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넋두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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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학기 1차 정기고사 성적 공시 ]
과목명 : (1학년) 마법의 이해와 숙련 I
총점수 : 80/100 (B)
[ 종합 석차 ]
수석. 루비아
차석. 스텔라 데 펠트라인
3위. 헥토르 드 알칸트라
4위. 루크 데 엔듀레스
5위. 에지오 크라닐
6위. 하티 유레시안
7위. 카닐라 아메틴트
8위. 가일 웨하드
“좆망이군.”
성적표를 확인한 내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슬아슬하게 B를 벗어나지 않긴 했지만, 나는 고작 B 따위에 만족할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올 A+.
오직 그것만을 위해 달려왔건만…….
“접을까.”
그렇게 잘 보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마저도 스텔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석차 맨 끝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을 거다. 말인즉, 실기. 필기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다만 최종 평가에 반영되는 비율은 실기 쪽이 훨씬 높다. 그렇기에 이런 총점이 나와 버린 것이었다.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잖아요. 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걸요. 수고했어요, 에지오 씨.”
고개를 살짝 위로 꺾으며 한숨을 폭 흘리고 있자, 바로 뒷자리에서 그런 위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꾸로 보이는 스텔라의 얼굴. 그 옆에는 루비아가 앉아 있다.
차석과 수석이 나란히 내 앞에 있군.
그중 차석에게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차석. 나 돕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았으면 수석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괜히 미안하네.”
“미, 미안하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혀 낭비가 아니었어요. 에지오 씨를 도우면서 저도 같이 공부할 수 있었는걸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알았어, 농담이야. 나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은 해. 너 아니었으면 이런 점수도 못 받았을 테니 너한테도 엄청 고맙고. …막상 결과가 이렇게 딱 명시되니 기운이 쭉 빠졌을 뿐이지.”
역시 세상은 이론보다 실전이라는 걸 나날이 깨닫는 중이다. 인생은 실전이란다. 좆만아. 그 좆만이는 물론 나다. 잠시나마 행복했다. 올 A+의 꿈이여, 안녕…….
“그, 그래도 그 정도면 엄청 잘한 거라고 생각해. 에지오 너는 시험에 집중할 만한 환경도 아니었고, 공부할 시간도 별로 없었고. 그런데도 80점이나 받았으니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응, 확실해.”
스텔라와 마찬가지로 뒤집힌 루비아의 입이 무어라 말을 한다. 계속 목을 꺾고 있자니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 같아서, 자세를 고친 다음 허리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수석이 있었다.
그때의 나보다 더 상황이 심각했을 터인 주제에 당당히 1등이란 자리를 꿰찬, 진짜 천재 중의 천재가 있었다…….
“위로 고맙다, 루비아. 넌 몇 점이야?”
“어? 나, 나? 어…….”
자랑 같은 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루비아였다. 우물쭈물거리더니 점수를 공개하기 꺼려 한다. 애초에 시험 망친 친구 앞에서 자랑스럽게 최고점을 들어 올릴 수도 없겠지.
잠깐 스턴 상태에 빠진 루비아의 성적표를, 스텔라가 고개를 쭉 빼밀어 확인하곤 대신 말해주었다.
“98점이네요.”
“앗….”
루비아가 황급히 성적표를 뒤집었지만, 그 점수는 이미 내 뇌리에 각인된 채였다.
98점이라. 만점은 아니지만 만점에 가까운 점수 아닌가. 참으로 놀랍다. 나만 컨디션 난조였던 것도 아닌데, 저리 높은 점수를 받아 버리면 결국 내 역량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소리가 되고 만다…….
“축하해, 루비아. 난 널 믿고 있었어.”
“아, 고, 고마…….”
“내가 믿는 넌 역시 최고야. 너야말로 제국의 보배이자, 미래의 대마법사에 걸맞은 슈퍼 루키야. 살면서 너 같은 천재는 본 적이 없어. …이런 세상에, 네가 내 친구라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는구나. 네 덕분에 우리가 지금도 은혜로이 숨을 쉬고 이 땅 위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거겠지. 만일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세계는 멸망했을 거야. 그럼 우리는 루비아란 이름의 구세주를 찾으며 메마른 대지 위에서 절박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겠지. 아, 허나 진정 다행이도다. 그 구세주는 바로 내 눈앞에 있나니. 네 존재가 세계를 구한 거란다, 루비아. 넌 역시.”
