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6 사이 좋게 지내요!
* * *
“어 정신이 좀 드십니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 여긴 카론이 누워있던 침대인데?
앞을 보자 에레보스의 신관님이 날 간호하고 계셨다.
“저... 카론은...”
“아 매우 건강해졌습니다. 성수를 마시고 몇 시간 뒤에 바로 열이 내렸습니다.”
“휴...”
나는 안심의 한숨을 내뱉었다.
“저가 얼마나 잔 거죠?”
“아마 12시간 정도 주무신 거 같습니다.”
신도 기운이 떨어지면 인간처럼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내가 기운을 다 썼기에 아마 혼절한 것 같았다.
내려오다가 혼절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도착한 다음 쓰러졌다.
그러고 보니... 별일 없었네?
나는 내려오자마자 렌의 멱살을 잡았던 것이 생각났다.
분명 카론에게 심어둔 기운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음에도 그런 일을 하다니...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졌다...
산 정상에서 너무 두려운 일이 일어나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더라도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광신을 만나다니...
또 이상한 점이 분명 엘로아랑 에레보스가 날 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아무런 전언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넋 놓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관님이 할 말이 있는지 내 옆에 계속 있었다.
“저... 무슨 할 말이...”
“렌님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렌님을 의심하고 계시다고... 그리고 오자마자 멱살을 잡으셨다고...”
“아....”
“정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에나님이 없던 10시간 동안 렌님이 카론님을 정성으로 돌보셨습니다.”
신관은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계곡에 가서 물을 떠 오시고 불을 지펴서 죽도 끓이시고...”
...
“렌님은 착하신 분입니다. 사과하시면 받아주실 겁니다.”
나는 이런 말이 필요했었다.
카론이 위험에 빠질까 봐 렌을 더 의심했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누군가에게 의존했다 보니 내 생각에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그래서 매일 한 행동을 할 때도 카론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며 핑계를 댔었던 것 같다.
분명 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여기까지 오면서 깨달았을 텐데...
내가 울상을 짓고 있자 신관님은 내 등을 토닥이더니 방에서 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훈련하고 있는 카론과 렌이 보였다.
“렌...”
내가 부르자 렌은 뒤돌아서 나를 봤다.
“으흑.... 미안해... 널 의심했어... 미안해...”
그 말을 듣고 렌은 울고 있는 내 앞에 섰다.
콩!
렌은 갑자기 울고 있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으흑... 뭐야...”
“이제 끝. 정상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괜찮아.”
“흑...으아아아아아앙.”
렌의 말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내가 울음을 터트리자 렌은 날 꼭 안아줬다.
따뜻한 품에 안기자 눈물이 더 나왔다.
“으아아아앙... 무서웠어... 무서웠다고... 카론이 죽을까 봐 겁났고...끄윽... 나도 어떻게 될까 봐 겁났어...흐윽...으아앙.”
“그래... 괜찮아 괜찮아... 다 끝났어.”
렌이 내 등을 토닥여줬다.
나는 렌의 따뜻한 품 안에서 실컷 울었다.
분명히 위험하면 도와준다던 가족들도 오지 않고 중간계에서 처음 만난 카론은 아프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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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실컷 울고났더니 속이 시원해 졌다.
렌의 품 안에서 빠져나와 렌을 봤다.
렌은 방긋 웃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 얼굴 다 망가져요 공주님.”
렌이 장난스럽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 공주님 아니야.”
나는 소매로 대충 눈물을 닦았다.
“로에나 얼굴 퉁퉁 부었다.”
카론도 내 쪽으로 와서 장난을 걸었다.
“으... 누구 때문인데...”
렌은 티격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제 나도 제대로 동료가 된 거지?”
렌의 말에 나는 방긋 웃었다.
“렌은 함께 했을 때부터 동료였어.”
맞다.
렌은 함께했을 때부터 동료였다.
하지만 나만 몰랐을 뿐이었다...
“저희 이만 가볼게요.”
카론과 렌은 굳이 정상에 있던 일들을 굳이 묻지 않았다.
아마 힘들어서 그랬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에레보스님의 가호가 있길.”
우리는 신관님에게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신관님에게도 정말 고맙네...
그 분이 해주신 말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성배를 만졌더니 광신이 있던 곳으로 간거지?
그것도 봉인되어있는 장소에...
광신은 누구지?
분명 처음에 만났을 때는 주신님이었던 게 분명했다.
괴물로 바뀌었을 때는 주신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카리온과 페르세스의 이름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멸망... 멸망을 말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고 있자 제대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보였다.
