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77화 (177/201)

〈 177화 〉 1학기 모의 실습_네비로스의 미궁 (36)

* * *

#61

“……끅.”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상당히 엉망인 얼굴의 루비아가 있었다.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서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것이, 툭 건드리면 그대로 둑 터진 듯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끝난 모양이구나.」

셀레네는 기적이 끝났음을 알렸다. 어느새 그는 얼굴만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루비아가 보면 기겁할 만한 모양새다. 뭐…… 미궁에서 저것보다 더한 걸 훨씬 많이 봐왔을 테니,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을 수도 있고. 아무튼 셀레네의 말 그대로다.

“……”

……끝났다. 모든 게.

길었던 실습도, 사건도, 운명도, 전부 다.

셀레네는 그저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의미로 어렴풋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데려오거라. 지하로 내려가야 하니.」

셀레네의 머리가 반대로 돌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쪽으로 부유하며 이동한다. 더 지체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셀레네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몇 분 남지 않았을 테니.

루비아의 왼편에선, 복잡오묘한 표정이 되어 목걸이 장식을 꾹 쥐고 있는 스텔라가 서 있었다. 루비아처럼 눈물샘이 그렁그렁해진 얼굴은 아니었다. 다른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한데, 달리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저벅, 저벅.

뮤는 이미 지하로 내려갔다.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의중은 알 수 없다. 처음부터 관심 없어 보였으니.

저벅, 저벅.

탁.

“……”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가족을 잃는다는 건,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른다. 잃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줍잖은 위로는 할 수 없었다.

공감도 차마 해줄 수 없다.

……빌어먹게도, 내 안에서 깊은 슬픔이란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 모든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도.

약간의 안타까움은 느끼지만, 그뿐이다.

냉정하게, 행동을 개시한다.

……내 마음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스스로도 확실히 느낀다.

그보다, 유리의 오빠라……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여동생’이란 단어에 신경을 날카로이 세웠는지, 이제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의 파도에 휩쓸려 희생된 가족. 둘의 사이가 좋았다면, 그 슬픔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트라우마도 깊숙이 남았겠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악몽처럼 유리의 마음을 좀먹었을 것이다.

그 외로도 부모님의 집착이라니 뭐니 하는 유리의 외침을 들었지만…… 그런 건 굳이 캐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분명,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테니까. 추측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제정신을 되찾고 나서 이제야 생각한 건데, 확실히 닮았다. 나랑, 유리의 오빠라는 사람.

물론 내 스스로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얼굴이긴 하나…… 흉진 상처만 제하면 이목구비의 생김새가 너무나도 유사하다. 다들 내가 두 명이 되었다며 무어라 외쳤을 정도니 닮은꼴은 확실하겠지.

그런가. 그랬던 건가.

유리가 그동안 나에게 일견 특별한 취급을 하는 듯─어쩔 때는 이상하게 호의적이거나, 어쩔 때는 이상하게 배척하거나─보였던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었다.

……나를 보며 자신의 오빠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서글픈 옛 추억을 되살리곤 했겠지.

그런 것치곤 내색을 별로 안 했는데. 어쩌면 유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십 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과, 현재의 내 얼굴이 닮았다는 말은, 내가 그녀의 죽은 오빠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결정적인 증거일 테니까.

만일 그녀의 오빠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유리의 마지막 기억 속에 남은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보고서도 티를 내지 않았던 걸까. 어차피 머리색 등의 자세한 특징이 달라서 착각의 여지는 그렇게 크지 않았겠다만……

좌우간.

아까부터 바닥에 엎어져 흐느끼던 유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편히 눈을 감은 아이델의 시체를 힐긋 보며 말했다.

“……좋은 곳에 가셨을 거다.”

그리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하는 나도, 유리도 알고 있다. 유리의 오빠─ 아이델 폰 아르티나는 영원히 소멸했다. 한 줌의 영혼도 남지 않았다. 부활의 여지가 어느 무엇도 없었다. 그건 지금 당장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차가운 현실이었다.

유리의 등허리가 조금씩 들썩인다.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억지로 들게 하지도 않았다. 분명 남한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 되었을 테니까.

