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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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 1학구 프론티어 본부 상층부.
임시로 급조된, 비상 대책팀 회의실.
“현장 상황은 어떻지.”
“「루졸린」성분에 중독된 귀빈분들을 모두 신전으로 안전하게 이송했습니다. 일찍이 발견하여 후유증은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경과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꼭두새벽부터 프론티어 본부가 왈칵 뒤집혔을 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선 교원들이 실습 참관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그곳에 있던 귀빈들과 그들의 호위 기사들은 전체가 모종의 테러로 인해 깊은 잠에 빠져든 채였다.
다만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고.
맥박도 정상이었다.
단지, 정말로 잠에 들었을 뿐이었다.
일반 클래스의 교수들에 비해 월등한 능률과 실력을 보유한 에픽 클래스 교수회의 일원, 타일러 르베귄의 분석 결과 「시메오리 버섯」으로부터 채취할 수 있는 「루졸린」이란 성분이 담긴 미세한 알갱이가 공기 중에 섞여들어 있었다고 한다.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대상을 잠재워 72시간 정도 깨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매우 강력한 수면 가루.
그것이 범죄에 사용되었다.
“유통에 제한이 걸려 있었을 텐데.”
「시메오리 버섯」은 무척 특수한 환경에서만 자라나는 버섯이기에 쉬이 채취할 수도 없긴 하나, 이처럼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루트로는 결코 구입할 수 없도록 유통 제한이 걸렸다.
“로베르 그놈이 최근까지 진행하고 있던 연구에 「시메오리 버섯」이 사용되었다더군. 극소량이라도 복용하면 깊은 잠이 든다는 특질을 이용해서 피로 회복제를 연금하려 한 모양이야.”
“썩을. 그딴 연구는 누가 허가를 내준 건가?”
“연금학회겠지. 아무튼 쓸데없는 곳에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대책 회의를 하러 온 것이니.”
이번 에픽 클래스 실습의 총감독관이자 1학년 감독관, 로베르 길라이틴은 타일러 르베귄과 동일하게 연금술을 전공한 일반 클래스 연금학부의 교수였다.
따라서, 연구 허가를 받는다면 연구에 필요한 일부 희귀 재료들─제한이 걸려 있다고 해도─을 재량껏 수입할 수 있다.
아마 그 경로로 범죄에 사용된 수면 가루를 구비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로베르 그놈이 단독으로 벌인 짓이라더군. 복구된 기록 영상에서도 그놈의 모습이 확인되었어. 각 감독관실에 배치되었던 포탈을 비롯한 진입 루트를 모두 파괴하고 도주한 것도……”
“단독은 아니라네.”
프론티어 중앙보안국 부국장 헤일로 스타이튼.
얼마 전, 제 4학구에서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부터 영 안색이 좋지 않던 그는, 어쩐지 헬쓱한 얼굴로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에픽 클래스 당 기관의 부학장과 협약 체결 및 ‘계약’까지 진행한 그 마법사─ 네비로스 역시 공범으로 추정되었지. 어쩌면 그가 이 사건을 모두 주도한 진범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네.”
재야의 대마법사, 네비로스.
그 경이로울 정도의 마도(??)와 실력은 인정하나, 신뢰는 부족했던 그에게서 만일의 만일을 대비하여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계약’까지 받아내었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사고가 터지고 만 건지, 헤일로 부국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학장과 부학장은 또 어딜 간 건지.’
그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경우에 따라 파면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별안간, 누군가 말했다.
“귀빈분들을 잠재운 것도 아마 그 마법사의 소행일 겁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법이 발현된 흔적이 현장에서 발견되었거든요.”
그리 발언한 것은, 회의실에 모여 있던 에픽 클래스 교수회의 일원, 마법 전공 수업을 담당하는 제펠린 폰 어니스트 교수였다.
헤일로 부국장이 의구심을 담아 말했다.
“……확실한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마법이라 정확히 분석할 수는 없었으나, 역산 결과 「슬립」 마법과 유사한 술식 구조가 첨가된 걸 파악할 수 있었으니…… 확실할 겁니다. 그 마법사가 먼저 소행을 벌이고, 로베르 교수는 현장을 「루졸린」 가루로 덮어씌웠겠지요.”
회의실에 있던 모두는 이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마법 자체와 마법의 분석에 관련한 일이라면, 제펠린 폰 어니스트 교수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아무도 없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제펠린의 말은 그만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그런 짓을……”
자신의 소행인 것처럼 꾸미려고 한 건가?
……왜지?
애당초 어째서 ‘수면’이었을까.
프론티어 내부에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수면 가루 따위가 아닌 강력한 독성을 가진 독극물을 이용했을 텐데.
