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68 엘리시와 페나
* * *
“흐음...?”
“엘리시님 무슨 일 있으세요?”
페나는 엘리시와 함께 산책하던 도중 하늘을 바라보더니 멈춰 섰다.
“구름이 왜 이리 모이지?”
“네?”
“비가 올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에요?”
“흐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엘리시를 쳐다봤다.
“내가 비의 신인데 비가 올 걸 모르겠어?”
“그냥 구름만 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엘리시는 다시 하늘을 뚫어지라 봤다.
그리고 급격하게 엘리시의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페나... 싸울 준비해.”
“네? 갑자기요?”
“아니 싸울 준비가 아니라...”
그러더니 페나에게도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페나는 깜짝 놀라 그 기운이 느껴지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 있던 구름들은 소용돌이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고 중앙의 원은 점점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구멍이 생기자 거기서 몇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청각의 사제장...”
3명의 사람이 나타났는데 거기서 저번에 만났던 청각의 사제장이 나타났다.
“페나! 도망쳐!”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같이 싸워야...!”
“못 이겨. 빨리 도망쳐!”
평소에 어벙한 엘리시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렇게 페나를 걱정해주는 모습이지만 엘리시 본인은 엄청나게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그럼 엘리시님도 같이 가요!”
“아...안돼. 저렇게 왔으니까 다른 신들도 도와주러 올 거야. 그때 동안은 내가... 내가 막아야 해.”
엘리시는 그렇게 말했지만 떨리는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그럼 같이 싸워요! 저번에 청각의 사제장 팔을 잘랐으니까 분명 약해져...!”
“아니! 쟤는 상관없어. 저기 가운데 서 있는 저 괴물이 문제야.”
그 말을 하며 엘리시는 하늘을 노려봤다.
중앙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페나에게는 그 중앙에 있는 남자에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허할 정도로.
그리고 페나도 집중을 하고 그 공허함 속을 들여다봤다.
“흐읍...!”
그 공허함 속을 들여다보자 옆에 있던 사제장 따위하고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끈적하고 들여다보는 자신을 빨아들일 것 같은 심연.
그 심연은 마치 들여다보는 모두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저게 무슨...”
“이제 알겠지... 페나 도망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해.”
“도...도움을 누구한테... 신님도 못 막을 정도인데...”
페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직 페나는 어린 나이다.
분명 어른스럽고 많은 일을 겪고 있지만 이런 압도적인 힘 앞에 놓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무조건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신님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신님이 자신의 몸을 바쳐 자신을 도망가게 하려고 있다.
못 미덥지만 언제나 부모님처럼 자신 곁에 있어주었던 신님이.
“로엔. 로엔한테 가. 로엔은 수도에 있을 거야.”
“어...언니한테.”
“나도 일단 신들한테 전언했으니까 다른 신들도 올 거야. 걱정 말고 조금만 숨어있어.”
“흐윽... 엘리시님... 꼭 살아계셔야 해요.”
“난 신이라서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
페나는 엘리시를 뒤로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엘리시는 페나에게 죽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저들을 보면 자신이 없었다.
엘로아... 도와줘... 빨리...
카루아 제발...
로엔...
그리고 신들에게 전언했지만 그 누구도 전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전언이 신들에게 닿지 않는다는 게 맞을 것이다.
전언을 듣기라도 했으면 따로 대답이라도 하겠지만, 그저 내 목소리가 울리기만 하고 다른 변화가 없었다.
엘리시는 하늘을 봤다.
하늘은 아까보다 더 큰 포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는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한 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이 뚫려있고 회색 날개를 달고 있었다.
하나 하나가 광신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생김새부터 개체 하나의 힘까지 진짜 괴물이었다.
“너무 무서워...”
그래도.
“언제까지 무섭다고... 빈둥거리면서 신계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어...”
엘리시는 떨리는 손에 힘을 줬다.
저번에 로엔과 같이 성을 지켰던 생각을 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지켰었던 그 때를.
그 때 엘리시는 느꼈다.
이런 게 진짜 신의 삶이라고.
그동안 자신은 헛살았다고.
더 이상은 예전 같은 삶은 살지 않을 거라고.
“[실현]”
엘리시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현을 외쳤다.
주위에 황금색을 띤 신력이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하늘에 떠있던 남자가 엘리시를 쳐다봤다.
“엘리시인가.”
그리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 남자가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포탈이 다 열린 듯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는 소리쳤다.
“유린하라.”
@
“흐윽...흑...”
페나는 눈 앞을 가리는 눈물을 닦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저 로엔을 불러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달렸다.
쾅!!!!!!!!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들리길래 뒤를 돌아봤다.
공중에는 엘리시가 청각의 사제장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엘...엘리시님...”
페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분명 엘리시님이 의도하신 바가 있을 거야. 내가 다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달리다 보니 너무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자신이 한 생각은 그저 변명일 뿐이고 지금 자신의 꼴은 그저 싸움에서 도망치는 비겁자에 불과했다.
페나는 본인을 비겁한 겁쟁이라고 욕했다.
그저 무서워서 도망가는 주제에 엘리시가 의도한 일을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니...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지 않은가.
크뤄어어어.
“으억...!”
“사...살려주세요!!”