쿠구구구구……

「네 오라비와 함께 묻힐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느니라.」

지하로 내려갔을 터인 셀레네의 음성이 우리의 귓전을 두드렸다. 그와 함께 천장에서 돌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다 같이 개죽음을 당할지도 몰랐다.

유리는 스스로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다.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려 루비아…… 아니, 스텔라에게 말했다.

“스텔라, 괜찮으면 얘 좀 부축해줄래.”

“……아, 응.”

루비아는 누굴 부축하고 그럴 상황이 아닌 듯 보였다. 따라서 그나마 멀쩡한 스텔라를 불렀다. 스텔라는 내 부름에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이곳으로 다가왔다.

“유리, 일어날 수 있겠어…?”

유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참담한 낯빛으로 그리 묻는다. 그 모습은 마치 유리의 심정에 공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 실제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스텔라의 친부모님은 나베리우스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하셨다고 했기에.

……밖으로 나가고 나면, 스텔라에게 물어볼 것이 한참이었다. 내가 알기론 스텔라는 부모 없는 고아 출신이었다. 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려진 과거가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역시나, 다음에.

“잠깐 실례할게…”

유리가 허리를 구부린 채 엎어져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스텔라는 어쩔 수 없이 유리를 억지로 일으켰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지하 깊은 곳에 묻혀 버리게 될 것이었다.

스텔라가 끙끙거리며 유리의 몸을 붙잡아 천천히 일으켜 주었다. 그런 와중에 힘없이 비틀거려, 하마터면 스텔라와 발이 엉켜 같이 넘어질 뻔했다. 어째 아슬아슬하게 위태해 보인다. 스텔라는 입을 꾹 다물고선 꿋꿋하게 유리를 부축하며 지하 계단 쪽으로 데려갔다.

그러려고 했다.

“……나.”

“……응?”

작달만한 중얼거림. 잘 들리지 않았다. 스텔라가 귀를 크게 열고 되물었다. 유리는 푹 숙였던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자신을 부축하던 스텔라의 손을 느릿하게 떼어내곤,

“나…… 혼자서, 갈 수 있어.”

그리 말했다.

“어…… 그치만.”

“괜찮, 으니까.”

슥─ 눈가를 손등으로 가벼이 닦아낸 유리가, 우리들로부터 등을 돌려 지하 계단 쪽으로 향했다.

저벅, 탁.

……저벅, 탁.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불안하게, 그렇지만 분명 한 걸음씩 내디디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넘어지면 바로 붙잡을 수 있게 잘 따라가줘.”

“……아, 알았어.”

스텔라는 머리를 주억였다. 사실, 스텔라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닐 텐데. 기꺼이 괜찮은 척을 하고 있는 듯했다.

“……”

나는 아이델의 사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 멀리서 유리를 쫓아가던 스텔라가 루비아에게 무어라 말하더니, 곧 그녀와 함께 지하 쪽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이제 나만 가면 된다.

아니, 아이델의 사체도 함께.

……이 사람은, 마지막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부탁했다.

그건 아마도……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했다.

아이델에게는 영원히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당신 같은 멋진 사람이 그렇게나 사랑하고 지켜주려 했던 존재라면, 분명 나 따위보다 훨씬 존귀하고 고귀한 사람이었을 테지.

어릴 적의 유리가 얼마나 어여뻤기에. 얼마나 기특하고 영특하며 귀여운 여동생이었기에…… 그러니 내가 그녀의 미래를 함부로 책임지겠단 결심 같은 건 할 수 없다. 비단 격(?)의 문제뿐만 아니더라도……

그녀의 삶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것이다. 누군가가 평생 지켜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본인이 살아갈 권리를 쟁취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간섭할 여지는 없다. 이제 유리는 유리의 삶을 산다.

지금─ 당신의 죽음으로, 유리의 삶에서 가장 큰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된 건 바로 유리 본인일 것이다.

“그래도……”

……사실,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삶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게 인간이니까. 평생 혼자일 수는 없으니까.

다만 그것은 서로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었을 때의 일이다.

