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60 셀레네
* * *
나는 카론에게 도서관 출입증을 받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전에 잠깐 대화를 나눴다.
“어... 혹시 가면 너가 아는 사람도 만날 수 있는데 괜찮아? 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불편? 내가 그렇게 생각할 만한 상대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데.
나는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알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빛의 신관장...’
수도에 있는 중앙 도서관은 빛의 신전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었다.
수도에 큰 도서관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중앙 도서관인 이곳.
하나는 황실 도서관이었다.
카론한테 말한다면 황실 도서관까지도 들어갈 수 있을 테지만 거기서는 진짜 불편한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
차라리 빛의 신관장인 셀레네는 같이 있을 만하지만 황제가 내 옆에 온다?
못 버텨.
아무리 내가 신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인간이었다.
너무 부담스럽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셀레네를 만나면 어때?
그래도 우리를 도와준 사람인데 반갑게 인사하면 되지!
로엔은 그렇게 본인이 한 일을 까먹고 도서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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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셀레네는 온갖 서류들에 치이고 있었다.
공작을 무너트린 것은 좋았지만, 그 이후에 이렇게 일이 많아질지는 몰랐다.
그래도 사람들을 구했으니까 기분 좋게 일 해야 하나...
“카론씨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셀레네는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혼잣말해놓고 얼굴을 붉혔다.
“미쳤나 봐...! 셀레네! 정신 차려!”
셀레네는 맨날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만 봐왔다.
그 외에 다른 젊은 귀족도 만났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만나도 자기 자랑만 하기 바빴고 배려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고아원 출신의 신관장이다 보니 다들 나를 낮게 대하는 태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운이 좋아 잘 태어난 거지 그 자리에서 노력한 거라곤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나도 운이 좋아 신관이 되었지만 신관장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 못지않은 노력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카론이 더 좋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한 교황.
카론을 조사해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신도들을 잡아 시민들을 구하고 여러 미담이 돌아다녔다.
그게 그저 소문이 아니라 직접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해준 증언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카론은 구원자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단시간에 큰 교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실들을 알아가니 더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 만난 것 외에도 몇 번 더 만나봤지만, 그는 소문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 자랑을 하기보단 나를 배려해주고 챙겨줬다.
신관장으로서 바쁘게 살아온 자신에게 처음 생긴 이성 친구였다.
물론 에실이나 다른 몇몇 신관장들과도 친했지만 이런 비슷한 느낌을 나에게 주는 이성은 처음이었다.
매일 이성을 만날 때면 일 이야기 아니면 본인 자랑만 하던 사람들과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주변에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는 거겠지.
...으득.
셀레네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것이 매력적인 사람에게 끌리지만, 그 매력적인 사람의 주위에 다른 사람이 꼬이는 건 싫다.
‘설마... 그 둘이 사귀는 건 아니겠지?’
셀레네는 저번에 로엔의 말이 생각났다.
뭔가 분위기가 장난치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장난치길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했고...
하지만...
너무 예뻤다.
여자의 적은 예쁜 여자.
아무리 둘이 그런 기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주위에서 꼬리만 살랑 흔들어도 남자들은 넘어가 버릴 것이다.
그에 비해...
셀레네는 거울을 봤다.
집무실에서 며칠 동안 서류만 봤더니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푸석해 보이는 피부와 대충 묶어놓은 긴 머리.
“흐으...”
셀레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그런 모습도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왔겠지만 자기 셀레네가 보기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기준이 로엔이다보니 그런 것도 있었다.
정말 초췌한 상태이기도 했고...
‘이 상태를 카론씨가 본다면 무슨 말을 할지...’
셀레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머리를 흔들었다.
'또 또 셀레네! 미쳤어? 갑자기 카론씨가 왜 나와!'
요즘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카론씨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이러지 말자라고 생각했지만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서류 처리나 해야지... 후...”
셀레네는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처리하려고 보았다.
하지만 딴생각을 하며 이틀 동안 내리로 서류 처리를 한 결과 서류는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서류를 대충 훑어보니 별로 중요한 서류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자꾸 딴생각만 드는데 산책이나 해야지...’
그렇게 셀레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 집으로 갔다.
셀레네는 몸을 씻고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냥 편안한 옷으로...’
셀레네가 옷 하나를 꺼내자 옆에 있는 옷이 눈에 띄었다.
아주 눈에 띄는 장식들이 달린 아름다운 옷.
‘저...저거 입고 카론씨나 만나러 갈까?’
카론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니까 카론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으... 진짜 미쳤나?”
카론씨도 바쁠 텐데 무슨...!
이런 파렴치한!!!
안 되겠어.
성서라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자...
셀레네는 도서관에 들어가 여러 성서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가 자리 하나를 잡아 그 성서를 읽고 있었다.
‘음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네.’
셀레네는 종종 성서를 읽으며 화를 가라앉혔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때나 혼란스러울 때 성서를 읽으면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자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아...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에 방해를 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인사를 건네온 상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셀레네는 당연히 교단 사람이나 자신을 아는 귀족 중 한 명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 앞에 있는 상대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로...로에나씨?”
“아 네... 얼굴이 보이길래 인사드렸어요.”
찬란한 은발을 하고 창가에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니 마치 여신님이 따로 없었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마치 로엔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간신히 가라앉힌 마음이었지만 그런 로엔의 얼굴을 보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으...아...”
“저 괜찮으세요?”
로엔은 걱정되는 얼굴로 셀레네를 빤히 바라봤다.
셀레네는 그런 로엔을 보자 어버버거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흠...흠... 괜...괜찮아요...!”
“무슨 책 읽고 계셨나요?”
로엔은 자연스럽게 셀레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 성서를 읽고 있었는데요...”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의 이름은 ‘근원’이라는 책이었다.
“근원... 그 책 재밌나요?”
“어... 나름 흥미롭네요.”
“음... 그래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로엔은 자신이 가져온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셀레네는 그런 로엔의 모습을 빤히 보다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저 조금 궁금한게 있는데요...”
“네?”
셀레네는 우물쭈물 거리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는 얼굴을 하고 로엔에게 말했다.
“카론씨하고... 무슨 사이세요?”
“카론이요?”
“네... 혹시...”
“혹시?”
“사귀신다든가...?”
“...크흡...!”
“에...?”
로엔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셀레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로엔을 쳐다봤다.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아...네?”
“그냥 동료고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도 없고요.”
셀레네는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이 커지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진짜죠?”
“네. 저가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요.”
“저... 저가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셀레네는 허둥지둥 짐을 챙기고 읽고 있던 책을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두려 했다.
“아 그 책 저가 읽어도 될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하하...아니에요.”
셀레네는 후다닥 도서관을 뛰쳐나갔다.
나오고 나서 카론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가는 도중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잠시만. 여자 친구가 없다고 이렇게 기뻐하면서 만나러 가는 게 맞는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미쳤나 봐!!!!’
그래도 이미 복수의 신전 근처에 왔으니 카론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셀레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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