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간과 (3)
* * *
#5
그리 늦지 않은 시각. 뮤는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승강기에 올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검집을 챙기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저벅, 저벅─
밖으로 나와 도서관 쪽으로 향한다. 뮤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다만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저벅, 탁─
정문을 지나쳐 건물 모퉁이에서 걸음의 방향을 꺾는다. 빠른 걸음으로 좌회전.
그러자.
“어, 왔구나?”
“…….”
학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그늘진 골목, 그림자에 숨어 뮤를 기다리고 있던 한 남성이 슬쩍 아는 체를 한다.
상당히 구석지고 으슥한 장소였다. 다만 돌멩이 정도가 몇 개 발에 치일 뿐, 어디 암흑가의 골목길처럼 너저분한 쓰레기와 오물들이 가득하진 않다. 오히려 깨끗하고 청결한 편에 가깝다. 매일 새벽마다 에픽 클래스의 청소부들이 환경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뮤가 오기 전까지 한가로이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남성은, 정말로 약속 장소에 찾아온 뮤를 보고선 느긋하게 마지막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미안. 하도 안 오길래 지루해서 한 대 피웠어.”
뮤는 고민하느라 자그마치 사십 분이나 지각했다. 그럼에도 남성은 지금 이 자리에 남아서 뮤를 계속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입에 물고 있던 그것을 땅바닥에 버리곤 발로 비벼 끈다. 주변에 쓰레기통이 어디 있을 테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구태여 주울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더러워진 길을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남성은 윗옷을 툭툭 털었다. 목도 몇 번 꺾더니, 골목의 초입에서 아직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은 뮤를 보며 빙긋 웃는다.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담배 냄새 싫어해? …아니면 그냥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싫은 건가?”
그것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뮤는 언제부터인가 거의 항상 일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을 꺼낼 의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앙다물린 입술과, 언뜻 상대를 노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남성이 보기에는 꽤 아니꼬운 얼굴로 보일 만했다.
당연히, 실제로도 별반 다르진 않겠지만.
“싫어하는 것 같네. 뭐, 좋아. 네가 담배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안 피울게.”
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남성이 금연을 하든 말든 뮤에게는 일절 상관이 없었다. 어쩌라는 건지.
그 이후로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자, 남성이 뻘쭘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계속 거기 서 있을 거야? 네가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모처럼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진 이유가 없잖아.”
뮤는 원체 타인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여 약속 장소를 어디로 잡든 상관이 없을 터였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특수한 케이스였는지라 가급적 은밀하게 대면하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장소 제안 자체는 뮤 쪽에서 먼저 발의했다.
입학 이후 동급생은 물론이고 선배들과의 교류 또한 전무에 가까웠던 뮤가, 의문의 남자 선배와 사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도 꽤 길게 이어지는 대화일 터. 더군다나 남들에게 절대 보여선 안 될 물건도 자칫하면 공개될 여지가 있었다…….
만일 지나가던 학생이 그 광경을 본다면 가십거리 정도로는 씹을 수 있을 만한 소문이 만들어질 것이었다.
말인즉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소문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곤 하지만 일이 귀찮아지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목소리만 들리면 충분하잖아.”
드디어 뮤가 입을 열었다.
냉담한 음성. 첫 대면 때도 반말이었다. 그러니 말투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한다고 해도 별 소용없을 것 같고.
과연 그런가. 음, 음. 하면서 고개를 주억이던 남성이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어. 네가 여기 왔다는 건 대답을 정했다는 거고, 너는 그 대답만 나한테 들려주면 끝이니까. …그래도 4미터는 너무 멀지 않아? 2미터만 더 가까이 와보는 건 어때?”
“싫어.”
단 1초의 거침도 없이 튀어나온 목소리. 어찌나 빠르고 날카로운지, 남성은 잠시 뒤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쿨하네. 그래, 알았어. 강요는 않을게. 네 성격은 대충 들어서 알고 있거든. 그렇게 과장된 소문도 아닌 것 같네.”
그러면서 슬쩍 뮤의 눈치를 보았다.
“…….”
전혀 꿈쩍도 않는 기색이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자신에 관련한 소문이 뭔지 궁금해하는 척이라도 보일 만한데, 뮤는 일절 그런 게 없었다.
그렇다면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뉜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이미 전부 알고 있거나.
아마도…… 둘 다 해당되지 않을까, 하고 남성은 생각했다.
‘별수 없네.’
자신이 맞춰주는 수밖에.
“그래서, 대답은?”
곧장 본론이다. 남성은 뮤에게 반지를 돌려주고, 그 반지의 존재에 대해 깔끔히 잊는 조건으로 뮤의 시간을 사고자 했다.
뮤에게는 자기와 한 번만 이야기하자고 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한 적은 없다.
뮤의 입장에선 그것이 영 수상쩍을 따름이었다.
