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0 전투를 준비하다.
* * *
“저가 영주님이랑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니까요!”
“영주님은 그렇게 한가하신 분이 아니다.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하...”
“로에나 일단 돌아가자.”
마물이 오기 2일 전.
영주와 만나서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평화로운 영지에서 갑자기 수만의 마물이 나타난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미친놈 취급하지.
신이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마물이 공격해온다는 소리보다 이걸 더 못 믿을 거다.
차라리 카론이 있어서 교황으로서 말했으면 믿어줄 텐데.
카론은 이미 새벽에 수도를 향해서 출발했다.
“그냥 이대로 손 놓고 지켜봐야 하나...”
로엔! 괜찮아?
엘리시!
그러고 보니 신계에 엘리시를 보냈었지!
이 성에 있는 사람 몇백 명이 나를 돕는 것보다 신계에서 신 한 명이 돕는게 훨씬 큰 도움이 된다.
“네! 괜찮아요! 혹시 신계에서 어떻게 한다고 하나요?”
“엘리시...님이야?”
나는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신계에서 지금 그쪽으로 도우러 갈 신이 없어... 그래도 나는 도울 수 있을 거 같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래도 엘리시라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손이 부족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지...
일단 나도 최대한 도울게! 내일까지 페나랑 그쪽 도시까지 갈게.
페나!
페나가 온다면 영주하고도 만날 수 있겠다!
그래도 일이 좀 풀리는 것 같네.
아 그것 외에도 하나 받은 게 있어.
“받은 거요?”
모든 힘을 개방하는 건 안 되는데 너랑 나 실현을 허락받았어.
“실현이요????”
실현을 허락해 줄 정도야?
실현을 허락받은 건 정말 최고의 무기를 받은 거나 다름없긴 한데 이걸 신계에서 허락해줄 정도라면 신관장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소리다.
실현을 못 하게 하는 이유는 인과율 때문.
인과율은 그냥 신들이 차원에서 깽판을 못 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차원이 버티는 힘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과율이 존재하는 거다.
너무 강한 힘이 중간계에서 발현된다면 그 차원이 무너져버린다.
그런데도 실현을 허락한다는 건 신계에서도 그만큼 상대방에 대해 경계한다는 거겠지.
그거에다가 힘 일부라고는 하지만 나 혼자도 아니고 엘리시도 실현을 허락받았다.
아무리 엘리시가 바보에 힘없는 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신은 신.
평범한 인간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건 게임이나 놀이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달린 진짜 전쟁이다.
내가 방심함으로써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닌 렌이나 페나가 죽을 수도 있다.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
더 철저하게 준비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
“언니~~~!”
“페나! 오랜만이야!”
“로엔! 선배님한테 먼저 인사하지 않고 페나한테 먼저 인사하다니!”
“얼마 전에 봤잖아요.”
나는 엘리시에게 장난스럽게 대답해준 다음 페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어! 저번에 봤었죠.”
“어...응...네...”
페나가 렌에게 말했더니 렌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어색하겠지...
신인 나한테는 반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보다 높은 교황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해야하긴 한데... 빠른 년생의 족보보다 꼬인 족보다.
이게 그 개족보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그냥 반말 사용하셔도 되요! 저가 나이가 더 적으니까요!”
페나도 그걸 눈치 챘는지 렌을 보며 방긋 웃어줬다.
“그...그래!”
우리가 거리에서 떠들고 있자 주위에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페나의 볼에 떡하니 엘리시의 문양이 있으니 교황을 구경하는 거였다.
그리고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교황님이신가 봐...”
“들은 적 있어... 비의 신전에서 나온 꼬마 교황...”
사람들도 이렇게 알고 있으면 굳이 교황임을 인증하지 않아도 되겠네.
“아까 성문에서 영주를 만나러 가겠다고 이야기해둬서 바로 가도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바로 가자. 시간이 넉넉히 있지 않아.”
이제 제대로 된 준비 시작이다.
우리는 영주 저택으로 향했다.
“교황님을 뵙습니다!”
저택 앞에 가자 병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페나를 반겼다.
“영주님을 뵙고 싶은데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가시면 됩니다! 영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저택으로 들어가자 영주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내가 조사해본 결과 이 영주는 기사 작위로 시작해서 백작까지 오른 노장이었다.
기사가 작위를 받는 것도 별로 없는 일이지만 많은 전투를 통해 공을 쌓아 백작 작위에 영주 자리까지 오른 특이한 케이스였다.
아마 이 성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기에 이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영주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어서오십시오.”
흰머리가 듬성듬성 있고 수염이 나 있는 모습이었지만 늙어 보이지 않았다.
늙었다는 느낌보다 경험이 많은 기사처럼 보였다.
그의 태도 또한 완벽한 기사였다.
절제되고 예의 바른 태도.
나이가 있음에도 그의 당당한 태도 때문에 젊어 보였다.
