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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73화 (173/201)

〈 173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32)

* * *

#56

“……제 오빠를, 살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간절한, 또, 진실된 울림.

오른 손목이 댕겅 잘려 나간 채 하염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아이델 폰 아르티나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유리 폰 아르티나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 소망을 바랐다.

「……」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뮤마저 침묵했다. 정확히는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는데, 에지오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 오라비가 사령(死)이 되어 이승을 떠돌길 원하는 건 아닐 테지.」

셀레네는 고고히 말했다.

「소생(??)을 바라는 것이냐.」

그 물음에.

유리를 가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

영겁 같은 적막.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유리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루비아는 어느새 눈가가 그렁그렁해져선, 가슴 아픈 광경을 더없이 구슬픈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안에 처박힌 기억으로 보건대, 나베리우스 그놈이 네게 몹쓸 말을 했나 보구나. 사자(死者)의 소생 같은 건 본인도 할 수 없느니라.」

유리의 안색이 순간 절망으로 물들었다.

충격을 받아 몸이 휘청거린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에지오는, 옆에서 유리의 몸을 잡아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가슴팍에 유리의 뒤통수가 기대어졌지만.

탁─

곧 힘없는 손이 에지오의 손길을 쳐낸다.

스스로 올곧게 서서, 표정을 다잡은 채 다시 한번 말을 잇는다.

“대가, 대가를 바칠게요.”

무언가 결심한 눈빛.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말했지 않느냐.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셀레네는 무심히 고개를 젓는다.

대가를 바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셀레네 역시 나베리우스가 으레 해왔던 것처럼, 사령술과 강령술, 그리고 흑마법의 극의를 통해 아이델의 시체를 일으킬 수는 있었다.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할 수 있는 걸 초월자가 하지 못할까.

다만, 그래선 진정한 소생이 아닐 것이다.

당분간은 육체에 남은 기억에 따라 행동하긴 하겠으나, 일종의 자아(??)라 칭할 만한 그것은 차차 희미해져 간다.

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껍데기만 남아 있으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껍데기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그 속마저 함께 썩어들어가는 것이다. 본질은 시체인 까닭에 부패는 멈추지 않는다.

나베리우스가 로베르 길라이틴을 사령술로 되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만 놔두면 일주일 내로 자연히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프론티어의 눈에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나베리우스가 여러 마법적 처리를 가하느라 그 수명은 더욱 짧아졌고.

그러니 나베리우스의 도주 명령을 이행한 뒤, 머지 않은 거리에서 창백한 시체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이만 포기하거라. 네 오라비는 살릴 수 없으니.」

하여, 유리가 원하는 완전한 소생은 불가능하다.

잠시나마 꿈을 꿀 순 있겠지만……

그 꿈은 본디 거짓으로 꾸며진 환상이다.

깨어났을 때는, 한없이 공허하고 허무할 터였다.

“……”

냉철한 선 긋기. 유리는 침묵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법칙─ 마(?)의 궁극에 달한 마신(??)마저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느 누가 살릴 수 있단 말인가.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그 말엔 셀레네가 아닌 다른 이들이 반응했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 있던 이들이 다급히 유리를 말리려고 했으나,

「불가하다.」

셀레네는 그 한마디로 모든 가능성을 일축했다.

“……”

유리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뻐끔거리다, 결국 다물었다.

「혹여나 말하건대, 죽음 당시의 순간이라면 모를까…… 이미 죽고 바스라진 사자를 되살리는 건, 하늘 위의 신이란 녀석들도 불가하느니라.」

셀레네가 이어 말했다.

「애당초, 네 오라비의 혼은 아주 잘게 부서진 채, 미세한 양만 남아 그것을 회한(??)이 간신히 붙들고 있을 뿐. 그 외 나머지는 죄 소멸해 버렸으니, 설사 인과를 비튼다고 한들…… 네 오라비는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 테지. 사령술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라.」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네 오라비의 죽음은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느니라.」

길게 늘어지던 장발은 단발이 되었고, 바스라지는 단면으로 근섬유와 뼛조각이 언뜻 보였다.

셀레네는 유리의 의문에 연이어 답했다.

「이미 한 번 죽었고. ‘계약’으로 굴레에 속박되었으며. 비로소 해방되었느니라. 또 한 번의 죽음으로 인해.」

……언젠가, 왕태자는 전장에서 마족들의 창끝에 찔려 무수히 난도질 당한 채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그에게 손을 내뻗었다.

왕태자는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빛을 두른 채 홀몸으로 마족의 군세를 도륙한 뒤, 끝끝내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냈다.

만일 왕국 변경의 방어선이 뚫렸다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마족의 군세를 왕국의 병력으론 결코 막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정말로, 왕태자는 혼자서 왕국을 지켜낸 것이었다.

「닳고 닳은 혼을 불사르며 필사항쟁했으니, 결국 죽음으로써 완전히 소멸하여, 남은 건… 작디작은 알갱이와 부스러기뿐이니라.」

간단히 말해, 육체에 깃들 영혼조차 충분하지 않다.

끝없는 회한과 염원만이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뿐.

되살아난들…… 제정신 박힌 인간은 아닐 것이다.

“오빠가……”

왕국과, 백성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왕국의 최강자라 칭송받던 왕태자는 칼을 빼들었다.

“그렇게, 그렇게나 필사적으로……”

대전쟁의 작은 조각.

피로 물든 평원 위, 홀로 선 왕태자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 나는, 아무것도…… 히끅.”