페나가 달리는 도중 자신의 옆 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하늘에 떠있던 괴물들이 마을 사람들을 짓밟고 있었다.
사람들의 목이 잘리고 배가 뚫려 죽어가고 있었다.
페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저들을 무시하고 달려가는 게 맞는 건가.
“꺄아아아악!!”
“도...도망쳐라 루아!!”
“아빠!!!”
페나는 자신의 옆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괴물 앞에 나서서 몸을 던지는 한 남성과 어린 여자아이.
얼마 전에 같이 웃으면서 비의 신전에 왔었던 사람들이었다.
신전에 와서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웃었던 부녀.
“엘리시님...”
페나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페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려 주먹에 담고 그 괴물의 머리를 후려쳤다.
괴물은 페나의 주먹을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도망치세요!!”
“교...교황님?
페나는 일어나는 괴물에게 다시 신성력으로 만든 창을 내리꽂았다.
캬아아아악!!!
“가...감사합니다!!”
그 남성은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뛰어갔다.
페나가 한 번 더 그 괴물을 공격해서 마무리하자 주위에 있던 괴물들이 전부 페나에게 집중했다.
“하아...”
페나는 떨리는 기분이었지만 미소가 피어올랐다.
도망자였지만 비겁자는 아니게 된 느낌이었다.
“살고 싶다...”
그리고 속에서 피어오른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마지막에 가지고 있던 마음.
하지만 그 말마저 내뱉었다.
토해냈다.
자신의 속에서 꺼내 더 이상 그 마음을 갖지 않도록.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하나의 마음만을 가졌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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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는 괴물들을 상대하다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도망간 것을 보고 자신도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많이 도망와서 성 밖으로도 나왔다.
하지만 주변의 괴물들이 전부 자신을 찾고 있었다.
더 도망가는 것도 힘들다고 판단해서 일단 숲에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엘리시님... 언니... 흐윽...”
기운을 쥐어짜 전언을 로엔에게 보내려고 했다.
딱 이름만 부르는 그 정도의 전언만 보냈다.
기다려. 금방 갈게.
그저 짧은 말만 했을 뿐인데 로엔은 바로 전언을 보내왔다.
뭔가 안심되는 말이었다.
페나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봤다.
더 이상 저 괴물들 전부를 상대할 수 없다.
괴물들은 주위를 자신을 찾다가 갑자기 어떤 명령을 들었는지 성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페나는 주머니에서 브로치를 꺼냈다.
날개 모양을 한 브로치.
엘리시가 준.
페나는 한 두 번 심호흡했다.
로엔이 올 거다.
그동안이라도 엘리시를 지켜야 한다.
그 마음으로 그 브로치를 꽉 쥐었다.
“발동.”
그러자 그 브로치는 강한 빛을 내며 페나의 몸을 감쌌다.
페나는 전장의 한복판으로 이동했다.
엘리시와 걷던 거리 중앙으로.
분명 그들이 온지 몇 시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는 그 몇 시간 전과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건물들을 불타고 있었고 돌아다니는 사람보다 시체가 더 많았다.
그 시체들보다 괴물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하늘에는...
쓰러진 채 떠있는 엘리시가 보였다.
“에...엘리시님...으으....으윽......!!!!”
페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남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신성력들로 창을 만들어 청각의 사제장에게 날렸다.
청각의 사제장은 가볍게 그 창들을 막아냈다.
‘이제...죽으려나?’
페나는 초연한 채로 청각의 사제장을 쳐다봤다.
“페나!!!”
그러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보자 로엔, 카론, 렌이 서 있었다.
“어...언니...”
“소닉 붐.”
하늘에 떠 있던 청각의 사제장이 나에게 기술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언니 얼굴이라도 봤네.’
페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어떤 작은 기운이 날라왔다.
“어?”
그리고 페나의 주위를 감싸며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로엔은 그대로 달려 페나 앞에 섰다.
“힘들었지 나한테 맡겨.”
“언니...”
로엔은 팔에 손가락을 올리더니 10개 정도의 기운을 꺼냈다.
그 기운들을 머리 위로 올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개의 기운 빼고 주위로 뻗어 나갔다.
“괴물들 전부 죽여.”
로엔의 그 살벌한 말과 함께 모든 기운은 주위에 있는 괴물들은 전부 죽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페나는 어안이 벙벙하게 로엔을 쳐다봤다.
로엔은 그런 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
페나는 안심이 되고 모든 힘을 쓴 나머지 정신을 잃었다.
“페나!”
로엔은 쓰러지는 페나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페나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렌에게 맡겼다.
“페나를 부탁할게.”
“알았어.”
렌은 페나를 받아들었다.
로엔은 안겨있는 페나에게 신력을 넣어 치료한 후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상황.
“카론, 아마 저 기운들이 괴물들을 전부 처리하지는 못할 거야. 너한테 괴물들을 맡길게.”
“넌 어떻게 하게.”
“난 저 녀석들을 맡을게.”
로엔은 하늘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카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로엔이 말한 대로 움직였다.
로엔은 그런 카론에게 방긋 웃어줬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굉장히 화나고... 살벌한 얼굴로...
“그럼 이제 내 친구들을 괴롭히고 사람들을 죽인 복수를 해볼까.”
로엔은 이를 갈며 하늘로 떠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