“그, 그러지 마아…….”
부끄러움을 넘어 울상이 되기 시작한 루비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장난이야. 축하하는 건 진심이고.”
“으, 응. 고마…….”
“뭣하면 수석 기념 축하 파티라도 할까? 애들 다 모아서. 게시판에 팜플렛도 하나 만들어서 붙여 놓으면…….”
“에, 에지오……!”
예나 지금이나 루비아를 놀리는 건 재밌는 일이었다. 옆에서 우리들을 빤히 지켜보던 스텔라가 미약한 웃음을 터트렸다.
#9
강의가 끝났다. 오전이었다.
기한이 금요일까지였던 과제를 제출했고, 제펠린 교수님이 1차 피드백 겸 첨삭을 마친 뒤 다시 우리에게 돌려줄 것이라 말씀하셨다.
어제도 운동 끝나고 나서 씻은 다음 바로 공부와 과제 처리에 집중했던 참이다.
솔직히 시험 당일에 부족했던 점─마력 출력을 오버해서 설정했던 것이나, 술식 해체 및 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연산 실수가 있던 것─이 많았던 듯해서, 나름대로 대폭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다.
결과가 어찌될 진 모르지만…… 그 교수님, 평소엔 친절하면서 강의하실 땐 정말 칼같은 분이시니까. 냉정하게 형편없단 평가만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아니다만, 사실 시험은 진즉에 망친 지 오래였다. 검술 시험을 보다가 쓰러졌던 탓에 전공 시험 하나를 못 치렀잖은가. 둘 다 점수가 어떻게 나올런지 참 궁금해졌다. 한데 후자는 그냥 아무런 생각 않는 게 좋을 듯했다. 나약했던 나 자신에 대한 절망감만 더 깊어질 테니…….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응?”
오후에 있을 마지막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 점심을 처리하기 위해 학생 식당으로 모인 자리에서 루비아가 툭 던진 말이었다.
“유리 말이야. 뭐 하고 있을까 싶어서.”
“아…….”
어째 기시감이 느껴지는 흐름이다.
후식으로 가져온 오렌지를 까먹으며 내가 말했다.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
“…걱정 안 돼?”
“글쎄, 걱정할 것까지야… 그 녀석이라면 뭐든 잘 해낼 거라고 믿는 쪽에 가깝지. 이대로 안 돌아온다고 해도 왕녀님이신 만큼 자기 왕국에서 좋은 대접 받으면서 잘 살 테고.”
“그, 그야 그렇겠지만…….”
벌써 일주일 가까이 소식을 알지 못했다. 루비아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 가는 듯했다.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같은 식의.
“너무 걱정하지 말란 소리야. 네가 말했던 것처럼 걔는 그렇게 약한 녀석도 아니고, 정말로 너희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기를 쓰고 돌아오려고 하겠지. 이유는 몰라도 자기 집보단 여길 더 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으니까. …여하튼 잘 이겨낼 거야. 그렇게 믿는 쪽이 그 녀석도 우리도 편할 테고.”
껍질을 벗긴 오렌지 한 조각을 입에 쏙 넣었다. 어금니로 씹으니, 상큼한 과일의 향미가 입안 가득 터져 나갔다. 음, 맛있네.
맞은편에 앉은 루비아에게도 한 조각 건넸다. 루비아는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조심스레 받더니, 얌전하게 앙 하고 입에 물었다. 직후 우물거리는 입술로부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나 유리를 신뢰하고 있었구나.”
“왜, 의외야?”
이번엔 옆자리를 향해 오렌지 한 조각을 슥 내민다. 냅킨으로 입가를 두드리고 있던 스텔라가 빙긋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다음 순간, 받아든 그것을 접시 위에 살포시 놓더니 작은 나이프로 자르고 포크로 찍…… 지는 않았고.
중간에 아차 하는 기색을 띠며 청결한 손으로 집어 먹는다. 우리를 의식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했지…….
“아, 아니. 뭔가 벅차오르는…? 그런 느낌…? 내가 다 고마운 기분…? 에지오 너한테는 유리가 조금 모질게 대한 부분도 있었으니까. 막 입학했을 때 너한테 능력 썼던 것도 있었고….”
