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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차버린 소꿉친구와 전 여친이 같은 반이라 곤란하다-178화 (178/201)

〈 178화 〉 막간

* * *

……서늘한 바람결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자연스레 찡그려졌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

침침했던 시야가 확 밝아지고 나면, 익숙한 풍경 저 너머 동쪽 하늘이 요사스러운 주홍색 빛을 우리에게 드리우고 있었다.

“정말, 돌아왔네.”

스텔라의 목소리였다.

“……그러게.”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 제 1학구의 프론티어 본부. 어쩐지 부산스러운 분위기의 가로변과,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어딘가로 향하는 젊은 학생들. 교원들. 사람들.

높고 낮은 건물의 숲 사이로 우웅─ 거리며 유유히 부유하는 마나 트램. 싱그러운 초목과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황금의 도시. 황립 프론티어 아카데미.

스텔라와 나를 마지막으로 우리가 건너온 포탈은 사라졌다. 언제 거기에 있었냐는 듯, 뒤편에 자리한 건 공터와 분수대뿐이다.

루비아도, 뮤도, 유리도 저 앞에 있었다. 다들 실감이 잘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 수십 시간이나 생고생을 했으니, 긴장이 탁 풀리고 저기 루비아처럼 길바닥 한가운데 폭삭 주저앉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욱, 욱.”

이제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걸까. 루비아는 입을 틀어막으며 갑자기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러더니 뭔가 굉장히 괴롭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 가고 싶어……”

그리 패색 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안에서 배변 활동을 처리한 적이 없었네. 그것도 엄연한 생존의 일종일 텐데. 밖에서 모든 상황을 감독하고 있던 만큼 인간으로서의 존엄만큼은 훼손할 수 없었던 걸까.

근데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나?

방금까지 우리가 자리하고 있던 공동을 제외한 미궁 속의 공간이 전부 허상이어서 가능했던 건가.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던 공간에서 우리가 포탈을 통과함과 함께 뿅 하고 나타나자─ 인근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로 죄 몰려들었다.

바글바글한 군중 속 수군거림과 북적거림이 점차 늘어났고, 개중에는 어딘가로 급히 연락하는 듯한 모양새의 사람들도 보였다.

“너희들─! 괜찮니─?!”

일단 프론티어로 돌아오긴 했는데,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인파 속에서 한 명의 남성이 그리 소리치며 우리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학생들, 학생들 맞지?! 에픽 클래스!”

“……네, 네. 그런데요?”

얼굴이 땀방울로 매끈했다. 머리칼도 푹 젖어 있다. 얼마나 뛰어다녔길래. 우리들의 숫자를 확인하려는 듯 면면을 훑어보던 남성은, 곧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더니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외쳤다.

“아, 아. 들리십니까?!”

외치면서도, 남성의 시선은 내가 들고 있는 누군가의 사체를 힐긋 향한 채였다.

“나타났습니다! ……밖에, 밖에 있습니다! 본부 밖에! ……갇혀 있던 피해 학생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단은, 전원 무사합니다!”

수정구 안쪽에서 무어라 소리가 울렸다. 잠시 뒤, 남성은 연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 아무튼 다들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 학생들과 같이, 신원 미상의…… 앗!”

남성의 손바닥에도 땀이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수정구는 미끌거리며 남성의 손을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캉─ 거리며 깨지진 않았으나, 살짝 금이 가면서 안쪽의 빛이 한순간에 꺼지고 말았다.

“아, 아. 이, 이걸, 어떻게……”

남성은 퍼렇게 질린 표정이 되었다. 비싼 통신 수정구 값을 배상할 생각에 그런 걸까. 풀 죽은 듯 수정구를 조심스레 잡아들더니, 우리를 돌아보면서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다친 것 같긴 해도, 일단은 전부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곧 교수님들이 오실 거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렴. ……그런데, 그건……”

공동에서 구르고 구른 탓에 옷도 머리칼도 엉망이다. 설상가상으로 내 팔에는 아이델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은은히 풍기는 썩은내와 악취는 고사하고 죽은 자의 모습이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었다.

무언가 사건이 있었음을 직감한 건지, 남성은 골치 아픈 얼굴이 되어선 말했다.

“아니다. 음, 후우… 너희도 혼란스러울 테니 아무것도 묻지 않으마. 다른 교수님들이 올 때까지만 다들 여기 있으렴. 알겠지?”

“……네, 뭐.”

