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51화 (51/138)

〈 51화 〉 #50 빛의 신관장

* * *

“로에나 어디가?”

“에... 보스!!”

내가 건물에서 나오자 에레보스를 만났다.

나는 에레보스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루카스가 잡혀갔다고?”

“어 지금 깽판이라도 한 번 치러가려고.”

“깽판 쳐서 어떡하게.”

“어? 맞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내 생각에는 별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은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카론의 즉위식을 통해 정당성을 만드는 게 먼저잖아. 너가 가서 깽판을 쳐봤자 그 녀석들에게 빌미를 줄 뿐이야.”

“하지만...!”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하하... 여기서 들으니까 어색하네.”

지구에서만 듣던 말을 여기서 듣네.

뭐 신들은 지구에 대해서도 아니까 저런 말을 알고 있겠지.

“일단 들어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자고.”

나는 에레보스와 다시 건물로 돌아와서 엉망이 된 건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단 사람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같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로드도 돌아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트집이었습니다.”

“미안해요... 저희 때문에...”

“아닙니다. 이 자식들이 쓰레기인 거지 로엔님의 잘못이겠습니까.”

로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자식 가만두지 않는다...”

내가 혼잣말을 하자 로드가 정색하고 나에게 말했다.

“로엔님. 그 자식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네?”

“로엔님이 직접 안 나서셔도 된다는 소리입니다.”

아주 살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복수는 직접해야 의미가 있죠.”

에레보스는 엉망이 된 서류 쪼가리들을 들고 로드에게 말했다.

“그것보다 서류들은 어떻게 하게. 엉망이 된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제일 급한 게 즉위식이니 즉위식 관련 서류는 최대한 복구하고 해야죠...”

로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며칠 동안 상단 사람들이 만들어 놨던 서류들을 다시 만들어야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상단 사람들하고 로드는 새로 서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에레보스는 그런 로드에게 가서 몇 개의 서류를 들었다.

“나하고 로에나도 돕겠다.”

“네? 정말요?”

로드가 깜짝 놀랐다.

“로에나도 나중에 서류 작업을 해야 할 텐데 미리 이런 서류작업들 배우면 좋겠지.”

에레보스가 날 보았다.

“어차피 즉위식까지 해야 할 일도 없는데 도와줄게요!”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로드 옆에 붙어서 엉망이 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로엔님 서류 작업 같은 거 잘하시는군요.”

“하하... 에레보스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에레보스는 자리 하나를 잡고 엄청난 속도로 서류를 처리했다.

서류 자체가 신의 일과는 다른 종류들의 서류였지만 몇 억년 동안 서류를 처리했던 노하우는 어디 안 가는지 완벽한 서류처리였다.

나는 로드와 에레보스가 처리하는 서류들을 정리하고 보조해줬다.

시간이 남을 때는 서류처리도 도왔지만, 로드나 에레보스에게 비하면 속도가 너무 느려서 도와주는 형식으로 했다.

그렇게 서류를 처리하다 보니 벌써 즉위식 2일 전.

다행히 즉위식의 준비는 성공적이었다.

가장 불안한 점은 아직 카론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즉위식 준비가 끝나도 카론이 신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로엔 지금이라도 페르세스랑 엘로아한테 연락해두는 건 어때.”

“...”

나도 불안한 마음에 그럴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뢰.

카론이 성공할 거라는 신뢰.

나는 그저 믿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내일까지 카론이 안 오면 둘한테 연락해.”

에레보스가 그런 말을 하고 가려하자 상단 건물에 두 명이 들어왔다.

“렌! 카론!”

렌과 카론은 흙먼지로 엉망이 된 옷을 입고 상단에 들어왔다.

“하하... 어떻게 시간 맞춰서 왔어.”

카론은 주머니에서 3개의 종이를 에레보스에게 넘겨줬다.

“풍요의 신전, 비의 신전, 빛의 신전 3개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빛의 신전?”

에레보스와 나는 깜짝 놀랐다.

풍요의 신전은 원래 마을이 섬기던 신전이니 그렇다고 치고...

비의 신전이야 페나와 엘리시가 있고...

그런데 뜬금없이 빛의 신전이 나온다고?

빛의 신전은 규모가 가장 큰 신전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신관장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아무리 카론이 교황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신전의 교황이니 제대로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을 텐데.

인정까지 받고 왔다는 소식이 놀라웠다.

나도 카루아의 얼굴은 예전에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는데...

나와 친한 신도 아닌데 어떻게 받은 거래.

“수고했다. 모래 즉위식이 있으니 편히 쉬어라.”

