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2 트라우마
* * *
꿈을 꿨다.
마을 사람들과 잡혀 들어가 다시 고문을 받는 꿈을.
잡혀가고 있는 동안 엄청난 공포감이 나를 휘감았다.
신성력을 사용해보려고 했지만 신성력이 나오지 않았다.
로엔이 날 구해준게 꿈인가... 아님 지금 잡혀가고 있는게...
그리고 고문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도끼.
후드남은 피가 묻어있는 도끼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그 피는 아마 마을 사람들의 피겠지...
"나의 신을 위해 고통받거라."
그 목소리를 듣자 공포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어디선가 따뜻한 기운이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카론 일어나.
그리고 정신이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숲에서 야영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누군가 나를 들 것에 실어 옮기고 있었다.
꿈과 현실이 혼동됐지만 최대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로엔하고 렌은 어디 갔지?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내 옆에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는 로엔과 렌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로엔 또 잠들어서 납치당하고 있는 거야?
이미 전과가 있는 로엔이기에 충분히 할 만한 의심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주위를 아무리 봐도 숲은 아니었다.
천장도 있고 검은색 벽들이 보이는 게 건물 안인 것 같았다.
광신도인가?
조금만 더 기다리자.
광신도라면 지금 일어나기 보단 제단에 가서 일어나는게 더 좋았다.
제단까지 우리가 찾아 갈 필요도 없고...
슬슬 통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넓은 공간과 커다란 눈을 한 괴물 모양인 석상이 보였다.
저번에는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이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한 공간에 우리 셋을 나란히 놓았다.
우리 옆에는 우리 같이 들것 위에 눕혀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슬슬 움직여볼까.
그동안 렌에게 배운 격투술과 로엔에게 배운 신성력의 성과를 볼 때였다.
나는 자리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보이는 적은 4명 정도였다.
후드를 입고 있지는 않고 무장도 검만 차고 있을 뿐, 갑옷이나 다른 장비들을 차고 있지는 않았다.
침입자가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지 서로 떠들고 놀고 있는 게 굉장히 해이해져 있는 모습을 보였다.
나야 오히려 좋지.
나는 신성력으로 화살을 만들었다.
‘가라.’
그 화살들은 날아가 그들의 다리를 노렸다.
“억!”
“으악!”
그들은 화살에 맞고 자리에 쓰러졌다.
“으... 누구...”
그 중 한 명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윽... 침입자...!”
그들이 소리 지르기 전에 달려가 그들을 차례로 기절시켰다.
“으...”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 그 사람을 보았다.
“여긴 어디지?”
“말...말할 것 같아?”
자신 없는 목소리.
그냥 조금만 더 겁을 주면 술술 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짝!
나는 그 사람의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여긴 어디지?”
“으...말 못해...”
짝!
“여긴 어디지.”
“숲...숲 근처에 있는 동굴입니다...”
겨우 두 대를 맞은 후 대답했다.
광신도와 관련된 사람이 아닌가?
하긴 차림세만 봐도 그냥 동네 양아치처럼 보이긴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주위를 둘러봤다.
저 눈이 큰 괴물 석상 말고는 특별해 보이는 게 안 보였는데 누워있는 사람들의 이상한 증상을 발견했다.
“으... 살려주세요.”
“안돼...안돼...”
전부 악몽을 꾸는 듯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악몽을 꾸다가 일어났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로엔하고 렌부터 깨워야겠다.
“로엔 일어나.”
내가 로엔을 흔들자 로엔도 잠꼬대를 했다.
“풉...”
모두 악몽을 꾸고 있었는데 로엔 혼자서 웃음을 내뱉었다.
얘는 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자고 있던 거야?
“야 로엔 일어나라고.”
로엔은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헤실 대기 시작했다.
“흐흐... 읏...”
그리고 급격히 표정이 안 좋아졌다.
치료해야 하나?
나는 로엔의 몸에 신성력을 넣었다.
신성력이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
로엔의 몸 안에 있는 광신의 기운과 싸우는 듯한? 그런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런 로엔의 몸 안에 신성력을 더 쏟아 부었다.
그러자 점점 광신의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그냥 자고 있지 왜 일어나셨나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봤다.
후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그 후드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알던 후드남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키가 굉장히 크고 마른 남자의 모습.
그리고 기괴하게 큰 눈.
나는 신성력을 몸에 둘러 신체를 강화했다.
“오호... 신관인가요?”
일단 상대방이 어떻게 싸우는지 모르니 달려나가지는 않았다.
상대방은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옆에 광신의 기운이 꾸물 꾸물 모이더니 한 사람이 생겼다.
나를 고문하던... 그 사람이...
내가 알던 그 후드남이...
“오! 반갑군요! 누구 신지는 모르겠다만.”
“죽이면 되나?”
“네! 죽이시면 됩니다.”
광신의 기운으로 나타난 후드남이 한 손에 도끼를 만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위축된다.
내 옆엔 지금 로엔도 렌도 없다.