아니면 그 마법사─ 네비로스의 무궁한 마도로 피보라가 몰아치는 살육을 벌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만일 그리했다면 프론티어는 제국의 가장 찬란한 도시로서, 결코 두 번 다시 지울 수 없는 과오(??)를 남기게 될 것이었다.
네비로스와 로베르 교수가 그리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로 천만다행인 일이었으나, 뇌내 한구석에 자그마한 의문이 남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로베르 교수… 아니, 범죄자 로베르 길라이틴은 범행을 저지른 뒤 제국 밖으로 도주했다고 들었는데. 보안국에서 추적자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곧 잡힐 거라네.”
“그럼 그때 취조하면 되는 일이겠지요. 지금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때가 아니라, 피해 학생들을 구조할 방도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로베르의 범행 동기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평소 행실은 깔끔하디 우직했다. 사람도 좋았다. 인품 역시 훌륭한 편에 속했다. 하여, 비교적 최근에 부임한 신임 교수임에도 동료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는 것에 성공했던 로베르 길라이틴 교수.
그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계획된 일이라고 보기엔 다소 허술하며, 잡히면 사형이 확실할 터인 중범죄를.
지금까지 거뭇한 본심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며 사람 좋은 연기를 해왔던 것일 수도 있으나…… 자세한 내막은 범인 검거에 성공한 이후 취조에 들어간 다음에야 조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피해 학생들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건가.”
“일단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상념에 잠겨 있던 푸른 머리의 소년─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지만─, 아벨 라이오너가 문득 입을 열었고, 헤일로가 고개를 주억였다.
2학년과 3학년은 전원 무사하다.
사건 발생 직후 실습 장소로부터 강제 방출당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피해 학생들을 제외한 1학년의 일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현장을 박차고 본부의 직원들과 선배들 및 교수들에게 상황을 알리러 갔을 때, 2학년과 3학년 학생들 역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피해 학생들의 명단은 어떻게 되지.”
“에픽 클래스 1학년 1번 뮤, 2번 유리 폰 아르티나, 3번 스텔라 데 펠트라인, 5번 루비아, 15번 에지오 크라닐. 이상 다섯 명이라네.”
다만, 사건의 주축이 되는 피해 학생들─ 에픽 클래스 1학년 중에서 총 다섯 명의 학생들이 아직 탈출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르티나와 펠트라인이라면……”
누군가 중얼거렸다.
평민들, 그리고 이름도 모를 가문은 제하고서.
제후국 중에서도 강성한 축에 속하는 아르티나 왕국뿐만 아니라, 십 년 전 인마대전 이후로 「점성 마법」 등을 통해 무섭게 세력을 불려가던 펠트라인 공작 가문. 한 나라의 왕실과 제국 공작 가문의 자식들이 심각한 상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귀족과 평민.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는 본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오로지 본신의 실력과 재능에만 따른 차등적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된 교육 기관이었으나, 아카데미 밖에서의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학생들도 제각기 프론티어를 벗어나면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제후국의 왕자, 거대 상단의 후계자, 제국의 고위 귀족 등… 프론티어에 재학하는 각국의 귀족들은 종종 저들만의 사교회를 만들어 인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좌우간, 이번 사건으로부터 비롯하여 제국 내외로 큰 반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로 말미암아 프론티어의 드높은 위상이 어느 정도까지 추락할진 감히 예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큰 사고가 있던 참이다.
만일 이번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꿀꺽, 회의실 내부에 자리하던 몇몇 인물들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한편──
‘……그러고 보면 또 ‘그 학생’ 인가. 돌겠군.’
대부분이 유리 폰 아르티나와 스텔라 데 펠트라인을 생각하고 있을 때, 헤일로 부국장은 다른 학생의 이름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지금만 떠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제 4학구에서 대대적인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부터, 헤일로는 언제나 그 학생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당시 일어난 사건의 주축.
제국에 암약하던 마족이 표적으로 삼은 대상.
무엇보다, 전쟁 영웅─ 엘레나 크라이모어가 어째서인지 현시점에서 가장 편애하고 있는(추정) 남학생.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가. ‘그 학생’이 얽혀 있는 만큼 사건 해결과 사후처리에도 분명 도움을 줄 테니……’
엘레나 크라이모어는 이미 은퇴한 몸. 웬만하면 남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이 넓은 대륙을 쥐 잡듯 뒤져도 콧털 하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네비로스만큼 워낙 신출귀몰한 작자였으니.
그러나, 엘레나 크라이모어는 ‘그 학생’과 우연히 얽인 이후 프론티어와 나름의 소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와 에픽 클래스 졸업생으로서 후배들을 관리 감독할 의무가 있느니 어쨌느니 하지만…… 엘레나가 대개 소통의 주제로 삼는 대상은 ‘그 학생’, 에지오 크라닐의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역시 자그마한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인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이다.
