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3 지켜내다.
* * *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병사들의 함성도 마물들의 괴성도.
중심을 잡기도 애매하다.
나는 리비아의 팔을 내 어깨에 있는 뱀에게 맡겼다.
귀가 다치면 제대로 서있지 못한다는 소리가 이런 이야기인지 싶었다.
마법을 사용해서 대충 중심을 잡고 전장으로 향했다.
마물들에게 사용하려던 실현을 사용해버렸다.
리비아에게 큰 피해를 줬다는 건 희소식이었지만 이대로 우리 또한 큰 피해를 입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계획대로 하려면 실현으로 얻은 힘을 이용해 최대한 마물을 줄여야한다.
다행인 점은 리비아가 사용했던 소닉 웨이브가 마물에게도 영향이 끼쳤다는 점?
렌이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에서 소닉 웨이브까지 터졌더니 거의다 정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저 멀리 거인이 끌고 있는 한 마차가 오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위에 있는 건 리치였다.
어떻게 보면 리치 하나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전장에서 리치는 최악이다.
우리가 죽인 상대, 적에게 죽은 아군들 전부 적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런 리치에게 우리는 극상성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교황과 신이 있으니까.
로젤리아. 준비해놨던거 꺼내서 나눠줘.
알겠습니다.
다행히 고막이 나가도 전언은 날릴 수 있는지 로젤리아와 대화가 되었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거라!!! 데스 라이즈(death rise)!!”
리치의 말이 끝나자 죽어있던 고블린들이 좀비가 되어 일어났다.
땅 속에서는 해골들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죽였던 모든 적들이 다시 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페나나 우리가 공격하더라도 막기 힘들 수도 있는 양이었다.
아무리 상성인 싸움이더라도 수가 많으면 우리도 상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
내가 로젤리아에게 준비시켰던 것은 바로 성수.
원래 병사들 치료용도로 사용하려던 의도가 컸지만 언데드가 나온다면 더 좋았다.
성수는 언데드에게 치명적이었으니까.
아마 리치가 마지막이겠지.
성을 마무리하려는 용도로 리치를 불렀던 것 같았다.
중반부에 리치가 나온다면 나나 엘리시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테니.
리비아의 생각이 보이는 배치였다.
아마 본인이 나와 엘리시를 쓰러뜨린 후 리치로 마무리할 생각이었겠지.
저 리치는 그럼 내가 없애고 나머지는 성수로...
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내리던 비를 언데드들이 맞더니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
“크아아아아!!!”
리치도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뭐여.
설마...
나는 하늘을 봤다.
엘리시가 사용했던 기술은 ‘축복의 비’.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서는 약한 성수가 내리고 있었다.
원래면 우리 병사들의 작은 상처를 치료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겠지만허접한 몬스터로 만들었던 좀비와 스켈레톤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약한 성수 가지고도 죽일 수 있었다.
“다행히 엘리시가 한 건 해줬네...”
성벽에 있는 병사들도 어리둥절한지 성수를 들고 움직임을 멈췄다.
아무 짓도 안했는데 저절로 쓰러지고 있는 적.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엘리시도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저 신은 자기가 기술을 사용하고 몰라하는 거야??
"됐다..."
나는 리치에게 다가갔다.
저 언데드들은 알아서 자멸할 분위기였기에 마지막 상대를 없애러 갔다.
“끄워어어어!!!”
가까이 가보니 그 앞에 있던 거인도 언데드였던 것 같았다.
부패한 듯한 신체 부위가 많이 보였다.
“엄청 크네...”
거인은 내가 있는 걸 눈치챘는지 나를 밟으려고 했다.
미쳤나...
지금 소리가 안 들릴 뿐이지 실현된 상태였다.
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거인의 발이 내 근처로 오자 발이 불타 사라졌다.
하늘색 불이 붙어 점점 몸으로 옮겨 붙었다.
신은 신성력의 근원.
신성력 그 자체다.
감히 죽음을 거부한 녀석이 신에게 손을 대려고 그래?
손이 아니라 발이긴 한데 뭐 어쨌든 저 녀석들에겐 최악의 상성이다.
거인의 발이 불타 쓰러지려고 하자 리치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리치가 화났는지 입을 뻐끔거리며 무슨 말을 했다.
“뭐라는거야? 힐!!”
그러자 리치는 고통스러운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고통에 몸 부림 쳤지만 최후의 반항이라도 하려는지 나에게 손을 뻗었다.
마법을 쓰려는 건가.
“힐!! 힐!! 힐!! 힐!! 힐!!”
내가 힐을 난사하자...
“녹았네...”
그냥 뼈도 남지 않고 녹아내려버렸다.
싸움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실현 시간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려는 건지 내 어깨에 있던 두 마리의 뱀이 나 볼에 얼굴을 비볐다.
“너희도 수고했어.”
뭐라도 시켜볼 걸 그랬나...
뱀들의 능력을 못 본건 아쉬웠지만 더 실현을 하고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실현을 풀었다.
