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1 만족감
* * *
아레스는 웃으면서 나와 엘로아가 포옹하는 모습을 봤다.
“흠흠.”
모르는 사람 앞에서 추태를 부리다니!
나는 헛기침을 하며 엘로아의 품에서 나왔다.
“너가 이런 모습 보이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레스는 웃으면서 엘로아에게 말했다.
“그 동안 이런 신은 없었으니까.”
엘로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근데 이 분은 왜 여기 계신 거야?”
“일 관련으로 이야기 좀 할게 있어서 아레스가 찾아왔다.”
어... 그럼 내가 오면 안됐던거 아니야?
엘로아도 바쁘구나...
내가 난처한 표정이 되자 아레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냐 일 관련 이야기는 다 끝났어. 나도 그냥 여기서 노는 중이었어.”
“아 그래요?”
나는 아레스의 말에 다시 표정이 좋아졌다.
“다른 마신들 한테 이 친구의 대우 절반만 해줬어도 마신이 10명은 됐겠다.”
아레스는 웃으면서 엘로아에게 농담을 던졌다.
근데 마신이 10명?
“그 녀석들은 싹수 부터 글러 먹었던 놈들이었어.”
“마신이 원래 많았어요?”
“많았지. 하지만 전부 유희 기간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환생 해버렸지만.”
오...
원래 마신이 많았었구나...
그런데 왜 그만 둔거지?
“그런데 왜 그만 둔거에요?”
“하하... 너가 이 녀석들에게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지. 마신들이 얼마나 까칠하고 미친 녀석들인데.”
“아레스. 그만.”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아레스는 장난스럽게 엘로아의 말에 대답했다.
뭐...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가?
내가 유희 기간이 끝나면 날 괴롭힌다든지...
“뭐 근데 그 녀석들은 근성이 부족한게 컸지. 마신의 업무량을 우습게 봤어.”
“업무량이 그렇게 많아요?”
“몰라?”
아레스는 엘로아를 쳐다봤다.
“수습 신 담당은 에레보스였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난 많다고 생각 안 해."
“뭐 엘로아나 에레보스는 워낙 많은 일들을 겪었으니까 일이 많고 적고의 기준을 모르지. 일반 신의 최소 3배고 많을 때는 10배는 우습게 받는다.”
....이거 불공평한거 아니야?
내가 표정이 안좋아지자 엘로아는 인자한 미소를 띄우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은 너희 일반 신들과 다르게 성실하고 서류 처리도 잘해서 너희랑 서류 처리를 끝내는 시간이 비슷할거다.”
“오... 엘로아가 인정할 정도야?”
아레스는 날 대단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헤헤...”
갑자기 받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마신은 일이 많고 일반 신들은 일이 적으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후후... 아직 신이 덜 됐구만.”
“아직 어리니까.”
아레스와 엘로아는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인간이었다고 그랬지? 자원 봉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좋은 일이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그렇지, 그래서 그 사람이 얻는 게 뭘까? 돈도 안 주고 그저 시간만 소비하는데?”
얻는 것이라...
“만족감?”
“맞아 그 만족감. 물론 무언가를 노리고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순수한 의도로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은 그 자기 만족 때문에 하는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레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유한한 존재라면 시간이나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오락이 중요하게 여겨질 텐데 신은 달라. 어차피 지금 좀 일하더라도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고 1000년 뒤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러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 덕분에 그 사람이, 어떤 차원이 잘 살게 된다면 그 만족감은 어떤 것도 이길 수 없어.”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레스는 미소를 지었다.
“일이 많은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만큼 너가 다른 존재들에게 중요하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만족감에 대해지금은 잘 안 와 닿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나중에 너가 끼친 영향을, 결과물을 봤을 때도 과연 지금과 생각이 같은지 잘 떠올려 봐.”
“네! 감사해요 그런데.”
“그런데?”
“그럼 원래 있던 마신들은 왜 그만둔거에요?”
“그 녀석들은 차라리 잘 그만둔거긴 해.”
아레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왜요?”
갸우뚱.
“인간들만 명계에서 죗값을 받는 게 아니라 신도 죄를 지으면 죗값을 받거든.”
엘로아가 이어서 말했다.
“차원에 큰 위해를 끼치거나 제대로 된 서류 작업을 못할 시에는 신계에서 위원회가 열려서 처벌을 줘. 심해지면 죗값도 치르고 환생 시켜버리지.”
나의 벙 쩌있는 얼굴을 보고 엘로아는 미소를 지었다.
“후후... 로엔이라면 잘할 거야.”
로에나 언제 오는 거야? 이 사람들 슬슬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카론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별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도 않았는데...
“저 이제 중간계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재밌는 유희 즐기길 바란다.”
“엘로아! 시간 좀 남으면 다시 올게!”
내가 손을 흔들자 두 신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동시켜주세요].”
“좋은 아이네.”
“그렇지?”
