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넋두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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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초나 궐련을 피워본 적은 없었다. 분명 건강에 해로울 테니까. 때문에 연초를 태운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칫 호기심에라도 한번 입에 대었다간 엘레나 선배님처럼 되어 버릴 것 같았기에. 그건 극구 사양이었다.
한데 지금만큼 연초를 입에 물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
그걸 태울 땐 다들 인상을 활짝 피지 않는다. 느물거리는 얼굴로 행복하게 연초를 뻑뻑 피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리 한다면 그건 아마 연초가 아니라 마약일 테지.
여하튼 우리 아버지께서도 가끔 연초를 태우시는데, 경우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뉘었다.
깊게 생각할 거리가 있거나.
혹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지랄맞은 기분일 터다.
지금의 나 또한 그러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야?”
인기척이 느껴졌다. 옆자리에 누군가 사뿐히 착석한다. 돌아보지 않고 그리 툭 말을 꺼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들려온다.
“…거짓말이라니?”
“맞잖아, 거짓말.”
“내가 한 얘기는 전부 진실이야.”
“아까 그거 말고.”
“그럼?”
태연자약한 목소리다. 어쩐지 실소가 흐를 것 같았다.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다 이건가.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남이 괜한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스듬히 굽혔던 허리를 꼿꼿이 펴서 벤치 등받이에 기대었다.
“보육원이 망해서 길거리 신세가 됐다고 했잖아. 나한테는.”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냐면 대략 십 년 전 여름일까.
“그랬… 었나…?”
“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 아하하.”
“…잘도 웃음이 나오는구나.”
“그렇다고 울 수는 없잖아?”
“…….”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망한 것도 사실이야. 지금은 폐허가 됐을걸.”
“지금은, 이지. 그때는 아니었잖아.”
“…그렇게 되려나?”
“너 진짜…….”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추운 밤공기에 숨결이 흩어진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옆을 돌아보니, 그제야 불청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그러지 마. 이미 지난 일인걸.”
차디찬 바람에 발그스름해진 뺨.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끝이 촉촉한 은백색의 머릿결. 언제나와 같은 카디건과 원피스. 도드라진 쇄골 위로 무특색의 목걸이를 얹은 백금의 소녀, 스텔라 데 펠트라인.
“안 그러게 생겼냐. 아는 친구가 노예로 팔려 갈 뻔했다는데.”
“노예라니, 아냐. 난 결국 탈출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건진 아직 아무것도 몰라.”
“뻔하지 뭘. 보육원에서 연고 없는 아이들을 입양하는 척하고 노예상인에게 팔아넘기는 일이 허다한데.”
그러한 불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법이 있고 절차가 있는 것이건만, 그것들이 제 역할을 온전히 다했다면 세상에 범죄자가 들끓지도 않았겠지. 아마 보육원장이 암흑가의 노예 상인이랑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었을 거다. 보육원이 망한 이유와도 연관되어 있을 테고.
“으음, 뭐가 어쨌든 나는 지금 네 앞에 이렇게 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
“…긍정적이라 좋으시겠어요.”
“부정적인 것보단 훨씬 낫잖아? 그리고 너도 내 성격 알겠지만, 너처럼 쉽게 우울해지고 막 그렇지 않거든. 우울한 일이 있으면 그만큼 신나는 일로 빨리 털어 버려야 한다구.”
“이게 신나는 일이냐.”
“탈출에 성공했을 땐 되게 신났지~. 너랑 만나고 재밌게 놀았을 때도 엄청 신났구. 살면서 불행한 일보단 행복한 일이 훨씬 훨씬 많았는걸. 누가 뭐래도 난 지금 행복해. 무엇보다…….”
스텔라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듯 말하며, 벤치 아래서 발을 교차로 찬찬히 흔들었다.
“그때 네가 날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면, 아마 며칠 못 가서 굶어 죽었거나 야생 동물한테 물어 뜯겼을 테니까. 네가 나한테 무슨 마음 같은 걸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네가 날 구한 거야, 에지오. 네 덕분에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거야.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도 알고 있다. 그냥 조금 더 잘 챙겨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그렇지.
일곱 살의 스텔라는 새로 입원할 보육원을 찾게 될 때까지 우리 가문의 별장에서 지내기로 했었는데, 만일 그 사실을 알았다면 스텔라를 팔아넘긴 보육원 근처에는 절대 보내지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일곱 살 어린아이가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는 인신매매에 대해 자세히 알 턱이 없었으니,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잘 처리해 주셨겠지. 그분들도 스텔라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었으니까.
