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 감기
* * *
“근데 렌도 우리 없이 그냥 리케로 가는 게 더 좋지 않아?”
“음... 속도는 더 빠를 수 있는데 리케 하고는 거리도 좀 되는데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계속 렌이 졸졸 쫓아오다 보니 우리는 렌하고 친해져 버렸다.
렌은 사교성도 좋고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용병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카론은 광신도들에게 잡히기 전에 계속 자신이 살던 마을에만 있었고, 나는 큼직한 역사 이야기들밖에 몰랐기에 렌이 말하는 내용이 너무 재밌었다.
고블린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 토벌한 내용.
백작의 딸을 호위하며 여행한 내용.
마물들이 많은 곳에 고립되어 있을 때 기사단에게 도움 받은 내용 등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것도 본인에게 직접 듣는 이야기라 더 생동감 있었다.
밤에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침이 되면 난 의심된다는 이유로 다시 렌을 밀어냈었다.
하지만 벌써 그렇게 여행한 지 7일째.
이젠 그냥 친구가 되어버렸다.
이래도 되나 싶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렌은 이리나와 상관없어 보였다.
내가 의심할 때마다.
“대체 그 이리나가 누군데 자꾸 그러는 거야!”
라든지.
“시발! 내가 이리나 개새끼 삼창 해야지 믿겠어?”
라고 하고.
“이리나 개새끼! 이리나 개새끼! 이리나 개새끼!”
도 했다.
또 렌은 용병답게 굉장히 잘 싸웠다.
나 같이 신력을 다뤄서 신체 강화를 시키는 것이 아닌데도 마물들의 대가리를 깨고 다녔다.
물론 그냥 주먹으로 치는 건 아니었고 뾰족한 송곳이 나와 있는 너클을 끼고 싸웠다.
그래서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마물들을 만나면 6개의 주먹이 날아다녔다.
어쩌다 보니 무기를 안 쓰는 정정당당한 파티가 되었다.
“카론 너도 주먹 좀 쓰는데?”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냥 막 휘두르는 건데...”
“정말?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내가 알려줄까?”
렌은 그런 말을 하고 내 눈치를 보았다.
나도 같은 격투가라고 생각해서 내가 가르칠 줄 알았던 건가...
내가 카론에게 격투기를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나도 배운지 얼마 안 된 꿈나무 격투가다.
그저 신력으로 강화한 신체능력이 워낙 좋아서 잘 싸워 보이는 거지...
그리고 내가 배운 모든 싸움 기술들은 페르세스에게 배웠던 거다.
페르세스는 그저 나에게 자세나 사용하는 방법 정도만 알려줬지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한 이론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 날 사부라고 불러!”
“사부?”
“원래 자신한테 가르쳐주는 사람을 사부로 모시는 거야.”
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사부!”
그 날부터 카론은 렌을 사부로 모시고 수련을 시작했다.
카론은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자는 동안 주변을 뛰다 오고 기본적인 격투 자세들을 배웠다.
“음... 이상한데?”
“허억...허억...”
카론은 대자로 뻗어서 숨을 고르고 있었고 렌은 살짝 이마의 땀만 닦아내고 누워있는 카론을 봤다.
“너 분명히 오크들이랑 싸울 때는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는데 숨 한 번 안 고르더니... 이거 뛰었다고 이렇게 뻗어?”
나는 마음 한 곳이 뜨끔했다.
사실 그건 신성력 활용을 먼저 알려준 내 잘못도 있었다.
카론은 1년 동안 동굴에 갖혀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체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코엔으로 이동할 때 신성력 활용 방법을 알려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헉헉거리는 카론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기에 신체 강화를 통해 오래 걸을 수 있도록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본적인 폐활량이나 근육이 붙질 않는다.
카론은 그냥 기본적인 체력은 돌아왔지만, 운동이나 다른 행동을 하면 일반인들보다 더 힘들어할 것이다.
“로에나는 따로 운동 같은 거 안해?”
렌은 지쳐있는 카론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좀 이상하긴 하겠지...
내가 봐도 여리여리해 보이는 몸에 따로 수련하지도 않는다니.
하지만.
“응! 안 해!”
난 몸 움직이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일 바에 잠을 1초라도 더 자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난 운동 같은 걸 해봤자 몸이 더 좋아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왜 우리랑 같이 운동하자~”
렌은 나를 잡아당겼다.
“싫 어.”
절대로 싫다.
“그럼 이렇게 하자.”
렌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한 손가락을 들고 말했다.
“나랑 결투로 내기해서 이긴 사람 말대로 하기.”
“싫어. 난 그냥 안 하면 되는데?”
무조건 나만 손해 보는 내기잖아.
“끙... 그럼! 너가 이긴다면 내가 소원 하나 들어줄게.”
그 말을 하자 카론은 렌을 쳐다봤다.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빛.
“훗... 그래 좋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기는 조건은 어떻게 할래?”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내가 이길 거 거든.
“그럼 카론이 심판 봐. 카론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멈추는 거야. 본인이 항복을 외쳐도 돼.”