“산에서 나온 건가?”
내가 카론과 렌에게 말하려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런거 어디서 봤었는데?
“로엔~~~~~.”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페르세스가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페르세스!!”
나는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안심이 됐다.
불안한 일이 있었던 다음 가족을 만나니 두 배... 아니 수천 배로 반가운 것 같았다.
페르세스는 나에게 달려와 나를 꼬옥 안았다.
“헤헤헤...”
렌의 품도 따뜻했었지만 역시 껴안기의 원조는 페르세스다.
나는 품에서 나와 페르세스에게 물었다.
“페르세스 바쁜 거 아니었어? 여긴 어떻게 왔어.”
“로엔을 보고 싶어서 왔어...라고 하고 싶지만... 너 광신이 있던 곳 다녀왔지.”
페르세스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디 다치진 않았지?”
페르세스는 내 몸을 둘러봤다.
“어느 정도 회복됐어...”
“휴... 다행이네... 왜 광신이 있던 곳에 갔다 왔는지 궁금하지?”
페르세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응 다른 마신들은 이 산에 오는 게 금지되어 있다는데 나는 들은 게 없었던 것 같아.”
“마신들이 이 산에 오는 게 금지된 이유는 ‘마신’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이라서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카리온이 과거 신계 역사에 대해 알려줬었다면서.”
“그렇지.”
“광신은 에레보스야.”
에레...보스?
에레보스는 분명 신계에 잘 있었는데?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졌다.
“정확히 말하면 에레보스의 분노와 주신의 육체가 섞인 무언가야.”
주신과... 에레보스...
“카리온이 어떻게 설명해 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에레보스가 나와 카리온을 창조하고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주신이 에레보스한테 왔어.”
페르세스는 페르세스답게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하게 말했다.
“주신은 그 때 중간계를 만들어 정신체 뿐이었지만 에레보스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 하지만 에레보스의 분노는 신의 정신을 미치게 할 정도로 심했어. 결국에는 주신이 에레보스를 봉인하기로 했지.”
에레보스...
“주신은 자신의 몸을 나눠 만들었던 중간계에 에레보스의 분노를 봉인하기로 했어. 하지만 그냥 중간계 차원에 그 분노를 담아버리면 중간계에 영향이 갈 것을 걱정해 차원과 차원 사이에 그 정신을 넣었지.”
“그렇다면 내가 갔던 곳이...”
“차원의 틈이지... 그 차원의 틈으로 가는 통로가 바로 너가 만졌던 성배고.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 다른 신들은 이곳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그냥 너처럼 만진다고 열리는 게 아니라서 그래.”
“난 왜 그곳에 갔던 거야?”
그렇게 안 열리는 통로가 왜 열린 것인가.
그리고 하필 왜 내가 갔다 온 거지?
“너도 몇 번 봤겠지만 지금 모든 차원에 광신도가 존재해.”
“뭐? 제국이나 도시 수준이 아니라 차원?”
단위가 달랐다.
광신도들의 크기조차 가늠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가 돌아다니는 장소들만 해도 광신도들이 존재했는데 다른 차원까지 손이 뻗어져 있다고 하면...
“우리도 계속 조사하고 있는데 사실만 말하면 그들이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고 차원의 통로에 문제가 생겨서 너가 그곳에 갔다 온 거야. 아마 마신의 기운에 반응한 걸로 예측하고 있어.”
그렇구나...
“그럼 ‘우리’이라서 못 들어간다는 건 무슨 소리야?”
페르세스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우리는 에레보스의 분노에 동조한 신들이거든.”
“그치만... 에레보스가 페르세스랑 카리온을 그런 의미로 만든거잖아.”
인간들은 심판하려고...
“동조했던건 사실이니까. 우리도 봉인 당할 수 있었는데 안 당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뭐 그래서 우리가 봉인을 해제할까봐라는 이유 때문에 차원의 틈으로 가는 통로가 있는 근처는 가는게 금지되어있어.”
나는 페르세스의 슬픈 표정을 바라봤다.
그 표정에는 후회와 죄책감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산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봤지만 오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제 에레보스의 성물 근처로는 가지마. 지금 다른 신들이 너의 상황을 보고 에레보스의 성물들을 전부 회수 중이야. 어디 있는지 모르는 성물들도 있어서 잘못하면 만날 수도 있을거야.”
페르세스는 그 말을 한 후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면서 사라졌다.
에레보스의 성물...
만나지 말라는 페르세스의 말이 왠지 플래그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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