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5 딱 대 이 자식아.
* * *
“야 비실이!”
꼬맹이가 누군가를 불렀다.
비실이?
비실이라고 불릴 사람이 있나?
“대답 안 해?”
꼬맹이가 말하자 난 누구지 싶은 마음으로 카론과 벨을 쳐다봤다.
벨과 카론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
나야?
“저요?”
“그래 너.”
꼬맹이가 나를 그렇게 부르자 렌이 어쩔 줄 몰라했다.
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절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왜 내가 비실이야?
“왜요?”
“재밌는 것 좀 해 봐. 심심하잖아.”
이... 콩알만 한 자식이...
장유유서라는 개념이 절실히 필요한 세계인 것 같다.
재밌는 거라...
나는 그 꼬맹이에게 한 방 먹여주기로 했다.
싸가지 확실하게 고쳐줘야 겠군.
“그럼 저랑 놀이 하나 하실래요?”
“놀이?”
“가위바위보라는 놀이에요.”
“그게 뭐야.”
나는 그 꼬맹이에게 가위바위보를 알려줬다.
가위바위보를 이긴 사람이 딱밤을 때리는 형식으로.
꼬맹이는 내 설명을 흥미롭게 들었다.
카론하고 렌도 주위에 앉아 내 말을 듣는데 재밌어 보인다는 반응이었다.
겨우 가위 바위 보로 그런 반응을 보이자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꼬맹이를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이었던 것 같았다.
“그거 재밌겠네. 나랑 하자.”
후후...
내가 힘이 약한 줄 알고 있겠지.
내가 벨의 눈치를 살짝 봤다.
벨도 별 반응을 안하는 게 해도 될 것 같았다.
딱봐도 여자애가 때려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라는 생각이겠지?
“그럼 가위 바위 보!”
내가 구령을 외쳤다.
꼬맹이는 찌, 나는 빠.
오히려 좋아.
원래 도박꾼들이 호구를 잡을 때 일부러 잃어주곤 한다.
그래야 호구가 의심 없이 더 도박에 빠져드니까.
“히히 이마 대.”
꼬맹이가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딱
“의외로 때리는 것도 어렵네.”
꼬맹이의 딱밤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지만 나는 달랐다.
친구들과 단련된 나의 딱밤 실력.
친구들끼리 할 것 없을 때 굉장히 많이 해봤었다.
“그럼 다시 가위 바위 보!”
나는 묵, 꼬맹이는 찌.
딱 대 이 자식아.
“때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놀이니까!”
다시 벨의 눈치를 봤다.
벨도 어차피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때립니다.”
이런 꼬맹이를 때리는데 굳이 신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엄지로 중지를 꾸욱 누르고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잡아 정확하게 조준했다.
빡!!!!
나이스샷.
오랜만에 해봤는데도 실력이 죽지 않았는지 중지의 타격감이 좋았다.
착 감기는 느낌.
“으아아악!”
꼬맹이는 이마를 부여잡고 뒹굴뒹굴 굴렀다.
“풉...”
카론도 그 모습을 보고 통쾌했는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자식...!”
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벨 가만히 있어.”
꼬맹이가 벨을 멈췄다.
“도련님!”
“내가 이겨서 저 비실이를 울려볼 테니까.”
의외로 승부욕이 있나 보다.
하지만 승부욕 가지고는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때리는 강도도 다르고 가위 바위 보를 별 생각 없이 하는 사람은 보통 패턴이 있다.
몇 번 하다 보니 그 꼬맹이의 패턴을 알아버렸다.
‘이번엔 한 대 맞아줄까...’
“가위 바위 보!”
하필 꼬맹이는 이번에 패턴을 바꿨다.
또 나의 승리.
진정한 남자는 여자나 어린아이를 상대할 때도 전력을 기울이는 법.
“이마 대세요.”
빡!!!
“으아아앙!!!”
결국 6대 만에 꼬맹이는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벨은 바로 꼬맹이를 달래러 갔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카론 옆으로 걸어왔다.
“좀 봐주지 그랬냐.”
“사자는 사냥을 할 때 언제나 최선을 다 해.”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꼬맹이의 이마에 혹이 나 있었다.
렌하고 벨이 열심히 달래줘서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야영에 펼쳐놨던 짐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꼬맹이가 내 옆으로 왔다.
“야 나중에 한 번 더 해.”
승부욕은 높게 사주겠다.
하지만 벨의 눈초리가 하지 말라는 눈이었다.
한 번 더해서 빅 엿을 선사해주고 싶었는데...
더 못한다면...
나는 꼬맹이 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좆밥이랑은 안 해.”
“...!!!!!!!!!”
내가 뒤돌아서 가자 꼬맹이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했다.
승리 후 승부를 하지 않는 방법.
나는 정신면 까지 승리를 거두며 입꼬리를 올렸다.
@
“로에나 미안.”
오늘은 렌도 마차에서 내려 우리와 함께 걸어갔다.
“아냐~ 난 지금 속이 후련해.”
뭐 갚아 줄 거 전부 갚아줬다고 생각한다.
