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61 근원
* * *
“재미있는 사람이네~.”
도도한 얼굴에 비해 하는 행동은 귀엽네.
나는 셀레나가 가버린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카론의 색시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지만 저 정도면 커트라인 안 쪽인 것 같군!
마치 카론의 아버지가 된 마음으로 평가했다.
아니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나는 셀레네가 주고 간 책의 표지를 보았다.
“근원이라...”
나는 그 책을 펼쳤다.
목차를 보니 여러 근원이 적혀있었다.
차원의 근원, 세계의 근원, 힘의 근원.
나는 이 책을 보자마자 한 가지가 생각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역사나 근원이나 뭐 비슷한 의미 아니겠는가.
선조의 지혜를 한 번 본받아볼까?
나는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생각한 것보다 자세히 적혀있었다.
에레보스와 카루아, 즉 주신이 세상을 만들고 멸망시키려고 했던 것도 적혀있었다.
이 내용을 중간계에 숨기는 정보는 아니었기에 이렇게 적혀있어도 별 신경쓸 내용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이야기다.
이런 걸 적어놓은 책이 있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난 후의 이야기가 내가 아는 사실과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주신이 에레보스를 봉인시키고 한 존재를 남겼다.
그 존재는 지켜보는 자.
하지만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기록할 것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데.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기록하는 존재를 남긴 거지?
일단 계속 페이지를 넘겨가기 시작했다.
세계의 근원에는 여기 차원의 역사가 적혀있었다.
그렇게 흥미가 가는 내용이 아니었기에 다음 목차로 갔다.
진짜는 여기지.
나는 힘의 근원이라고 크게 적혀있는 페이지를 봤다.
이 목차에는 힘의 종류가 먼저 적혀있었다.
마법이나 다른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력.
사람을 치료하거나 축복할 수 있게 해주는 신성력.
정령을 소환하거나 정령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친화력.
마력과 신성력은 자주 봤지만, 친화력은 들어본 적만 한 능력이다.
뭐 정령왕이라든지 정령계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세상의 자연을 다루고 돌보는 존재.
그게 정령이다.
그들의 왕인 정령왕은 모든 차원의 자연들을 돌보고 있다.
사람 같은 지성체의 갈등이나 여러 가지 일들은 신들이 돌봤지만 동식물 같은 자연에 관한 것들은 전부 정령왕들이 돌본다.
카리온이 말하기론 돌본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지만...
정령왕은 사람들이 잘살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기분대로 자연이 움직인다.
그렇다고 정령왕들이 또라이는 아니었기에 기분 나쁘다고 갑자기 도시 하나를 멸망시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보통 그런 심한 자연 재해는 사람들의 인위적인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정령들을 이용하려면 인간에게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자연을 이용하는 힘.
그게 정령술사들의 능력이다.
마치 마법을 쓰는데 마력을 쓰는 것처럼 친화력이라는 연료가 있어야 정령을 불러내고 정령이 중간계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뭐 어쨌든.
우리는 힘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신관들에게 신력이라는 기운을 듣게 되었다.
신은 그 기운을 사용해서 마법이나 신성력을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신력이라는 능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뭐?”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육성으로 소리가 튀어나와버렸다.
그러자 저 멀리 있는 사서분이 나를 보며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죄...죄송합니다...”
나는 목례를 하며 작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신력을 만든다고?
신력을 만들 수가 있어?
나는 책을 더 읽어갔다.
우리는 신성력과 마력을 섞어보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섞이지 않았다.
그렇겠지.
신성력과 마력.
섞일 수 없는 기운이다.
마법사가 신의 문양을 받을 수 있지만, 신관이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세계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다.
내가 앞에 있는 내용들을 안 봤다면 사람들이 장난으로 썼다고 치부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내용을 생각한다면 뭔가 일리 있는 생각이니까 해본 일 아닐까?
우리는 이어서 친화력과 마력, 신성력을 차례로 섞었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마지막엔 친화력, 마력, 신성력 이 세 개를 섞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했다.
“뭐어어어어어어어???????”
도서관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까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던 사서분이 내 앞에 와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미소였지만 살벌한 눈빛이었다.
