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47 교황 즉위 준비.
* * *
“오랜만이네요.”
“아이고 수행원님 오랜만입니다!”
아침이 돼서 우리는 고자 남작을 찾아갔다.
“음...”
물론 에레보스도 같이.
에레보스는 그 고자 남작을 빤히 보면서 턱을 매만졌다.
남작은 진짜 착해지기라도 했는지 처음 보는 에레보스와 렌에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우리가 갑이라서 그런 건가?
“남작 내가 준비해달라는 거 다 준비됐어?”
“물론입니다!”
남작은 카론에게 지도 하나를 넘겨줬다.
“정말 어렵게 얻은 지하 감옥 지도입니다.”
감옥에 굳이 지도가 필요한가 싶었는데 막상 지도를 보니 필요한 게 확실했다.
복잡하게 미로 형식으로 이루어진 감옥이었다.
탈출을 막기 위해서인지 중간중간에 함정도 보였다.
“흐으으으음...”
“저... 왜 그러시는지...”
우리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에레보스는 계속 남작을 쳐다봤다.
저 남작한테 관심 있나?
왜 저리 빤히 쳐다봐?남작도 부담스러운지 계속 에레보스의 눈을 피했다.
“야 너.”
“네?”
“너 내 신전에다가 이상한 짓 한 적 있냐?”
에레보스!!!!!
저 신 자기가 에레보스라고 밝힐 생각인 거야?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렌이 먼저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아... 아저씨!!!”
렌은 바로 에레보스에게 달라붙었다.
“아저씨 저랑 할 이야기가 있잖아요...”
“너랑? 내가?”
에레보스는 어이없다는 듯 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가 본인을 가리켰다.
“본...본인 신전이라고 하시면 어떤 신전을 말씀하시는지...”
남작은 당황하며 에레보스에게 물었다.
“보스!!!!!! 잠깐 나랑 바람 쐬고 오자!!! 오늘 날씨가 좋아!!!”
보스는 에레보스의 보스를 따서 지었다.
뭔가 마신의 보스이기도 하고 에레보스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지은 별명이다.
내가 그렇게 부르자 에레보스는 방긋 웃으며 나를 따라나왔다.
나는 뒤를 돌아 에레보스를 봤다.
마치 화났다는 표정을 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보스! 신인 걸밝힐 생각인 거야? 갑자기 자기 신전을 부쉈다고 하면 어떡해!”
“음... 뭐 숨기고 밝히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어서... 그런 관점이 있었네...”
에레보스는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설마 유희해본 적이 없는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지금 몇십억 년을 살아왔는데...
유희라는 걸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의 삶이 질려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희에서 신이라는 걸 밝혀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이라는 사실을 즐기려면 그냥 유희를 안 나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
“에레보스... 유희 처음이야?”
“어. 처음인데? 휴가도 이번에 처음 써봤어.”
이럴수가.
“수...수습 기간은?”
“나는 그런 거 없었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는 중간계도 없었어.”
그러네.
그럼 유희 나온 지 몇 달밖에 안 된 나보다도 모르는 거다.
뭔가 우월감이 들긴 하는데... 기뻐하기 전에 불안감이 더 커졌다.
같이 다니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
“일단 다시 들어가자. 남작한테는 그냥 착각한 거 같다고 해.”
“알았어.”
순종적인 에레보스라...
누구도 보지 못한 모습이겠지.
뭔가 새롭긴 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느낌이라 불안했다.
우리는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 렌이 나에게 왔다.
“일단 남작한테는 대충 얼버무려놨어.”
“알았어.”
여기에서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
그냥 빨리 도망가야지.
용건도 끝났고.
에레보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우리는 지도를 챙기고 슬슬 갈 준비를 했다.
“저... 수행원님?”
남작은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슬슬 고쳐줄까?
요즘 착하게 사는 거 같은데.
카론도 도와줬고.
내가 남작을 보면서 고민을 했다.
“야 너 결혼했어?”
“그... 없습니다...”
“연인은?”
“없는...데요.”
그럼 고쳐줘 봤자 의미가 없잖아?
약간의 의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 왜 고쳐달라고 하는 거야?”
“어... 그게...”
생각해보니까 고쳐줘 봤자 나쁜 짓 다시 하라고 부추기는 꼴 아니야?
“너 결혼할 때 나 초대해. 그때 고쳐줄게.”
“결혼할 때요? 결혼하기 전에는 어떻게 하고요?”
“혼전순결이라고 그래.”
그냥 플라토닉 러브로 아내 만나봐.
매일 쾌락을 위해서 여자를 만날게 뻔히 보이는데.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선을 넘지 않았는가.
