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4 산의 정상
* * *
“신...신전이 왜 여기 있지?”
에레보스를 상징하는 검은색 용 머리.
떡하니 그 건물의 문에 박혀있었다.
“어둠의 신의 창이라고 하더니 진짜 어둠의 신이랑 관련 있는 산이었나?”
렌도 어리둥절한지 나에게 물었다.
우리는 일단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세요?”
“누구십니까?”
그 안에서는 어떤 신관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나왔다.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사람은 우릴 보고 놀랐다.
우리의 더러운 복장들을 보고 놀란건지 아님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거에 놀란건지.
아마 둘 다인 것 같았다.
“지금 저희 동료가 아파서 돌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렌은 그 사제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아마 신관복을 입고 있는 것 보면 평범한 신도가 아닌 진짜 신관인 게 분명했다.
신관에게 치료를 받는다면 그래도 괜찮아지겠지...
일단 신관은 침대에 카론을 눕혔다.
그 신관이 카론의 상태를 파악하기만 하고 신성력으로 치료를 안했다.
“저... 신성력을 사용해주시면 안 될까요? 얘가 그동안 어디에 갇혀 지내다가 나와서 건강이 그렇게 좋진 않거든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신관은 어찌할 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그게 이 산에서는 신성력이 봉인됩니다. 대신관님들도 정말 미약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지 일반 신관인 저로서는...”
이럴수가...
뭔가 이상하긴 했다.
카론이 산에 올라갈수록 점점 힘을 못 냈었다.
그래도 카론은 신성력이 많아 사용할 수는 있었던 것 같은데 산으로 올라갈수록 신성력이 봉인되어버리니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으...으윽...”
카론은 몸이 정말 안 좋은지 뒤척대기 시작했다.
“카론...”
그냥 치료해야 하나...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렌이 배신자라서 신의 문양도 없이 신성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내가 신인 걸 알아챈다면.
그땐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나 자신 자체는 별다른 타격이 없겠지만.
나는 카론을 바라봤다.
신은 중간계에서 제약이 있다.
그 제약을 푸는 방법.
실현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실현을 한다면 신계에서 처벌을 받게 된다.
인과율 위배.
그렇다면 한동안 중간계를 못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때 광신도 놈들이 카론을 노린다면 카론은 죽고 말 것이다.
“로엔 피...”
렌이 내 손가락을 가리켰다.
손에서 살짝의 피가 나고 있었다.
“저... 신성력 말고 사용 가능한 방법이 있긴 합니다.”
신관은 그 모습을 보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산 꼭대기에 가면 하얀색 신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어둠의 신님께서 내려주신 성배로 만들어진 성수가 있습니다. 아마 그걸 사용한다면...”
성수?
“꼭대기요? 이곳이 어디쯤이죠?”
렌이 신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여기는 산 중턱과 정상 사이입니다.”
길은 제대로 들었던 것 같다.
지도에서는 여기쯤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리케라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3일이었다.
물론 1일은 카론이 아파서 거의 못 갔지만 그래도 2일은 걸리는 시간을 소비했다.
정상의 험한 정도를 생각하면 올라가는 데 1일은 걸린다는 소리다.
“내가 갔다 올게. 넌 카론이 걱정될 거 아니야.”
렌은 자신을 믿으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혼자 보낸 다음 내가 그냥 카론을 치료해버리는 것도 한 가지 선택지였지만...
“아니 내가 갔다 올게.”
렌이 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렌이 혼자서 간다면 살 수 있는 확률도 낮을 거다.
렌이 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온 동료로서 동료를 사지에 몰아넣는 건 죽을 만큼 싫었다.
그리고 내가 갔다오는 게 속도도 더 빠르니...
아무리 렌이 노련한 용병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간다면 내가 계산한 대로 1일이 꼬박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가는 게 맞았다.
나는 카론에게 갔다.
카론을 보자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살짝 흐릿하게 내 문양이 보였다.
아마 신성력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몸이 안 좋아지면서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녀올게.”
나는 페나에게 했던 것처럼 카론에게도 내 기운을 넣고 신력으로 문양을 가려줬다.
아마 그냥 몸으로는 위험이 있어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실현을 한다면 아마 바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치료해서 들키나 내가 갔다가 실현해서 들키나 똑같았다.
“정말 괜찮아?”
렌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는 그런 렌을 보고 활짝 웃어줬다.
“카론을 부탁해.”
나는 말을 마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
“하아...하아...”
산 높이 올라오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스벌... 경치는 좋네.”
산 정상이라서 숨이 막혔던 것도 있지만 내가 산 정상까지 도착한 시간은 2시간이었다.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강화를 통해 최단 루트로 산을 올랐다.