“대답 전에.”
“…응?”
“목적이 뭐야.”
“…목적? 무슨 목적?”
남성이 눈을 끔뻑거렸다.
뮤가 여차하면 칼을 뽑을 기세로 말을 이었다.
“이런 더러운 협박을 하면서까지 나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아쉽지만 내가 당신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있어도 없다. 이야기 한 번만 나누자고? 뮤 쪽에서 입을 여는 일은 절대로 없을 터. 반지만 돌려받는다면 뮤는 저 남자 선배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 버릴 것이었다.
‘…눈빛 한번 살벌하네.’
남성은 겨울서리처럼 싸늘한 뮤의 시선을 마주하곤 어깨를 으스스 떨었다. 뭐가 저렇게 적대적인지.
그러나 불만을 표하진 않는다. 빙긋 웃는다.
“더러운 협박이라니. 말이 좀 심하네.”
“그럼 뭔데.”
“나는 그냥, 너한테 얘기했던 것처럼 너와 말 한 번 붙여보고 싶었을 뿐이야. 막무가내로 다가가면 계속 그랬던 것처럼 절대 반응해주지 않을 거잖아? 그럼 이런 방식으로라도 교류를 해보는 수밖에 없지.”
어깨를 으쓱인 남성은 물끄러미 뮤를 훑어보았다.
턱밑까지 끌어 올려진 지퍼. 달리 화려한 옷차림도 아니고, 수수한 트레이닝복에 검집 하나만 찬 모양새다.
그럼에도 뮤로부터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바로 저 외모에 혹해 적잖은 학생들이 선뜻 뮤에게 다가갔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매몰친 문전박대도 아닌 완벽한 무관심. 뮤는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관심들을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전부 무시한 것이었다.
그러자 대다수의 학생들은 뮤의 목소리를 들어볼 일도 없이 발걸음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시도가 모조리 실패하자 결국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다만, 남성은 그 대다수에 속해 있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뮤와 어떻게 하면 접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왔다.
그러다 때마침 좋은 미끼가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
이거라면, 적어도 무시를 당할 일은 없을 터.
─이 반지, 네 거 맞지?
그렇게 미끼를 흔들어 뮤의 관심을 끌었고.
예상대로…… 뮤와 접점이 만들어졌다.
‘그리 호의적인 첫인상은 아닌 것 같지만.’
남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남의 은밀한 연애사정을 가지고 이러는 것부터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긴 한데, 뭐 어쩌겠나.
반지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져 버린 것을.
말 그대로, 궁금했다.
연애 한 번은 고사하고 친구 한 명 제대로 사귀었을지 의문인 절세(世)의 소녀가, 알고 보니 남자친구를 사귄 전적이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커플링을 맞추었을 정도로 열띤 연애를 한 듯했다. 지금 뮤의 모습으로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거였다.
저리 싸늘한 낯빛에서 연심 가득한 수줍은 미소가 피어나는 모습을, 쉽사리 떠올려낼 수가 없다.
한술 더 떠서.
지금 1학년에, 그녀의 전 남자친구가 있다.
‘그 소문도… 반쯤은 사실이었나.’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해답이었다.
“진짜로. 다른 목적은 없어. 시간 한번 내주면 된다니까? 설마 내가 미쳤다고 프론티어에서 음험한 짓거리를 하겠어?”
“최근 무슨 일이 있었더라.”
“…….”
남성도 실습에 참여했던 학생으로서 뮤의 경계심을 이해했다. 이제 천혜의 요새라는 위명도 색이 바래지는 중이다. 프론티어 내부에서도 사건은 얼마든지 터질 수 있었다.
“뭘 원하는진 몰라도 소용없어. 나한테 관심 끄는 게 좋을걸.”
뮤가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다리를 움직였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딘다. 남성과 먼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던 태도가 일변했다. 다만 자줏빛 눈동자에 서린 예기(??)는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일 미터 앞까지 접근한 뒤.
스윽─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낸 다음,
내밀며 말한다.
“내놔.”
낮게 뇌까린 뮤와 가까이서 눈을 마주하자, 남성은 흡사 숨이 멎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정말 1학년 맞아?’
그냥 1학년도 아니다.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조기졸업생이다. 그런데도 심상치 않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다. 남성도 에픽 클래스 재학생인 만큼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닐 터인데, 신입생과의 기싸움에서 밀리게 생겼다. 썩 달갑지 않은 기분이었다.
‘…젠장.’
그래도 선배인데. 존중과 예의라는 게 하나 없다. 그간 꾹 눌러 참고 있었지만, 여기서마저 밀려 버리면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아직은, 자신이 입장상 우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그건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하는데.”
남성도 빙긋 웃었던 표정을 굳히며 답한다.
“그냥은 줄 수 없지. 내가 얘기한 거 못 들었어?”
