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5 소녀를 줍다.
* * *
“...어?”
나는 정신이 들었다.
분명 밤에 나는 카론이 자는 걸 확인하고 하늘도 보고... 풀도 뜯어보고... 신력으로 놀기도 하고 했다!
하지만 혼자 노는 것에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나무에 기대서 달을 빤히 보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안하고 달만 보고 있으면 멍해지지 않는가.
그래서 잤다!
솔직히 말하면 안잘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2~3시간 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고 예상하겠는가?
내가 잠에서 일어나니 카론은 온데 간데 없었다.
“카...카론?”
내가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카....카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내가 졸았다고 놀릴려고 그러는거지!
후후! 나도 이런 저런 놀림을 많이 받다보니 이제 놀림당하는 것도 경지에 오른 듯 했다.
“후후... 카론 이제 슬슬 나와. 대충 알았어.”
잠잠...
인기척이 없다...
"카...카론 이제 재미없다니까?"
나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카론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카론...."
설마...설마...
“카론!!!!!!!!!!!!!!!!”
@
“으... 잘 잤다.”
나는 로에나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불침번을 서준다길래 편히 잠에 들었다.
아무리 로에나가 허점이 많고 좀 그래도 신이니까 상관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그대로 내가 일어나니 나무에 기대서 자고 있었다.
자세는 불편해 보였지만 단 잠을 자고 있는지 얼굴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음...음냐...."
잠꼬대도 하네...
신이 잠꼬대도 하면서 저렇게 자나...
내가 직접 신을 본 적도 없고 본 사람들은 신을 찬양하기 바빴다고 들었는데 이 모습을 본다면 누구든 경악을 금치 못할 것 같았다.
“하...”
이 신님은 진짜 나중에 사람들한테 사기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일단 그래도 로에나 덕분에 난 편히 잤기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슬슬 시작해 볼까?"
나는 로에나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로에나의 싸우는 모습들을 보니, 신성력으로는 정말 많은 응용이 가능했지만 나는 응용을 너무 못했다,
로에나 덕분에 분에 넘치는 신성력을 받았으나 응용을 못하면 이런 신성력을 준 로에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신성력 응용하는 연습을 했다.
일단 난 신성력을 넓게 펼쳐 주변을 파악하듯 훑었다.
신성력을 응용할 때 신성력을 주먹처럼 움츠렸다 폈다 하는 게 준비운동으로 좋다고 해서 한 행동이었다.
“꺄아아악!”
어?
어디선가 소리의 파장이 내 신성력이 닿았다.
귀로는 들리지 않았기에 거리가 좀 되는 것 같았다.
‘신체강화.’
나는 신성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후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으로 가보자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병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두건쓰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다 죽은 것 같았다.
한 쪽 구석에는 높아 보이는 소녀가 잡혀있었다.
소녀는 하늘색 머리에 나이는 10대 초반정도로 밖에 안 보였다.
‘도와줘야겠네.’
저 소녀를 냅두고 간다면 죽을게 분명했다.
나는 로에나와 남작령을 나오면서 했던 약속을 상기시켰다.
신성력으로 문양을 가려.
그녀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호의 없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함.
행동의 제약이 걸림.
등등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진짜는...
약한 척 하다가 ‘나 교황이요!’ 하는게 재밌잖아...
정말 신님... 아니 로에나 같은 이유다.
나는 신성력으로 문양을 가린 후 사람들 사이로 달려들어 소녀를 안아들었다.
“놓치지 마라!”
그 사람들은 내가 소녀를 데려가자마자 바로 나를 쫓아왔다.
나는 신성력으로 신체강화를 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신체가 되길래 그 사람들이 못 쫓아올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날 잘 쫓아오기 시작했다.
난 나무를 이용해 몸을 숨기면서 달렸다.
쫓는 쪽 보다는 숨는 쪽이 훨씬 유리했기에 난 그 쫓아오는 사람들을 따돌릴만한 장소를 찾았다.
“카로오오오오오온!!!!!!!!!”
뭐야!
로에나 일어났나?
근처에서 로에나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못 믿음직한 동료였지만 정의감이나 힘만큼은 정말 존경하는 스승님과 같은 존재였기에 안심이 되는 목소리였다.
“로에나!!! 여기야!!!”
“카론!!!”
내가 소리 지르자 로에나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카론! 어디갔었어!! 난 마물한테 물려간 줄 알았잖아!!!”
로에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물론 걱정되서 내는 짜증이였겠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로에나 지금 뒤에...”
“동료가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로에나에게 설명하기 전에 우릴 둘러쌌다.
“이...이 사람들은 누구야?”
“모르겠어.”
