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 복수의 신 로엔
* * *
“와 얘가 신입인가?”
듣기 좋은 상쾌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신이 새로 태어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이번엔 편안한 소녀와 숙녀 중간 정도 느낌의 목소리였다.
“어우 너무 귀엽게 생긴거 아니야?"
그들이 투닥되면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떠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눈을 감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갈 생각이 없는지 내 옆에서 계속 투닥거리고 있었다.
‘살짝만 눈 떠볼까?’
나는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볼 겸 한쪽 눈만 떴다.
하필 옆에 있는 보라색 머리의의 청년과 눈을 마주쳤다.
“어? 얘 눈 떴는데?”
나는 눈이 마주치자 마자 다시 눈을 감았지만 일어난게 이미 들킨 것 같았다.
일단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되서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으... 잘잤다...”
나는 막 지금 일어난 척 기지개를 펴며 연기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들었던 목소리들과 매칭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키가 굉장히 작고 어려보이는 흑발의 소녀.
왼쪽 눈은 빨간색이고 오른쪽 눈은 파란색인 오드아이를 하고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열적인 빨간색 머리를 한 아가씨가 있었는데, 그녀는키가 크고 숙성된 매력을 뿜어냈다.
검은색 같은 보라색 머리를 한 수려한 외모의 청년은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얼굴에 배어있는 듯 장난기가 많아 보였다.
“풉...”
그 청년은 내가 연기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사를 건냈다.
“하하... 저... 안녕하세요...”
“푸읍....하하하하하하.”
“흡....흐흐흐흐흐.”
그들은 다같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내 모습이 웃겼던 것일까 아님 내가 자고있던 척을 하던 상황이 웃겼던 것일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 보다는 웃는 것이 좋은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같이 어색하게 웃었다.
“끄윽...흐흐흐흐흐흐..아... 배아파...미안 미안 비웃는게 아니라 그런 마신은 처음이라.”
“저... 혹시 여기가 어디죠?”
보라색 머리를 한 청년이 어느 정도 웃음을 멈춘 것 같길래 질문했다.
“어... 여긴 신계지. 신계에서 너의 방이야.”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나는 엄청나게 푹신거리는 침대 위에 있었다.
이정도 푹신함은 정말 인간은 사용하지 못하는 신의 푹신거림이었다.
신계라서 그런가...
난 푹신거림에 빠져들뻔 하다가 다시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이 방이 내 방이라고?
방은 정말 컸고 정말 멋진 쇼파, 테이블, 액자 등 많은 가구들이 놓여있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팔리자 소년은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냥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어... 난 혼돈의 신인 카리온이라고 해.”
“어! 죄송해요. 사람들을 앞에다 두고.”
“아냐 아냐, 지금 일어났는데 정신 없을 만 하지.”
카리온이라고 소개한 그 청년은 정말로 착한지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한 것도 용서해주었다.
“나는 죽음의 신인 엘로아라고 한다.”
오드아이를 한 소녀는 소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중후한 말투를 사용했다.
갑자기 붉은 머리를 한 숙녀분이 나를 껴안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안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파괴의 신인 페르세스.”
페르세스라고 소개한 숙녀분은 카리온과 엘로아에 의해 나에게 떼어졌다.
그 후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 나도 소개해야지.
“아... 저는 김겨울이라고 해요. 나이는 18세고...”
“음? 김겨울?”
다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랑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도 주변에 있는 걸까?
“네... 한자 이름이 아니라 한글 이름이라서... 좀 이상한가요?”
“아니 이름이 예쁘긴 한데...”
“너 설마 새로 태어난 영혼이 아니야?”
“새로 태어난 영혼이요?”
"흠... 정령왕이나 드래곤들 중 누가 죽었다는건 들은 적이 없는데..."
“으...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카리온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눈망울을 빛내는 생명체에게 쉽게 설명할 방법을 생각했다.
“너 지금 명계에서 왔는가?”
엘로아는 나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나 외모와 매칭되지 않는 말투가 어색했다.
“네... 그 이켈로스? 그 분이 제가 마신이 되었다고...”
“너 어디에 있다가 온거지?”
“어.. 한국에서 왔는데요?”
엘로아는 잠깐 고민하더니 뭐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이라면 13차원에서 온건가...”
“13차원? 그 인간들만 있는 차원 말하는거야?”
페르세스가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그럼 얘 인간이었던거야?”
뭔가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이럴때는 빨리 사과하는게 좋지...
“...죄송해요...”
“아냐아냐 너한테 뭐라고 하는게 아니야.”
“누가 우리 귀염둥이 건드렸어!!”