두 사람은 흐믓한 미소로 로엔이 사라진 곳을 쳐다 봤다.
매일 환생한 새로운 신이라고 하면 자존심도 엄청나게 높고 지 잘난 줄 아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엘리시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엘리시는 빡대가리에 특유의 징징거림 때문에 엘로아와 아레스가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로엔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것보다 광신 건은 어떻게 할거야.”
아레스는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엘로아에게 말했다.
“아직 광신하고 차원 붕괴 건의 정확한 연관성을 못찾았으니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어. 에레보스는 제대로 판단을 못할 테니 금발 애송이 녀석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아레스는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에레보스가 나서지 않는다면...”
“나도 알아. 하지만 에레보스가 나서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 이후로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그리움.
그리고 슬픔만이 엘로아의 눈에 남아있었다.
"카루아..."
엘로아는 아레스가 가고 서야 그 이름을 불렀다.
자신과 에레보스와 동거동락 하며 있었던 존재.
주신의 이름을.
@
“구원자님께서 오셨다!!!”
내가 지하로 이동한 후 올라오자 사람들이 날 반겨줬다.
“흐으으윽...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저 멀리 카론과 페나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왜 이리 늦었어.”
카론이 나에게 뭐라고 했지만 웃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나도 반갑게 웃어줬다.
“비의 신전 분들이 우릴 구원해주셨다!!!”
사람들은 엘리시를 찬양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페나의 뺨에 있는 문양을 보고 그러나 보다.
페나를 찬양하는 건 좋은데 엘리시를 찬양하니까 좀... 그렇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여러분!!”
페나가 갑자기 사람들을 불렀다.
“저는 비의 신을 모시는 종이지만 이 분들은 복수의 신인 로엔님을 모시는 분들입니다!!”
페나...!
나를 위해 나를 홍보해주는구나!!!
어차피 나도 신도를 모아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페나에게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페나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웅성 되기 시작했다.
“복수의 신...? 그런 신이 있었나?”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페나가 그 낌세를 알아채고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새로 신전을 세우신 분들이라고 하구요... 그리고... 신님이 엄청 좋으시고요... 귀여우시고...”
....페나?
“아무튼 복수의 신인 로엔님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무슨 신인 걸그룹 인사도 아니고...
페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갛게 물들이고 내 뒤로 숨었다.
크윽... 귀엽다.
이 모습을 보고 심장을 안 잡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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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이끌고 나왔다.
사람들이 나올 때 나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로엔님을 평생 모시겠습니다.’ 라는 말들을 조용히 말하러 왔다.
아레스가 말했던 만족감이라는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헤헤...
저번에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뻤는데 이번에도 그에 못지 않은 행복감이 들었다.
“이...이게 무슨.”
우리가 하수도 쪽으로 오자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보고 놀랐다.
하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노예 시장에 대해 알고 있었겠지.
그런 노예들이 다 풀려났으니.
우리는 그대로 도시로 나왔다.
지하에서 도시로 나오니 저녁 시간이 되었는지 해가 저물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저녁 시간에 엄청난 사람들이 뭉쳐 다니니, 주변 사람들이 놀라 우릴 쳐다봤다.
“뭐...뭐냐! 너흰 누구지!!”
경비대가 나타나 우릴 향해 추궁했다.
“지하 노예 상점에 있던 이들입니다.”
나는 그 경비대 앞에 나서 먼저 말했다.
“갑자기 어떻....허어...”
그 병사는 나를 쳐다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후... 이제 저런 반응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할 말 없으면 지나갈게요.”
“자...잠시만요.”
병사는 지나가려는 나를 잡아 세웠다.
“누구신데 어디를 가신다는 거에요.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면...”
“저... 저희가 영주님을 만나러 가야 되는데...”
페나가 살짝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헉... 교황님을 뵙습니다.”
그 병사는 바로 페나에게 인사했다.
페나가 얼굴 마담으로 나서주는 덕분에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일단 사람들이 이렇게 다같이 이동하는 건 길을 막기도 하고 하니까 사람들은 잠깐 다른 곳에 가 있기로 하고 우리는 영주를 만나러 갔다.
“교황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주는 우리가 오자 싱글 벙글 웃으며 문 앞에 있는 우리를 마중나왔다.
험상 굳게 생긴 아저씨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좀 언밸런스한 무서움이 있었지만 기뻐 보이니 다행이었다.
“로에나님이 나서주셔서 해결책을 찾아주셨습니다.”
“어...?”
난 당연히 페나의 덕으로 돌릴려고 했는데 페나가 먼저 선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아까는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내 분이 아프시니 정신이 없었겠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실없게 웃었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감사를 받다니...
저번에 사람들을 구출했을 때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기에 잘 몰랐었는데 사람들의 감사한 진심이 바로 느껴져 너무 기분이 좋았다.
“혹시 뭐하시는 분이신지...”
백작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당연히!
“저는 복수의 신이신 로엔님을 모시는 신도입니다.”
나를 광고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