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54 엇갈리다.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아닙니다... 그 그럴 수 있죠...”
신관장은 무너진 신전을 보며 주저앉았다.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긴 했는데 이게 그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누가 남에 신전 와서 이렇게 깽판을 쳐놓겠어.
“배상해 드릴게요...”
로드가...
나는 이런 거 배상해 줄 돈 없어...
이런 건물 다 짓는데 얼마가 들려나...
우리는 배상 약속을 하고 상단으로 돌아갔다.
그 소리를 듣고 로드가 뒷목을 잡았다.
"흐으으윽... 내 돈이..."
"대...대의를 위해서 희생한다고 생각해주세요!"
살짝 양심 없는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
로드가 정신을 차린 것 같자 우리는 이리나가 한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이리나가 지하감옥에 가라고 한 소리는 의미 없는 말 아니야?”
그렇다.
카론이 며칠 뒤 황성에 가면 어차피 지하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다.
그런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가 지하감옥에 가야 할까?
“어떤 큰 그림을 보고 있겠지.”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는 모르겠다.
단기적으로는 분명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겠지.
이미 지하 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니...
“가자.”
카론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리나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공작이 어떤 일을 벌일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잖아.”
카론의 말이 맞다.
우리는 언제나 훼방 놓는 쪽이었다.
그래서 광신도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도 있고.
“그래 공작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때리자고.”
공작 저택에 가서 공작을 때려잡는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하 감옥은 다르다.
들킨다면 좋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명분이 있다.
그 아래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중이고 그 중심은 공작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
들키면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하면 된다.
뭐 제일 좋은 건 안 잡히는 거겠지만...
“그럼 오늘 밤 어때? 굳이 공작에게 시간 줄 필요 없잖아?”
“좋아 근데 둘이서 가?”
렌이 서운해할 텐데...
서운이라기보단 걱정이겠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자 로드가 무언갈 눈치챘는지 말을 꺼냈다.
“렌씨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이요?”
“저가 광신도 제단에 관련해서 알아볼게 있어서 부탁 좀 했습니다.”
제단 관련 조사?
그냥 공작을 잡으면 제단은 차례로 없어지는 거 아니었나?
뭐 로드도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니까.
이제 슬슬 해가 저물 때였다.
오늘 밤에 간다면 준비를 해야겠네.
“일단 알겠어요. 저희가 갔다 올 때까지 못 오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 혹시 한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허허... 저에게 거절권이 있겠습니까? 어떤 부탁이십니까.”
“카론이 갑자기 없어지면 공작이 반응할 수도 있으니 신전에서 카론인 척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공작은 분명 어떤 형태로든 카론을 보고 있을 거다.
그런 카론이 없어진다면 어떤 의심을 할지도 모르겠지.
미로로 이루어진 감옥에서 갇힌다면 골치 아파지니까...
“네. 그럼 전 지금 바로 신전에 가겠습니다. 좋은 결과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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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다.”
공작은 암살자들과 광신도 몇을 모았다.
사실 공작은 처음부터 카론과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자기가 시간만 끌면 이기는 승부.
물론 대화하면 정말 잠시는 시간을 끌 수 있다.
하지만 끌어야 하는 시간은 조금 달랐다.
카론이 황성에 들어가는 때를 늦춰야 한다.
대화하면 그 시간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그저 몇 명 희생해서 교황에게 피해를 줘 황성에 들어오는 시간만 늦춘다면 자신의 승리다.
공작이 정치계에 몸 담근지 몇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고 여러 유형을 봤다.
카론의 행적을 보면 돈과 명예 같은 걸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신념을 따라가는 사람.
제일 다루기도 힘들고 적으로 만난다면 정말 골치 아프다.
그런 사람과 정치적으로 싸울 바에 그냥 묻어버리는 게 더 편하다.
“된다면 죽이는 게 제일 좋고 최소한 의식불명에서 큰 상처를 입히는 거다.”
그들도 우리가 움직일 것을 알고 있겠지.
교황 정도 되는 거물을 잡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일단 준비한 거는 여러 가지 독과 15명의 프로 암살자.
거기에 시선을 끌 광신도 5명.
정면으로 광신도가 공격해서 초짜 신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암살자들이 독으로 교황을 노린다.
