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30 잠깐 쉬어요.
* * *
“렌!!! 내가 진짜 일해서 갚을게!! 나 진짜 얘랑 정들었단 말이야!!!”
“무슨 이틀 지났는데 정이 들어 빨리 줘 내다 팔게.”
나는 검을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렌은 그런 나를 밀면서 검을 뺏으려고 했다.
“아! 아! 나 환자 환자!!”
“그럼 놔!!!”
콜로세움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후 나는 치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렌은 내가 신인지도 또, 카론이 교황인지도 몰랐다.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지금 말해봤자 늦었다고 생각해서 일단 숨기기로 했다.
죄책감은 엄청났지만... 갑자기 얘는 교황이고 난 신이야! 라고 말하면 믿지도 않을 것 같았다.
누가 계속 같이 다니고 품에 안겨서 엉엉 운 사람이 신이라고 믿겠는가.
신의 위상만 낮아지지...
“내가 진짜 일해서 갚는다니까?”
“4골드.”
“응?”
“그 너클 4골드라고.”
...
돈의 귀함을 느껴본 몸이었기에 4골드의 귀함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2골드 조금 안 되게 있었지만...
카론을 봤다.
“안돼. 같이 쓰는 생활비인데 네가 실수한 걸 왜 이 돈으로 때우려고 해.”
하지만 검을 팔기는 정말 싫었다.
좋은 검은 아니었지만 색 자체가 희귀하기도 했고 내가 처음 1등이라는 걸 했다는 증거였다.
이런 의미 있는 물건을 팔다니... 절대 안 된다.
“힝...”
똑똑똑
우리 방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굿 타이밍!
노크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안녕~ 경기 잘 봤어~”
문 밖에는 이리나가 서 있었다.
이리나를 보면 이가 갈릴 것 같았지만 처음으로 반갑게 느껴졌다.
“후후... 약속은 지켜.”
“물론이지~”
이리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방에 들어왔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이리나는 자신 방인 듯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음...”
솔직히 물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왜 광신을 부활시키려고 하는지도 궁금하고 어떻게 전 차원에 광신도가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모든 차원에 존재한다는 뜻은 누군가 차원을 오가고 있다는 건데 누가 이들을 돕고 있는지도...
그렇다고 이리나가 모를 만한 건 질문하면 안 된다.
모른다고 답하는 것도 답하는 거니까.
하지만 심장에 맹세했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다.
“빨리~ 나도 입이 근질거린다고~”
“기...기다려! 나도 고민 좀 하고.”
옆에서 재촉하니 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럼... 이걸로.
“광신을 왜 부활시키려는 거야?”
“헤에~ 실수했네?”
이리나는 나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재밌어 보여서.”
엥?
“난 그저 재밌어 보여서 돕고 있는 건데? 아주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너희같이 재밌는 사람들도 만나고.”
“아...아니! 너의 목적 말고 광신도들의 목적!!”
“아 그런 거였어? 근데 네가 제대로 말하지 않았잖아. 질문 끝~”
이...이런 사기꾼!!
당했다!
이리나는 광신도들이 광신을 부활시키려는 이유가 아니라 본인의 이유를 말했다.
이러면 질문한 의미도 없잖아!
나는 화가 나서 이리나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대답해! 대답하라고!!"
“꺄하하하하~ 진짜 너 너무 재밌다. 놀리는 맛이 있어. 심각할 때가 아니면 너무 허술한 점도 웃기고.”
이리나의 웃음소리를 듣자 그냥 다 허탈해졌다.
검이라도 얻었으니... 됐다.
“하아... 알았어... 이제 가.”
“에이~ 손님이 왔는데 식사라도 대접해주지그래?”
이리나는 갈 생각이 없는지 침대에 누웠다.
“식사 대접할 돈도 없어.”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너클이나 빨리 사야지...
“내 입에 음식이라도 넣으면 재밌는 이야기라도 나올 것 같은데~”
...
나는 밑에 내려가서 간단한 식사를 가져왔다.
“난 만찬이라도 준비해주는 줄 알았는데~ 너무 부실한데?”
“주는 대로 먹어.”
이리나는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맛있네~”
처음 투덜거렸던 것에 비해 음식을 맛있게 먹네...
“근데 너희 너무 초점을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초점을 잘못 잡았다고?
“내 힌트는 여기까지 밥 잘 먹었어~”
그녀는 내가 의문을 표하자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점을 잘못 잡았더라...
우리가 제단을 노리는 걸 말하는 건가?
아니야 또 놀리는 걸 수도...
그렇기엔 차원 급으로 있는 제단을 생각해보니 내가 몸이 100개여야 이 차원의 제단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잘 있어~ 교황님과 늑대 언니도 나중에 보자고~”
“음...?”
문을 닫고 사라졌다.
“교황?”
렌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저...저!!
분명 렌이 모르는 걸 알고 그런 걸 거야!
악질!!!!