“그래~”
렌은 싸울 자세를 취했다.
카론은 자리에서서 일어나 심판을 볼 준비를 했다.
물론 눈빛은 별 기대가 없는 눈빛이었다.
결과는 당연하니까.
“시작.”
카론은 시근퉁하게 시작을 외쳤다.
그리고 내가 이겼다.
“로에나 승.”
“으....응?”
나는 자리에서서 빠르게 뛰쳐나가 돌려차기로 정확하게 머리를 노렸다.
렌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렌의 머리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렇게 난 쉽게 승리를 얻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렌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날 봤다.
나는 발로 렌의 머리를 툭 치고 발을 내렸다.
“이게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미소를 씨익 짓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슬슬 가자.”
“로에나! 그거 어떻게 한 거냐고!”
그 사건 이후로 렌이 날 보는 눈이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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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발....”
렌은 입에서 욕을 뱉었다.
“내가 그러니까... 로에나 말 듣지 말자니까...”
카론도 투덜대는 말을 뱉었다.
나를 비판하는 말들이었지만 난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니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길치일 수가 있어!!!”
렌의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나도 몰랐지... 비슷비슷한데 어떡해...”
내가 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게 잘못이었다...
저번에 길을 잃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내가 길치라는걸...
우리는 리케를 가던 중 길이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지도를 들고 있던 내가...
“이쪽인 것 같은데?”
“확실해?”
카론이 다시 한 번 물었고 렌은 저번에 나의 실력을 보고 날 존경하던 중이었기에 의심을 해보지도 않고 그 길로 갔다.
“에이 내가 바보도 아니고.”
난 바보였다.
그 말을 하고 2일 후...
분명 리케로 가는 길이 아닌 곳에 있는 산이 우리 앞에 있었다.
“이...이게 뭐야?”
“이럴 줄 알았어...”
“자...잘못 본 거 아니야?”
카론은 손을 이마에 가져다 두고 한숨을 쉬고 있었고 렌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 산에서 리케로 가려면 이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이 산은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별명이 에레보스의 창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이도 극악의 산이었다.
“돌...돌아갈까?”
내가 넌지시 그 둘에게 말하자 그 둘은 날 째려봤다.
“미안해...”
이런 바보 같은 신이라 미안해!!!
지도 보는 법 같은 건 못 배웠단 말이야!!!
“그냥 넘자.”
렌은 당당하게 말했다.
“솔직히 카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나하고 로에나가 있으니 죽진 않겠지.”
렌은 나와 비교하면 약했던 거지 싸움의 노련함도 있고 전투 상황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능숙했다.
내가 생각해도 죽진 않을 것 같은데...
“또 길 잃으면 어떻게 하게.”
카론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딱 해줬다.
산에 들어가면 나무가 울창해서 정상에 가지 않는 이상 방향을 찾지 못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내가 지도를 볼게. 지도 줘봐.”
렌은 나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대충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원래 지도를 볼 때는 주변 지형부터 읽어놔야 해.”
나한테 지도를 보는 법을 알려주듯 말했다.
“내가 앞장설게 따라와.”
그녀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산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전보다 강했던 마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카론이나 렌에게 살짝의 생채기들이 나기 시작했지만 큰 영향이 있을 만한 상처는 아니었기에 굳이 치료하지는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카론도 점점 지치는지 싸움을 할 때 상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렌 몰래 신성력을 사용해 치료하기도 했지만,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제대로 된 치료가 되지 않았다.
결국엔 카론은 어젯밤부터 열병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교황이라면 신성력이 많아서 작은 병 같은 것이 걸리지 않는 게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해 일단 내가 업고 쉴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카론 괜찮아?”
“으...콜록 콜록 괜찮아...”
카론은 우리가 걱정할까 봐 계속 괜찮다고, 자신이 걷겠다고 했다.
정작 몸을 가누지는 못했다.
내가 걱정되는 마음에 신력으로 진찰을 해봤지만 정말 감기일 뿐이었다.
이 정도로 몸을 못 가누는 것 보면 그냥 감기는 아니고 독감처럼 보였다.
평소 같으면 몸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어 괜찮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동할 때마다 나오는 몬스터들을 카론을 엎고서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렌의 체력도 점점 소모돼가기 시작했다.
“일단 이 정도면 약초꾼들의 쉼터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변을 살펴보자.”
그래서 렌과 나는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카론을 치료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 렌이 우리 편인지 정확한 물증이 나온 게 아니었기에 치료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아직 광신도들이 내가 신인지 모르니까 그들이 방심할 수 있는 거지 이리나의 말대로라면 교황까지도 쓰러트릴 수 있다고 했으니 한계까지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인 것 같았다.
고생하는 카론에게는 굉장히 미안하지만...
“그럼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따라와.”
나는 렌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신체 강화를 강하게 해서 빠른 속도로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기 찾았다!”
렌은 찾았는지 나에게 소리 질렀다.
“어?”
갔더니 그곳에 있던 건 에레보스의 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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