어째서, 그 학생인가.
졸업한 이후 여태 무엇 하나 모교(??)라는 인식 따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그 학생 한 명 때문에, 지 꼴리지 않으면 뭐든 내팽개치던 야수가 순순히 말을 듣게 된 것일까.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올해로 혼기가 차고도 남았을 나이이긴 하지…… 만…… 이런, 토할 것 같군.’
헤일로는 팔뚝에 두드러기가 돋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 무식한 인간─정말 인간이 맞는지도 확신이 잘 서질 않지만은─이 한낱 열일곱의 남학생 따위에게 속된 마음을 품진 않았을 테지.
헤일로는 불타오르는 전장에서 악귀처럼 날뛰던 검은 늑대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한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다시 한번 확신한다.
“…포탈의 복구는 어떻게 되고 있나?”
구역질이 나려는 걸 애써 눌러 담으며, 역겨운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헤일로 부국장은 제펠린 교수에게 물었다.
“잘 되지 않았으니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헤일로가 되물었고, 제펠린은 탁상을 두드렸다.
“우선, 포탈의 복구 자체는 가능합니다.”
“그럼 당장 하지 않고 뭘──”
실습 장소로의 진입 경로 전체가 완전히 봉쇄되었다. 현재로선 진입에 사용되었던 포탈의 복구뿐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로베르 길라이틴이 도주할 때 감독관 전용 포탈을 전부 파괴하고 도주했긴 하나, 제펠린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렵지 않게 복구할 수 있을 듯했는데.
“하지만 기능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가?”
의문 가득한 시선들이 한 곳에 모여들었다.
제펠린은 딱 잘라 말했다.
“포탈을 복구한들 소용이 일절 없을 겁니다. 목적지로 설정해야 하는 좌표계가 차원상에 더 이상 존재하질 않으니까요.”
“……존재하지 않는다고?”
“예. 방금도 쉽게 축약하여 말씀드린 것이긴 하나, 더 쉽게 말하자면… 돌아갈 집이 불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이 사라졌는데 ‘집에 돌아간다’ 라는 행동이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예시가 좀 거시기했으나 다들 명료히 알아들었다. 출발지는 있는데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으니 양 구간을 오가야 할 포탈도 기능하지 않는다.
여기서 헤일로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 말은, 학생들이 갇혀 있을 터인 공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건가?”
“일단은 그렇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
공간이 증발했다.
그럼, 안에 있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어쩌면 좌표계를 임의로 이동했을 수도 있으나… 그건 아공간의 근원부터 역으로 뒤바꿔야 하는 일이기에, 이리 짧은 시간 만에 행했으리라곤 감히 예상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만한 공간의 근원을 단시간에 수정하는 건… 그 어떤 대마법사도 해내지 못할 겁니다.”
회의실은 싸늘한 침묵에 감싸였다.
장내에서 오로지 제펠린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이번 실습 장소에 사용된 미궁은 그 마법사의 소유였습니다. 그 마법사가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낸 아공간. 따라서, 공간에 누군가를 들이고 쫓아낼지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 마법사뿐입니다.”
에픽 클래스 2학년과 3학년.
1학년 학생들의 일부.
실습 참관실에 자리했던 귀빈들. 그들의 호위들.
전부, 지금으로선 무사하다.
“그러니 그 마법사를 잡아내지 못하면, 저희는 무슨 수를 쓴다고 한들 피해 학생들이 갇혀 있을 그 공간에 영원히 진입할 수 없습니다.”
범인도 곧 잡힐 것이다.
네비로스의 경우, 대대적인 수배가 걸리겠지.
사람이라면, 평생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고서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론티어의 추적자들이 네비로스가 죽을 때까지 그의 뒤를 쫓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잡히게 되어 있다.
허나.
그러면, 이미 늦었을 때다.
“……사실, 공간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구멍을 뚫는 정도의 시도는 해보았을 겁니다. 아니, 반드시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남은 방법은 오로지 그것뿐이니까요.”
이토록 큰 사건이건만.
실질적인 사상자는 놀랍게도 아직까지 0에 수렴하니, 참으로 기적 같은 구사일생이었다.
이제 남은 피해 학생들만 구조하는 것에 성공하면, 프론티어도 어찌저찌 나락으로 처박히지 않고 위상을 지킬 수 있겠지. 조금은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한다.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공간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아무래도 그 마법사가 스스로 아공간을 소멸시켰거나… 이 경우는 조금 말이 안 되지만요. 저도 한 명의 마법사인 만큼 그 아공간에 스며든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섯 명의 학생들이── 죽는다.
그것도 에픽 클래스.