이 자식은 절차를 밟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그 말을 하고 가자 남작은 절망스러운 얼굴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남작에게 에레보스가 다가가 뭐라고 속삭이고 나를 따라왔다.
“에레보스 뭐라고 했어?”
“살아있는 걸 다행으로 알고 있으라고. 생각해보니까 쟤 너 강간하려던 녀석이잖아?”
“어 알고 있네?”
“방금 기억나서 죽일까 하다가 참았어.”
생각보다 평온하네?
그거 알면 난리 법석을 칠 줄 알고 말 안 했는데.
“아 그리고 자주 하나를 걸었어.”
“저주?”
“1년 안에 너가 안 고쳐주면 여자가 되는 거야.”
“뭐?”
...
잔인하네.
내가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기분을 잘 안다.
여자가 되면 남작의 지위조차 없어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착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는데 흑화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거 남작한테 좀 미안해 지는데...
온 힘을 다해서 도와줬더니 받는 건 여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아니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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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다.
정확한 상황을 알려면 우리의 상태에서는 한계가 있다.
한낱 용병들이 황제나 고위 귀족을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돌아다닐 이유도 없다.
잡초를 제대로 제거하려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계속 위에 있는 풀들을 제거해봐야 일시적인 방안일 뿐.
카론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제국 자체에서 광신도를 제거해버리면 외각에 있는 광신도들도 전부 제거되지 않겠는가.
목표인 마을 사람 찾기도 돌아다니면서 찾는 거보다는...
“제대로 교황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카론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정체를 숨기면서 돌아다닐 수는 없다.
카론은 교황이라는 직무가 있다.
내가 지워준 짐이긴 했지만...
“너가 부담스럽다면 교황이 아니라 그냥 사제로 내가 바꿔 줄 수도 있어.”
그게 더 편한 길일 수도 있고.
“아니... 그건 아니야.”
카론이 내 말에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제대로 싸워야 할 때가 온 거 같아.”
카론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는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서 싸울 수는 없지. 광신도들과 정정당당히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제대로 그 녀석들을 없애려면 제대로 싸워야겠지.”
“내가 계속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있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줄게.”
나는 카론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에레보스는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봤다.
“그럼 나도 도와주도록 하지.”
“엥? 도와주다니?”
“교황즉위를 하겠다는 거잖아. 거기에 필요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다른 신전들의 인정도 받아야 하는 것도 있고.”
“그런 것도 있어?”
처음 듣네.
그냥 나 교황이오! 하고 밝히면 되는 거 아니었나?
사실 교황 즉위니 그 안에 있는 정치질 같은 건 잘 몰랐다.
“어차피 신생 교단의 교황이니 아는 신전도 없을 거 아니야? 내 신도들한테 인정하라고 말해 놓을게.”
“고마워! 에레보스!”
“그냥 아까처럼 보스라고 불러.”
은근히 보스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3개 신전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거든? 하나는 됐고. 페르세스나 엘로아한테 말하지그래?”
“그래. 그러면...”
“아니. 로엔 이건 내 힘으로 해볼게.”
“어?”
“언제까지 너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잖아. 내가 한 번 다른 신전한테 인정을 받아볼게.”
굳이 그래야 할까...
편한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내가 걱정되는 눈으로 보자 카론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할 수 있어. 혹시 즉위식이나 그런 게 준비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뭐 네가 하기 나름이긴 해. 돈 같은 건 내가 대주도록 하지. 주변에 지인이 있어서 도움받을 수 있을 거 같군.”
“지인?”
“아 너는 아마 모를걸?”
유희 나와 있는 신인가?
내가 아는 신이 적긴 해서 모를 확률이 높았다.
아는 신들은 전부 어디 있는지 아니까.
“그럼 최대한 빨리해주실 수 있나요?”
“너가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2주일 내로 준비해주지. 내가 인정해주는 시험도 이걸로 하겠다.”
“네! 좋아요. 로엔 덕으로 그냥 인정받는 건 저도 별로 기분이 좋지만은 않거든요.”
“그럼 어디 신전으로 갈 거야?”
내가 카론에게 물었다.
“로엔. 이건 나 혼자서 해볼게.”
“아니 혼자는 아니지.”
렌이 앞으로 나섰다.
“나도 도와줄게.”
“고마워 렌.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렌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뭔가 따돌림당하는 느낌인데...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크게 성장한 모습에 믿음직했다.
처음에는 뭐든 나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럼 로엔은 할 일이 없어 보이니까 나랑 같이 다니자.”
“어? 어디 가게?”
“즉위직 준비. 쟤 보다 우리가 더 바쁠지도 몰라. 바로 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