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38화 (38/138)

〈 38화 〉 #37 나는 그저 나다.

* * *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었지만,로엔님 덕분에 전 삶에 의미를 찾았어요.”

리아의 표정은 미묘했다.

약간의 슬픔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정말 후련하고 행복한 미소였다.

내가 직접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나의 문양을 가지고 달라지고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모습.

리아는 나보다 나이가 많겠지.

하지만 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챙겨줘야 할 사람.

그저 나의 존재만 믿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

정말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카론을 봤다.

여기서 내가 신인 것을 숨기고 지나갈 수도 있긴 했지만, 그녀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싶었다.

너의 신이 너를 믿고 보고 있다는 사실.

그저 자기만족을 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다.

“사일러스.(Silence).”

“어?”

내가 마법을 쓰자 렌과 리아는 깜짝 놀랐다.

렌은 내가 마법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지.

“카론.”

카론도 이마에 머물던 신성력을 거두었다.

나와 마음이 맞았나 보다.

“허...억...”

이마에 있는 나의 문양.

신성력에 가려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교황님을 뵙습니다!”

리아는 의자에서 내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일으켰다.

“그럼 옆에 분들은...”

“하하... 조금 못 믿으실 수도 있는데.”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저는 주신께 마신이라는 직위를 받은 복수의 신 로엔이라고 합니다.”

“뭐?????”

“로...로엔님이요?????”

렌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아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로에나... 로엔... 비슷하긴 한데.”

나는 리아의 손을 꼬옥 잡고 신력을 문양에 넣었다.

그러자 리아의 문양에 강한 빛이 나왔다.

“신성력이...!”

늘어났겠지...

티가 많이 나는 축복을 내려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이런 거라도 해주고 싶었다.

“로엔님...”

나는 리아에게 웃어줬다.

“정말 씩씩하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흐윽.... 저야말로 로엔님 덕분에...”

리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건 슬픔에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감동과 고마움만이 보였다.

내가 그저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이렇게 사람에게 감동을 주다니.

인간이었을 때는 정말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보는 것만으로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존재만으로 사람에게 살 동력을 줬다는 게 너무 기뻤다.

“언제나 리아를 지켜보고 있을게요. 이렇게만 살아주세요.”

나는 우는 리아를 꼭 안아줬다.

그 모습을 보고 카론은 흐믓한 미소를 지었지만, 렌은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으...

좀 이따 혼나는 거 아니야?

차라리 혼나는 게 더 좋았다.

그렇다는 건 렌이 그저 렌으로서 있어준다는 소리였으니까.

렌이 나를 그 자체로 봐준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렌이 나를 신으로 본다면...

괜히 밝혔다는 생각도 했지만 언젠간 이렇게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평생 숨기고 렌에게 로에나로 남을 수도 있긴 했지만 그건 그저 가짜니까.

나는 로에나가 아니라 복수의 신인 로엔이니까.

내가 신이라는 것을 밝히더라도 나를 나 그 자체로 봐줬으면 했다.

우리는 리아를 달래주고 신전에서 나왔다.

“지켜봐 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살아볼게요!”

“네! 저흰 가볼게요!”

우리는 리아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렌의 눈치를 보면서,,,

렌은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이었다.

“...렌?”

“네...네!”

“렌...”

렌도 자기가 존댓말 했다는 게 놀랐는지 입을 가렸다.

내가 이래서 신이라는 걸 밝히려고 하지 않았던 거다.

아무리 내가 인간이었던 신이라고 하더라도 신이라는 걸 안다면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질 테니까...

그런 면에서 카론에게는 정말 고마웠다.

날 그저 친구로 대해줬으니까.

“렌.”

카론이 렌을 불렀다.

“으...응?”

“로에나는 로에나야. 달라지는 건 없어.”

무덤덤하게 뱉은 그 말.

“카론...!!”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를 신이라고 선을 긋지 않는다.

그저 나 그 자체, 자신의 친구로 봐줬다.

카론의 말에 렌도 뭔가를 느꼈는지 입술에 힘을 줬다.

“나 생각 좀 하고 올게.”

우리는 렌과 숙소 앞에서 해어졌다.

“별일 없겠지...”

“사실 내가 교황이라고 밝힐 때 알려줬어야 했어.”

맞는 말이다.

렌이 우리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카론이 교황인 걸 숨기고 내가 신인 걸 숨겼다.

그동안은 렌을 위한 것이라면서 위로했지만 렌에게는 아니었다.

선의의 거짓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다.

그게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판단하는 건 피해자가 판단하는 거지.

