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39 청각의 신관장 리비아.
* * *
덜컹
아마 신관도 축제에 나갔는지 불은 전부 꺼져있었고 고요함만이 안에 남아있었다.
“여기서 잠깐 숨어있다가 나가면 되겠다.”
“그렇네.”
우리는 신전 안에 들어가서 구석 쪽에 숨었다.
방 같은 곳도 있었지만, 허락 없이 방에 들어가기엔 좀 도둑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냥 구석에 숨어있을 뿐이었다.
“해가 뜰 때쯤 나가자. 그때쯤이면 아마 장작도 다 탈 거야.”
“그래...”
카론은 잘 도망치고 있겠지?
잘 숨었으면 전언을 날렸을 텐데 아무 말도 없는 것 보니 아직도 도망치고 있나 보다.
내가 먼저 전언을 날릴 수도 있겠지만, 전언을 듣고 집중력이 깨져서 실수를 할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근데 이 신전은 별거 없네?”
렌의 말에 신전을 둘러보았다.
코엔에 있던 엘리시의 신전에 비하면 초라하긴 했다.
거기는 정말 예쁘게 꾸며져 있었으니까...
카론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카론 정도 실력이면 도망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그 토끼 수인은 대체 누구지?
작은 도시도 아닌데 모든 사람한테 전언을 몇 번이나 날린다고?
신들이야 전언을 날리는 게 별거 아닌 기술이었지만 사람은 저렇게 쉽게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런 게 쉬운 기술이면 편지고 뭐고 지구의 전화기보다 편리한 기술이니까.
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광신도의 기운.
처음 봤을 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럼 기운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인데 교황이나 신에게까지 숨길 수 있는 실력.
저번에 왕눈이이나 귀족을 파고들어서 나온 사람인가?
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어! 후배! 왜 거기 있어?
엥?
엘리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신 할 일이 없나?
“잠깐 신세 좀 질게요.”
“응? 무슨 소리야?”
내가 하늘을 보면서 말하자 렌이 의아한 듯 쳐다봤다.
“아니 누가 말을 걸어서.”
손님이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여기에 오겠다는 소리야?
신전의 중앙에서 강한 빛이 발현됐다.
엘로아는 2000년 만에 마족들한테 전언했는데 이렇게 막 내려와도 돼?
안 그래도 다른 신들은 광신 때문에 바쁠 텐데...
이 신이 도와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안주는 건가.
“저...저게 뭐야!”
렌은 그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하... 그게...”
“후배! 오랜만이야!”
파란 머리를 휘날리며 엘리시가 나타났다.
“아 네... 선배님.”
“으으으으~ 선배님이라는 울림 너무 좋다~”
내가 선배님이라고 부르자 자신의 몸을 안고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걱정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이 선배님께 맡기라고!”
정말 못 믿음직한 선배님...
“로에나 이 분은...”
“아 얘는... 아니 이 분은 비의 신인 엘리시야.”
“로엔의 친구니? 나는 로엔의 선배님인 엘리시야!”
렌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봤다.
“허... 신이 이렇게 막 내려와도 돼?”
“안되지.”
“로엔!”
엘리시는 서운한 듯 나를 불렀다.
“우리 후배님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내려올 수 있지!”
“그러다가 인과율 위배로 잡혀가요.”
“뭐 내가 내려와서 힘을 쓰는 것도 아니고~ 혹시... 내가 저번에 내려온 거 엘로아나 다른 마신들은 모르지?”
“글쎄요...”
알겠지.
다른 신들은 몰라도 엘로아는 계속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굳이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럼 후배님의 고민 상담 시간! 무슨 일이 있길래 신전까지 찾아온 거야?”
“아뇨. 그냥 잠깐 있다가 갈 생각인데요.”
“어? 걱정이나 나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 아니야?”
“아닌데요.”
“...”
극히 실망한 모습.
“... 신들은 다 저래?”
“아니. 쟤만... 저 분만 그래.”
렌은 신에 대한 환상이 깨졌는지 허탈한 모습으로 엘리시를 봤다.
덜컹.
“어! 뭐야!”
갑자기 신전의 문이 열렸다.
신관인가?
나는 우리 앞에 있는 엘리시를 당겨서 우리 쪽으로 몸을 숨기게 했다.
“나... 나 들키면 안 돼.”
엘리시는 숨을 죽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간이라도 멈추고 오지 왜 이렇게 온 거야!!
또각 또각.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두 소리?
그리고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 봤던 토끼 수인!
그리고 우리를 봤다.
“갑자기 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흐응~ 엘리시였나? 신이 이렇게 막 내려와도 돼?”
“너... 너 누구야! 날 어떻게 알고!”
“엘리시 비켜요.”