…어쩌면, 스텔라와 나는 가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만약의 일이었다.
“…그래, 네가 괜찮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응, 응. 그렇지.”
여기서 과거의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스텔라의 친부모님에 대한 화제가 언급될 테니까. 그녀의 말마따나 칙칙한 기류를 형성하고 싶진 않았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면 스텔라도 별거 아니라는 듯 나와 대화를 나누겠지만, 겉만 보고 속을 알 순 없을 노릇이니까.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근데, 너.”
“응?”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이러저러 심란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시간도 자정을 막 넘은 참이었고. 둘 다 자러 들어간 줄 알았는데, 스텔라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어찌 알고 찾아온 걸까.
“으음, 알고 왔다기보단… 왠지 네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와 봤더니, 정말로 있었다는 느낌?”
“감 한번 무섭네.”
역시 미래를 보는 녀석답다.
“그치만 네가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지는 잘 몰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어?”
“네 생각.”
“…….”
스텔라의 얼굴이 순간 벙찐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자못 오해하기 전에 말을 정정했다.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네가 널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라든가, 너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라든가. 아까 너한테 들은 얘기를 통해서 잠깐 이것저것 생각해 보고 있었을 뿐이야. 말 그대로 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진짜로.”
아까의 스텔라는 우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다. 그저 남 일 얘기하듯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들만 쭉 읊어 주었을 뿐이었다.
다만 문장 한 줄 한 줄에 담긴 의미들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적잖은 세월이 흘러 희석된 과거에 대해 말하는 걸 알면서도, 그리 읊는 스텔라의 담담함이 몹시 이질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렇구나. 나는 또 네가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여자를 낚는 기술이라도 익힌 줄 알았지. 하지만 자각이 없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무서운 공격인걸. …응, 앞으론 주의해야겠어.”
얘 뭐라는 거야. 대체.
“에지오.”
“…어?”
옆자리의 스텔라가 불현듯 날 불렀다. 돌아보니, 싱그러운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그녀가 말한다.
“고마워.”
“…갑자기?”
지금 고마울 만한 짓은 안 했는데.
“응.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스텔라가 말을 잇는다.
“그때도, 저번에도. 두 번씩이나 내 목숨을 구해줬잖아. 아니, 세 번인가? 몸을 날려서 날 지켜줬고, 그리고…….”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대충 알겠다.
추운 바람이 불었다. 그에 따라 스텔라의 뺨도 자연히 더 붉어졌다. 귓불도 발그레하니 이만 기숙사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어났을 때 여기가 조금 아프더라. 얼마나 세게 눌렀던 거야, 에지오.”
“그렇게 안 했으면 넌 죽었어.”
정말이다. 늑골을 부숴 버리겠다─ 같은 힘으로 꽉꽉 눌러야 소생술은 비로소 제 의미를 갖는다. 그걸 본인도 모르는 건 아닌지 머리를 작게 끄덕여 보인다.
“알아. 그만큼 날 살리기 위해 열심히 해주었단 증거니까. 기쁜 고통 쪽에 가까우려나. 아하하.”
“기쁠 것까지야…….”
“아니, 정말로 기뻤어. 한편으론 다행이었는걸.”
살아서 다행이라는 건가.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도 전에, 스텔라는 어쩐지 기묘한 눈빛으로 제 입술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내 처음을 가져간 게, 에지오 너라서.”
“──컥, 쿨럭. …퉤, 어우. 목에 뭐가 들어갔나. 큼, 쿨럭. 이래도 안 나오네. 크으으으음! 커으어억.”
누가 들으면 굉장히 오해할 소리를 가볍게 지껄이는 어딘가의 공녀님 옆에서, 나는 목울대를 붙잡고 목구멍 속의 무언가를 게워내려 애썼다. 그 무언가는 당연히 무언가다. 말인즉 나도 모른다. 일단 없어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하자. 제발…….
“흐흫.”
내 반응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스텔라. 역시 질 나쁜 장난질이다. 왜 내 앞에서만 이러는 거냐. 너는. 차라리 수줍고 다정한 스텔라 데 펠트라인으로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지금은 그게 더 편할 것 같아…….
칼칼한 목을 가다듬으며 겨우 말을 꺼냈다.
“…미친 소리 할래, 자꾸?”