“들었지.”
“그럼.”
그때.
“지금 당신이랑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이야기’ 아냐?”
“……뭐?”
남성이 벙찐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잘 얘기했네. 그럼 됐잖아.”
“……어라.”
잠시 뒤, 뮤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는다.
그래─.
말의 허점을 찌른 것이었다.
아니, 이걸 허점이라고 봐야 하나?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이해관계를 완전히 제멋대로 해석한…….
“이제 내놔.”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채로, 뮤가 말했다.
“……아니, 이건.”
당연히 무효지─ 라고 말하려는 순간.
“분명히 말했었지. 이야기 한 번 해주면 그거 돌려주겠다고. 내 대답은 좋아, 야. 조건이었던 이야기는 방금 했고. 아, 지금도 했네. 됐지?”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뮤.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야.”
그녀가 2학년 남자 선배─ 카멜로 바그리드를 냉담히 올려다보며 결정타를 꽂아 넣는다.
“약속, 지켜.”
만일 약속한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검집에서 칼자루를 뽑아들 기세였다.
“…….”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남성은 살짝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과연, 이 정도였을 줄이야.
“미안한데, 억지도 적당히 부리지?”
“억지를 부리는 건 당신이고.”
“나? 내가 왜?”
“여기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당신뿐이니까.”
“……하하.”
길게 끌어봤자 얘기가 더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남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한숨과 함께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인 뒤, 다시 위로 들어 올리며 앞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후배한테 밥 한 번 사주면서 느긋하게 이야기 좀 해보자는데, 그거 하나 어려워서 지금 이러는 거야?”
“누가 밥을 사달랬어? 것 봐, 처음부터 이야기만 나눌 생각은 없었네. 더러운 목적이 있었잖아.”
“아니, 진짜 별 목적 없다니까? 그게 끝이라니까? 그리고 뭐가 더러운 목적이야? 너도 알겠지만 여긴 재학생이 백 명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야. 선후배 간의 교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알아? 나는 몰라도 다른 선배들한테까지 계속 이런 식으로 굴다간…….”
그 말을 꺼낸 순간,
카멜로는 입의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굴다간, 뭐?”
“…….”
“말을 하면 끝까지 해야지. 굴다간, 뭐. 어쩌게. 지금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드니 나한테 불이익이라도 주겠다, 이 말이야?”
“……거기까진 안 말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네 아카데미 생활이 살짝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거지.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한다거나.”
“필요 없어. 쓸데없는 도움 따윈.”
“…….”
“나 혼자서도 충분해. 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랑 무가치하게 노닥거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속이 빈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무려 신입생 1번에 달하는 뮤가 발언하니 썩 진지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알았으면 내놔. 남의 개인사로 추잡하게 협박하려 들지 말고. 내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꼴보기 싫은 행동인 거,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
몰랐는데, 뮤는 의외로 말수가 적은 편이 아니었다. 깔끔하고 냉랭한 목소리는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니 나름 사람과 대화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도 나쁘진 않나?’
뮤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카멜로의 호기심이 일부 채워졌다. 생각보다 꽤 오래 말을 주고받기도 했고. 물론 아직 부족하긴 하다만.
그건 그렇고.
방금 뮤로부터 적잖게 모욕적인 언사를 받은 카멜로가, 속으로 발끈하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개인사라, 그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입 닫아.”
“……뭐라고?”
지금,
잘못 들었나?
“입 닫으라고.”
아니었다.
카멜로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거 내놓고, 일 귀찮게 만들지 마. 두 번은 안 말해.”
원래도 차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스으으으─
얼음송곳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운 예기를 띤다. 비단 말투뿐만이 아니라, 몸에서 스멀스멀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것은 연기처럼 불투명한 푸른색이었다.
‘마력까지…….’
반사적으로 끌어올린 것에 가까웠다. 자신의 것과 비교해도 꿀리긴커녕… 그 이상의 생각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카멜로는 순간 흠칫하면서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 역시 본능에 의한 반응이었다.
‘……역린을 건드렸나?’
개인사. 그러니까, 반지에 얽힌 일화에 대해 무언가 물어보려하자 곧바로 무시무시한 기세가 엄습했다.
여기서 더 긁으면 어떻게 될까.
굳이 시도해보고 싶진 않았다.
잠시 침을 꿀꺽인 카멜로가 입술을 떼었다.
“……미안한데, 그 반지는 지금 여기 없어.”
“뭐?”
뮤의 기세가 일순 사그라든다.
“내 기숙사에 놓고 왔거든. 네가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면 그때 건네줄 생각이었지. 그러니까 지금은 못 줘.”
“무슨…….”
“비밀은 지켜주긴 할 건데, 돌려받지 못하면 너도 곤란하잖아? 개인사 같은 건 이제 안 물어볼 테니까, 정말 간단하게 그냥 나랑 밥 한 번만…….”