아, 그것 때문에 식당에서 나한테 사과를 시켰던 일 말이지.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정말 엄청난 수치를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싫어하는 남자한테, 평생 누구한테 굽혀본 적도 없었을 왕녀님께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니.
그 성격에 잘도 참았다 싶다.
물론 폭발 직전까지 갔던 것 같긴 하지만.
잘게 씹은 오렌지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처음부터 별로 나쁘게 생각 안 했어. 앙칼진 여동생쯤으로 여기고 있었거든. 이러나저러나 정도 이상으론 나한테 심한 짓 한 적도 없었고. 가만 보다 보면 재밌기도 하고. 놀리는 맛이 있달까. 사소한 거에도 크게 반응해 준다고 한달까. 가끔은 루비아 너보다 혜자인 것 같기도 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어. 좋아해야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루비아가 복잡미묘한 낯으로 오렌지를 우물거렸다.
“생각해 보면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너희 둘은 타입이 다르잖아. 비교를 하는 게 잘못된 걸 수도 있겠네.”
“타입…?”
“걔는 꼬리를 붙잡으면 곧잘 하악질 하는 고양이 같은 타입이고, 너는 일단 먹이를 빼앗으면 차마 주인을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린 먹이를 되찾으려 손발을 아둥바둥 뻗는 강아지 같은 타입이잖아. 말하자면 나는 유리가 나한테 화를 내는 바로 그 순간과, 네가 곤란해하는 순간을 즐긴다는 거지.”
“에지오, 말이랑 비유가 이상해.”
변태야…?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루비아. 평생 놀리는 쪽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 어렸을 때 가벼운 장난 정돈 쳐보긴 했어도 누군가가 바락 성질을 부릴 때까지 자극시켜본 적은 없었지. 남한테 미움받는 걸 워낙 싫어하는 애니까.
“아무튼.”
“아무튼이라니…….”
무시하고 내가 말했다.
“정 걱정되면 편지라도 써서 보내보든가.”
“편지…?”
루비아가 갸웃거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일 테니 직접 가서 만나진 못하더라도, 짧은 답장 정돈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걔도 내심 너희들 소식 궁금해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으, 으음….”
루비아는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괜히 더 곤란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반문하자 곧 루비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안 그래도 복잡할 텐데 생각할 거리를 더 얹어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인즉 힘들고 예민한 사람 굳이 건드리지 말잔 얘기다.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는 아니었으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더더욱 보내줘야지. 너희들 편지 받고 힘이 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일 생겨서 아마 외로워하고 있을 그 녀석에게 너희가 옆에 있단 사실을 알려주는 거야. 힘들 때 가까운 사람이 보내주는 응원의 편지가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설마 피해를 주겠니. 절대 그렇지 않을걸.”
부정할 순 없는지 루비아도 입을 꾹 닫는다. 납득한 걸까.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스텔라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좋은 말씀을 하시네요, 에지오 씨.”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아서. 먼 타지에 홀로 있을 때 너희가 편지 보내준다고 생각하면 왠지 기분 좋을 것 같거든.”
외로움엔 몹시 익숙한지라 없어도 별로 상관없을 거란 말은 제외했다. 그래도 아예 거짓말은 아니다. 그걸 받고 기분이 상할 리는 없을 테니까.
“…….”
오렌지 한 조각을 아직도 우물거리던 루비아가, 마침내 결심한 듯한 낯빛으로 입을 연다.
“응, 에지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알았어.”
무슨 기합인지 작은 주먹까지 꼭 쥐었다.
“편지, 써볼게.”
“그래.”
나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스텔라도 손을 살짝 든다.
“아, 저도요.”
“오냐.”
왜 나한테 그런 의사 표명들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써본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루비아와 스텔라 정도라면 분명 힘이 나겠지. 반면 내 걸 받아 봐야 열불만 날 테고. 그러니 난 보내지 않을 거다. 친구라곤 해도 상황과 때에 따른 뭐시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얘들아.”
“…응?”
“네?”
루비아가 문득 나와 스텔라를 불렀다.
어째 아까보다 의뭉스레 물든 얼굴이었다.