“미쳤다니, 말이 심하네. 게다가 미친 사람들은 대부분 허구의 거짓말을 하지만, 나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을 뿐인걸. 분명 너는 날 구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겠지만, 그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잖아?”
“뭔 사실.”
“……알면서.”
“몰라, 임마. 모른다고. 난 그런 적 없어.”
손사래를 내저으며 일어나려고 하자, 눈이 그렁한 스텔라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날 올려다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한다.
“소녀의 소중한 순결을 가져가 놓고, 냉정히 버리실 건가요? 에지오 씨가 그런 사람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미치겠네 진짜.
“너 왜 이러냐. 평소에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네 앞에서는 이런 캐릭터였는걸?”
“…아니, 아. 돌겠네.”
할 말이 없잖아.
“저, 스텔라 공녀님. 그건 의료행위니까 완전 무효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순결 뭐시기는 아직 건재해요. 제가 뺏은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으니 부디 안심하세요. 아시겠죠?”
벌떡 일어서서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자 스텔라가 눈가를 더욱 그렁하게 적시며.
“…그럴 마음이 없어? 너무해. 나 상처받았어.”
“선 넘지 마, 임마.”
장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지.
거 참…….
“루비아가 이런 네 본모습을 알게 되면 얼마나 충격을 먹을까…….”
루비아는 스텔라의 본모습은 고사하고 나랑 과거에 만난 적 있었단 사실도 아직 모른다. 스텔라가 밝히지 않았던 까닭이다.
과거를 간략히 풀어놓으며 나와 관련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나올 줄 알았건만, 스텔라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듯했다. 숨긴 의중은 모른다. 아직 밝힐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이 역시 모를 일이다.
“그럴 일은 없을지도 몰라.”
“…뭐?”
본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스텔라가 말을 잇는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모두가 아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는 거잖아? 한 사람과 한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비밀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좀 더 은밀하고 특별한.”
“…뭔 말이야 그게.”
“으음, 다른 건 몰라도 너와 나 사이의 비밀은 남겨두고 싶다는 거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고.”
“…왜?”
날 따라 벤치에서 일어선 스텔라는 한적하고 으슥한 산책로의 정경을 슥슥 둘러보더니.
“에지오 너도 다른 애들 사이에 갖고 있는 비밀이 있잖아? 나는 그걸 모르고. 그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고. 나만 전부 밝히면 왠지 억울하잖아. 경쟁력이 없어진다구.”
목걸이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옅게 웃는다. 저 묘한 웃음. 다른 애들 앞에서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스텔라의 진면목. 평소 모습이랑 너무 차이가 나서 등허리가 오싹할 지경이다. 수줍기는 개뿔. 어떻게 보면 날 놀리는 데 있어선 뮤 바로 아래의 수준일지도 몰랐다…….
“…혹시 이것도 그 미래시인지 뭔지랑 비슷한 종류인가? 왜 똑같은 언어로 말을 하는데 얘기가 전혀 안 통하는 것 같지?”
“흐흫.”
“웃지만 말고. 야, 똑바로 얘기해. 뭔 말이야.”
“글쎄~. 어떨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나보다 질 나쁜데, 에지오~.”
“너 질 나쁜 건 자각하고 있었구나? …아니, 이건 됐고. 그래서 말한다는 거야, 안 말한다는 거야?”
“글쎄~. 어떨까~.”
“같은 말 하게 만들래, 자꾸?”
“아하하하.”
뒷짐을 진 채 사뿐사뿐 걷는 스텔라의 그림자를 뒤따라 밟으며, 나는 한동안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려 진땀을 빼야 했다…….
#14
다음 날,
토요일 오전.
“후배님은 아직 우리 서클을 잘 모르는구나.”
신입 부원 환영회 일정과 관련하여 서클룸을 방문해 마침 그곳에 계시던 세이라 선배님을 발견하고, 사정을 설명한 뒤에 내가 들은 대답이었다.
“…아직 잘 모른다니요?”
“우리 서클의 모토를 잊었구나 싶어서.”
“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다른 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번 사건으로 잠깐 일정 조정에 문제가 생겨 그걸 처리하고 계시던 모양인 듯했다.
“뭐든지 자유라고 했잖니.”
언제 봐도 같은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화사한 얼굴로, 빙글 돌리던 펜을 슥 내려놓은 채 그리 말했다.