바로 그때였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
카랑카랑한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거짓말이야──!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숨기고 있어──!”
“뭐, 뭣.”
뮤는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카멜로는 몹시 당황하며 이곳저곳으로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거짓말은 나빠──! 이 거짓말쟁이──!”
“뭐, 뭐야! 누구야!?”
으슥한 골목 여기저기로 시선을 던져보지만, 갑작스런 목소리의 주인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는데,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근원지를 찾을 수가 없다.
그보다.
‘……어떻게 알았지?’
주머니 속에서 꺼낸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다음 순간.
“……오른쪽 주머니?”
뮤의 의문 섞인 시선이 쿡 찔러온다.
“아니, 그게…….”
카멜로는 태연을 가장하려 했지만, 누군가에게 거짓말이 들킨 이상 당황을 전부 감출 수는 없었다.
“남의.”
눈치챈 뮤가 말을 잇는다.
“남의 분실물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나,
그렇기에 더없이 불길한 목소리가 울린다.
“거짓말까지.”
“아니, 잠깐…….”
뮤가 한 걸음 다가온다. 거리가 점차 좁혀졌다. 카멜로는 자신이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1학년이 아무리 강해봤자야.’
어쩐지 억하심정이 들어, 뒤가 아닌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손을 뮤의 어깨 쪽으로 내뻗었다. 턱, 하고 올리면서 뮤를 내려다보는 동시에 압박감을 줄 심산이었다.
“야, 솔직히 이건 네가 너무한 거 아냐? 이 정도 했으면 한 번쯤은 기회를 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뭐가 이렇게 깐깐──”
카멜로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어?”
머리칼이 모조리 위로 솟아올랐다. 붕 떠올랐다.
어느샌가.
골목 사이로 보였던 태양이 뒤집혀 있다.
“어어?”
몰랐는데,
몸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크헉!”
잠시 부유했던 몸이 하강을 시작한 것은, 건물 외벽에 등을 힘껏 부딪히고 난 다음이었다.
뮤는 카멜로의 팔을 붙잡고 체술을 걸어, 말 그대로 카멜로를 날려 보냈다. 평범한 인간의 완력 수준을 이미 옛적에 벗어난 뮤다. 그렇다면 그녀의 체술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을 터였다.
콰앙─! 털썩.
선배의 몸을 거리낌 없이 메쳐버린 뮤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카멜로가 신음을 흘리는 모습을 보곤 싸늘히 시선을 내렸다.
“누굴 마음대로 만지려 들어. 역겨운 자식.”
“윽, 으윽, 크으윽…….”
팅, 데구르르─
거꾸로 뒤집어진 탓일까. 카멜로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부터 튀어나온 무언가가 청명한 금속음을 울리며 땅바닥을 굴렀다.
“…….”
굴러서, 뮤의 앞까지 왔다.
스윽─
뮤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 이모저모 훑어보고, 이상이 없는 진품임을 확인한 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나랑 에지오에 대해 뭘 떠들든 네 마음대로 해.”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나약한 신체였다. 차라리 에지오가 더 튼튼할 터.
……아니, 지금 그를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았다.
자켓 주머니에 반지를 소중히 집어넣은 뮤가, 바닥에 엎어져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카멜로를 뒤로하곤.
“이제 증거는 없으니까. 진실도 아니고.”
뚜벅, 뚜벅.
으슥한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하, 하하.”
얼떨결에 얻어맞고 반지까지 빼앗긴 카멜로는, 골목에 혼자 남겨진 채 마냥 헛웃음만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윽, 으윽.”
여기저기가 쓰라리고 쑤신다. 뼈는 다행히 부러지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강하게 부딪혔으면 늑골이 와장창 조각났을 거다.
“미친년…….”
예쁜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고 하던가. 저건 가시가 아니라 대형 송곳이었다. 사람은 사슴뿔만 한 송곳에 꿰뚫리면 죽는다…….
그때.
스윽─
겨우 땅을 딛고 일어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카멜로의 주위로,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만 카멜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쁜 말 금지!”
“어억!”
왜냐하면, 매우 잽쌌기 때문이다.
“커헉…….”
콰당탕─!
등짝을 발길질에 또 한 번 얻어맞고 허리가 굽혀진 카멜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땅바닥을 향해 몸을 투신했다.
아까 들려왔던 의문의 목소리와 똑같았지만, 카멜로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글거리며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하. 뭐야, 대체?”
목소리의 주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카멜로는 한동안 골목에 혼자 남아 생각했다.
“성격 한번 제대로 지랄맞네.”
곧이어 픽, 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얼굴값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뭐.
……오히려 매력 있을지도?
게다가.
전 남자친구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흐음.”
카멜로가 뮤에게 붙잡혔던 부위를 손으로 매만지더니.
빙긋─
직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