그때 새겨졌을 터인 상흔이 생생한 제 오빠의 시체를 가만 내려다보던 유리는, 고상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시의 모든 참상과 비극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해서, 유리는 목소리를 차츰 떨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오빠……”

유리─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젖살이 아직 통통했을 정도로 어렸던 유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주었으니, 전쟁 당시에 있었던 참극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난 뒤,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기사단원의 보고서를 엿보긴 했었지만…… 왕태자의 최후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도 무지했던 까닭이다. 왕태자는 모든 각오를 마치고 파도처럼 몰아치는 마족의 군세 한가운데로 몸을 던졌기에.

단지, 그 사실만이 적혀 있었을 뿐.

한 번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불태우며 끝끝내 왕국을 지켜낸 뒤, 이처럼 평안한 안식도 얻지 못한 채 싸늘한 시체로 남아 있었을 줄은…… 정말로 몰랐다.

「네 오라비의 원수를 갚을 수는 없으니라. 당시 로트힐드 평원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군단장은 네 오라비와 함께 동사(?死)하였으니.」

“……”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요.”

「……」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오빠를 살릴 수 있다고, 어쩌면 아이델 오빠와 다시 웃음꽃을 피우며 얘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그마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유리는 지금 자신이 누구한테 부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린 채였다.

그러나──

“당신이, 오빠를 죽게 만들었어.”

「……」

지금, 조용히 침묵하는 셀레네를 직시하면서.

유리는 천천히 목소리를 떨었다.

“그 전쟁만 없었어도……”

마신 셀레네.

그가 전쟁을 주도했다.

그가 살아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서…… 오빠가 죽었다.

“당신 때문에.”

유리의 호흡이 차츰 불안정해진다.

심장이 쿵쿵 뛰고, 피가 뜨거워진다.

“당신 때문에──!”

유리의 내부서부터 진실된 분노가 용오름쳤다.

그 들끓는 용암 같은 격정에 반응하여, 셀레네에 의해 멈춰 있었던 돌조각과 바위들이 쿠구구구─ 불안한 소음을 내며 덜덜 떨렸다.

염력(力)이 폭주하고 있었다.

「……」

그 격렬한 진동 속에서, 셀레네는 다만 초연했다.

“유리.”

“당신이, 당신 때문에. 당신이──!”

아이델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아르티나 왕국의 왕궁은 언제나 꽃내음과 화사한 햇볕으로 가득했다. 매일이 봄날인 것처럼 평화롭디 화목했다. 왕은 성군이었고, 왕후는 자애로웠다. 오빠는 동생을 끔찍이 아꼈고, 동생은 그런 오빠를 너무나도 잘 따랐다.

그 모든 일상이, 하루아침에 망가져 버렸다.

“당신만 없었어도, 오빠는 안 죽었을 거야…! 부모님도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을 거고, 나에게 집착하게 될 일도… 전부 없었을 거라고……!”

왕궁의 모든 문은 닫혔고, 정원의 꽃은 시들었다.

왕과 왕후는 제 딸마저 잃지 않기 위해 병적으로 유리를 보호하려 들었다.

왕족으로서 감옥에 가본 적도, 갈 일도 평생 없을 유리였으나, 창문 없는 방의 침대 위에서 유리는 종종 자기가 마치 감옥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당신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모든 게… 모든 게 망가지지 않았을 거야…! 전부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내 행복을 망쳤어─! 오빠를 돌려내. 당신 때문에 죽은 오빠를… 돌려내라고……!”

지금처럼 성격이 장미의 가시처럼 날카로워질 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게 될 일도. 남들은 다 해본다는 사랑도─ 그 변변찮은 감정 하나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이델 이외의 남자는 전부 역겹고 하찮기 그지없었으며, 이미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은 어느 누가 두드린다 한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었기에.

“돌려내. 돌려내라고! 돌려내애애애애애─!”

“유리, 그만해!”

유리는 음이 갈라질 정도로 소리치고, 악을 질렀다. 볼과 턱을 적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처절한 몸짓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툭 끊어져 실 풀린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히극, 흐끅, 오빠아아아…… 으어어엉……”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유리는 엉엉 울었다. 무릎 꿇은 아이델의 시체 앞에서, 한없이 울고 또 울었다.

루비아의 눈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텔라는 뜨거운 숨을 삼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뮤는 어쩐지 한심한 것을 보는 듯한 눈을 하다가, 결국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당신이이이……”

“유리.”

에지오는 폭주하려는 유리를 말렸다. 자신한테는 통하지 않았지만, 루비아를 비롯한 친구들이 제멋대로 날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다 다 죽어. 일어나야 해.”

“흑, 으흑, 흑, 흐흐흐흑……”

우는 유리의 옆에서, 에지오는 냉정히 현실을 말했다.

셀레네의 심기를 정도 이상으로 건드리면, 일행 전체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 그들이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셀레네의 아리송한 변덕 덕분이었으므로.

“루비아, 미안하지만 「스턴」 마법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덧 셀레네의 몸체는 쇄골 위로만 남아 있었다. 셀레네가 붕괴를 가까스로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으니, 셀레네가 사라지면 이 공간의 모두는 돌무더기, 그리고 지하에 깔린 시체들과 함께 매몰될 것이었다.

“…아, 알았어. 흑. 히끅.”

에지오가 루비아에게 유리를 기절시킬 것을 요청하고, 눈물을 닦으며 어찌할 도리 없이 고개를 끄덕인 루비아가, 유리에게 마음속으로 사죄의 말을 뇌까리던 바로 그 순간.

「……마지막 해후 정도라면, 나누게 해줄 수 있느니라.」

그 고즈넉한 울림이, 모두의 귓전에 닿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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