만일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어느 한쪽이 더 커져 버려서, 나머지 한쪽을 꾹 짓누르게 된다. ‘人’에서 ‘一’이 되어 버린다.

유리는 계속 그런 상태였다. 유리의 오빠라는 존재는 유리에게 있어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꾹 눌려 살았다. 모든 마음을 담아 의지했다. 오빠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오빠의 죽음이 유리의 주변 환경과, 유리 본인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해서, 오빠가 죽은 뒤의 유리는 이미 납작하게 눌려 있던 상태였다. 두 번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었다.

……누군가 다시 일으켜주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와 그녀의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유리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넘어지는 그녀를 옆에서 일으켜주는 것.

별로 어렵지 않다. 앞으로의 유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사람들은 바로 우리였으니까. 언제든, 가능하다. 최고의 우군이다.

그러니 당신은 편히 잠들어도 된다.

그리 옅게 웃으며 떠나가도 된다……

중얼거리듯 이어간 말을 끝마친다.

“해볼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

역시나,포기는 없다.

쿠르르르릉……

저벅, 저벅.

공동이 내려앉고 있다. 아이델의 시체는 차가웠다. 그 서늘한 목덜미와 오금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린 뒤, 붕괴하는 공동의 바닥을 쭉 걸었다.

지하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자, 내 머리 위로 활짝 개폐되어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쿵─ 하고 닫혔다. 직후 쿵─ 쿵─ 묵직한 돌덩이가 굉음과 함께 내리꽂히는 소리가 진동을 타고 전해졌다.

……그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62

지하로 내려오면, 짧은 통로를 지나 원통형의 방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 게이트를 목도할 수 있었다.

아치형으로 세워진 게이트. 아직 활성화하지 않은 탓에 포탈은 열리지 않았으나, 그 웅장함만큼은 가히 고대 유물과도 견줄 만했다.

「늦는구나. 자라 같은 놈.」

셀레네가 끌끌 혀를 찼다. 어디 숨었는지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혹시나 해서 천장을 보았는데 그곳에도 없었다. 영체가 된 건가.

아무튼, 모두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스텔라는 옆에서 유리의 어깨를 차분히 감싸 안아주고 있었고, 루비아는 게이트에 다가가 무언가를 관찰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뮤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내 쪽으론 일절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 순간, 셀레네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전이문의 조작법을 알려……」

“……이거.”

그때.

“당신이 만든 건가요.”

「……본인을 말하는 것이냐?」

“그럼요.”

게이트의 구조를 이모저모 뜯어보는 듯했던 루비아의 질문이었다. 셀레네의 목소리가 장내를 공연히 울리며 메아리쳤다.

「……그러하다면?」

미친 광인 나베리우스가 말했었다. 제단. 그의 무궁한 힘과 지식. 그리고 게이트. 모두 마신의 은총 덕분이라고. 셀레네의 대답을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던 듯하다.

아까 한참 울더니 겨우 진정하고, 아직도 눈이 땡땡 부어 있던 루비아는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이 사용되었는지… 감이 전혀 안 잡히는 건 처음이에요. 다중 중첩, 병렬 연결 술식, 위상(??) 마법 등… 기존의 마법 공식이 전부 엇비슷하게 사용된 것 같지만… 달라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도 오차 하나 없이 완벽하게 규합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각기 종류가 다른 퍼즐 조각으로 하나의 퍼즐을 완성시킨 느낌이에요.”

「……흐음.」

계속 말해보라는 듯, 셀레네는 콧소리를 내었다.

“술식 해석과 분석을 제대로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요. 한 번 감응을 시작하면… 제 마력이 단숨에 텅텅 비어 버리고 말 거예요.”

「흥. 그럴 테지. 네 하찮은 마력을 전부 긁어모아 퍼붓는다고 한들, 일 할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렇게 복잡하게 되어 있지만… 활성화 방법만큼은 너무나 쉽고 간단해요.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할 정도로. 물론 자세한 좌표 계산은 연산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굳이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나. 괜한 수고만 더 들어갈 것이 분명할진대.」

루비아는 자못 거대한 게이트 속에 혼자 빨려 들어갈 듯한 기색으로 홀린 듯 말을 이었다.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마치 환상의 물건을 보는 것 같아요. 제 지식이 아직 일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이런 마법이 존재할 수가 있나요. 애초에 이걸 ‘마법’의 산물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에요.”

