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63 신계
* * *
나는 엘로아에게 연락한 후 엘로아의 집무실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집무실 문을 열자 자리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는 엘로아가 보였다.
“엘로아!!!”
엘로아는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와 로엔.”
엘로아는 자리에서 나와 팔을 벌렸다.
그리고 나는 달려가 엘로아의 품에 안겼다.
“헤헤...”
“나는 보이지도 않나봐?”
어?
집무실 옆 쪽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주 익숙한 얼굴.
“카리온!!!”
“로엔 오랜만이야 후후...”
분명 갇혀있어야 할 카리온이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가 엘로아의 품에서 나왔다.
“카리온 왜 여기 있어?”
내 말에 엘로아가 대신 답해줬다.
“카리온은 오늘로부터 근신 해제야.”
“진짜?다행이다!”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해제시켰는지...”
카리온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표정은 좋아 보였다.
갇혀있는 것보다는 일을 하더라도 나와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페르세스는?”
“아마 곧 올걸? 이제 어느 정도 일이 끝나서 복귀 명령을 내렸거든.”
“거의 끝났다고?”
광신을 잡았다는 소리인가?한동안 신계에 안 올라왔더니 신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1차원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녀석을 잡았지.
우리도 그렇게 됐다면 다른 신들이 나섰던 다른 차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의 다 끝났고 이제 제대로 된 시작이지.”
카리온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로엔!!!!”
내가 묻자 뒤에서 누가 나를 꼬옥 안아줬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지.
“페르세스!!”
내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자 페르세스의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어디 안 다쳤지? 청각 녀석하고 싸웠다면서!”
“히히... 내가 이겼다구!”
“아이구 장하다!”
페르세스가 장난치면서 나를 띄워 줬다.
나는 바보 같이 헤헤거리면서 웃었다.
오랜만에 페르세스의 둥가둥가를 받으니 기분이 좋네.
이렇게 다같이 모인 것도 오랜만이고.
“페르세스. 어떻게 됐어?”
엘로아가 페르세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페르세스는 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인데?”
“뭐 결론부터 말하면 신관장들을 한 명도 못 잡았어.”
“에?”
“모든 차원에서 별거 아닌 광신도들은 전부 처리가 되고 있는데 대가리를 하나도 못 잡은 게 문제다.”
“그러면 어떡해? 신관장들 빨리 찾아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걱정되는 얼굴로 엘로아에게 말했다.
“다 숨어버렸다.”
“아주 꽁꽁 숨었지. 무슨 술래잡기 하자는 것도 아니고.”
페르세스는 신관장들을 생각하는지 살짝 짜증이 섞어 말했다.
“왜 숨었는데?”
“그거야 모르지... 대충 예상으로는 광신을 부활시킬 준비가 끝났다는 거로 생각 중이다.”
“광신의... 부활 준비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그 괴물이 생각났다.
어떻게 하려고 해도 당하기만 했던 그 괴물.
하지만 그 괴물은 봉인되었던 상태였는데도 그 정도였다.
또 거기는 중간계도 아니었다.
모든 신력과 마신의 기운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졌다.
아주 큰 차이로.
내 눈동자가 흔들리자 페르세스가 내 등을 두들겼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니까 겁먹지 마.”
페르세스는 날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카리온과 엘로아를 보자 그 둘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지.
그 때는 혼자였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 든든한 가족들이 내 옆에 있다.
나 혼자라면 또 싸우더라도 지겠지만 다 같이 싸운다면...
나는 모두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응!”
아 맞다 그것보다...
“혹시 에레보스가 뭐 하고 있는지 알아?”
나랑 헤어진 이후로 뭘 하고 다니는지...
분명 이리나를 쫓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갔는데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추적이 제대로 안 되는 중이야.”
“그래? 그런데 그러다가 신관장들한테 포위라도 당하면 어떡해?”
“안 그래도 도우러 갔어.”
도우러 갔다고?
그렇다기엔 마신 4명이 여기에 다 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대자 엘로아가 말했다.
“카루아가 갔어.”
“카루아?”
“원래 카리온을 보내려고 했는데 제가 가겠다고 하데. 으득...”
엘로아의 어금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집무실을 둘러보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서류의 양이 보였다.