내가 사과하자 카리온과 페르세스는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달랬다.
다 큰 남성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럼 명계에서 무슨 설명이라도 받았는가?”
“어... 무슨 설명 말씀하시는거죠?”
엘로아가 묻자 나는 어떤 설명인지 몰라 다시 되물었다.
“음 어디부터 설명해야하지...”
그러자 어떤 아저씨가 나의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검은 머리 속 희끗희끗하게 흰 머리가 나있는 동네 아저씨 같았다.
평범한 키에 수염도 살짝 나있는 평범한 아저씨.
“야 새로운 마신이 태어났나며.”
그 아저씨는 굉장히 가벼운 말투로 말하며 들어왔다.
“에레보스 왜 이제와.”
“에레보스!!! 잘 왔다!! 이 애 좀 도와줘.”
그들은 그를 반기며 도움을 요청했다.
“안 그래도 주신한테 계시가 내려와서 바쁜 일 다 밀어두고 왔다.”
그는 말투조차 친근하게 느껴졌다.
“안녕 로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로엔?
무슨 소리지?
“너의 이름은 로엔야.”
그는 나를 로엔라고 불렀다.
“복수의 신 로엔.”
그는 나를 복수의 신이라고 불렀다.
“로...엔?”
그는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면서 다시 싱긋 웃어줬다.
“그래 너의 이름은 로엔. 이제부터 복수의 신 직위를 맡아줄 신이다.”
그 말은 왜인지 나의 마음을 푸근해지게 해주는 말이었다.
진짜 나의 아버지가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해주었을 것 같은 느낌.
그저 별 것 아닌, 아니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그런 위로의 말을 건내 준 느낌이었다.
“너는 이제 우리와 동등한 마신으로써 우리와 함께 갈 의무가 있어.”
나는 처음으로 책임감이라는 것을 그에게 받았다.
매일 무시당하던 나에게...
“흐윽....흑.....흐으으으으...”
나는 그 말을 듣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야 왜 울어!”
“에레보스 뭐하는 짓이야!!!!!!!”
주변에서 당황하며 에레보스라고 불리는 아저씨에게 뭐라고 했지만 난 계속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아니 난 그냥...”
“우리 막내를 울린 죄는 목숨으로 갚아라.”
빨간 머리를 한 페르세스의 주변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안개가 맴돌더니 페르세스의 손에 기운이 맴돌았다.
“야! 야! 그건 아니지!”
“죽어!!!”
페르세스는 기운이 맴도는 주먹을 에레보스에게 휘둘렀다.
에레보스는 우스운 모습으로 주먹을 피했지만 우스운 모습에 비해 주변은 크게 망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들이 이런 사소한 이유로 싸운다는 상황에 너무 우스운 나머지 웃음이 나왔다.
“흐으으..흐흐흐..푸흐흐흐흐흐.”
엘로아는 내 옆에 앉더니 나를 살포시 껴안아줬다.
“괜찮아.”
나는 그 가벼운 한 마디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졌다.
그동안 당했던,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작은 소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었다.
“으아아아아앙....”
“그래 괜찮아...”
“흐으으으윽... 으아아아앙...”
“그래 그래.”
나는 마음껏 울고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되자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남정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더니 웃고 다시 우는 모습을 보였다니...
아마 퉁퉁 부었을 눈을 생각하니 두 배로 부끄러워졌다.
다 큰 남자가 처음 만난 사람의 품에서, 그것도 엄청 어려보이는 소녀 품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니, 내가 죽더니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죄송해요.”
“너 죄송해요 금지야.”
“에...엣?”
나는 미안하다고 한 말에 카리온은 이상하게 답했다.
“너는 지금까지 전혀 죄송할만한 짓을 하지 않았어, 너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이고 누구에게 전혀 민폐를 주지 않았어.”
카리온의 단호한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아이고 착하다.”
그는 나의 그런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넌 잘못하지 않았어.”
에레보스는 카리온의 말에 수긍하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너는 마신 중의 한 명으로써 정말 부끄럽고 큰 실수를 하더라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부끄럽고 큰 실수를 했는데 당당하다?
그냥 파렴치한이 되라는 소리인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너의 신념을 지키라는 소리야.”
에레보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한 생각에 답해주었다.
“너는 지금 너가 한 행동에 대해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감이 부족해. 하지만 내가 본 너는 지금까지 전혀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도 없다. 너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
그는 내가 겪어온 상황들을 아는 걸까 싶었지만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그저 그들은 나에게 한 없이 좋고... 나를 위해주고... 정말 가족같이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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