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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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잃어버린 것은 십 년이다.
잠시나마 되찾은 건, 삼 분이다.
십 년의 일을, 삼 분이라는 시간으로 헤아릴 순 없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전부 전하기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고 부족하다.
…아니.
충분했다.
어느덧 그들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일곱 살이었던 유리는 열 살을 더 먹어 열일곱이 되었고, 아이델은 여전히… 열아홉의 아이델이었다. 열두 살 터울이 두 살 터울로 바짝 좁혀졌다. 유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아이델이 보는 것처럼 성숙한 숙녀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했다. 혹시나 다른 사람으로 착각이라도 할까봐. 일곱 살이었을 때보단 훨씬 많이 자랐으니까.
키도 컸고, 머리카락도 더 길었고, 얼굴도 성숙해졌으며, 무엇보다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오빠가 사라진 뒤로 유리가 웃는 일은 거의 없어졌던 까닭이다. 오빠를 부르며 개구장이처럼 환하게 웃질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잘 자랐지 않느냐, 유리.”
그렇기에, 아이델이 가늘게 미소 지었을 때.
유리는 흐읍─ 하고 뜨거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앞으로 천천히 고꾸라지듯 머리가 기울고, 그것은 아이델의 그을린 가슴팍에 닿았다. 힘없는 아이델의 몸이 일순 흔들렸으나, 곧 차분히 안정되었다.
유리가 숨죽여 흐느끼는 동안, 아이델은 그 너머를 망연히 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공동. 쩍쩍 갈라진 돌바닥.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이 아니었다. 무분별한 시체의 산도 없었다. 여긴 대체 어디인가. 왕국에 이런 장소가 있었던가……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그 짧은 재회를 허망히 보내지 않게 하려던 누군가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에, 아이델은 다만 고개 숙여 동생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덧없는 기억을 사진처럼 새겼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자신은 곧 사라지고 말 테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 만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기실, 환경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델은 그저 유리의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그것으로 만족했다.
너무 늦었지만.
한참, 많이 늦어버렸지만.
누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훌륭히 성장한 누이를 보았다. 그렇다면, 아이델은 이처럼 가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다만 조금 힘겨운 미소였다.
오라버니라는 존재는, 누이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기에, 쉬이 눈물을 보일 수 없으니.
“……”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것은 전부 사죄의 말이었다. 백번 천번 해도 모자랐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하면 안 되었다.
“…미안하구나. 정말로.”
해서, 단 한 마디.
……유리는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떨었다. 목소리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서로 달라붙은 듯 열리질 않았다. 목구멍이 자꾸만 텁텁하게 메어서, 전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하는 고통이 너무 아프고 쓰라려서… 유리는 가슴을 쥐어짜고, 그렇게 무너지듯 오빠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울음을 힘껏 삼켰다.
이대로 울기 시작하면, 삼 분이란 시간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아이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한 나라의 왕녀로서 기품이라곤 일말도 찾아볼 수 없는 망가진 얼굴.
얼룩진 눈물 콧물을 다 삼키며, 유리는 깨문 입술로부터 갈라진 목소리를 토해냈다.
“……너무 늦었어. 멍청아.”
그간의 설움. 반드시 돌아오겠다 약속해놓고, 결국 돌아오지 않은 오빠를 원망했던 마음. 미워했던 마음. 전부 담아서, 그리 말했다.
멍청아─ 라고.
그걸로 끝이었다.
이제 유리는… 오빠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아이델의 탁한 눈이 잠깐 동그랗게 뜨였다. 순수하디 착하고 귀엽기만 했던 동생에게서 멍청아─ 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델의 입가에 작은 실소가 흘렀다.
“정말 많이 큰 모양이구나. 이 오라버니에게 그런 모진 말도 할 줄 알고. ……한편으론 조금 가슴이 아프구나.”
“오빠가 잘못했잖아.”
“……그렇지, 이 오라버니는 멍청이다. 하지만 기왕 할 거라면 바보라는 말도 같이 하는 게 어땠겠느냐.”
“바보야. 멍청아.”
유리가 발갛게 물든 코를 들이켜며 그리 힐난했다. 아이델은 그런 동생의 새로운 모습이 여간 신선하기만 했다. 그 어렸던 것이 이렇게나 성장해서, 제 나이 또래의 얼굴로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컸느냐, 유리. 이제는 이 오라버니와 별로 차이도 나지 않을 것 같구나. 올해로 몇 살이기에.”