나는 내 기운을 두르고 그 토끼 수인 앞에 섰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고 그 수인을 겨눴다.
“넌 누구지?”
“나? 난 청각의 신관장인 리비아야.”
의외로 순순히 알려주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경계했다.
신관장.
광신도 중 최고위에 있는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할까?
차원을 오가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존재라고 칭하는 게 맞겠지.
싸운다면 이길 수는 있을까.
아직 청각 쪽 종파랑은 싸워본 적이 없다.
아까 전언으로 모든 사람한테 알린 것도 청각과 관련 있는 기술이겠지.
상대방의 능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달려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엘리시 듣기만 해.
나는 전언으로 엘리시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신계로 가서 종파장이 내가 있는 곳에 있다고 알려.
엘리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언령을 사용해 사라졌다.
“동료를 부르는 거야? 후후... 못 올 텐데?”
리비아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지 작게 웃었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건가.
정 안되면 실현을 해서라도 쓰러트려야겠다.
5명 밖에 안 되는 신관장 한 명을 쓰러트린다면 실현도 싸게 준거겠지.
“뭐 너랑 싸우러 온 건 아니고. 난 그냥 시간이나 끌려고 온 거야.”
리비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가 수도로 가서 깽판 치는 게 우리한테는 많이 불편하거든.”
로엔! 사람들 다 따돌렸다. 어디야?
카론의 전언이 들렸다.
잠깐 다른 곳에 숨어있어. 신관장이 나왔어.
“사람이 앞에 있는데 자꾸 다른 사람들이랑 떠드네.”
“내 전언을 들을 수 있는 거냐?”
리비아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전언을 엿들을 수 있는 능력.
정말 최악의 능력이다.
저 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신들의 전언도 전부 들을 수 있다면 신들의 이동 경로나 계획을 전부 알 수 있다는 소리겠지.
“이 축제가 끝나면 수도로 갈 생각이지?”
“그래. 너네가 좀 불편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모습을 보는 게 기분이 좋거든.”
“어머 생긴 거와 다르게 변태끼가 있네. 그런데 가면 안 될 텐데?”
“왜지?”
“내가 좀 궁금한 게 생겼거든. 제국의 방패라고 불리는 이 성. 이 성이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수천수만의 마물이 와도 막을 수 있을까?”
소름이 끼쳤다.
수천 수만의 마물.
절대로 못 막는다.
그녀의 말이 허풍일 수도 있지만... 신들이 전부 나서도 못 잡고 있는 신관장이라면 이 정도 스케일은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보고 막으라고?”
“아니~ 막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가볼 테면 가봐. 후후...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전부 죽여줄 테니까.”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내가 눈앞에 위험한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신인 엘리시를 봐도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마신이라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
전 차원을 놓고 본다면 무시하고 수도로 가는 게 맞다.
그래도 제국의 방패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의 성이니까 어느 정도 버틸 수야 있겠지.
앞쪽은 마물을 막고 뒤쪽으로 시민들을 피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관장이 나선다면...
전부 죽이는 게 빈말이 아니다.
“그럼 난 가볼게. 3일 뒤 만월. 그때 공격올 테니까 알아둬~”
리비아는 연기 같이 사라졌다.
“후...”
다리에 힘이 빠진다.
으...
어떻게 해야 하지?
“로에나 괜찮아?”
렌이 나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나보다 그녀가 더 무서웠겠지.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난 괜찮아 일단 카론하고 다시 만나자.”
나는 카론에게 전언을 보내 신전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리비아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시발... 궁지에 몰렸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카론, 렌 둘은 수도로 가.”
이게 맞다.
여기는 내가 막고 둘은 수도를 조사하는 게.
“가서 수도를 조사해줘.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분명 수도에 뭔가 있어. 우리를 여기에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그게 맞는 거 같아. 하지만 나도 여기 있을게.”
“렌?”
“조사하는 건 카론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 만월이면 나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가 봤자 싸우는 것도 아닌데 만월을 낭비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만월을 낭비해?
“그게 무슨 소리야?”
“수인족의 특징 같은 건데 우리는 특정 날씨나 조건에서 강해질 수가 있어. 늑대족이나 토끼족 같은 경우 만월에 힘이 더 강해져.”
늑대족에 관한 이야기는 호재였지만 토끼족... 그럼 그 신관장도 강해진다는 소리인가...
“나도 그게 좋을 거 같아.”
카론도 렌의 말에 수긍했다.
“내가 먼저 가서 조사하고 있을 게. 중요한 걸 발견하면 바로 전언할 테니까.”
동료의 의견이 그렇다면...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카론 조심해. 수도에 다른 신관장이 있을 수도 있어.”
카론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어줬다.
“로엔 너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