신이 독을 치료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공작이 노리는 건 일주일 뒤에 있는 청문회를 이 주일 정도로 미루는 정도.
죽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우리의 신을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
광신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실 이 녀석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어차피 다 죽겠지.
“암살하기 좋은 날씨군.”
구름이 달을 가렸다.
그리고 그들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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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 성물 챙겼지?”
“당연하지.”
“그럼 가자.”
우리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황성의 벽을 넘었다.
운이 좋게도 날이 흐렸다.
구름에 달빛이 가려져 몸을 숨기기 더 좋았다.
이런 닌자 같은 일은 처음이어서 걱정했었지만, 날씨가 도와주는 덕분에 무난하게 침투할 수 있었다.
똑...똑...
건물 근처로 오자 비도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뭔가 으스스하네...”
내가 작게 혼잣말하자 카론이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앞에 누가 있는 건가?
앞을 보자 경비병 2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슬슬 경비병들이 보이는 게 지하 감옥에 가까이 온 듯했다.
지하 감옥은 경비대 건물 지하에 있다.
그래서 주변에 경비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킨다는 의미로 돌아다니는 사람 외의 사람도 전부 경비병이니...
“빛의 망토.”
카론의 기술로 우리의 모습을 가렸다.
마법으로 감지한다면 들키겠지만, 사람의 육안으로는 못 찾겠지.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이제 들어가는 입구가 문제다.
이래 봬도 제국의 최고 감옥이다.
그런 감옥이 허술할 리가 없다.
정보가 없고 지키는 사람들이 적어서 허술한 감옥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게 더 무서운 법이다.
정보가 없다는 건 가본 사람은 있어도 빠져나온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도 안쪽의 지도만 있지 그전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습을 숨긴 채로 경비대 건물에 들어갔다.
안에 떠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평범한 경찰서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지하까지 바로 가도 될 것 같은데?
바로 가자.
우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긴 계단이었다.
보통 이런 지하 계단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빛이나 횃불이 달려있는데 아무것도 달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이렇게 만든 거면 아래에 아무도 없다는 건가?
내가 계속 탐지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마법이 감지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발밑에 계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 빛나는 마법진이 보인다.
주변을 전부 밝히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불을 켜볼까?
잠깐만 켜보자.
“홀리라이트...”
나는 작은 불을 만들었다.
그러자 넓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 돌로 만들어진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에는 굉장히 복잡하게 그려진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곳 외에 어떤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문 만 열면 감옥인가?”
생각보다 간단한데?
“끝이 아니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마법진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였다.
아마 강제로 부순다면 위에 있는 사람들도 눈치채겠지.
나는 그 마법진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마법에 대해 잘 몰랐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마나 경로를 파악한다면 알 수 있다.
“5서클... 6서클...? 한 그 정도인 것 같은데?”
5,6서클 정도 마법사라면 그 시대에서 유명한 마법사가 될 정도이다.
시대를 풍미한 마법사 정도라면 7,8서클이겠지만 그 마법사들은 쉽게 움직이지도 않으니 감옥 만드는데 최대한을 투자한 거겠지.
나는 그 문에 손을 대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에레보스가 이런 잠금장치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마법은 마나가 공급되어야 하는 거 알지?
그렇지.
그럼 마나가 아니라 신력이 공급되면 어떻게 될까?
어... 신력이면 사용할 수 있지 않아? 신력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마신의 기운을 공급하면?
마신의 기운은 아예 마나나 신력 같은 기운과 완전히 근본부터 다른 기운이다.
마신 본인만 사용 가능한 고유 능력.
그냥 초능력과 가까운 능력이다.
고장 나나?
그렇지. 지구로 비교하자면 경유차에 휘발유로 넣는다는 느낌?
하하... 가끔 에레보스가 지구로 비유하면 뭔가 뭔가 좀 그래...
나는 그 마법진의 마나 회로에 내 기운을 넣기 시작했다.
에레보스가 말해준 비유대로 주유 건이 된 것처럼 쭉쭉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자 마법진에서 이상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과부화가 온 것 같이 빛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빛이 꺼져버렸다.
“후... 만땅 넣어 드렸습니다.”
“뭐?”
“아...아냐.”
우리가 그 돌 문을 밀자 자연스럽게 열렸다.
“그럼 가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