환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환상이다.

따라서, 환상이 실재해서는 안 된다.

「마법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불러야 하겠느냐?」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이건 완전히 법칙을 벗어나 있으니까요.”

다음 순간, 루비아는 잠자코 읊조렸다.

“…마법의 제1법칙. 모든 마법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세상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것은 마법이다.

인류는 아직도 마법을 지배하지 못했다.

아니, 마(?)를 지배하지 못했다.

마법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을 법칙으로써 규정한 것이다. 그 법칙은 하나의 시대가 지날 때마다 새로이 재정립되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월의 흐름 속에 바스러진, 각 시대 으뜸의 대마법사와 선구자들이 입을 모아 소리치는 첫 번째 불변의 법칙.

모든 마법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단순히 불발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술식을 강제로 해제 시켜 버리는 「디스펠」 등의 ‘간섭’ 마법 등이 존재하듯, 마법과 마법이 충돌하면 예외적인 경우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수백 수천 년에 달하는 무수한 마법 연구와 실험을 통해 대부분의 패턴은 분석되어 있으나, 가끔 예외를 일으키고 법칙에 전혀 통용되지 않는 마법 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러한 ‘발견’은 또다시 무수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여 끝내 하나의 법칙으로써 정립되고, 기존의 법칙에 새로이 편입된다.

“이 거대한 술식에는…… 예외가 없는 것 같아요.”

예외가 없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마법을 뜻한다.

다만 마법의 제1법칙에서 알 수 있듯, 이 세상에 완벽한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마법은 있을지언정, 완벽 그 자체인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름의 통찰을 하였구나. 본인의 마(?)는 너희 인간들의 법칙에 통용되는 법이 없느니라. 그러니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지당한 일. 본인의 마(?)는 그 자체로 완전한 까닭이니라.」

루비아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걸 창조할 수 있는 지식과 힘이 있다면…… 이상향(理?)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도 아예 꿈은 아닐지 모르겠어요.”

「……」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셀레네는 반응이 없었다.

잠시 뒤.

「슬슬 시간이 다 되었구나. 활성화 방법을 안다면, 네가 직접 포탈을 열──」

“이런 힘을.”

그때, 루비아는 어딘가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그곳은 텅 빈 허공이었다.

“이런 힘을…… 당신은 세상을 파괴하는 일에만 사용하셨던 건가요……?”

「……」

셀레네가 굳게 침묵하자.

주변의 기온이 한층 낮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이로운 일에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요.”

「……」

“당신이 정말 평화를 바랐다고 한다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쩐지, 그런 분위기였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바로 그때.

차가운 적막을 깨뜨린 목소리가 있었다.

“너는 진짜… 왜 또 신경을 긁고 자빠진 건데. 좀 조용히 지나갈 수는 없어? 그러다 우리 다 죽으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벽에서 등을 떼곤 한숨을 푹푹 내쉬던 뮤였다. 상당히 언짢은 듯 양쪽 눈썹이 서로 어긋나 있었다.

루비아가 주춤하며 말했다.

“나는 그냥……”

“네 머리가 꽃밭인 건 잘 알겠는데.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훈계를 할 입장이 아니야, 지금.”

직후, 뮤는 매섭게 쏘아붙였다.

“우리 목숨을 누가 쥐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 그리고 네 말처럼 그 누군가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아까 우리 목숨을 거둘 수 없다고 했─”

“미안한데… 정말 그럴 것 같아? 저 정도 되는 존재가 우리들 중 한 명이라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

루비아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제 알겠어? 알았으면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루비아. 마지막까지 와서 네 실언 하나로 다 망칠 셈이야?”

뮤의 말은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지만, 하나하나 뜯어서 생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신 셀레네.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태초의 악.

작금의 마신은 본신의 발톱 때만도 못한 극히 일부를 현신한 것일 터. 그럼에도 나는 내 안의 신성이 전혀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억눌린 채 힘을 일절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다.

