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5 광신
* * *
나는 주신님과 대화를 나눴다.
빨리 카론에게 가야 돼서 급했지만, 자꾸 주신님이 말을 거는 바람에 끊을 타이밍을 못 찾고 있었다.
대화하는 내용도 그리 영양가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아~ 그러니까 너 전에도 다른 마신들이 생겼는데 다들 환생했다고?”
“네... 저 근데...”
“음... 마신 일들이 많긴 했지... 마신을 많이 늘리면 나아졌을 텐데 아쉽네.”
어느 정도 대화가 끊겨가는 게 보이자 나는 바로 주신님께 부탁했다.
“그럼 이제 저 좀 내보내 주실 수 있나요?”
“어? 나랑 좀만 더 놀아주면 안 돼? 누군가를 만난 지 정말 오랜만인데...”
주신님은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죄송해요... 제 친구가 지금 아파서 빨리 가봐야 되거든요.”
“친구? 설마 페르세스나 카리온이 아파?”
주신님은 깜짝 놀라 나에게 물었다.
“아뇨 카론이라는 친구인데 제 첫 번째 신도에요.”
내가 말하자 주신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인간을 말하는 거였어? 에이 뭐야. 인간은 언젠간 죽는다고.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그리고 신이면서 어떻게 인간이 친구야? 너와 인간은 다른 존재라고.”
살짝 어이가 없는 말이었지만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그렇긴 한데... 일단 지금은 안돼요. 내보내 주세요.”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넌 신이야. 정신 차려. 겨우 인간 때문에 나랑 있는 걸 포기한다고?”
화나신건가?
주신님은 마음씨가 넓으시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난 널 내보내 줄 수 없어.”
아무리 주신이라도 저렇게 말해도 되나...
어떻게 다른 신과 노는 행위가 인간의 목숨과 같다고 보지?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안돼요! 빨리 가야 해요!!!”
나는 홧김에 주신님께 소리 질렀다.
그러자 분위기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흰색 공간이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주신님의 머리카락도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뭐...뭐야.”
“겨우 하찮은 인간들 때문에... 멸망시켰어야 했는데... 카리온... 페르세스... 멸망... 카루아....”
갑자기 머리카락의 색깔이 변해가면서 주신님이 이상해졌다.
눈동자는 사라지고 흰자만이 남아있고 고개를 막 흔들면서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시작했다.
“주신님 정신 차리세요!!”
주신님이 갑자기 고개를 나에게 고정했다.
흰자만 있어서 무엇을 보는지 모를 수 있었지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멸망.... 멸망.... 멸망....”
섬뜩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 같았다.
신이 된 후 처음 느껴보는 공포.
“카...카루아님!!”
내가 주신의 이름을 부르자 주신은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카루아!!!!!!!!!!!!!!! 어떻게 저 버러지 같은 차원들을 살려둔 것이냐!!!!!!!!!!!!!! 난 그저 너만... 신들만!!!!!!!!!!!!!!!”
광신.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떠올린 것이었다.
제단에서 보았던 그 광신의 기운이 주신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느꼈던 기운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지금 나오고 있는 기운은 정말 심연... 아니 그 아래에 있는 무언가였다.
주변 공기 자체가 울리는 것 같았고 서리가 끼는 듯 몸의 뼈 속 까지 시리기 시작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포감이 들자 나는 더 침착해졌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는 다면 죽는다.
나는 내 몸을 지키려고 신력을 끌어모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신계에 있었을 때와 같은 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간계가 아니라서 그런가.’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실현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힘이 있는 것을 보면 중간계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신계같아보이지는 않았다.
봉인된 공간 속 같은 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앞에 있는 주신에게서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목 앞에 칼이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는 내 기운을 최대로 방출했다.
내가 기운을 뿌리자 아래를 보고 있던 주신이 날 쳐다봤다.
아니 이젠 주신이 아니었다.
소리 지른 후 얼굴이 뭉개지기 시작하더니 얼굴에 해골만이 남아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그 괴물이 계속 죽으라고 혼잣말을 내뱉더니 머리에 동물 머리뼈를 가져다 놓은 듯한 괴물을 소환했다..
카론과 만났던 제단에서 본 그 괴물이었지만 몸집이 더 커보였다..
그리고 공격하는 방법은 달랐다.
“뭐야?”
그 괴물이 입을 쩍 벌리더니 검은색 기운이 공처럼 돼서 입에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기운이...
괴물의 입에 모인 기운은 몸이 떨릴 정도의 기운이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내가 바로 한 판단이었다.
날라온다!
그 기운이 나에게 빠른 속도로 날라왔다.
