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2 즐거운 저녁 식사
* *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나는 책을 잃어버렸다.
정말 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저 능력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옆에 있던 책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이건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바로 옆에다가 둔 책이 사라지는 걸 모른 채로 있을 수 있겠는가.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럴 수 없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책값이 한 두 푼도 아니고...
내... 내 피 같은 돈이...
책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져버린 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책값을 물어줄 수밖에.
이 책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따로 살 용의도 있었다.
능력과 차원에 관해 인간의 관점으로 적어놓은 책은 신계에 없었다.
그래서 따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떡하겠는가. 사라져 버린 것을...
“에휴...”
그래도 읽고 나서 사라진 게 다행이다.
읽지도 못하고 사라졌으면 정말 억장이 무너졌을 테니까.
평소라면 상심한 채로 혼자서 땅을 팠을 테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다.
신력, 마신의 기운 그리고 언령.
이 상위의 능력, 이 힘들의 근원이 있을 거로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나을 거로 생각했다.
“일단 공간인가.”
나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생각했다.
그에 너무 적합하고 근처에 있는 공간이 바로 떠올랐기에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바로 아이들이 있었던 지하 감옥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기 힘들고 알아채기도 힘든 아주 깊은 지하.
거기에 사람도 잘 오지 않는 곳.
지하감옥 조사는 별로 조사할 거리도 없어서 이미 폐쇄된 상태였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이동시켜주세요!]”
오랜만에 언령을 사용해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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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 그게 무슨 꼴이야!!”
렌과 카론 그리고 로드까지 유일하게 모이는 시간이 하나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
다들 바빠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지만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로드의 상단 근처 식당으로 다들 신경 써서 모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보기 힘드니까.
나도 지하 감옥에서 실험하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로드의 상단으로 갔다.
시간이 아슬아슬하길래 바로 식당으로 갔더니 옷이 아주 엉망이 되어있었다.
이상한 검댕들과 흙으로 범벅되어있었다.
“하하... 뭐 좀 하느라고.”
“아니 목욕이라도 하고 오지.”
렌이 마치 엄마처럼 엉망이 된 옷들을 털어줬다.
“에이 배고파서 밥이라도 먹고 씻으려고.”
“그래. 밥이 먼저긴 하지.”
“미리 식사를 준비해놨습니다.”
로드는 나에게 방긋 웃어줬다.
“그것보다 카론 셀레네씨랑 데이트는 재밌게 했어?”
렌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카론을 바라봤다.
“그...그걸 어떻게 알아?”
“후후후...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뭐? 나도 셀레네씨랑 만났는데?”
나는 음식을 입에 넣으려다가 렌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을 멈췄다.
“안 그래도 셀레네씨한테 들었어.”
"그렇구나~ 셀.레.네씨한테 들었구나~."
렌은 장난스럽게 셀레네의 이름을 끊어서 말했다.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카론이 계속 강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사춘기 소년이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나 걔 싫어한다니까!' 하고 말하는 모습 같아 보였다.
“허허... 카론도 슬슬 혼기가 차오르긴 하지.”
로드는 마치 아버지라도 된 듯이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니에요. 그런거.”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카론은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렌은 카론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간다니 너무 슬프구나.”
나는 에레보스의 말투를 따라 하며 카론에게 말했다.
“풉...어머니겠지.”
“아버지야!”
카론을 놀리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렌이 나의 말에 딴죽을 걸었다.
비슷한 말들 하고 있는데 나한테만 딴죽을 걸어...
내가 뚱한 표정을 하자로드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건 어머니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허허...”
“그래서 셀레네씨의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 거야?”
“그...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뭐 친구 그런 거야?”
“그래! 친구! 렌과 로엔하고 같이 논다고 사귀는 사이는 아니잖아!”
“자꾸 그러니까 더 의심 가는데?”
“그...그것보다! 로엔은 왜 이렇게 더러워져서 왔어!”
카론이 자꾸 셀레네씨에 대해 추궁당하자 카론은 말을 돌렸다.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잔당이라도 처리하고 오셨습니까?”
“뭐 연구를 좀 하고 있지.”
나는 입에 있는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연구?”
“너가 연구를 한다고?”
“허허...”