소녀는 바들바들 떨고만 있고 우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로에나도 나에게 물은 것이지 이 소녀에게 대답을 원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녀를 보았더니 의외의 문양이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의 볼에는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문양이 있었다.
그 문양은 비의 신 엘리시의 문양이었다.
‘교황이라고?’
보통 교황의 문양은 나의 이마에 새겨진 문양과 같이 얼굴에 새겨져있었다.
‘들은 적이 없는데...’
교황은 100년에 한 명이 나오면 신에게 사랑 받는 시기라고 불릴 정도로 희귀했었다.
물론 내가 광신교에 잡혀있을 때 나온 교황일수도 있으니 내가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교황급이나 되는 사람이 왜 아무것도 못하고 공격당한거지?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로에나는 갑자기 그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하나 둘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팍! 퍽! 퍽!
저 두건을 쓴 사람들은 아까 전만 해도 정말 강해보였지만 역시 신은 신인지 로에나는 그 사람들을 동네 시정 잡배 다루듯 패고 있었다.
나는 상황이 금방 정리가 될 것 같아서 소녀를 바닥에 내려놨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로에나는 상황을 정리하고 내 앞으로 왔다.
“얜 어디서 데리고 온거야?”
로에나는 그 소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소녀는 아직도 여운이 안 가셨는지 몸을 떨고있었다.
“괜찮니?”
로에나는 자세를 낮추고 그 소녀와 눈을 마주봤다.
그러자 로에나는 깜짝 놀랐다.
“야! 얘! 교황인데?”
아...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않았었나보다.
“후... 그러게... 나도 구해준 다음 알았어.”
“음... 엘리시라... 교황이래도 저항 못할만하네..”
로에나는 뭔가 아는 듯 신의 이름을 말했다.
역시 신이라서 그런가 신에 대해서 알고 있나 보네...
어디선가 신들은 신계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고 배운적이 있었다.
동산 같은 곳에서 다들 하하 호호 하면서 사이좋게 지낸다고...
“괜찮으세요?”
로에나는 그녀를 달래며 상태를 물었다.
“네....”
약간은 몸을 떨고 있었지만, 쫓아오는 사람들을 전부 물리치고 자신을 챙겨주니 조금 안심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된건지 궁금하여 그녀에게 물으려고 했다.
“혹시 사정을 물어도.."
“저희랑 쉬러 가시죠!”
내가 말하려고 하자 로에나는 내 말을 끊고 그녀의 앞에서 업히라는 듯 등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이지 않게 나를 째려봤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닳았다.
이제 막 안심이 된 사람에게 다시 상황을 캐묻는 것은 상대방에게 너무 혹독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정말 애 같아 보였지만 약자의 편을 들 때는 과감하고 배려심 깊고 정말 어른스러웠다.
로에나는 그녀를 업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거야?”
“... 음?”
그러자 로에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휴...
믿음직한 일을 해도 이런 점 때문에 이 사람이 애 같아 보이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있기에 더 주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는 거겠지.
좀 걷자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저기 가서 쉬다가면 되겠다!”
로에나는 오두막을 보자마자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간거야?”
“...흠!”
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 대답해주었다.
오두막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지만 약간의 사람 흔적이 남아있는게 약초꾼들의 쉼터처럼 보였다.
로에나는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나는 그녀가 좀 진정될 수 있게 따뜻한 물을 끓여 그녀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저는 엘리시님의 종인 페나라고 해요...구해주신것도 정말 고마운데 이렇게 까지 해주시다니... 저가 신전에 돌아간다면 꼭 보답해드릴게요.”
그녀는 좀 진정되었는지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아니에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 도움을 주는건 당연한 일이죠.”
“흐....흐윽... 감사합니다.”
겨우 진정되었던 것 같았는데 로에나의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로에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뭔가 안는 것 같기도 하고 어깨를 그냥 잡고 있는 것 같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를 달랬다.
그런 이상한 자세를 취하자 울고 있던 그녀도 뭔가 이상한지 울면서 로에나를 쳐다봤다.
“...로에나 뭐해?”
“아...안아주지! 여자애는 울면 다들 이렇게 달래던데?”
“그게 안은거야?”
“그럼 뭐야?”
안을 거면 품에 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냥 꼭 껴안아주면 되지.”
“아니... 난 남자야. 남자가 갑자기 안으면 페나가 불쾌할 수도 있잖아...”
언제나 하는 말이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
누가 봐도 여성스러운 얼굴.
소프라노의 목소리.
그 무엇보다도...
크진 않지만 봉긋 나온... 크흠.
그래 놓고 언제나 하는 말...
‘나 남자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