나는 최대로 신체 강화를 해서 옆으로 뛰었다.
그 공이 바닥에 닿자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폭파가 일어났다.
“으...으아!”
나는 멀리 도망갔지만, 그 충격파에 몸이 날아가 버렸다.
“윽...”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기운이 맞은 곳을 보자 검은색으로 덧칠되어있던 공간이 깨져서 일렁이는 공간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검은색 공간으로 수복되었다.
내 직감으로는 저기가 탈출구로는 보이지 않았다.
일렁이는 공간을 보자마자 꺼림직한 느낌만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그러자 또 검은 공을 쏘려는지 동물 머리뼈를 한 괴물이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저걸 상대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저 동물 머리뼈 괴물에게 시선이 쏠려서는 안 된다.
분명 강한 공격을 피해야 하는 건 맞지만...
‘본체... 본체를 노려야 한다.’
계속 이렇게 피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기운을 사용해서 엄청난 수의 가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운으로 손에 전기톱같이 날카롭고 회전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나는 가시들을 동물 머리뼈 괴물과 주신이었던 해골 머리 괴물에게 나눠서 날렸다.
그 가시들과 함께 달려갔다.
동물 머리뼈 괴물이 주신한테 날린 가시까지 몸으로 막았다.
하지만 큰 몸집으로 주신의 앞을 막았기 때문에 내가 달려가는 모습이 가려졌다.
나도 감당 못 할 정도로 속도를 높였다.
그 속도와 함께 손에 있는 전기톱으로 주신이었던 괴물의 머리를 향했다.
“흐윽...”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갔더니 반동이 컸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 주신이었던 해골의 머리를 뚫었다.
죽였...
그 해골에서 붉은색 안광이 나왔다.
마치 눈동자처럼.
그리고 그 붉은색 안광은 해골을 뚫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해골 괴물은 내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윽....아아악!!!!”
그 해골 손으로 내 머리를 조였다.
하지만 난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으....익스플로젼!!!”
내 기운을 매개체로 한 폭탄.
나는 내 기운을 괴물의 머리에 박은 채로 터트려버렸다.
“악...”
나는 그 폭발의 여파로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다.
그리고 그 괴물도 영향이 간 것으로 보였다.
그 해골의 두개골의 반이 날아갔다.
“짜증 나는군...”
남자의 목소리도 아니고 여자의 목소리도 아닌 칠판을 긁는 듯한 끔찍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반이 날아간 해골 부분에 검은색 기운으로 수복되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구되었다...
“넌 좀 위험할 것 같군 죽어라.”
그 해골은 손에서 검은색 불길을 만들었다.
피해야 한다...
내가 일어서려고 하자 머리가 핑 돌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충격과 함께 많은 양의 기운을 사용해서 과부하가 온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내 기운을 끌어모아 저 불꽃을 막으려고 했지만, 과부하의 영향 때문에턱없이 부족한 보호막 밖에 생성되지 않았다.
기운을 적당히 나눠서 사용했어야 했는데...
죽는...건가?
그렇게 생각했더니 주위에서 황금색 쇠사슬들이 나왔다.
그 쇠사슬은 괴물들의 사지를 묶기 시작했다.
봉인이 다시 발동한 건가?
“후... 아쉽군.”
그 해골 괴물은 한숨을 쉬더니 검은색 불꽃을 사라지게 했다.
“넌 언젠간 다시 볼 것만 같은 느낌이야. 다음에 만나면 죽여주지.”
그 해골 괴물 뒤에 아까 보았던 일렁이는 공간과 같은 색인 포탈이 생겼다.
사슬은 그 괴물을 그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하아...하아...”
고통과 공포가 모두 몰려들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해골 괴물이 사라지고 이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간이 깨져버렸다.
공간이 깨지자 성배 앞에 주저앉아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공포에 다리가 떨렸지만 나는 수통을 꺼내 다시 성배의 물을 담았다.
카론... 카론...
이 산에 오른 건 렌 때문이었다.
렌 때문에 온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의심.
그저 의심을 품고 카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봐 빨리 물을 뜨고 카론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내가 뛰어 내려가자 신전 앞에 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렌은 날 보더니 깜짝 놀랐다.
“뭐야. 어떻게 벌써...윽!”
나는 렌의 멱살을 잡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멱살을 잡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마 기운을 많이 쓰고 또 나머지 힘을 쥐어짜네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런 것 같았다.
몸이 힘드니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저 카론이 위험하다는 생각만 들 뿐.
“이것부터 놓고 말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렌은 나의 울먹거리는 눈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분명 나도 어느 한 쪽에서는 렌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눈앞이 흐려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