다들 내 말을 듣고 못 믿겠다는 말을 했다.
“내...내가 연구할 수도 있지!”
나는 발끈해서 말했다.
내가 연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
평소에 그렇게 지적인 이미지는 아니긴 하다만 하나에 빠지면 몰두하는 성격이라고!
“무슨 연구인데?”
“아주 심오하고 어려운 연구지...”
“아니 무슨 연구냐고.”
“힘의 근원을 찾아가는?”
솔직히 나도 내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모호했기에 뭉뚱그리면서 말했다.
“그래. 흙장난은 적당히 하고. 할 일 없으면 카론이나 도와.”
“아...아니 진짜 연구라니까?”
“그래 알았어 알았어.”
렌은 전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나를 달래듯 말했다.
“힘의 근원입니까?”
로드가 조금 관심이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네! 모든 힘의 제일 위에 있는 근원을 찾아보고 싶어서요.”
“오호... 그건 조금 관심이 가군요.”
로드는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 진행 중이십니까?”
“어...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지? 로드는 신의 능력들에 관해 아시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마신의 기운이라든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신력과 마신의 기운, 언령까지 모두 섞어보고 있어요. 2개씩 묶어서요.”
“그래서 폭발이 일어났군요.”
“하하... 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녁을 먹으러 오기 전에 나는 몇 가지를 실험해봤다.
신력과 마신의 기운을 두 가지만 섞어보기도 하고 세 가지를 섞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신력을 해체해서 마력이나 신성력을 만들어보려고도 했다.
결과는 전부 실패.
첫 날부터 성공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런 폭발도 원하지는 않았다.
기운과 기운을 섞으려고 시도를 해봤더니 기운들이 잘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기운을 강제로라도 섞으려고 했더니 펑! 하고 터져버렸다.
뭐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이군요.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미 못 박혀있어서 아무도 해볼 생각을 못 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 어떤 책을 읽었는데...”
나는 로드에게 그 책에 관해서 말해줬다.
책에 적혀있는 모든 내용을 말하기엔 너무 길었기에 힘에 관한 이야기만 해줬다.
“신력을 만들었다라...”
“그럼 그 상위 기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빼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빼놓은 거요?”
“아까 신력을 만들 때 친화력도 섞으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럼 근원을 만들 때 정령의 힘도 넣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령...이요?”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를 유지하는 힘에 신력도 있고 언령도 있지만, 자연을 유지하는 정령의 힘도 있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네요...”
일리가 있다.
나는 내가 마신이다 보니 모든 힘을 내가 가지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정령이 가지고 있는 자연을 다루는 힘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 정령을 소환해서 섞어볼까요?”
“음... 평범한 정령의 능력이면 신력에 비해 너무 약한 힘이니정령왕한테 부탁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정령왕이요?”
정령과 신은 거의 교류가 없어서 사진이나 다른 매체로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부탁한다면 흔쾌히 도와줄 겁니다.”
“어... 민폐지 않을까요?”
그래도 정령 ‘왕’인데 바쁘지 않을까?
“정중하게 부탁한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겁니다.”
“정령왕이랑 아세요?”
“뭐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정령왕이랑요?”
“정령왕을???”
카론과 렌도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물었다.
“허허... 여러분들이 저를 어떻게 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 로드다 보니 여러 존재를 많이 만납니다.”
“저... 정령왕은 어떻게 만나죠?”
내가 로드에게 물었다.
로드는 잠시 고민했다.
“뭐 보통은 소환하거나 아니면 유희를 나와 있는 정령왕을 만나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소환하기보다는 정령계에 직접 가서 부탁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직접 가서요?”
“누군가한테 부탁할 때 그 사람을 불러내서 부탁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갑자기 불러내서 이 일 좀 도우라 하는 건 너무 예의가 없지.
“그럼 정령계는 어떻게 가나요?”
“하하... 그거야 저한테 묻기보단 다른 신들께 물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저가 아무리 많은 걸 안다고 해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음... 그렇군요...”
그럼 오랜만에 신계나 한 번 가볼까.
안 그래도 카리온이 갇혔다는 소리를 들어서 카리온이 걱정되기는 했었다.
엘로아나 페르세스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다음날 신계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