그야말로 초월자, 신(?)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우리의 명줄을 쥐고 있었다. 나 혼자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패배했을 게 분명한 나베리우스가 제 몸과 영혼을 바쳐 강림시킨, 절대적인 악신이 무슨 의중인지 우리들을 살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셀레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며 안전히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한 흐름이다. 그러한 뜻을 담고 있는 뮤의 질언은 단연코 합당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러 의문은 남는다.

어째서 그리 사악한 존재가 우리들을 아량껏 살려준 걸까. 왜 원령이 될 뻔했던 유리의 오빠가 성불하도록 도와준 걸까.

십 년 전 최후의 전쟁으로 마계는 멸망했다. 우리 인간들의 손에 의해. 그런데도 셀레네는 우리를 마주하고서도 손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대로 놔두면 분명 본인한테 큰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들을, 미리 죽여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셀레네는 말했다. 본인은 우리의 신성을 취할 수 없으며, 그러니 우리의 목숨 또한 거둘 수 없다고.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셀레네에게는…… 만일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 한들, 우리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해서, 만일 무슨 말을 해도─선을 넘지 않는 한─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셀레네가 우리를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라면.

나는 그에게 묻고픈 말이 하나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나 봐. 조용히 하고 있을게…”

“진작에 그랬어야……”

“─마신 셀레네.”

아이델의 시체를 들고 있던 내가, 방금까지 루비아가 보고 있던 곳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침묵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셀레네라고 본인을 불러주었구나. ‘마신’이 아직도 앞에 붙어 있는 건 다소 거슬리긴 하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

그의 말을 끊고, 내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 됐다.”

뮤는 내게 더 딴지를 걸지 않았다. 진절머리가 난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셀레네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한데, 일전보다 음색이 옅었다. 슬슬 사라지고 있는 걸까.

「으음, 기특한 말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왜, 저 인간의 말대로 죽고 싶으냐? 본인이 친히 네 목숨을 거둬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냐?」

“그러지 않아도 저는 십 년 내로 죽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나의 되물음에는, 저 구석에서 짜증을 토하던 뮤도 잠시 움찔하는 듯했다.

「…해서, 이제 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

나는 잠깐의 텀을 두고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두렵지 않을 뿐이지.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운명.

빌어먹을 운명.

거기서 벗어날 방법은 단 하나.

마신을 죽이는 것.

마신을 죽이려다 내가 죽거나, 운명의 끝에 다다라 하찮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어느 쪽이든 죽음이다. 다른 길은 없다.

무엇보다 내게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의 기억들이 있다. 비록 꿈결처럼 희미하기만 하나…… 그 기억들은 분명히 나의 것이었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반쯤 맞는 말이었다.

다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집착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살 것이다.

살아서…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발버둥치다가… 이 모든 굴레의 원인인 마신을 죽여 버리고, 비로소 해방되어 자유로워질 것이다.

「본인을 마주하고도 목숨을 부지한 것에 백번 절을 해도 모자랄망정, 별별 사족이 많구나……」

셀레네의 늘어지는 음성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나는……

“셀레네.”

「음, 이제야 제대로 불러주는구나. 하지만, 본인을 부를 때는 경칭을 꼭 붙여야 하느──」

“당신은…… 정말로 마신(??)이 맞습니까?”

「……」

셀레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삼 초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글쎄, 아니라고 했잖느냐. 몇 번을 귀에 쑤셔 박아줘야 이해하겠느냐. 인간 놈들은 어찌 이리도 타자의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 건지 모르겠느니라……」

셀레네는 끌끌 혀를 차면서 말을 늘였다.

「네 좆대로 하거라. 본인을 마신이라 부르든, 개새끼라 부르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느니라……」

마신은 끝내 자포자기한 듯 중얼거렸다.

#63

─우우우우웅……

게이트가 활성화되었다. 어떤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나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은 모른다. 루비아가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건물 2층 높이에 버금가는 아치형 거대 게이트의 안쪽으로, 수면처럼 일렁거리는 포탈이 나타났다. 그것은 거울처럼 우리의 실루엣을 투영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던 루비아의 눈동자가, 포탈로부터 반사된 형형색색의 빛으로 반짝거렸다.