“편지를 어떻게 보내지…?”
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 그것도 왕가(王家)의 외동딸. 그 먼 곳까지 편지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받을 수나 있긴 할까. 나라 분위기가 어떨진 몰라도 왕궁은 딱히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편지가 주인한테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까. 뭐 그런 걱정인 듯했다.
“음…….”
잠깐 턱을 어루만지던 내가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찬찬히 생각해 봐야지.”
결국 이 자리에서 바로 내놓을 만한 해답은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어딘가에 있겠지. 설마 편지 한 장 제대로 못 보낼까.
우리가 일개 평민이었으면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유리의 동급생이었다. 왕족의 같은 반 친구란 말이다. 명분으로 걸릴 건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제국에 오직 다섯 가문밖에 없다는 공작가의 공녀님이시다. 여차하면 스텔라의 고귀한 신분을 빌려서라도…… 그건 너무 거창한가.
“다 먹었으면 이제 일어날까?”
“아, 잠깐만.”
슬슬 테이블을 둘러보던 내게 루비아가 말한다.
“이따 저녁에 언제 모일지 정해야지.”
그러고 보니 정확한 시간을 정하진 않았나. 어차피 평소처럼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잘들 모이겠거니 했는데, 어림잡아 약속을 잡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서로 갈라지면 곤란하다.
오늘은 꽤나 중요한 얘기를 할 예정이었으니까.
“여섯 시 반쯤? 식당 앞에서 모이는 걸로. 그러고 나서 너희랑 밥 먹고 나 운동 끝나면 대충 아홉 시 반쯤 넘을 것 같은데.”
“…꼭 해야 해요? 운동?”
그때가 되면 너무 늦는다 싶은 생각인지, 스텔라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꼭 해야 하냐, 라…….
무르다.
물러도 한참 무르다.
나는 짐짓 눈썹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너희가 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운동을 내가 괜히 하는 게 아냐. 저번에도 말했지만…….”
“아, 알았어요. 그럼 여섯 시 반에 만나요, 우리.”
“…….”
마침 헬스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로 결심했던 입장에서, 적당한 기회가 왔다 싶었던 찰나 스텔라가 다급히 날 제지했다.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 짓지 마세요. 제가 잘못한 것 같잖아요.”
“됐어. 너희가 뭘 알겠니…….”
오늘은 아이리스가 자리에 없었다. 만일 그녀가 있었다면 내 얘기에 힘을 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자고로 기사들만큼 강인한 육체에 진심인 사람들은 없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결정된 걸로 알고.”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며.
학생 식당 1층 내부를 둘러본다.
드문드문한 학생들의 틈바구니 속, 익숙한 검은빛의 인영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없나.
가능하면 그 녀석도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직접 찾아가 봐?’
그 생각은 곧 빛살처럼 빠르게 지워졌다.
뮤에게 아주 못할 말과 행동들을 저지른 입장에서, 그녀를 내가 먼저 찾아간다는 건 상당히 잘못된 일이었다.
……혹시라도 길 가다 마주치게 되면 넌지시 물어보는 수밖에. 그리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이따 저녁에 보자. 수업 잘 받아, 다들.”
“응, 에지오 너도.”
“저는 공강이에요.”
“…오냐.”
어쩌라는 것이지. 라는 말을 겨우 삼켰다.
#10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낮게 깔린 저녁.
우리는 예정대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편지, 이제 안 보내도 되겠네.”
“……응. 그러게.”
우리들은 3동 카페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빨대로 음료를 쪽쪽 빨아 마시며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것은 네모나고 각진 편지지였다.
번쩍거리는 장식까진 따로 없었으나, 밀봉을 위해 붙여 놓았던 왕가의 휘장 뱃지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프론티어 내부 사정으로 외부인들의 출입이 당분간 엄격하게 금지된 가운데, 어찌어찌 우리 앞까지 흘러들어온 편지 세 장.
그래서 우리 앞으로 발송된 이 세 장의 편지가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냐 하면…….
“당연히 가야지. 기껏 초대해줬는데.”
유리의 고향.
아르티나 왕국으로의 초대장이었다.
……정확히는, 이번 주말부터 시작될 왕태자의 장례 행렬에 조문 참석 초대를 위한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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