아무래도 우리가 위험한 일에 휘말렸다는 걸 바깥에서도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로베르였나. 그 감독관은 어떻게 된 걸까. 무엇보다 다른 애들은…… 우리야 결국 무사하게 돌아왔다곤 해도, 그때 미궁에 있었을 터인 다른 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저, 혹시.”

“어?”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 어. 그래. 다 무사하다. 너희 빼고 다 저 안에 있을 거야. 너희가 마지막 피해자들이라 너희만 찾으면 되는 거였는데…… 후, 정말 다행이다. 너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옷 벗는 걸로 안 끝날 뻔했어. 아무튼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남성은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번 실습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걸까. 이마에 송골거리던 땀방울을 손으로 닦아낸다.

그때, 뮤가 다가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하게 해주셔야 할 거예요.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절대 작지 않으니까요.”

“……그래, 프론티어의 교원으로서 나한테도 책임이 있지. 너희들한테 정말 미안하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우리들을 향해 허리 숙여 정중히 사과하는 남성. 적어도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듯 보였다. 뮤도 더 부언하지 않고 작은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쓸어 어깨 뒤로 넘겼다.

그렇게 일 분 정도 지났을까.

“──아, 얘들아. 저기 오신다.”

본부 건물 정문에서 우당탕, 혹은 우르르─ 같은 수십 개의 발걸음 소리가 뭉쳐 울렸다. 직후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그 안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여기, 여기 있단 말인가! 어디에, 어디에……!?”

풍채 좋은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러다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두 눈을 부릅뜨더니 하늘로 고개를 꺾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제펠린 교수와 아벨 교수 같은 익숙한 낯의 교수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뒤따라 나온 선배들과 동급생들까지, 수십에 달하는 눈동자가 한꺼번에 우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어, 얘, 얘들아! 얘들아아아!”

“오, 오오…… 정말로, 정말로……!”

“야, 에지오! 살아있었냐! 그럴 줄 알았다! 새꺄!”

펄쩍─ 그리고 방방 뛰는 사샤나 가브리엘, 세이라 선배와 「엑소더스」 서클 부원 선배들, 레이린 선배, 몇 번 뵌 적 있는 선배들과 헥토르 등의 동급생들…… 하나같이 수심 짙은 얼굴이었다가, 우리들을 보자마자 저마다 안도 혹은 놀라움의 기색을 띠며 우르르 다가왔다.

“루비아 양, 유리 양, 스텔라 양, 뮤 양, 그리고 에지오 군, 전부 무사히 살아계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일전에 내게 서클 가입을 권유했던 마법 전공 수업 담당의 제펠린 교수가 굳게 입을 다물며 안도의 마음을 표했다.

직후 모자 챙을 고쳐 쓴 아저씨가 다가와 말했다.

“프론티어 중앙보안국 부국장인 헤일로 스타이튼이라고 하네. 자네들이 무사 귀환한 것에 심심한 감사의 말을 표하도록 하지.”

공무원 중에서도 꽤 높은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다.

그리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꼴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다. 면면을 훑어보던 헤일로 부국장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자세한 사정 청취는 나중에 이루어질 테고…… 일단 자네들을 신전까지 수송할 인력이 곧 도착할 거라네. 그러니 여기서 잠시만 대기해 줄 수 있겠나. 다들 피로할 텐데 미안하게 되었군.”

헤일로 부국장의 말마따나 피로하긴 했다. 밀렸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런지 몸이 더더욱 무거웠다.

“에지오 이 새끼, 하루가 멀다 하고 별별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는…… 너한테 무슨 악신이라도 씌였냐? 이러다 네 친구인 나까지 싸잡아 위험해지겠다, 어? 좀 조용히 안 살래?”

“그러게 말이다. 나도 좀 지긋지긋하네.”

“괜찮니, 후배님? 나도 여기서 3년을 보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무사히 돌아와 줘서 다행이란 말밖에 해줄 수가 없네.”

“아녜요, 선배님께서 해주셨던 조언. 도움 많이 됐습니다. 덕분에 위기에도 나름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했습니다.”

“에지오, 괘, 괜찮은 거 맞지? 네 얼굴은 다치면 안 된다구! 매일 아침 운동하는 네 얼굴을 보는 게 내 삶의 낙이었단 말이야……!”

“레이린 선배, 절 걱정해주세요. 제 얼굴 말고.”

나머지 사람들도 우글우글 몰려들어서 우리들에게 저마다 다행이라느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느니, 이런저런 질문 세례를 퍼부었지만, 지금 우리들에겐 휴식이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한 교수들의 제지에 의해 일대를 가득 메웠던 열기가 잠시 사그라들었다.