“…이제 들어가면 돼. 이걸로 프론티어 본부 앞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진입했던 포탈 주변으로 좌표를 설정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돌아본 루비아가 말했다.

“혹시 이상한 데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뮤의 날카로운 물음이었다.

직후 루비아가 부정한다.

“저, 절대 그럴 리 없어. 내가 보장할게.”

“너한테 무슨 신뢰가 있다고……”

“루비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적어도 우리보단 저런 쪽에 능통한 친구잖아. 괜찮으니 루비아를 믿어, 뮤.”

“……”

“……”

루비아와 뮤는 각자 다른 감정을 품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뮤는 더 뭐라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기울이며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더니 새침하게 등을 돌렸다.

“…먼저 간다.”

스으윽─

뮤가 포탈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망막에 스미더니, 곧 뮤의 신형은 온데간데없이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 우리도 갈까…?”

루비아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자, 스텔라. 유리.”

“…아, 응. 가야지.”

내가 셀레네에게 말을 걸고, 셀레네가 혀를 차며 결국 사라진 뒤 한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던 스텔라가, 눈을 깜빡이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는 유리가 있었다.

루비아처럼 눈이 땡땡 붓고, 얼굴도 귓불도 발갛게 되어서는 머리칼까지 엉망인 모양의 고귀하신 왕녀님이.

“……이제 좀 괜찮냐?”

내가 툭 던지듯 물었고.

“……괜찮아 보이, 끅, 냐?”

유리가 딸꾹질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무시할 줄 알았는데, 답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그럼, 끅, 닥쳐.”

“……넵.”

지금 상황에선 유리가 왕이다. 아무튼 그렇다.

“유리, 그리고 너희도 올라와. 빨리.”

“…그래.”

루비아의 손짓에 따라 우리도 포탈 앞에 섰다.

여기서 한 걸음만 내디디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 안온한 일상은 아니지만.

그때.

쿠구구구궁──

“꺄악!”

“엄마야!”

일대가 잠시 뒤흔들렸고, 곧 천장이 무너질 듯 불안하게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 어서 가자. 얘들아!”

루비아가 황급히 유리의 손을 잡고 포탈로 뛰어들었다. 직후 우리를 돌아보며 빨리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퍼덕거렸다.

우우우웅──

빛이 터지고, 루비아와 유리가 사라졌다.

다음 차례는 우리였다.

“스텔라.”

“……어?”

한 발짝 내딛기 전에, 내가 스텔라를 잠시 불렀다.

스텔라가 반짝거리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날 돌아본다. 언제나처럼 예쁘게 빛나는 백은빛 눈동자. 친부모님의 유품이라는 목걸이 장식. 그리고, 스텔라가 죽을 뻔했던 일 이후의…… 이건 아니고.

“돌아가면.”

“……응.”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친구들이 괴로워했다.

“푹 쉬고 나서, 편하게 얘기 좀 할까, 우리.”

이번 일로 유리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지만, 글쎄…… 스텔라도 만만치 않게 심란할 것이다. 겉으로 티만 안 내고 있을 뿐이지. 굳이 그럴 필요 따윈 없을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스텔라는 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것도 직접.

……그 참상 속에서 자신의 친부모님이란 존재가 처참히 살해당하고, 그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봐버리고, 그러한 참극을 빚어낸 만악의 근원이 방금까지 우리들 코앞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스텔라는 과연 무슨 기분을 느꼈을까.

……알 수 없다.

나는 스텔라 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텔라가 작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응, 많이 얘기하자.”

그리고.

다음 순간.

“──나도.”

“!”

탁─.

내 팔을 붙잡고, 이끌듯 포탈 안으로 함께 향한다.

“네가 더 궁금해졌거든, 에지오.”

파아아앗─!

눈부신 빛무리가 우리를 휘감았다.

……포탈로 넘어가기 전.

아주 찰나의 순간.

「본인이 정녕 마신이 맞냐고 물었느냐.」

분명히 사라진 줄 알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은 신 따위가 아니니라.」

찰나에 들려와,

찰나에 흩어졌다.

「더 이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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