“끝났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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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발 꿈!”
그냥 왠지 이러고 일어나야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일어났다.
설마 진짜 꿈은 아니겠지?
“잘잤어?”
렌이 내 침대 옆에 앉아 컵을 들고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소...소리가 들린다!
분명 고막을 다쳐서 소리가 안 들렸던 거 같은데...?
이 진짜... 그렇게 힘들었는데...
“아이씨... 진짜 꿈이면 어떡해...”
“꿈?”
그래도 다행인 점은 꿈에서 승리했다는 거다.
아니 꿈이라서 이긴건가...
그래도 이 희소식을 렌에게 알려줬다.
“렌 내가 꿈을 꿨는데 리비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시뮬레이션 끝냈어!”
“풉... 그럼 이건 뭔데.”
렌은 어떤 팔을 들었다.
어? 하나 둘... 셋?
저건 렌의 팔은 아닌...데?
“우왁!!!!”
나는 놀라 침대에서 떨어졌다.
“후후... 뭐하냐...”
“그거... 혹시...”
“맞아. 너가 자른 리비아의 팔.”
승리...했다.
“아 로젤리아가 슬슬 돌아가야 될 것 같다고 해서 먼저 갔어.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그럼 우리 이긴...거지?”
다 꿈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말에 렌은 꽃이 피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빵긋!
“완승이야. 로에나.”
꿈이 아니다...
완승.
완전한 승리.
성을 지키는데 성공하고 리비아에게 큰 피해까지 줬다.
그리고 나의 동료들을 모두 지켜냈다.
“흐윽...”
“후후... 이렇게 기쁜 날에 왜 울어.”
“우...우는 거 아니야... 그냥 너무 기뻐서...”
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밖에 봐.”
밖?
나는 흐르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일어나서 밖을 봤다.
“어! 여신님이다!!!”
“여신님이 일어나셨나봐!!!”
“여신님 감사합니다!!!!!!!!!!!!!”
밖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반겨줬다.
본인들을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인사.
“내가... 이 사람들을 지킨 거구나...”
모두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환호성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으...으아앙...”
나는 그들을 계속 보고 있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렌은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토닥거려줬다.
“너는 이들의 영웅이자, 최고의 신이야.”
“으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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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신들... 죽일 거야... 다 멸망시켜버릴 거야...”
한 의자가 놓여있는 어두운 공간.
거기에는 고통을 호소하며 증오 만을 뿌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리비아.
엘리시가 낸 상처는 크지 않아서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있었지만 로엔에게 잘린 팔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피가 나오지 않게 상처를 막아뒀지만 상처에 하늘색 불길이 리비아를 고통스럽게 했다.
“감히... 감히... 하찮은 신 주제에...”
그녀의 눈이 증오에 물든 것 같이 충혈되어 로엔과 엘리시에 대한 욕을 내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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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 그럼 어디로 갈까?”
“코엔으로 가야죠...”
피곤하네...
예전에 자주 못 만났을 때가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엘리시와 로엔은 사제장에게 큰 피해를 준 것으로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 공적에 대한 보상으로 엘리시는 휴가 5년을 받았다.
사실 신계에서는 바쁜데 엘리시가 방해할까 두려워 준 휴가였지만 엘리시는 처음으로 본인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다.
엘리시는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평범한 신이 이런 공적을 세웠다면 휴가 500년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계에서 내린 결론.
'엘리시니까... 5년.'
신계에 있는 신들은 모두 로엔의 뛰어남에 감탄할 뿐 엘리시는 관심 밖이었다.
로엔은 아직 유희 중이니 그에 대한 보상은 광신 사건이 정리되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엘리시는 페나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페나는 슬슬 엘리시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되었다.
굉장히 귀찮은 신님이라는 걸.
‘그래도 나의 신님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엘리시에게 미소를 지었다.
엘리시는 그런 페나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 발걸음을 옮겼다.
페나는 어린 나이에도 의젓하게 엘리시를 챙기며 다시 코엔으로 향했다.
‘언니 보고 싶다...’
자신이 로엔의 사제였다면 어땠을 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본인이 없으면 엘리시를 누가 챙겨줄까 싶어서 그런 생각을 관뒀다.
@
내가 우는 것을 멈추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렌은 그냥 웃으면서 나를 기다려줬다.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 없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명 이 사람들을 구했다는 게 기쁜 것은 맞다.
하지만 다 끝난 게 아니다.
카론을 만나러 가야 한다.
영주나 영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런 시간도 아까웠다.
그런 건 다 끝나고 해도 된다.
“렌 바로 가자.”
“그래.”
우리는 수도로 향했다.
대체 수도에 무슨 일이 있는 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긴 했지만 그 일은 다른 신들에게 맡기고 난 내 역할을 다 할 뿐이었다.
‘카리온, 페르세스 믿고 있을 게.’
나보다 더 뛰어난 두 신이니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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