그러다 보니 힘이 들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산 정상에 오르자 보였던 것은 한 건물이었다.
웅장하게 생기고 고결한 모습을 한 건물.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구름과 함께 있으니 신선들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물론 황금색 용 머리가 그려져 있었기에 분위기는 좀 달랐지만.
“그런데 왜 검은색 용이 아니라 황금색 용이지?”
에레보스의 상징은 검은색 용 아닌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일단 성수를 구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갔더니 흰 기둥들이 날 반겨줬다.
흰 기둥들이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고 제일 끝에는 물이 담겨있는 한 황금색 성배가 보였다.
성배에는 두 마리의 용이 감싸고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큰 그림들이 있었는데...
보라색 머리를 한 남성이 마물들과 함께 있는 그림.
붉은색 머리를 한 여성이 검을 들고 악마들과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그림.
검은 바위들 사이에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고독하게 앉아있는 그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슬퍼하고 있는 금발의 여자와 밝은 곳에서 분노에 가득 차 보이는 흑발의 남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카리온이 해줬던 과거 이야기!”
마물과 함께 있는 사람을 보니 카리온을 닮았고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은 페르세스를 닮았다.
혼자 있는 사람은 엘로아...
그럼 여자는 주신이고 남자는 에레보스인가?
“이런 그림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의문을 가졌지만 카론이 먼저였기에 성배 쪽으로 갔다.
“저게 신관이 말했던 성수인가...”
나는 그 근처에 갔더니 에레보스의 기운과 다른 특이한 기운이 함께 느껴졌다.
무슨 기운이지?
에레보스의 기운이 시원한 느낌이라면 저 기운은 따스하고 나를 품어주는 듯한 기운이었다.
마치 햇빛을 받으며 따스한 이불 속에 있는 듯한...
나는 미리 가져왔던 수통을 꺼내 그 물을 담으려고 성배를 만졌다.
그랬더니 성배에서 엄청난 빛이 났다.
“뭐...뭐야?”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얘... 괜찮니?”
으... 뭐야...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의 세상이었다.
마치 내가 죽었을 때 있었던 공간과 비슷한.
그리고 내 앞에는 햇빛과 같은 황금색 머리를 한 청초한 여성이 있었다.
큰 키를 하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 더 청순해 보이는 것 같았다.
“누구세요?”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여성을 봤다.
“난 카루아라고 해.”
그 여성은 자신을 카루아라고 소개했다.
“카루아요?”
어떻게 이름이 카루아?
카루아는 분명 빛의 신 이름인데?
“하하... 조금 사정이 있어서...”
그 여성은 내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볼을 긁었다.
“여긴 어디에요?”
내가 묻자 그 여성은 잠깐 고민을 했다.
“음...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면 내 힘의 안? 봉인된 공간? 비슷한 거지.”
그 여성이 뭉뚱그리며 표현했다.
뭔 소리야?
“저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나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도 궁금해. 원래 마신들은 전부 이곳에 오는게 금지되었을 텐데. 어떻게 왔니?”
그녀가 묻자 나는 머릿속에서 물음표 100개가 떠올랐다.
여기 오는게 금지되어있어?
아무런 설명도 못 들었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또 실수해서... 잘못한 건가?
하지만 카리온이나 엘로아가 이런 걸 놓칠 사람이 아닌데?
페르세스라면 '아 깜박했다.' 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신들은 아니었다.
“뭐 나는 나의 힘 중 일부라서 정확한 밖의 사정을 모르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에레보스를 만났을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나?”
“어? 에레보스를 알아요?”
“당연히 알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인걸.”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놓고 의기양양 자세를 취했다.
에레보스와 가장 친한 친구?
금발의 머리?
카루아?
봉인?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게 맞는 한 분을 난 알고 있다.
“혹시... 주신님이세요?”
“정답!”
그 여성은 밝게 웃으며 날 봤다.
내가 살다살다 세상을 창조한 주신을 다 보게 되네....
“딱 보니까 새로 태어난 마신이니?”
“네... 맞아요.”
쭈글
어떤 사람이 주신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중2병이 걸린 사람이나 ‘큭큭 주신? 그런거...‘이러겠지만 난 평범한 사람...아니 평범한 신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창조한 신.
그저 쭈글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하하... 네.”
어색한 태도를 벗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내 뒤쪽을 갑자기 가리켰다.
“저게 뭐지!!”
엉?
내가 뒤를 보자 내 등을 확 덮쳤다.
“왁!!!”
어...
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시 주신님을 보았다.
“어... 안 놀랐니? 이...이런거 하면 긴장이 풀린다던데.”
...
긴장이 풀린 것 같긴 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