카론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렌...”

“미안... 생각이 좀 많았어.”

렌의 표정을 보니 후련한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해봤어.”

“나를 속인 건 솔직히 실망스럽긴 해.”

렌...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를 렌은 안아줬다.

“하지만 넌 그저 친구가 위험할 때 최선을 다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마음은 약하고, 엉성한 사람이라는 건 내가 이미 같이 다니면서 잘 알고 있어.”

렌은 더 힘을 줘서 꼬옥 안았다.

"생각을 많이 했어. 너가 신이라는 거에 충격을 먹기도 했고. 내가 내 태도를 바꿔야 되나도 생각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너가 신인건 그렇게 큰 일이 아니더라고."

"친구 끼리 오해도 있고 숨기는 것도 있지만 그걸 나에게 알려주고 용서를 구했지. 나는 그걸 뿌리칠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가 악마건 신이건 마물이건 달라지는 건 없어. 넌 내 친구고. 그저 로에나야.”

“렌!!!”

난 렌의 품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고마워...

“크으~~~”

“렌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아냐 아냐~ 우리 귀여운 로에나가 있으면 취하지도 않지~”

렌은 아저씨 같이 나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볐다.

“로에나~ 너무 귀여워~ 너무 이뻐~”

“으으...”

렌이 속이 후련해졌다면서 아래서 맥주라도 한잔하자면서 카론과 나를 불렀다.

“이게 맛있어?”

“후후~ 꼬마는 몰라~”

렌은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술이라...

나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기에 궁금하긴 했다.

“나도 한 잔만 해볼까?”

“뭐야~ 둘 다 술 마셔본 적 없어?”

“어! 한 번도 없어.”

“나도.”

나와 카론의 말에 렌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주인장~! 여기 맥주 2잔!!”

“네~!”

주인장은 우리에게 맥주 두 잔을 줬다.

카론은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지구와 다르게 어리면 술을 마시는 게 불법이지는 않았지만, 관습처럼 어린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셔봐~”

나와 카론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맥주를 들이켰다.

“으~~~”

따끔한 탄산이 내 목을 찌른다.

하지만 시원한 느낌이 내 속을 자극해 기분이 좋았다.

이런 느낌 때문에 마시는건가?

“맛있는 건가?”

맛 자체는 정확하게 구별하지는 못하겠지만 시원한 목 넘김이 너무 좋았다.

“마셔마셔~”

카론과 나는 계속 맥주를 들이켰다.

“으~ 로에나~ 기분이 조아...”

몇 잔 들이켰더니 카론이 취했는지 혀가 살짝 꼬였다.

어...

원래 술을 마시면 어지러워진다고 들었는데?

나는 벌써 3잔 째 마시고 있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설마 신이라서 그런 거야?

신은 술도 못 마셔?

신화들에서는 신들이 포도주를 즐긴다고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몸은 미약 같은 다른 약들이 통하지 않았었다.

유일하게 통했던 것은 광신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정신 계열 공격.

술을 마실 때는 뭔가를 해제하고 마셔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렌과 카론은 고주망태가 되어버렸고 나는 하나도 취하지 않은 채로 그들의 주정을 받아줘야 했다.

“로에나~~ 내가 진짜 너한테 고마워 하는 거 알지?”

카론이 엎드려서 나에게 말했다.

“그럼~ 알지~”

“좋아하는 건 내가 더 좋아해~ 로에나~~”

렌은 나에게 안겨왔다.

“그럼 그럼~ 알지.”

...

이게 뭐하는 짓인지.

이 이야기만 몇 번 듣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둘을 부축해서 방에다 던졌다.

“다음엔 나도 취해봐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다.

“으 머리야...”

카론과 렌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휘청거렸다.

“그러니까 적당히 마시지 그랬어.”

나는 고통스러워 하는 둘을 보고 뒤에서 핀잔을 줬다.

“우욱... 화장실...”

카론은 화장실로 달려들어 갔다.

“에휴...”

결국 어제는 둘 다 숙취 때문에 침대에 계속 누워있었다.

렌은 조금 있다가 괜찮아 졌지만, 카론은 처음 술을 마셔봐서 그런가 온종일 누워 있었다.

렌이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처음으로 나 자체가 인정받았다는 느낌.

신으로서도 사람들을 도와주는 구원자로도 아닌 어설프고 나약한 나 자체로...

“다 모였나?”

“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로에나 잘 생각해봤어?”

“안 한다니까.”

꼬맹이에게 매크로처럼 대답했다.

이 도시에 짐 하나를 덜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진정한 친구들과 성문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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