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 * *
“로엔 안녕~”
“으...응? 뭐야?”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신도 잠을 자냐고 묻는다면...
그냥 되던데?
생리현상이나 이런게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일단 난 착한 청년... 이젠 아닌가... 어쨌든 페르세스와 놀고 와서 일찍 잠을 청했었다.
그리고 분명 잔지 얼마 안된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카리온은 내 방에 찾아왔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 일어나세요~”
“으... 공주 아니야.”
나는 침대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근데 지금 몇 시인데 온거야?”
“음? 그냥 다음날 돼서 왔는데?”
시간을 보자 정확히 12시.
정말 다음날 보자고 한다고 12시에 딱 만나는 사람이 있다니...
“잠은 안자?”
“후후후 잠자는 신이 더 적을 걸?”
신이 잠을 자냐는 질문에는 No라고 다시 답해야겠다.
“좀 더 자고 싶으면 자도 돼.”
카리온은 애를 다루듯이 말했다.
“아냐 다 잠 깼어.”
나는 물을 마시러 갔다.
갈증은 없었지만 그냥 잠을 깨려고 습관처럼 마시러 간 것이다.
“후후 나한테는 반말 쓰네?”
헉!
나는 잠에서 깨자 마자의 상태였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반말이 나와버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카리온은 뭔가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놀란 얼굴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컵을 입에 물고 뒤에 있는 카리온을 스윽 봤다.
“아 쓰지 말라는게 아니야. 다른 신들 보다 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는게 좋아서 그랬어.”
카리온은 나를 보며 웃어줬다.
다른 사람도 이쁘고 멋지지만 카리온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친근한 매력이 강한 것 같았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
나는 컵을 상에다 내려 놓고 카리온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카리온은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라서 좋아.”
“나도 로엔이 귀여워서 좋아.”
“미소녀 얼굴 안에 들은 건 다 큰 청년이라고~”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카리온은 뭔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과연 10년 20년 지나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
친구들의 핸드폰으로 이런 글을 본적이 있다.
남자도 여자처럼 다루면 여자가 된다고...
이거 마신들이 날 조련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만나면 귀엽다고 껴안고 머리 쓰다듬고.
내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 카리온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크흐흐흐흐흐 로엔 너의 그런 점이 너무 귀엽단 말이지. 순수한 어린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행복해보이니 냅두도록 하자.
“근데 중간계 교육은 뭐야? 내가 있던 곳이 중간계 아니야?”
“응 맞아.”
“그럼 따로 교육할 필요 없는거 아니야?”
“응 맞아.”
“그럼 그냥 놀려고 온거야?”
“응 맞아.”
무슨 렉걸린 컴퓨터 마냥 그는 똑같은 말만 했다.
“내가 일찍 온 이유가 뭔데~ 뭐하고 놀까?”
“하하... 선생님 진도나 나가시죠.”
어제도 실컷 놀기만 해서 죄책감이 있는데 카리온과도 신나게 놀면 에레보스가 말한 수습기간 1년 내에 진도를 끝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말하자 카리온은 장난스러움을 한가득 안은 얼굴을 했다.
“정말~?”
“아뇨 죄송합니다. 노시죠, 선생님.”
나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바로 태세전환했다.
“나도 양심은 있으니까 약간의 교육은 할게.”
그는 어디선가 책을 한 권 꺼내더니 책상에 나뒀다.
쿵
음...
아마 이 책은 내가 봤던 책들중 가장 두껍고 무겁지 않을까 싶은 크기였다.
내가 죽기전에 이 책을 전부 읽을 수 있을까...
갑자기 없던 공부량이 엄청나게 늘어서 울상이 되었다.
“이건 참고서니까 참고 만 해.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카리온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냥 옛날 이야기 하듯 설명해줄게.”
그는 거부감이 드는 책을 내려놓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목을 가다듬었다.
“옛날 옛날 태초에는 무의 공간속에 주신만이 존재했어.”
그러더니 우리의 주위가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검은 공간 중간에는 하나의 빛이 있었다.
뭐야 뭐야.
“아 그냥 환상으로 만든 공간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가상현실 같은 건가?
신력으로 만든 건가?
여러 생각들이 들었지만 일단 카리온의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주신은 홀로 그 공간에 100년 1000년을 살다보니 너무 외로워졌어.”
그러자 옆에 보라색 빛이 하나 나타났다.
“그래서 주신은 자신의 친구를 만들었지. 그게 첫 번째 마신이야.”
“응?”
마신? 그럼 우리 중에...
“바로 에레보스지.”
그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던 사람이 최초의 신이라니.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놀 공간이 필요했지. 그래서 그들은 신계를 만들었어.”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어떤 땅이 생겼다.
그 중앙에는 한 호수가 보였는데 어제 페르세스와 봤던 호수 같았다.
그 빛들은 그 호수 근처를 떠돌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뭐야.”
밝은 구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성이 되었고 검은 구는 엄청난 미남이 되었다.