멘탈이 깨져서 마차 안에 조용히 있는 꼬맹이를 보니 만족스러웠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나는 그런 렌에게 밝게 웃어줬다.
렌도 그 웃음을 보더니 미안한 게 조금 가셨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길을 가다 보니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느꼈는지 주변을 경계했다.
기척이 크지 않은 것을 보니 사람 같았다.
수가 좀 많네.
“렌은 마차를 지키고 나머지는 주변을 경계한다.”
벨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렌은 마차 문 쪽으로 갔다.
우리의 움직임이 이상하자 적은 기척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다.’
“공격!!!”
풀 숲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얼굴을 가리고 무장을 한 사람들.
도적인가.
나와 카론은 마차 뒤쪽을 지키고 벨과 렌이 마차 옆쪽을 지켰다.
다행히도 훈련되지 않은 도적들이어서 굉장히 약했다.
또 지휘하는 사람조차 없는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많았다.
우리의 강한 모습을 보자 도적들은 겁에 질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냥 인원수가 적어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위험을 느낄 정도도 안되네.
“...끝났어?”
마차 안에서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끝났습니다.”
벨이 그 말에 대답했다.
“그럼 나 화장실 좀 갈래.”
어...
우리는 벨의 눈치를 봤다.
이제 막 정리된 상태이다.
분명 도적들이 도망가긴 했지만, 동료를 이끌고 다시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도련님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벨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겠지.
“왜? 끝났다면서.”
꼬맹이가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고...”
“니네가 지켜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벨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사람도 고생이 많네.
벨은 도련님을 데리고 풀숲으로 들어갔다.
“너희는 주변을 지켜라.”
나는 꼬맹이와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이거 왠지 도적 떼 다시 올 거 같은데.”
영화 같은 곳에서 고구마 먹기 좋은 상황.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뭔가 우리 쪽으로 오는 소리가 났다.
우직끈 와드득
생각보다 큰 발걸음 소리.
“곰?”
3m는 되어 보이는데.
곰 모양을 한 마물인가.
크아아앙!!!
“하하하! 죽어라!!!”
옆에는 이상한 가죽들로 된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이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 뭐 그런 거야?
곰이 나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쾅!
“오우.”
나는 뒤로 살짝 물러나 그 공격을 피했다.
그랬더니 옆의 나무를 쳐서 큰 소리가 났다.
저거 평범한 사람한테는 맞으면 즉사겠는데?
“무슨 일이냐!”
벨이 내 쪽을 봤다.
“고...곰?”
“곰곰! 공격해라 하하하!!!”
이름이 곰곰이야?
귀엽네.
산적 같이 생긴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 곰곰이라니...
“으...으악!!!”
꼬맹이가 멀리서 곰의 모습을 보더니 소리 질렀다.
에이 귀찮게.
나 혼자서 상대한다면 편한데 꼬맹이가 있네.
바로 끝내야 되겠다.
“벨! 꼬맹이 보호해!”
“알겠다!”
벨은 꼬맹이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베...벨! 비실이가!”
뭐야 나 걱정해주는 거야?
생각보다 순수한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시 곰이 나에게 공격을 하려고 앞발을 올렸다.
“곰곰! 공격해!!”
크아앙!
나는 신체 강화를 한 뒤 곰의 머리 쪽으로 점프했다.
“으어??”
내가 곰의 머리 위쪽으로 가자 비스트 마스터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내가 이렇게 달려들 줄 몰랐던 건가?
나는 중지에 신력을 담았다.
그리고 중지를 엄지로 쭈욱 당겼다.
딱밤을 때리기 전에 드는 이 느낌.
이거 제대로인데?
그리고 정확히 곰의 코를 조준했다.
빡!!!!!!!!!!
엄청난 소리를 내며 곰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코에서는 피가 쭈욱 쏟아졌다.
“...”
지칭어를 바꿔야겠네.
비스트 마스터라고 부르기엔 옆에 있는 동물이 너무 초라하게 쓰러졌다.
그냥 사육사 수준이 맞을 것 같다.
“쉽네.”
사육사는 멍하니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뒤돌아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야 멈춰라.”
멈칫.
의외로 말을 잘 듣는지 자리에서 멈췄다.
“살려는 줄 테니까 일로 와.”
“넵.”
“벨 얘 어떻게 할까?”
“어...어?”
벨은 내가 부르자 당황하며 대답했다.
“크흠.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그 옆을 보자 주저앉아있는 꼬맹이가 보였다.
그런데 나를 보는 눈이 이상했다.
반짝이는 눈.
꼬맹이가 벌떡 일어났다.
“이제 비실이라고 안 부를게! 너 진짜 강하구나!”
그 눈빛은 동경!
마치 어릴 때 히어로를 만난 어린애 같아 보였다.
“너 우리 집 기사나 전속 용병 같은 거 할 생각 없어? 렌도 같이. 돈도 두둑히 줄게.”
“없는데?”
“그래! 그럼... 안 한다고?”
“응 안 할 건데?”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저 남자애도 내가 고용해줄게!”
“안 할 건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