“그... 가...갈게요...”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근원’이라는 책을 대여하고 도서관 앞에 있는 벤치로 갔다.
그리고 이어서 책을 읽어갔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분명히 성공했다.
진짜 신력을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신력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 그 세 기운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기운인 것은 확실했다.
그 뒤에 내용들을 읽어봤지만 이런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있지는 내용이 적혀있지는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서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왜 이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거지?”
분명 도서관에 존재하는 책인데 이런 내용을 말해준 사람은 신 중에서도 없었다.
“거 참 어이가 없네...”
신력을 만든 사람이라.
아니 이 책을 적은 사람이 사람은 맞나 싶었다.
신들도 조사해보지 않은 사실.
뭐 굳이 조사해볼 필요가 없긴 했다.
신들은 신력만 사용할 수 있으니 마력이랑 신성력 거기에 친화력까지 따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아 이런 실험을 해야 한다.
아니 이 사실을 보면 신력을 분해하는 것도 가능한 건가?
“분해하는 것과 섞는 것인가...”
나는 책을 옆에다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섞어서 그걸 가능하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분명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니 그냥 섞어서는 섞이지 않는 거겠지.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마신의 기운이나 다른 능력들의 상위가 있는 건가?
이 책에서 말하는 힘의 근원은 마치 신력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다르다.
마신의 기운이나 언령 같은 독립적인 기운들이 있다.
아니.
이 책을 봤더니 이건 아무리 봐도 독립적이고 신력과 상관없는 기운들이 아니었다.
책을 보기 전에도 살짝 생각하고 있었던 게 있었다.
공작이 사용했던 마법.
광신의 기운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했다.
신력을 다루듯 형태를 만들어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법진을 그렸고 진짜 마법처럼 사용했다.
에레보스의 말대로라면 공작의 마법은 사용되면 안됐다.
더 전으로 돌아간다면 지하 감옥에서 마법진을 해체할 때 마법진에 마신의 기운을 넣는다고 마법이 깨져서는 안 됐다.
기존의 이론과 서로 모순되는 사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변형.
진정한 근원.
이 두 가지에 답이 있다.
공작은 광신의 기운을 변형시켜 마치 마력처럼 이용한 거다.
그리고 기운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게 어떤 근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의 주신이 나뉘어 여러 개의 중간계와 신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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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가 움직이고 있다고?”
카루아는 서류를 처리하다가 엘로아의 말을 들었다.
“휴가를 내고 쉬러 간 줄 알았더니 광신들에 대해 조사하고 있더군.”
“혼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엔하고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따로 다니고 있다.”
카루아는 자리에서 나와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엘로아가 앉았다.
“그것도 좀 놀랍긴 하네... 그럼 조사하고 있던 건?”
“페르세스가 조사한 결과 제대로 알아내지는 못했다. 신관장 녀석들이 전부 모습을 감춰서 조사할 방법이 없다.”
“그 새끼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카루아는 짜증 난다는 듯이 머리를 헝클었다.
“나는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광신도들이 전부 정리되기 시작된 건 좋은 일이긴 하잖아?”
“그래서 더 이상한 거다.”
엘로아는 말을 이어갔다.
“분명 우리가 처리한 것들이지만 뭔가 꺼림칙하지 않나? 그렇게 찾던 정보들이 너무 쉽게 알아냈고, 너무 빠른 속도로 광신도들이 처리되고 있어.”
“꼬리 자르기다?”
“아마.”
카루아는 생각에 잠겼다.
“광신의 부활이 다가온 건가...”
“이만 카리온을 풀어주고 카리온을 에레보스한테 합류시키던지 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에레보스라고 해도 광신이 갑자기 에레보스를 공격한다면 위험해.”
“알았어. 다른 신들한테 말하고 카리온은 풀어줄게.”
“그럼 카리온을 에레보스한테 합...”
“아니.”
카루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떤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엘로아는 카루아의 행동을 보며 뭐하는 짓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카루아는 종이 한 장을 엘로아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에레보스하고 합류는 내가 한다.”
그 종이는 휴가 신청서였다.
"니 일은 누가 하는데?"
카루아는 엘로아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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