에레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로엔 네 교황 쓸만하네.”

에레보스는 그렇게 말하고 상단 건물 위로 올라갔다.

“카론!!! 어떻게 된 거야!!”

“힘들어서 죽는지 알았어...”

“으아...”

렌과 카론은 몸에 힘이 빠졌는지 둘 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빛의 신전은 어떻게 된 거야?”

“운이 좋았지...”

“정말 농사지을 줄 아시네요.”

카론은 밭을 갈고 있었다.

옛날에 농사를 짓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느낌.

내가 직접 농사를 많이 짓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자주 봤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았다.

그거에다가 신체 능력도 좋아서 금방 농사가 끝나갔다.

“그런데 다른 신전의 인정도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렇긴 한데... 하하...”

카론은 하던 것을 멈추고 어색하게 웃었다.

“음... 그럼 저가 신전을 소개해 드릴까요? 제 친구도 신관이긴 한데...”

“어 정말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겠는데?

카론은 풍요의 신관장이 말한 약속 시각과 장소에 갔다.

거기는 카페였다.

이런 곳을 처음 와보는 카론은 자리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드레스나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본인의 옷을 보니까 너무 초라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카론 앞에 한 여성이 인사를 건넸다.

금발을 하고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카론보다 한두 살 많은 정도?

얼굴에서도 기품이 느껴졌다.

나쁘게 말하면 거만해 보였고 좋게 말하면 자신감 넘쳐 보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풍요의 신관장이 하나 실수한 게 있었다.

이 사람이 어떤 신전 사람인지 누구인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저... 누구시죠?”

“네? 에실한테 못 들으셨나요?”

그 여성은 놀란 듯 물었다.

“하하... 네...”

“에실이 좀 덜렁거리기는 하는데... 저가 죄송하네요...”

여성은 생긴 것과 다르게 예의 발랐다.

“아닙니다. 저는 복수의 신전 교황인 카론이라고 합니다.”

“...? 교...교황이요?”

아마 이 사람도 제대로 듣지 못한 거 같았다.

“아... 전 빛의 신전 신관장인 셀레네라고 합니다.”

“네...? 빛의 신전이요?”

서로 어리둥절한 채 바라봤다.

빛의 신전 신관장이라고 하면 작은 교단의 교황보다도 힘이 강한 정도이다.

빛의 신은 비공식적으로 제국의 국교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바쁜 사람이 친구가 소개해줬다고 이렇게 나왔다고?

“조금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저가 곧 즉위식을 할 예정이라서 인정을 받으려고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아 그 소식은 들었어요. 요즘 제국에서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잠시만... 인정이요?”

셀레네는 처음 들었다는 듯한 반응을 했다.

“혹시 어떤 거 때문에 나오셨는지...”

“그...그게 저가 진짜 그런 사람은 아니긴 한데... 친구가 꼭 한 번 만나보라... 아니 그게...”

셀레네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 손사래를 쳤다.

대체 뭐 때문에 나왔길래...

셀레네는 얼굴을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실이 남자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저가 슬슬 혼기가 다가오다 보니... 원래 저가 이런 거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셀레네는 횡설수설 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를 소개시켜... 큼...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이런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고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신관이라고 해서 결혼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원래 높은 신관이면 정략결혼을 하는 게 보통이었긴 했지만, 얼굴이 저렇게 빨개진 사람에게 그런 걸 캐물을 정도로 내가 심술궂지는 않았다.

갑자기 그런 말을 듣고 셀레네를 보니까 엄청나게 예쁘게 꾸미고 온 거 같기는 했다.

“흠흠...! 일단 그럼 일 이야기를 하죠! 저희 신전의 인정을 드리고 싶기는 한데 그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증명을 하셔야 해요.”

“네. 아무거나 시켜만 주시면 해 보이겠습니다.”

카론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저가 생각해둔 게 없어서 내일 다시 저희 신전에서 만나시는 건 어떤가요?”

“네. 상관없습니다. 제 즉위식이 이제 1주 정도 남아서 그 안에 끝낼 수 있는 걸 내주신다면 가능합니다.”

“네... 근데 진짜 죄송한데...”

“네?”

“저...저 에실이 예약해둔 음식점이 있어서 같이 드시고 가실래요...? 저가 진짜 흑심을 품거나 그런게 아니라...”

“...풉...”

부끄러워하며 말하는 그녀를 보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흐잉...”

내가 웃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저가 지금 복장이 이런데도 괜찮을까요?”

"겉...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날씨는 점점 추워져 겨울이 오고 있었지만, 카론에게는 봄이 오는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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