“참석도 자유. 빠지는 것도 자유.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우리들은 너희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아마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우리끼리 잘 놀았을걸?”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극한의 자유가 아닌가 싶다. 서클의 풍조 한번 신기하군.
“무엇보다 원래 취소하려고 했었어. 너희들한테 그런 일이 생겼던 만큼, 누굴 축하하고 환영할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저희야 뭐 이제 괜찮긴 한데…….”
“우리도 괜찮아. 정 마음에 걸린다면 가끔 서클룸에 들려서 그때 얼굴 못 봤던 부원들이랑 인사라도 나누고 가렴. 다들 신입생 중에서 특히 유명한 너희들을 굉장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 그런가요…….”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사건 사고에 많이도 얽혀서 소문이 금세 퍼진 거 아닌가. 평화롭고 안온한 생활을 보내고 싶었건만.
“응, 순수한 호의로 궁금해할 뿐이니까 너무 부담 가지진 마. 다들 착하고 재밌는 친구들이야. 분명 너희들도 마음에 들어 할걸.”
튀폰, 네메시스, 아루 선배들의 경우를 보면 그럴 것도 같다. 문득 화이트보드를 돌아보니 여전한 낙서들과 난잡한 그림들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참 재밌게들 노시는군…….
“조심히 다녀왔으면 좋겠네. 그 후배도 우리 부원이니까, 위로차 조문을 갈 수 있었다면 나도 거기에 함께 갔을 텐데…….”
“아, 많이 바쁘신가요?”
“아니, 바쁜 건 문제가 되지 않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게 문제지.”
“……네? 그게 무슨.”
내 의문에 세이라 선배님이 답했다.
“너희들은 초대받은 거잖니. 내가 알기론 가족과 친지를 제외한 사람들의 조문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 같았거든. 그 때문에 영결식에 참석하는 건 아마 초대받은 사람들만 가능할 거야. 운구 행렬을 볼 수야 있겠지만 우리가 가능한 건 그것뿐일걸. 왕실장이 치러질 성내에는 출입할 수 없어.”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어쩐지 우리들 앞으로 딱 초대장이 왔다 싶었다. 그럼 유리는, 아르티나 왕실은 그녀의 친구인 우리들의 존재를 알고 특별히 초대를 했다는 건가. 그 정도로 친하다는 걸까. 다만 나한테마저 초대장을 보낸 걸 보면 기준을 잘 모르겠다…….
“그렇군요.”
“응, 그러니까 이번 일요일에 진행되기로 한 환영회는 파기하는 걸로. 너희들은 가서 친구를 잘 위로해주고 오렴. 환영회 같은 거랑 비교할 바 없이 중요한 일이잖니. 우리들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다녀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후후. 너무 예의 차릴 필요도 없어. 알았지?”
“예, 선배님. 그럼 그렇게 알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넵. 선배님도 일 잘 해결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응, 응.”
인사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복도 한켠의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던 루비아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묻는다.
“어, 어떻게 됐어?”
“잘 다녀오래. 환영회는 안 하기로 했고.”
“아…….”
마음이 썩 편치 않은 얼굴이다. 내가 말했다.
“원래 취소하려고 하셨대. 저번 실습 건 때문에. 그러니까 걱정하진 말래.”
“그래도, 음……. 알았어.”
겨우 납득한 것 같다. 이윽고 한적한 복도를 루비아와 함께 거닐었다. 두 쌍의 발걸음 소리가 겹쳐 울린다. 여전히 루비아와 둘만 있으면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으나, 일단 물어볼 건 물어 봐야 했다.
“스텔라는?”
내 물음에 루비아가 흠칫하며 답한다.
“아까 타일러 교수님이랑 엄청 길게 얘기하는 것 같더니, 어떻게 허락 받고 외출 나갔어. 뭔가 이러저러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프론티어의 내부 사정으로 외부인의 출입은 물론, 내부인의 외출도 세세한 절차를 두는 듯했다. 특히나 이번 사건의 주 피해자인 우리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혹시나 우리들의 신변에 무슨 추가적인 문제라도 생겼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질타를 받게 될 것 같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스텔라는 우리에게 옷을 빌려주기 위해 잠시 본가로 떠났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는데…… 글쎄, 거기서 무슨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스텔라는 본가를 그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일단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
“으, 응…….”
원래라면 이제 뭐할 거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와야 했었겠지만, 우리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까닭이다.
이 다음의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 나와 루비아는 침묵을 유지한 채 학생회관의 복도를 걷는다.
이제, 뮤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