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3 수습 (여)신입니다.
* * *
“그럼 신력 다루는 방법은?”
“...모르겠어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이후 우리는 나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로했다.
나는 신계나 다른 세계에 대하여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디부터 나에게 알려줄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부터 로엔 교육담당을 정하도록하자.”
에레보스는 어느 정도 알겠다는 듯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할래!”
“나! 나! 나!”
페르세스와 카리온은 사탕을 준다는 선생님을 따르는 어린애처럼 손을 번쩍 들고 눈을 빛냈다.
엘로아는 그들처럼 소란스럽진 않았지만 살짝 손을 들고 있었다.
“그럼 각자 분야를 나눠서 가르치면 되겠네.”
에레보스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내 집무실에 가서 짜보도록 하자.”
“그러자.”
카리온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처음엔 좀 어지러울 수 있어. [이동하라]”
그러자 침대에 앉아있던 난 책상이 놓여있는 방으로 이동되었다.
책상위에는 서류가 난장판으로 놓여있는 것을 보고 집무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순간이동 그런거야?
옆에 카리온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씨익하고 웃었다.
“야! 내가 데려가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페르세스가 나타나더니 카리온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껴서 애매한 상태가 된 나는 페르세스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 나중엔 페르세스님이랑 갈게요...”
“음?”
“어?”
그들은 이상한 점이 있는지 나를 다 같이 쳐다봤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건 죽기 전 밖에 없었던거 같은데...
“님은 빼.”
“나도 님은 좀 아닌거 같아. 우리가 상하관계는 아니니까. 가족끼리 님을 붙이지는 않잖아.”
엘로아가 말하자 카리온은 그 말에 맞장구 치며 말했다.
“어... 그럼 페르세스?”
내가 잠깐 고민하다가 말하자 카리온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잘했어.”
포근한 손길에 살짝의 미소가 지어졌다.
“헤헤...”
“윽... 심장이....”
페르세스는 나를 보더니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지는 척을 했다.
남정네를 보고 귀엽다 던지 이런 행동들을 하는 건 처음 보았기에 나는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하하 다들 여기 앉아.”
에레보스는 서 있는 우리보고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내가 그쪽으로 가려고 앞을 보자 유리에 비쳐 우리의 모습들이 보였다.
“음?”
이상했다.
분명 유리에 비쳐 보이는 모습은 5명.
그런데 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은발의 소녀가 한 명 서있었다.
“왜 그래?”
카리온은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다시 주위를 둘러봐도 은발의 소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귀신인가? 귀신이야?
나는 무서운 상황에 당황했더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저기...”
나는 유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은발의 소녀도 나를 가리켰다.
“어...?”
“무슨 일 있어?”
갑자기 공포에 질린 내 얼굴을 보고 다들 놀라서 다가왔다.
“저기 은발의...”
“음?”
“은발의 소녀가 보이는데...”
유리에 있는 그 소녀를 가리키자 그 안에 소녀도 날 가리켰다.
설마...
“그런데?”
“혹시 저에요?”
정적이 흘렀다.
“야! 에레보스 거울!”
“여기있다.”
에레보스는 페르세스에게 거울을 넘겼다.
그 거울을 통해 나를 보았다.
거울을 보자 거울 속에는 엄청나게 귀엽고 예쁜 여성이 있었다.
세상에 이런 머리 색이 있을까 싶은 찬란한 은색머리.
사파이어를 보는 듯한 영롱한 파란색 눈동자.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 때문에 차가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에 차가운 느낌이 강하지는 않았다.
차가운 느낌보다는 신비한 요정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나?
뭔가 꾸미지 않던 여주인공이 꾸며진 후의 대사 같았지만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정들었던 남자의 얼굴 돌려줘!!!
“저...저 잠시만요!”
나는 그 방에서 방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혹시 모른다...
나는 내 바지를 살짝 열어 내 꼬마친구를 확인해보았다.
아... 너도 갔구나...
다른 사람들도 나를 따라 문 밖으로 나왔다.
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울먹울먹.
“저... 혹시 너 남자였니?”
페르세스의 물음에 입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여자로 살 날이 더 많을테니 여자로 살면 되지 않는가.”
이럴수가...
“엘로아! 여자아이는 예민하다니까!”
“나... 남자인데...”
내가 소심하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기는 했어도 여자 같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18년 남자로 산 기억이 있는데 갑자기 여자가 되었다고 해서 여자아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더 충격적이었다.
“뭐 일단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에레보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필요한 것부터 하자.”
카리온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이걸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어차피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니까 수습기간에 해야 할 교육은 내가 하도록 하지.”
“그럼 신력 교육을 내가 할게!”
페르세스는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또 교육할게 뭐가 있지?”
“내가 신계에 대해 교육하도록 하지.”
“그럼 내가 중간계!”