“저게 에레보스라고?”
내가 아는 에레보스는 동네 아저씨인데...
“하하... 뭐 시간이 지나면서 외모를 본인이 변화 시킨거야.”
“어... 그렇... 어! 그럼 나도 외모를 남자처럼 바꿀 수 있어?”
나는 기대감을 가졌다.
이 여자의 몸에서 벗어나 다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건 안돼. 어느 정도 외모는 바꿀 수 있는데 성별이나 눈동자 색 같은 건 바꿀 수 없어.”
“아...”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나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카리온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래도 머리 길이 같은 건 조종이 가능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이런 얼굴에 가슴도 살짝 봉긋한 상태에서 머리 길이를 바꿔봤자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엘로아의 말처럼 그냥 살다보면 여자가 되려나...
“뭐 일단 계속 이야기 하자면, 그 둘은 둘이서 재밌게 놀다가 둘이서 노는 것도 어느 정도 질리기 시작했어.”
그러더니 그 둘은 어떤 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신은 자신이 에레보스를 만든 것처럼 에레보스랑 자신이 하나씩 세계를 만들기로 했어. 그래서 탄생한 것이 천계와 마계야.”
주신의 옆에는 빛이 나는 천사들이 있었고 에레보스의 옆에는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이 달린 악마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신 자신의 반을 잘라 만든 에레보스와 달리 약간의 힘을 분산해서 나눠주다보니 완벽한 존재들이 아니었지.”
그러더니 악마와 천사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천사끼리 싸우는 모습 악마끼리 싸우는 모습들이 나왔다.
“그들은 서로 싸우면서 고통받기 시작했어. 그 모습을 보고 에레보스는 죽음이라는 것을 만들었어. 어느 정도 큰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이 끝나도록...”
그러자 에레보스의 옆에는 어디서 많이 본 오드아이의 소녀가 생겼다.
“엘로아!”
내가 아는 얼굴에 반가움을 표하자 카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 그래서 탄생한게 죽음의 신인 엘로아야. 하지만 에레보스는 자신과 같은 완벽한 신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부족해서 힘을 쓴 후 잠에 빠지고 말지.”
그러자 주신의 밑에 여러 개의 빛이 나눠졌다.
“이에 주신도 다른 이들을 돌봐줄 많은 신들을 창조했어. 하지만 주신은 에레보스와 다르게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바쳐 중간계를 만들었지.”
그러자 주신의 몸이 분산되며 여러 개의 땅이 만들어 졌다.
“주신의 몸은 여러 개의 중간계가 되었고 주신은 정신만이 남게 되었어. 실체는 없고.”
그러자 에레보스가 잠에서 일어났다.
“에레보스는 잠에서 일어나 보니 주신은 사라지고 중간계와 다른 신들만이 남아있었어. 그래서 주신이 남기고 간 것들을 둘러보았지.”
에레보스가 중간계를 보자 사람들은 쾌락만을 추구하며 놀고 먹기 바뻤고, 신들은 그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 일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에레보스는 분노하여 나와 페르세스를 만들었어.”
에레보스의 주변에 페르세스와 카리온이 보였다.
페르세스는 마족들과 함께 중간계를 파괴하고 있었고 카리온은 이상한 괴물들 주위에 있었다.
“저 괴물들은 뭐야?”
내가 묻자 카리온은 살짝 답하기 어렵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 내가 창조한 피조물들인데 지구로 따지면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괴물들이랄까? 지성에 비해 육체적 강함이 뛰어난 녀석들이지. 이젠 좀 창피한 과거이긴 하지만.”
카리온과 페르세스가 주변을 부수고 있자 에레보스의 앞에 작은 빛 하나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본 주신은 에레보스에게 그만 화를 거두라고 말하게 돼. 그렇게 에레보스는 화를 거두고 마지막으로 주신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빛의 신과 함께 명계를 만들게 되지.”
빛의 신이라.
어제 봤던 그 금발 왕자님 말하는건가?
페르세스랑 사이 나빠 보이던 것도 저런 일들 때문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의문이 들었다.
왜 명계를 만든거지?
“갑자기 명계가 왜 생겨?”
“원래 생명이 죽으면 끝났던 전과 다르게 자신의 죄값을 치른다면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해주는 거지.”
그 말을 마치고 주변이 다시 내 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건 신계에 대한 내용 아니야? 엘로아가 알려주기로 했잖아.”
카리온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중간계를 이야기 하는데 신계를 말하지 않을 수 없거든. 엘로아가 이렇게 자세히 알려줄 것 같지도 않고.”
그는 다시 아래있던 두꺼운 책을 다시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쿵!
험악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로 올라왔다.
“사실 중간계의 종류는 굉장히 많거든 난 나중에 시험 정도만 볼거니까 여가 시간에 외워.”
“에? 진짜?”
그는 나를 보며 상큼하게 웃었다.
그의 상큼한 웃음이 아까 봤던 과거의 카리온과 오버 랩 되는 기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