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1 돼지 남작.
* * *
“뭐? 교황님이 이 앞에 계시다고?”
잠깐 앞으로 나가자 길이 보였다.
그 길에는 마차 한 대가 서있었고 기사가 우릴 만났다는 걸 말하니 안에서 한 남성이 나왔다.
키가 작고 통통한... 얼굴의 기름기가 반지르르 하고 심술이 가득해 보이는게 완벽한 부패 귀족의 얼굴이었다.
“으...”
나는 카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교황님을 뵙습니다.”
그 귀족은 마차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카론에게 인사했다.
크... 교황이 높긴 높나봐?
그 귀족이 나한테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래도 내 아이 같은 애한테 무릎을 꿇으니 뿌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아닙니다. 전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귀족이 무릎을 꿇자 카론이 놀랐는지 그 귀족을 일으켜 세웠다.
어?
교황이 귀족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가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있자 기사들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배...배신이야 카론!
너만 좋은 이미지를 쌓다니!
나도 기사들의 눈치를 봐서 겸손한 자세로 바꿨다.
카론이 일으켜서 그 귀족이 카론의 이마를 보자 그 귀족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 혹시 어디 교단이십니까?”
“저는 복수의 신이신 로엔님의 첫 번째 신도입니다.”
“복수의 신??”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혓바닥으로 나를 핥는 듯한 끈적하고 끔찍한 느낌이었다.
저...저 새끼 변태 귀족 맞는거 같은데?
‘뭔...’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기분이 굉장히 더러워서 얼굴을 꾸길 뻔 했지만 자기 암시를 해서 표정관리에 성공했다.
그러더니 그 귀족은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교단이지만 신실한 신도들이 많은 교단이죠!”
귀족이 그렇게 말하자 나와 카론은 서로 쳐다보고 ‘뭔 개소리야?’ 싶은 얼굴을 했다.
어제 생긴 교단인데?
“저희가 도와드리도록 하죠. 백성들을 전부 인솔해서 영지로 들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조금 의도는 불순한 것 같지만 그래도 받아준다는 말에 반가움을 표했다.
그리고 나와 카론은 사람들을 이끌러 가려고 했다.
“교황님은 저랑 같이 마차에 타시죠.”
우리가 가려하자 그 귀족은 마차에 타라는 듯 손짓했다.
카론은 뭔가 싫은 얼굴이었지만, 도와준 사람이 호의를 표하는거니 거절하기 어려워보였다.
“알겠네. 로에나, 백성들을 부탁할게.”
카론은 나에게 말했지만...
“수행원도 같이 태우셔도 됩니다.”
나는 귀족과 저런 좁은 공간에 있기 싫었다.
그 더러웠던 눈빛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아 저희 둘 다 없다면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 같아 저는 백성들을 이끌...”
“이놈! 어딜 교황님과 필립님이 대화하고 있는데 대화에 끼어드느냐!”
귀족 옆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기사가 소리를 버럭하고 질렀다.
그냥 말하면 되지 소리를 지르고 그러냐...
“하하 괜찮다. 수행원도 피곤할텐데 같이 마차에 태우시죠. 백성들은 저희 기사가 잘 인솔해줄 겁니다.”
내 의견은 없는 거냐?
“크흠... 그럼 로에나 같이 타도록 하지.”
카론은 귀족의 눈치를 보더니 나에게 타라는 듯 손짓했다.
저! 저! 호구자식! 저런 귀족이 무서워서 그런거야!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연기를 해야 했기에 나와 카론은 마차에 탑승했다.
마차 안에는 시중 같아 보이는 여성이 한 명 타있었다.
왜 시중 같아 보였냐면 귀족과 다르게 복장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가벼운 로브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기력해 보이는 졸린 눈과 함께 검은 머리를 하고 있어 이곳 분위기와 다르게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제일 먼저 탑승했기에 그 사람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그녀는 가볍게 목례만 했다.
“하하! 저는 이 앞 영주인 데키아 필립이라고 합니다. 데키아 남작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반대편에 앉았고 남작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 남작은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뭐가 그리 재밌는데 껄껄대면서 카론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리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자기 자랑이나 영지 자랑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어 남작 옆에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분의 소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분은 누구시죠?”
나는 옆에 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아!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했네. 이 아이는 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이리나라는 아이입니다. 인사해라.”
분명 내가 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카론에게만 말했다.
차라리 아까처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 보다는 백배 나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남작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아까 나에게 인사했던 것처럼 목례만 했다.