“하하...”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맞다! 내가 힘에 대해서 좀 연구 중인데!”
나는 내가 연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말해줬다.
“근원이라...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냈네...”
카리온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크흐흐흐... 진짜 로엔다운 생각이다. 절대 불가능하지.”
페르세스는 배를 잡으면서 웃었다.
이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인가...
“내 생각엔 가능하다.”
“엥?”
“어?”
“음?”
우리 셋은 깜짝 놀라 엘로아를 봤다.
“그런 힘이 있긴 했거든.”
“그런 힘이 있었다고???”
“나도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그것 봐! 내가 맞다니까!”
나도 저렇게 확정적인 말을 들으니까 좀 놀랍긴 하지만...
“원래 카루아... 아니 주신이 가지고 있던 힘은 에레보스나 내가 가지고 있던 마신의 기운과 달랐거든.”
“정말? 그럼 그 힘이 근원인거야?”
“그거야 모르지.”
엘로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럼 엘로아는 그런 거 해본 적 없어? 주신의 기운을 만들어보려고 마신의 기운과 신력을 섞어본다든지.”
엘로아는 엄청나게 오래 살았으니까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하... 로엔...”
“어...”
내가 그 말을 하자 카리온과 페르세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응...? 왜?”
“나는 마신의 기운이 없다.”
엘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응?”
“나는 에레보스가 중간계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웠을 때 마신의 기운을 내려놓고 마신이길 포기했었다.”
“뭐?”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러다가 한 그림이 생각났다.
광신을 만난 산 위에서 있던 그림들.
그 중 한 여자아이가 척박한 땅에서 혼자 앉아있는 그림.
“나는 중간계를 파괴하는 걸 반대했다. 에레보스한테 반항한다는 의미로 마신의 기운을 버리고 척을 졌었지.”
“그래서...”
“그 일이 끝나고 에레보스가 나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어.”
엘로아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하지만 나도 죄책감이 있었지. 혼자서 에레보스가 괴로워할 때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는 죄책감.”
그 말을 한 후 뭔가 후련한 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지금은 다들 사이좋게 지내니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매일 무슨 일을 할 때 서류 작업만 하는 이유도 마신의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건가...
“뭐 마신의 기운 별거 있어?”
페르세스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뭐 결론을 말하자면 난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들으니까 좀 더 자신감이 붙는 느낌이네!”
나는 힘차게 일어났다.
“오랜만에 모두 만나니까 기운이 넘친다! 내가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서 모두한테 보여줄게!”
“후후... 열심히 해봐.”
그럼 정령계로...!
“그런데 정령계는 어떻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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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로 이루어진 황야.
분위기는 땅이 굉장히 척박해 보이지만 밑에 있는 흙이 촉촉하다는 건 그냥 걷기만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야 아무도 없는데?”
나는 카리온의 언령을 통해 같이 정령계에 왔다.
“사실 정령왕이 정령계에 계속 있는 건 아니거든.”
“뭐? 그럼 아무도 없을 수 있는 거야?”
그럼 온 의미도 없잖아.
오는데 오래걸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맨날 있는 한 명은 있어.”
“어?”
카리온이 하늘을 보고 소리쳤다.
“야!!!!!! 나와!!!!!!!!!!”
그렇게 소리쳤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야!!!!!!!!!! 나오라고!!!!!!!!!”
뭐하는 거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러더니 카리온이 주먹에 신력을 둘러 옆에 있는 바위를 쳤다.
그 바위가 산산 조각이 나더니 거기서 조그만 할아버지가 튀어나왔다.
“어이쿠...”
카리온은 그 할아버지를 손에 쥐고 들어 올렸다.
“야 노움. 니네 왕 어디 있어.”
“그...그게 제가 말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서...”
“그래? 그럼 여기 다 망가뜨려도 되지?”
카리온이 음흉하게 웃자 노움이라고 불렸던 할아버지가 덜덜 떨었다.
그러자 땅에서 흙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흙은 점점 사람 형태로 바뀌더니 검은색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으로 변했다.
“아니 갑자기 와서 왜 그래? 귀찮아 죽겠네.”
“오랜만이네 노아스.”
카리온은 노움을 내려놓고 그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