“……17살.”
열일곱.
……그런가.
십 년인가.
“……그래도 아직, 오라버니라 부를 수는 있겠구나.”
그럼에도 두 살 터울이었다. 오라버니라 자칭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한 셈이었다.
아이델은 문득 손을 들어 유리의 볼에 달라붙은 머리칼 가닥을 떼어주려다가, 자신에게 남은 손목이 왼손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마저도 주름지고 더러웠다. 이런 흉한 손으로, 동생의 고운 얼굴을 만질 수는 없었다.
어느새 유리가 아이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서, 제 얼굴로 가져갔다. 따뜻한 볼에 창백한 손이 닿았다. 차가울 만도 하건만, 세상 편안한 얼굴로 제 오빠의 손길을 느꼈다.
“…네 얼굴이 더러워진다. 떼거라.”
“…싫어.”
“반항까지…”
사소한 반항이야 예전에도 곧잘 했었지만서도.
이렇게 제멋대로인 동생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유리는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려는 울컥거림을 꾹 눌러 참으며, 머리를 기울여 다시금 아이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었다.
두근─ 두근─
미약한 심장박동이 이마를 타고 전해졌다. 창백했던 혈색이 조금은 화사해졌다. 아주 잠시나마, 아이델은 정말로 살아 있었다. 생명의 온기. 북받치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고, 유리는 아이델의 품속에 어리광을 부리듯 조금 더 파고들었다.
“…붙지 말거라. 더러워진다니까.”
아이델은 그렇게 말로 동생을 밀어내면서, 팔목으로 유리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시야 끄트머리로 유리의 정수리가 훤히 보였다.
열일곱이면 먹을 대로 먹은 나이다. 오라버니의 쓰다듬 같은 건 이젠 싫어할 터다. 무엇보다 말했듯 더러운 손이고…
유리는 제 볼에서 떼어진 아이델의 손을 다시 주워 감쌌다. 그리고는 제 머리 위에 살포시 가져갔다.
작은 머리. 보드라운 머릿결. 손등에 닿는 리본의 감촉. 그 모든 것이 익숙했던 탓에, 스윽─ 스윽─ 아이델은 말없이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리는 별안간 떠오르는 슬픈 미소와 함께 눈꺼풀을 감았다. 아이델은 불어터진 입술을 열었다.
“……다음에는, 더 예쁜 리본을 사주고자 했었다.”
“……”
“……하지만, 유리 네가 그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아 다행이구나. 같은 장식을 계속 구입……”
“새 거 아니야.”
“……?”
“오빠가 준 선물. 계속 가지고 있었어.”
“……”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날 지켜보고 있을 거라 했으니까.
유리는 그 말을 애써 삼켰다.
“……”
“……”
벌써, 절반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직감하며, 아이델은 나지막이 묻는다.
“유리.”
“…응. 오빠.”
“어머님, 아버님은.”
“잘 살아 계셔. 강녕하시고.”
“…왕국은.”
“잘 굴러가. 사실 너무 잘 굴러가서 부담스러워. 언젠가는 내가 이끌게 될지도 모르는 나라니까.”
“그건… 걱정이 되는구나.”
“괜찮아. 나 이제 혼자서도 잘 하니까. 어떻게든… 잘 이끌어 보일 거야. 오빠 없이도.”
“……녀석, 정말 잘 자랐구나.”
기특한 말도 할 줄 알고.
마지막 말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하지만……
“지금은, 왕국을 떠나서 아카데미도 다니고 있어.”
“……아카데미라.”
유리는 자신이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그곳은 세계 제일로 안전한 장소일 거란 안심의 말까지 덧붙이진 않았다. 거기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달리 하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지막만큼은… 오직 진심만 담고 싶었으니까.
아이델도 더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오빠와 여동생이 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비로소 만나게 된 경위 또한, 궁금해하지 않았다.
유리가 아이델의 품속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거기서 좋은 친구들도 잔뜩 만들었고, 앞으로 4년 정도 더 다닐 거야. 아마도.”
그 친구들은, 저 뒤편에 서 있다.
아이델도 그 인기척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하나하나 감사의 인사를 나누기엔… 일 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즐거운 목소리구나. 행복해 보이고.”
“응, 행복해.”