그렇게 엘로아는 신계에 대해, 카리온은 중간계에 대해 가르치기로 했다.
나는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자신들의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기로 한 것에 감사했다.
“그럼 오늘부터 교육에 들어가자!”
“...에?”
“그럼 우린 일 좀 하러갈게. 우리 교육시간에 로엔이랑 놀아야되니까.”
“으... 미리미리 일 좀 해놓을걸...로엔! 금방 끝내고 올게!!”
그들은 아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살짝의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다들 바쁜가 보다.
이 장소에는 에레보스와 나 둘만이 남았다.
에레보스는 웃으면서 나에게 차를 한 잔 주었다.
차는 굉장히 부드러운 꽃향기가 나는 차였는데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좀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에레보스는 내 앞에 앉아 나랑 같은 차로 목을 축였다.
“원래 수습기간은 1년인데 로엔은 배울게 많으니까 조금 더 걸려도 괜찮아.”
“어... 수습기간엔 보통 뭘 배우나요?”
모든 신들이 나같지 않다는 건 아까 전의 상황에서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
태어나자마자 완벽한 신이 뭘 배운다는 걸까?
“수습기간엔 일하는 법을 보통 배우지. 너의 가치관을 만들거나.”
“가치관이요?”
“음... 바로 보여주는게 더 빠르겠다.”
그는 책상 쪽으로 가서 서류 하나를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내가 무슨 직위였지?”
에레보스는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마신이요?”
“아니아니 내 담당 말이야.”
“어.. 어둠의 신이요.”
“그래 나는 어둠의 신이야 그런데 어둠은 상징적인 의미지 난 마족들을 관리하는 신이거든.”
그 서류에는 사람을 죽인 사건들과 피해를 입힌 양이 적혀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는 거죠?”
그는 내 물음에 물음으로 답했다.
“너라면 그걸 보고 어떻게 할 것 같아?”
“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겠죠?”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마족이 어렸을 때 그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더라면?”
학대라는 말에 몸이 반응했다.
아버지에게 맞았던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 그래도...죽이는 건... 아니... 학대도...”
나는 그의 말에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힘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 때 학대를 받았더라면, 나도 그랬지만 크면 클수록 자신이 어떠한 일을 당했는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때 생기는 억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한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가 생각에 빠지자 에레보스는 내 손에서 서류를 가져갔다.
“엉...?”
“그렇게 가치관이 생기는거야. 너가 판단하는 기준.”
갑자기 그의 손에 있던 서류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서류는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 녀석은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어서 천벌을 내릴거지만.”
“그럼 이 사람.... 아니 마족은 어떻게 되는거죠?”
“그냥 냅둘건데?”
“엥? 천벌 내린다면서요?”
분명 천벌을 내린다고 했다가 다른 말을 하는 에레보스에게 물었다.
“이게 내가 내리는 천벌이거든.”
그는 빔프로젝터를 트는 것처럼 내 앞에 어떤 장면을 띄었다.
그 장면에는 중세 기사가 왕같이 보이는 사람의 앞에 있었다.
계속되는 살인사건이 작지 않으니 한 번 조사해보아라.
알겠습니다!
그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직접 벌을 내릴수도, 내 신도들에게 시킬 수도 있긴 하지만 가만히 냅둬도 저 녀석은 죽을거야. 직접 손을 쓰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서류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들이 많아,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모두 신이 개입해버린다면 인간들은 자립심을 잃겠지. 그리고 문제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기도하는 신도들의 문제들도 들어오고 필요하다면 내가 은혜를 내려줄수도 있지.”
그는 서류들을 읽으면서 나에게 계속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너의 가치관을 만들라는 소리야. 너가 마음대로 해도 되긴 하지만 차원의 밸런스가 무너질 일이 있다면 다른 신들의 제재가 들어가니까 조심하고.”
나는 그가 서류를 처리하는 것을 계속 보았다.
그는 공명정대했다.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제 3자의 눈에서 보기 때문에 내 생각들이 틀릴 수도 있긴 했지만 그의 판단은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애로웠다.
자신의 신도들에게 용기를 줄 때도 있었고 능력을 줄 때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계속 서류를 처리해 나갔다.
“저...”
“음? 뭐 물어볼거 있어?”
“저도 에레보스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신이었지만 나는 인간이었다.
나는 감정적이었고 그는 이성적이었다.
“저는 그런 서류들을 읽을 때 감정적으로 행동할 것 같아요...”
에레보스는 웃었다.
“후후후후... 알아.”
“네?”
“그렇기에 우리가 널 보자마자 좋아했던거야.”
“무슨 소리에요?”
“마신은 언제나 모두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감정이 배제되어있는 사람들이야.”
“네?”
“그런 마신들 중 감정적이고 자애롭고 착한 마신... 이 칙칙한 마신들에게도 마계에도 중간계에도 정말 필요했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