“……”

그러자 관심사는 대개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정확히는, 내가 들고 있던 아이델의 사체에게로.

몇몇은 나와 아이델의 사체를 번갈아 쳐다봤다. 역시나, 닮은꼴이었던 까닭이다.

“그건……”

누군가의 중얼거림.

다음 순간, 유리가 나서서 말했다.

“제 오라버니예요.”

“……어? 뭐라고?”

“제 오라버니요.”

유리의 신분을 알고 있는 학생들, 교원들은 잠깐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곧 예상대로의 반응을 내보였다.

가장 먼저, 세이라 선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라버니라면, 어, 음. ……아르티나 왕국의, 왕자님?”

“네.”

“……그렇구나. 음……”

시끌벅적한 수라장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마다 충격에 휩싸여 무어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을 뿐.

무거운 적막 속에서 헤일로 부국장이 모자를 벗으며 진중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더욱 큰일이군.”

동트는 아침햇살에 반짝거리던 그의 정수리로 문득 바람줄기가 불어오자, 가닥가닥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저편으로 붕 떠올라 날아갔다.

4월 24일, 일요일의 하루는 전부 신전과 의료원 병실에서 보냈다. 아무래도 마기(??)에 오래간 노출되어 있었던 탓인지, 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중독 증세를 염려하여 장시간의 정화 작업이 진행되었던 까닭이다.

─에지오 크라닐 학생은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회복이 빠르군요. 이 정도면 당장 내일 일상생활에 복귀하셔도 괜찮을 듯하지만…… 만약을 위해 하루 내지 이틀 정도는 여기서 안정을 취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외로도 신체 등에 이상이 없는지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엔 당장 퇴원해도 괜찮다고 했다.

참고로 저번에 나를 담당했던 그 의원이었다.

그때도 내 신체의 튼튼함을 알아보며 경이로운 듯한 반응을 보이더니, 두 번째라 그런지 익숙해진 듯 담담히 소견을 표했다.

의원의 말마따나 병실에서 계속 쉬어도 상관은 없었다. 수업 출석 등은 인정을 해주겠다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지금쯤 아마 피로에 허덕여 쭉 잠을 자고 있을 거다.

나는 대략 두 시간쯤 자고 나서 팔팔해졌지만, 루비아나 스텔라, 그리고 뮤…… 는 잘 모르겠다. 그 녀석은 지금의 나랑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정도로 튼튼하니까.

아무튼 이곳에서 뮤를 제외한 친구들은 전부 병실 침대에 계속 누워 있는 채일 것이다.

“목마르네.”

밤이 깊었다. 고요한 밤이다. 굉음과 폭음이 난무했던 미궁을 벗어나 이렇게 평화로운 병실 안에 있자니,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드르르륵─

주섬주섬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병실을 나섰다. 물이야 당연히 병실 내에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안에 있자니 답답해서 그냥 나오고 싶었다.

후우우웅……

물을 한 잔 떠 마신 다음, 승강기와 계단을 거슬러 올라간 옥상의 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쌀쌀하다.

“누구 뛰어내리면 어쩌려고 문을 열어놨는지, 원… 어우, 추워라.”

팔을 쓸며 난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지금쯤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 텐데. 당연한가.

“……”

난간에 다다랐다.

나는 머리칼을 쓸고 앞을 보았다.

테라스 정원도 있긴 한데, 거긴 너무 층이 낮다. 프론티어─ 드넓은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이 장소가 좋았다. 새하얗고 얇은 환자복만을 걸친 채 난간에 팔을 대고 멍하니 새벽바람을 맞았다.

간헐적인 내 호흡.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소리. 그게 전부였다. 고요하다. 복잡했던 상념들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도시 전체가 잠에 들었다. 일부는 깨어 있다.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장막 아래, 달빛과 별빛이 건물의 외곽선을 두드러지도록 반짝였다.

“……”

조용히 침묵에 젖었다. 내 의식은 밖에서 안으로 방향을 바꾼다. 고즈넉한 풍경은 다만 배경이 되고, 그렇게 멍­한 상태로 잡다한 상념에 잠겼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론, 프론티어 내외로 크고 작은 소음이 잦은 모양이다.

하긴 에픽 클래스의 실습은 나름 비중이 큰 중대행사였으니까. 각국 고위 인사들도 여럿 참관하고, 학생 포섭을 위한 후원 혹은 인맥 형성 등을 하러 찾아온 고위 귀족들도 꽤 많았으니.

