지오가 저기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유리는 죽어 버린다. 아이델의 사체는 소멸한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선 움직이는 게 맞았다.
유리를 포기하고…… 모두를 구하는 게 맞았다.
“……큭.”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에지오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나베리우스는 제 승리를 확신하며 날개를 좌우로 넓게 펼쳤다.
“하하하하하하─! 오십시오! 마신이여! 당신의 충성스런 종이 성심성의껏 준비한 선물을, 부디 마음껏 즐겨 주시기이이이일!”
타임 오버.
마신(??)이 강림한다.
그리고.
“아, 참.”
나베리우스가 꺾었던 고개를 다시 내린다.
정중앙으로 맞추며.
비릿한 웃음과 함께 손을 휘적인다.
“──꿰뚫어라.”
그 지시에.
아이델의 시체가 따라 움직인다.
어차피 이젠 쓸모 없는 것들이다.
전부 신성이 빨린 채 죽을 테니.
그러니 아주 잠깐.
나베리우스는 흥미 본위의 일을 저질렀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바로 그 순간─ 불신과 절망에 물든 표정을, 나베리우스는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오, 빠……?”
꽈득.
아이델이 손을 들어 제 동생의 심장을 꿰뚫으려 한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유리의 목을 붙잡았다. 유리는 컥컥거리며 제 오빠의 손목을 탁탁 쳐보지만, 아이델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오, 빠아……”
유리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고통 때문일까. 투명한 물방울 속에 아이델의 얼굴이 비쳤다. 혼탁한 눈빛으로 유리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며, 아이델은 제 손에 준 힘을 더욱 세게 주었다.
꽈드드득.
“아, 파. 아파… 오빠…”
그리고.
나베리우스의 지시에 따라, 아이델은 뾰족하게 세운 손날을 그대로 유리의 심장에 가져갔다.
“역시 좋은 표정이다. 유리 폰 아르티나!”
……그러나.
“──!”
이번에도, 실패했다.
에지오는 아주 짧은 순간을 노렸다. 지면을 밀치고 나아가 쏘아진 몸을 날려 유리를 밀치고자 했다. 그런 다음 아이델의 공격을 고스란히 자신이 받아낼 예정이었다.
콰앙─!
호기롭게 바닥을 박찬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어딜!”
당연히 대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베리우스가 맞대응했다. 잠시라도 몸을 묶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검은 손아귀들을 일으켜 발과 다리를 칭칭 감아 에지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콰당탕. 그렇게, 에지오는 끝내 유리를 보호하지 못한 채 바닥에 등을 부딪히고 말았다.
“케윽, 흑, 켈록……”
하지만─ 유리는 살았다.
허공에 대롱 매달렸던 몸이 떨구어져, 바닥을 굴렀다. 발갛게 물든 눈으로 방울진 눈물을 흘리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거부, 했다고?”
나베리우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안, 된다.」
아이델이 기어코 손을 놓은 것이었다.
유리의 가슴을 꿰뚫을 예정이었던 한쪽 손의 경로를 바꾸어, 자신의 오른 손목을 썩둑 잘라내었다.
아이델의 손목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떨어졌다. 피눈물은 흐르고 있었으나, 잘린 단면에서 피는 흐르지 않았다.
이윽고.
「……」
아이델이 털썩, 주저앉았다.
끝끝내 미동도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말도 안 되는……’
시체 따위에 의지 같은 건 없을 터인데.
영혼의 부스러기가 남아 있다곤 하나, 그것만으론 술자의 명령을 거부하기엔 턱도 없었을 터인데……
‘운명이……’
스텔라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미래시로 본 내용과 똑같은 상황까지는 아니었으나, 저대로라면 아이델이 유리를 죽여 버리는 건 이미 반쯤 확실시 된 일이었을 텐데.
무언가…… 바뀌었다.
“──야, 인마!”
“콜록, 콜록.”
지면 위에 엎어졌던 에지오는 검은 손아귀들을 죄 잡아 뜯어낸 다음, 유리를 향해 급히 달려가 그녀를 감싸고 보호했다.
‘상관없나.’
좋은 표정도 보았고.
어차피 다 죽을 테니.
“커걱. 컥. 커윽. 켁. 꺼르르르륵.”
고장 난 기계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던 나베리우스는, 제단으로부터 치솟은 검은 기운을 모조리 흡수한 뒤, 어느 순간 목을 기괴한 각도로 꺾으며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는가 싶더니.
끼긱.
뿌드드득─
다시 원래대로 관절을 비틀고.
그렇게 얼굴을 들어, 두 눈을 침잠시켰다.
……
마침내 열린 그 입안으로부터 나온 목소리는, 육체의 본래 주인이 가지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음색이었다.
「흐음.」
고고한 위압감이 일대를 지배했다.
아무도 숨을 쉬지 못했다.
에지오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발광하던 빛은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장내를 잠식한 어둠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악마의 마기도 어렵지 않게 압도했을진대……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썩 재밌는 상황이구나.」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마신(??)이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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