분명 난 로엔을 만나고 렌을 만나 강해졌지만, 저 사람을 봤더니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 도끼...
우리 마을을 학살할 때 사용하던 도끼다.
덤벼들던 병사들의 목을 차례로 치던...
“윽...”
나는 달려드는 후드남의 도끼를 피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는지 볼에 살짝의 상처가 났다.
피할 수 있던 공격이었지만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나는 그 도끼질을 피하려고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아래 누워있는 사람의 배를 밟았다.
“욱...”
“읏...”
나는 넘어질 뻔 했지만, 뒤로 덤블링해서 다시 일어섰다.
“침입자분! 저희 제물들은 손상시키지 말아주세요! 한 명 한 명 구하는 게 굉장히 귀찮거든요.”
정말 쓰레기 같은 발언이군.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다니.
물론 나도 이 사람들을 방패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후드남을 봤다.
후드로 가려져 있는 얼굴 윗부분.
매일 저러고 다녀서 우리를 고문할 때 저 사람이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물론 입 쪽은 보였지만 입은 언제나 가만히 있었다.
나는 후드에 가려져 있는 눈 만은 혼란스러운 눈을 했으면 했다.
그래야 그가 반성을 하던 죄책감에 평생을 고통 받건 할테니까.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그런 일을 그만뒀으면 했다.
그리고 반성했으면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난 네가 죄책감을 느꼈으면 했어.”
“네가 매일 잘 때마다 죽인 사람이 꿈에 나와서 널 괴롭히길 원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니 죄는 죄책감과 반성 같은 걸로 용서받을 만한 게 아니거든.”
신도 나도 죽은 사람들도 겨우 그런 걸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후드남에게 달려들었다.
후드남은 나를 내려치려고 도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내가 더 빠르다.
나는 신성력을 주먹에 모아 그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후드남은 내 주먹을 맞고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연기처럼 되서 몸이 사라져버렸다.
“후우...”
짝짝짝
“오! 강하시군요! 트라우마도 극복하신 거 같고.”
그 기괴하게 생긴 후드남은 나를 보며 감탄했다.
“그럼 이제 끝내죠!”
그의 주위에 10개가 넘는 수의 기운이 꾸물거렸다.
그리고 전부 도끼를 든 후드남이 되었다.
“시발...”
“잘 가세요!”
그 도끼든 후드남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으... 머리 아파.”
로엔이 몸을 일으켰다.
빡!
“악!”
한 후드남이 로엔이 일어나는 걸 반응하지 못하고 로엔의 머리에 다리가 걸렸다.
그 모습에 다른 후드남들이 전부 로엔을 쳐다봤다.
“이... 뭐야!”
로엔은 머리를 문지르며 그 후드남을 봤다.
“너...! 너 왜 여기 있어!”
“로엔!!!”
내가 소리치자 로엔은 날 봤다.
“다 때려눕혀 버려!!”
나는 미소를 지었다.
@
퍽!!
“이... 시발년이!!”
아버지는 내 주먹을 맞고 날아간 다음 몸을 일으키고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 같으면 시발놈이라고 했을 텐데 여자의 몸이 돼서 그런가 ‘년’으로 패치가 됐나 보네.
“조금만 더 때리고 나가야겠다.”
진짜 조금만 더 때릴 거니까 별일 없겠지?
나는 밖의 상황이 걱정이 됐지만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죽어.”
갑자기 카리온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나에게 휘둘렀지만 맞지 않았다.
이로써 완벽하게 이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카리온이 날 검으로 못 맞추겠는가.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나가지?”
어라?
내 몸에 신성력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것도 내 신성력.
점점 더 많이 들어온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요즘 받은 스트레스는 저 새끼 때문이지.
나는 광신을 바라봤다.
“너 한 대만 때려보자.”
나는 들어온 신성력을 이용해 몸을 강화해 광신에게 달려들었다.
광신의 얼굴 쪽에 다가가자 광신이 말을 하려고 했다.
“너는 내 몸에 손도 못...”
말하고 있는 광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광신의 머리는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그리고 땅으로 착지!
“후... 밖의 세상 광신도 이렇게 쓰러트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광신의 머리를 터트리자 마신들이 먼지가 돼서 사라지고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어나는 건가?
세상이 깨지자 정신이 들었다.
머리가 좀 아팠지만,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으... 머리 아파.”
빡!
“악!”
안 그래도 아픈 머리를 누군가 강하게 때렸다.
“이... 뭐야!”
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그 후드남을 봤다.
어? 이 녀석... 분명히...
“너...! 너 왜 여기 있어!”
처음 봤던 후드남!
분명 카리온이 데리고 갔는데?
“로엔!!!”
카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보니 카론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카론은 씨익 웃었다.
“다 때려눕혀 버려!!!”
그리고 나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카론이랑 처음 광신도 신전을 부술 때가 생각났다.
그냥 다 때려눕히든지 하라고!!!
오케이. 알았어.
“오케이. 알았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