“……”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이델은 기특한 동생의 머리를 조금 더 힘을 주어, 꾹 눌러 쓰다듬었다. 그 아래서 유리가 작게 말했다.
“전쟁도 끝났어. 우리가… 이겼어.”
“…그것도 정말 다행이구나.”
유리는 파묻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응, 다행이야. 전부… 오빠가 지켜줬으니까.”
“……”
“……”
“……”
“오빠.”
“그래, 동생아.”
“……오빠.”
“……”
“오, 빠……”
“……”
“오빠……”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들어차서, 유리는 연거푸 같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말을 멈추면 안 되는데.
전할 게 너무나도 많은데.
“……나……”
먼저 떠나간 그를 미워하기엔.
그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오라버니가 있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원망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오라버니 덕분에……”
그렇기에, 고마웠노라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오라버니가, 나를 지켜줬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어요.”
──나 또한, 사랑했노라고.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약속을 지킨 거야……”
고개를 들어 간신히 미소 지었다. 그러나 유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때 날 지켜줬으니까…… 이렇게 나한테, 돌아와줬으니까……”
결국, 한 방울 또르르 굴러떨어진다. 볼과 턱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웃는 동시에 울면서, 유리는 그을음과 상처 가득한 아이델의 몸을 살포시 끌어안고 말했다.
“이제 괜찮아…… 후회 안 해도 돼.”
“……”
……
입술이 떨어지고, 붙기를 반복하다가.
“…후회할 리가 있겠느냐.”
오라버니는, 누이에게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자신을 끌어안은 유리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한 세기로 헝클었다. 힘겹게 미소를 띠었다.
“이 한 몸 바쳐 너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 너는 보란 듯 훌륭히 성장하여… 이젠 혼자서도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오라버니가 열심히 살아온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절대로,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눈부시게 어여쁜 숙녀로 자란 자신의 여동생과 마주하고 나서, 아이델은 이미 모든 회한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그녀를 위해, 평생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거두었다. 더 지켜주지 못하는 죄스러움을 거두었다. 당연히, 동생이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웃으며 보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유리.”
“……응.”
아이델 폰 아르티나는.
유리 폰 아르티나의 오라버니는──
“나는, 내 역할을…… 다한 걸까.”
오라버니의 역할을 충실히 다했는가.
“……오빠가 내 오빠여서, 행복했어.”
──물론이다.
“……아하하.”
호흡은 얕아져 가고.
감각이 점차 희미해진다.
잠시 들렀다가, 그렇게 떠나간다.
“역시, 너는 나의 가장 큰… 축복이었단다.”
눈동자 속, 홍염의 빛이 꺼져간다.
유리는 차마 볼 수 없다. 고개를 들 수 없다. 덧없이 흩어지는 온기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억하기 위해. 아이델의 몸을 더더욱 꼭 끌어안는다.
그때, 아이델은 느릿한 몸짓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각선의 머지않은 거리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서, 아이델은 잠시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이 또한 운명이겠지.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이델은 청년을 보았다.
청년도 아이델을 보았다.
……
그것은, 언어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찰나의 물음.
청년은 생각했다.
죽는 날까지, 라고 확답은 할 수 없다.
아마 그녀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끄덕.
청년은 아이델에게 충분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이델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삼 초.
“……유리.”
빛이 차츰 아스라져 간다.
기적은 끝났다.
“……흑, 흐윽. 끅.”
아이델은 유리의 고개를 들게 했다.
눈물로 범벅이었다.
“……늘 건강하거라.”
이 초.
아이델은 유리의 앞머리를 상냥하게 쓸었다.
쪽─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짧고,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사랑한다.”
일 초.
아이델이 환하게 웃었다.
“내 동생.”
……
……
……
오빠가 웃자.
동생도 미소 지었다.
“응.”
마지막까지.
그들은 서로 웃고 있었다.
“……저도 사랑해요, 오라버니.”
그렇기에.
……
……
……
“──으.”
……
……………
………………………
“……으, 아. 아으. 으… 흐으, 흑, 끅, 아윽, 흑… 끄으으윽, 아, 아아아, 으으아아아, 싫, 어……………… 오빠아아아아아아……………”
실 풀린 듯 무너져가며 흐느끼는 유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서…… 옅게 미소를 띤 얼굴로, 아마도 편히, 그렇게 영원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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