“하하! 이 아이가 선천적으로 말을 못합니다. 목례만 하는 것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불쌍한 아이인데 제가 거둬줬죠. 또 제가 봉사를...”
또 그는 자신의 자랑을 이어서 나갔다.
흐음, 저런 경우는 치료하면 말할 수 있으려나...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치료해봐야지.’ 라고 다짐을 했다.
궁금한건 못 참지!
“데큐아 남작님 도착했습니다!”
“오! 벌써 도착했나보군요. 저희 저택에 초대하겠습니다.”
마차에 내리자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저택이었다.
앞에는 잘 가꿔진 정원도 있었다.
내가 다른 귀족의 저택을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어느 정도의 저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론이 입을 벌리고 닫을 생각을 안하는 것 보면 큰 저택은 맞나보다.
나는 신계에서 대단한 건물들을 많이 보았기에 카론과 같은 촌놈짓은 하지 않았다.
“어서오십시오.”
마차 문을 열자 시중들과 집사가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하하하! 들어가시죠. 잠깐 떠들다보면 금방 식사가 마련될 겁니다.”
오! 식사!
나는 식사를 빨리 준다는 말에 살짝 그 귀족이 호감으로 바뀌었다.
로엔! 착한 사람은 먹을 걸 주긴 하지만 먹을 걸 주는 사람이 착한 사람은 아니야. 알겠지?
페르세스가 나에게 신신당부한 말이다.
마신들은 신들이 원래 하지 않는 인간같은 취미들이 있었는데 엘로아 같은 경우는 잠을 자는 것이었고 페르세스 같은 경우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었다.
그 먹을 것을 좋아하는 페르세스가 했던 말이니 분명 그 말은 맞는거겠지...
하지만 저 귀족이 정말 착한 귀족이라면?
내가 외모만 가지고 잘못 판단했던거라면?
아까 더러운 시선은 그냥 본거였는데 나의 착각이었다면??????
‘그...그렇다면 좀 미안하긴 하네...’
“저의 집무실에 잠깐 있으시는게 어떠십니까. 식당에 가있으면 시녀들이 식사를 준비하는게 불편할 수도 있으니...”
시녀들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나는 그 남작을 재평가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그의 집무실에 가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집무실에는 이리나와 우리 마차를 따라왔던 기사 대장이 같이 들어왔다.
“근데 그... 수행원 이름이... 어떻게 됐지?”
그 남작은 차를 마시다 말고 내 이름을 물어봤다.
“크흡.. 아 네... 제 이름은 로에...나입니다.”
또 내 이름을 로엔이라고 말할 뻔 했지만 로에나라고 잘 말했다.
“원래 분노의 신? 그 신전의 신관인가?”
분노의 신을 말할 때 살짝 햇갈린다는 듯이 말한게 불만이 있었지만 신생 신이니 어쩔 수 없다 하면서 넘겼다.
“아뇨 제가 신...”
“아뇨 로에나는 신관이 아니고 그냥 수행원입니다.”
카론은 갑자기 내가 말하려고 하자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뭐야? 왜 갑자기 내 말을 끊어?
너도 저 귀족이랑 같이 나 왕따시키는거야?
“크흠, 그럼 혹시 가문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그는 존댓말을 쓰면서 말했다.
내가 고급스러운 옷을 입었기에 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건가?
“아뇨 가문은 따로 없는데요?”
“어... 그럼 출신이 어디십니까?”
“그게... 어...”
나는 따로 정해놓은 설정이 없었기에 말을 더듬었다.
“혹시 부모님 성씨가 따로 있으십니까? 성씨를 버리셨다던가...”
내가 말을 더듬자 그는 내가 가문이 있는데 숨기려고 하는 줄 아나보다.
부모님... 부모님은... 에레보스?
왠지 나의 관련된 일이 있으면 에레보스에게 허락 받고 하니 에레보스가 내 보호자 아닐까?
나는 갑자기 들었던 잡생각에 웃음이 나서 살짝 고개를 숙이자 기사가 ‘헉!’ 하는 소리를 내었다.
“저... 남작님... 신전의 수행원들 중 신전에서 키워준 고아가 많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엉? 고아?
“어어어... 그거 미안하게 되었군. 교황님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의 말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나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나... 나! 가족 있어!!! 고아 아니야!!!
내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카론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흐음... 괜찮네. 잘 모르면 조금의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너...너마저 카론!!!
나는 한순간에 모두의 인식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살짝 좋아질 뻔했지만 나의 남작에 대한 평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