렌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와 카론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카론과 나는 그저 그녀의 눈을 피할 뿐이었다.
“너 교황이야?”
렌은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아니야!”
이번엔 카론을 봤다.
“너야?”
카론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나도 공범이었기에 도와줄 수는 없었다...
나도 사죄해야할 뿐.
@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속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였네!”
“소...속인 건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던 건데...”
“그게 속인 거지!”
렌은 씩씩대며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죄의 의미로 같이 무릎 꿇고 있었다.
“속이려고 속인 건 아니고 타이밍을 놓친 느낌이지...”
“맞아맞...미안.”
카론의 말에 맞장구를 치려고 했지만 렌의 눈빛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에휴... 하긴 쟤가 말 안 하고 그냥 말했다면 왠지 안 믿었을 거 같긴 하다. 그리고 뭐? 복수의 신? 처음 듣네.”
탄생한 지 1년밖에 안됐으니까!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신이라는 것까지 밝힌다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럼 로에나는 뭐 보좌하는 신관 그런 거야?”
“어...”
원래는 수행원이라는 컨셉이 있었지만 그걸 말하면 진짜 거짓말을 하는 게 되었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난 카론의 친구야!”
그리고서 생각난 변명.
친구!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카론과 같이 안 다닐 수도 있지만, 친구기에 같이 다니는 거였으니까.
“그래 알았어. 에휴... 뭐 나쁜 의도로 속인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봐줄게.”
“고마워 렌!!”
“렌!!”
나와 카론은 같이 일어났다.
“그것보다 그년이 한 말 무슨 소리야?”
“그년?”
“방금 간 썅년.”
썅...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마 우리가 제단을 부수고 있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카론이 내가 말하려던 내용을 먼저 말했다.이에 나는 덧붙여 말했다.
“수뇌부를 노려라...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계속 우리가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게? 지금은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제단을 부수는 것밖에 없잖아.”
렌의 말이 맞았다.
수뇌부고 뭐고 단서가 하나도 없는데 뭘 하겠는가.
신계에서 정보라도 좀 가져올까...
“내 생각엔 우리 앞에 있는 일 먼저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카론이 진지하게 말하자 나와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광신도들을 전부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앞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신들도 노력하고 있으니 해결할 수 있겠지...
“근데 여기에 제단이 있는 건 맞아?”
“이리나가 불렀...그러네?”
우리는 이 도시에 올 때 제단이 있을 거로 생각한 이유가 이리나의 부름 때문이었다.
백작령에서 제단을 부순 것 때문에 이리나의 목적이 우리를 제단으로 끌어들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우리를 콜로세움에 출전 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럼 제단이 이 영지에 없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그럼 어떡하지...
고민하면서 침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윽!”
배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이틀 밖에 안됐으니 상처가 다 낫는다는게 더 말이 안됐지만 맨날 상처가 생기면 금방 치료해서 그런지 상처가 더 낫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치료...? 그러고 보니 이제 카론이 치료해도 되잖아!
“카론! 이제 치료해줘! 다 밝혔잖아.”
“알았어.”
카론은 내 쪽으로 걸어와서 신성력을 꺼냈다.
“뭐야 그럼 나 속이려고 할 수 있던 치료도 안 하고 있던 거야?”
헉...
“너...너 치료 못 하잖아! 하하! 까먹고 있었네!”
“어...어 맞다! 나 치료 못 하지!”
카론은 허겁지겁 신성력을 집어넣었다.
“그만해라.”
““네...””
@
“무슨 자경단도 아니고 이렇게 싸돌아다녀?”
우리는 다음날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며 광신의 기운을 찾았다.
“그냥 산책 겸 제단이 있나 찾는 거지.”
“어떻게 찾는데?”
“신성력을 뿌려서 마신의 기운이 잡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카론은 집중하고 있는지 눈을 감고 말했다.
“걸리는 게 있는 거 같긴 하다.”
“무슨 개야? 돌아다니다가 발견하게?”
렌은 늑대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말했다.
진짜 개는 따로 있는 거 같긴 한데.
“일단 잡히는 쪽으로 가보자.”
“왜 일단이야? 잡히면 거기에 제단이 있는 거 아니야?”
“뭔가...뭔가 이상하긴 해.”
무슨 소리지?
나도 기운을 뿌려 주변을 살폈다.
음...?
나도 광신의 기운을 찾긴 했다.
카론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알 거 같았다.
큰 지역에 느껴지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네?
제단에 발이 달린 게 아니라면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카론과 눈을 마주치고 나도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럼 가자.”
...
자꾸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 기운을 찾기가 힘들었다.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어디론 가로 사라졌다가...
뭐야?
그렇게 방방곡곡 뒤지다가 그 기운의 정체를 찾았다.
“어머~ 우연이네~”
아 맞다...
이리나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뭐야~ 그 실망한 표정은~ 대충 알 거 같긴 한데 보자마자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나도 상처받는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