에픽 클래스는 곧 프론티어를 상징한다. 프론티어가 에픽 클래스고, 에픽 클래스가 프론티어다. 머나먼 옛적부터 그 위상을 굳건히 지켜온 철옹성 같은 찬란한 별들의 집단. 그 명성이 근본부터 깨져 나가려 하고 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경우의 수는… 아마 아공간의 주인이 죽음으로 인해 아공간이 함께 소멸했다거나. 인데.”
절벽을 오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그 속도 역시,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경우엔 최악의 상황이 되겠지요.”
네비로스는 과연 어디로 갔는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네비로스가 표적으로 삼은 1학년 학생들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하기 위해 미궁 속으로 들어갔으나, 거기서 모종의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공간의 문을 열 수 없고, 공간마저 완벽하게 소멸하는 겁니다.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은.
무너지는 공간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구할 방법은, 없다.
“……”
“……”
“……”
소름 끼치는 적막이 내부에 눌러붙었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그 차가우리만치 냉혹한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덩이처럼 무거운 절망을 씹어 삼키도록 만들었다.
숨소리는 죽은 듯 멎었다. 미세한 심장 박동만이 장내를 떠돌아다녔다. 그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대들에게 미리 사과하지.”
그런 적막 속에서, 누군가 용기를 내었다.
헤일로 스타이튼 프론티어 중앙보안국 부국장.
그가 모자를 벗곤 탁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그의 직책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모자 속, 꼭두새벽부터 뛰쳐나온 탓에 미처 감지 못한 머리카락이 얼기설기 헝클어져 있다. 모발은 실처럼 가느다랗고, 정수리는 어쩐지 둥그런 모양으로 무언가가 형성되는 중이었다.
“이 모든 건… 내 책임이나 다름이 없네.”
벌써, 이십 년도 더 넘은 시간을 프론티어에 바쳐왔다. 프론티어의 학생들, 교원들,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프론티어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근래 들어서는 머리카락까지 바쳐가는 중이었다. 그만큼 프론티어의 보안에 일평생 힘썼다. 하지만……
“전부 내 잘못이네. 나의 무능이 이러한 참극을 불러왔어. 그대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네.”
기본적인 보안 체계는 물론이고, 철저한 사전 검수와 보안 점검을 상시 진행했음에도, 이처럼 큰 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말았다. 죄 없는 학생들이 여럿 죽게 생겼다.
이래서야, ‘지키는 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아직,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부국장님.”
사무국에서 파견 나온 어느 요원의 말이었다.
“……”
헤일로는 잠자코 그 말을 듣더니.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네.”
라며, 탁상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벗어놓았던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쓴다.
그렇게 근엄한, 또 굳센 우직함이 드러나는 중앙보안국의 부국장, 헤일로 스타이튼으로 돌아온 그가 심호흡 뒤에 선언했다.
“내 비록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자리에서 물러날 결심을 했다곤 하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반드시─ 어떻게든 학생들을.”
그때.
─아, 아. 들리십니까?!
제펠린 교수의 앞에 놓여 있던 통신 수정구에서, 발신을 뜻하는 밝은 빛이 반짝였다.
“……”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제펠린 교수가 황급히 통신을 수신했다.
“들립니다. 무슨……”
─나타났습니다!
어느 교수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제펠린의 응답을 단칼에 잘라내며 열띤 음성으로 소리치고 있다.
“……예? 나타났다니.”
제펠린은 눈썹을 잠시 구겼으나.
─밖에, 밖에 있습니다! 본부 밖에!
이윽고, 눈을 크게 부릅떴다.
다른 교수들, 교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마.
설마──
이름도 모를 교수는, 수정구가 깨부숴질 듯한 크기로 급박히 소리쳤다.
─갇혀 있던 피해 학생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단은, 전원 무사합니다!
그러자.
모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붕 떠올랐다.
터질 듯 쿵쿵 뛴다.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내달리고, 전신에 쭉 퍼져 나가더니, 경직되었던 손발이 겨우 원래대로 펴진다.
“……”
가열된 흥분감이 뒤늦게 밀어닥친다. 기묘한 열기가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이, 살아 있다.
죽지 않았다……
다음에 할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들이 재빨리 움직이려던 순간.
─그리고…… 그, 아무튼 다들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 학생들과 같이, 신원 미상의……
그때.
치지지지직─
“……신원 미상의?”
─……
“……끊어졌군요.”
통신 오류가 일어난 건지.
수정구가 치직거리며 결국 통신이 끊어졌다.
“……”
잠시간의 까마득한 침묵.
다음 순간, 회의실의 인원들은 합심이라도 한 것처럼 탁상 한가운데로 시선을 모으더니.
“어서 가도록 하지.”
우르르르르─
모자 챙을 고쳐쓴 헤일로 부국장을 선두로, 본부 밖을 향해 빠르게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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