그들의 눈앞에서 결코 덮을 수 없는 실책을 벌인 셈이다. 그로 인해 프론티어가 감당해야 할 후환이란…… 글쎄,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닌 듯했다. 프론티어 본부가 이러저러 한창 바쁘겠지. 에픽 클래스 학장도 바쁠 거고. 아무래도 총책임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학장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사진으론 봤지만 실물은 발자국도 못 봤다. 입학식에도 불참했었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아무튼, 참으로 이례적인 사건이긴 했다.

원래도 실습을 준비하는 데 있어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엔 전무했던 모양이다.

애당초 프론티어 내부에도 학생들의 여러 실습을 위한 지역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

예컨대 무성한 숲이나 험한 산지 등의 인공적인 자연 생태계를 한 학구에 통째로 조성해 놓았다.

보통 거기서 진행을 하거나, 아니면 이번처럼 외부의 도움을 빌려 장소 협의를 마친 뒤 게이트를 타고 현장 실습을 나가기도 한다.

뭐…… 일반적인 경우가 그렇다는 거고.

에픽 클래스는 이번처럼 매 학기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서 내놓았던 모양이다.

명성이 명성인 만큼 차별화를 위해서였을까.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좌우간, 그러니 매번 실습의 테마가 휙휙 달라지곤 했던 모양인데. 이런 큰 사건이 터져 버렸네. 이걸 어쩐다.

해서,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에픽 클래스의 전통 아닌 전통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고들 한다.

모든 실습을 일체 프론티어 내부에서 평이하게 진행하거나, 아니면 모의 실습 자체가 당분간 중지될 가능성도 있었다.

자세한 사건 청취는 오늘 말고 내일이나 이튿날 진행되기로 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몇 가지는 프론티어 측에 알려주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이었던 네비로스, 아니, 나베리우스가 안에서 죽었다든가. 그 사람이 알고 보니 마신교의 일원이었다든가. 나베리우스가 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든가. 마신으로 추정되는 존재와 조우했다든가.

거기서 매우 심각한 낯빛으로 입을 다물던 수사국 고위 공무원들의 표정이 썩 볼만 했다. 우리들이 거기서 대체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한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마지막으로, 미궁 속에서 발견된 시체는…… 십 년 전 전쟁터에서 사망한 아르티나 왕국의 왕태자 아이델 폰 아르티나였다든가.

그래, 그거──.

아이델의 유해 수습에 관련해선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또 있었는데……

“……”

이 의료원, 특히나 VIP 병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 스텔라, 루비아, 그리고 뮤가 끝이었다.

유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왕국으로 떠났다.

유리의 부모님, 아르티나 국왕과 왕후와 함께.

……그리고 어쩌면.

프론티어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괜찮을라나, 그 녀석.”

무섭도록 침착하게 유리를 이끌고 게이트를 넘어가던 국왕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국왕과 함께 찾아온 아르티나 왕실 근위 기사들은 아이델 왕태자의 유해를 천에 감싼 뒤 그대로 들고 갔다.

명백히 간과하고 있었다.

유리를 향한 부모의 자식 사랑은…… 정말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다는 걸.

그렇게나 아끼는 딸내미의 목숨이 턱 끝까지 위협받았다. 하물며 전적으로 프론티어의 책임이었다.

이번 실습에도 초반까지 참관했던 모양이던데. 프론티어를 넘어서 제국 황실에까지 반발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그런데 제후국의 왕이 하늘보다 더 높다는 제국 황권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을까.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사랑이란 때로 사람을 미치도록 만들기도 하기에.

“괜찮겠지.”

자문에 자답을 하듯 스스로 뇌까렸다.

이번 일로, 나름 성장한 듯 보였던 유리다.

물론 버텨내지 못했을 때는…… 역효과가 일겠지만.

의외로 내면이 단단한 것 같은 녀석이었으니, 그리 쉽게 무너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유리를 믿는다.

프론티어에 돌아오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 뭐…… 솔직히 나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다고 해도, 루비아와 스텔라가 무척 슬퍼할 것 같다. 워낙 친하게들 지냈으니까.

물론 유리의 오빠, 아이델이 내게 부탁한 바를 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내가 아르티나 왕국까지 날아가서 그곳의 왕녀인 유리의 곁에 있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우, 슬슬 춥네.”

이제 돌아갈까, 생각했던 그때.

끼이이익─

뒤편에서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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