그리고 눈에 큰 상처가 하나 있었다.
부드러운 태도를 우리에게 보였지만 그 상처 때문인가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엘리시님의 종인 페나라고 합니다.”
“영지의 주인인 루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옆에 분들은 누구십니까?”
“아 제 동료인 로에나, 렌, 엘리스입니다.”
엘리시가 본명을 쓸 수 없으니 저택에 오기 전에 엘리스라는 이름을 급조해냈다.
페나의 말을 듣더니 그는 수염을 매만졌다.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바로 우리에게 말했다.
“용건을 말씀하시죠.”
페나는 기다쳤다는 듯이 우리가 말해준 이야기들을 영주에게 설명했다.
어느 정도는 숨기긴 했지만 마물들이 공격 올 거라는 이야기는 확실히 했다.
“엄청난 수의 마물이... 흐음...”
믿기 힘들긴 하겠지.
하지만 못 믿더라도 흘려들을 수는 없을 거다.
교황이 한 말인데 교황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움직여야 한다.
거짓말을 했으면 나중에 교황에게 책임을 물으면 됐지만 움직이지 않았다가 실제로 페나가 한 말이 일어난다면 영주 자리에서 잘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쟁을 준비하듯 모든 병장기를 꺼내주세요.”
내가 페나 대신 대답했다.
“그 정도까지 해야 합니까?”
“네. 상대가 얼마나 강할지 예측되지 않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병장기를 전부 꺼내려면 수도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키는 걸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책임 질 테니까 로에나님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
페나는 영주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페나...
그리고 나를 보며 웃어줬다.
“... 알겠습니다. 그래도 수도에 전언은 날리겠습니다. 수도에다가도 상황을 알려줘야 하긴 하니까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수도에서 지원이 나올 수도 있고요.”
“네 그렇게 하시죠.”
나와 렌은 저택에서 나왔다.
페나와 엘리시는...
“그럼 저는 여기 남아서 영주님을 도와드리도록 할게요.”
“나도 페나랑 같이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전언으로 말해!”
우리는 그대로 용병 길드에 갔다.
그리고 페나가 준 돈과 우리가 모았던 돈을 꺼내서 접수처에 올려놨다.
“이...이게 무슨...”
“이 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용병들 전부 고용해주세요. 임무는 2일 뒤 시작이고 내용은 마물 사냥입니다. "
용병은 돈을 받으면서 자신의 몸을 사용해 대신 일을 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곧 재산이다.
용병들은 이렇게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싸움이 있다면 아무리 성에 정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위해 도망갈 것이다.
그래서 난 이들을 돈으로 붙잡아 둘 것이다.
용병들은 보통 평범한 병사들보다 실전 경험이 많고 마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에 병사들보다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럼 렌 잘 부탁할게.”
“어! 잘 준비하고 있을게.”
용병들은 렌에게 부탁했다.
렌은 어렸을 때부터 용병 일을 해온 베테랑이었으니까 실력 있는 용병들을 잘 뽑을 수 있겠지.
우리의 돈에 한계가 있었고 이 일은 위험한 일이니 렌이 심사를 봐서 뽑는 형식으로 진행할 것이다.
약한 용병이 이 임무를 하겠다고 해봤자 목숨을 잃으러 가는 불나방에 불과할 거다.
그리고 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라 마물을 상대하기 좋은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거름망이 필요했다.
마물이랑 싸우는데 암살자 같은 용병은 필요 없으니깐 말이다.
렌을 용병 길드에 두고 나는 엘로아의 신전으로 향했다.
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엘리시 밖에 못 도와준다고 한 걸 보면 엘로아도 바쁠 것이다.
난 엘로아를 만나기 위해 엘로아의 신전에 가는게 아니다.
엘로아가 지금 나의 대리신 역할을 맡고 있기에 엘로아의 신전에 가는 것이다.
덜컹.
나는 엘로아의 신전에 들어갔다.
신전 안은 매우 조용했고 기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작게 들렸다.
한 신관이 나에게 목례를 하며 다가왔다.
“기도하러 오신 거면 그냥 자리에 앉아서 하시면 되고 다른 용무가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그냥 기도하러 온 거에요.”
그 신관님은 비어있는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그럼 기도해볼까.
내가 원하는 건 엘로아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엘로아의 집무실에 있는 어떤 사람을 찾으려는 거지.
나는 복수의 신 로엔이다. 내 담당 천사. 거기 있지? 혹시 이 기도 들으면 나한테 찾아와.
내가 찾는 건 내 담당 천사였다.
엘로아가 내 일을 하고 있으니 내 담당 천사는 엘로아를 보좌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엘로아한테 기도를 올리면 담당 천사가 나에게 찾아오겠지.
엘로아나 다른 사람이 내 기도를 듣는다면 그 천사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더 기도했다.
그저 이건 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기도.
아무도 죽지 않고 전투를 끝낼 수 있게 해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