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0 엘로아
* * *
“기분이 더럽군.”
엘로아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욕을 내뱉었다.
요즘 광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말하기도, 듣기도 하다 보니 예전 꿈을 꿨다.
에레보스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중간계를 부수던 그 때의 꿈을.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 처음 생긴 마신들 또한 그 일을 도왔다.
그리고 주신인 카루아는 자신과 상의도 없이 자신의 몸을 바쳐 중간계를 만들고 사라졌다.
결국 혼자만이 마계에 남았다.
그런 끔찍했었던 때의 꿈을 꿨다.
“일주일만에 자서 그런가.”
에레보스와 카루아의 일들에 치여 그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자지 않아도 큰 영향은 없다만 잠은 엘로아의 취미생활이었다.
잠을 자기 시작한 것도 그 일이 있을 때부터 자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이 끝나있기를 빌며잠을 청하곤 했다.
엘로아는 자신의 볼을 몇 번 쳤다.
“일이나 해야겠군.”
엘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원래 책상 앞에 앉으면 담당 천사가 차를 한 잔 내어주는데 누구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시아. 차를 내와라.”
...
엘로아가 말했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리시아?”
엘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매일 이 정도 시간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시아가 없었다.
“로젤리아?”
또한 로엔의 대리 일을 할 때부터 매일 옆에 있었던 로엔의 천사도 보이지 않았다.
쾅!!!!
엘로아의 귀에 폭음이 울렸다.
“폭음?”
이런 소리가 신계에서 들릴 수가 없다.
페르세스 같이 사고를 치는 신들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신계에는 그런 사고를 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엘로아는 곧장 폭음이 들리는 곳으로 갔다.
폭음이 들리는 곳은 마신 건물과 일반 신 건물 사이에 있는 정원이었다.
그 정원 중앙에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촉수가 있었다.
그 촉수 가운데에는 엄청 뚱뚱한 남자가 서 있었다.
촉수들은 천사들과 신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엘로아는 창문을 열어 그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에...엘로아님!”
한 천사가 갑자기 나타난 엘로아를 보며 놀랐다.
“무슨 일이지?”
“모...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저 사람이 나타나서 길을 잃은 마족인 줄 알았는데 안내를 해주던 천사를 집어삼켰습니다.”
“집어삼켜?”
“그... 입으로 삼킨 게 아니라 저 촉수로...”
“그래서 공격하고 있었다?”
“네...”
엘로아는 그 뚱뚱한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에게는 광신의 기운이 풀풀 풍겨왔다.
누가 봐도 광신도인데 마족이라고 오해했다고?
이런 시기에 그런 실수를 하다니.
엘로아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신관장인가?”
엘로아가 말하자 그 뚱뚱한 남자가 엘로아를 쳐다봤다.
“오오! 에...엘로아님!”
그 남자는 감동한 표정으로 엘로아를 쳐다봤다.
“날 아는가?”
“당연히 알지요!”
“넌 누구지?”
“저...저를 모르십니까?”
당황하는 남자를 보자 엘로아는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내가 널 어떻게 알지?”
“자...잘 생각해보십시오! 저입니다!”
“난 돼지를 키워본 적은 없는데?”
그 남자는 상심한 듯 슬픈 표정을 했다.
“저는 미각의 사제장이자 엘로아님의 사제였던 이안입니다. 이제 기억나십니까? 저이안입니다!”
“이안?”
엘로아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안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원래 인간들과 그렇게 깊은 연을 두지 않아서 아는 사람 이름도 적었던 엘로아였기에 더욱 의문이 커졌다.
“엘로아님이 직접 저에게 엘로아님의 문양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한 번도 내 문양을 직접 줘본 적이 없다.”
‘로엔의 문양은 준 적이 있지만.’
로엔의 대리를 맡고 로엔의 사제들을 고를 때는 직접 골랐다.
보통 자신의 사제들은 담당 천사에게 맡겼었지만, 로엔의 사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문양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자신의 실수로 로엔에게 짐을 지워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엘로아는 로엔의 신도에게 문양을 준 던 걸 자신의 문양으로 잘못줬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전을 생각해봐도 없었다.
"그런 적은 없었다."
“저...저는 들었습니다! 엘로아님의 목소리로 자신의 사제가 되라고 하시는...!”
“그런 적 없다.”
“아...아니 그러면 저가 기도할 때마다 대답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사랑한다고! 세상에서 저를 제일 아끼신다고!”
엘로아는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정신병이 걸려있다.
아무리 자신이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하더라도 저런 미친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나의 가족들, 나의 동료들이다.”
엘로아의 그 발언에 남자도 놀랐지만, 주위에 천사들도 놀랐다.
저렇게 엘로아가 직접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발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모두에게 엘로아는 무미건조한 죽음의 신 그 자체였다.
“저...저는 엘로아님과 함께하려고 광신의 부활을 돕고 있는데... 분명 엘로아님도 제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셨지 않습니까!”
“환청이다.”
“아니... 무슨...”
미각의 사제장은 마치 울 거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흐...흐윽...흐...흐흐흐...크흐흐흐흐흐!”
그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서 마치 광인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무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방금 엘로아님이 대답해주셨다. 너는 가짜군. 그럼 그렇지 진짜 엘로아님이 그러실 리 없지.”
“하...!”
엘로아는 어이가 없었다.
정신병이 많이 심하군.
“죽어라 가짜!!!!!”
그 남자는 소리치고 촉수들로 엘로아를 노렸다.
엘로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 촉수들을 피했다.
“진짜 엘로아님이면 마신의 기운이라도 써보시지? 이 가짜야!!!!!”
“어이가 없군.”
내가 진짜 미쳐서 저 녀석과 아는 사이라면 내가 마신의 기운을 못 쓰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나 자신이 미쳐서 그런 적이 있나라고 생각하던 엘로아의 머리는 맑아졌다.
“나는 마신의 기운을 못 쓴다.”
“하하하!!! 그것 봐라 이 가짜야!”
엘로아는 촉수를 피하면서 다른 촉수들을 봤다.
다른 촉수들에는 천사들이 잡혀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자신의 천사가 잡혀있었다.
“[끊어지거라.]”
엘로아의 말과 함께 천사들을 잡고 있던 촉수들이 끊어졌다.
“[이동하라.]”
그리고 다음 말과 함께 떨어지는 천사들이 전부 사라졌다.
엘로아의 천사만이 엘로아의 뒤로 왔다.
“리시아 다른 신들과 천사들을 대피시켜라.”
“아...알겠습니다.”
리시아는 엘로아의 말을 듣고 일어나서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던 천사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리...리시아! 하지만 엘로아님이!”
“괜찮아!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 오히려 우리가 있는 게 방해야.”
“엘로아님은 마신의 기운이 없으시잖아!”
“엘로아님은 그런 거 없어도 돼.”
“뭐?”
리시아는 엘로아를 굉장히 오랫동안 봤다.
엘로아는 언제나 서류를 중점으로 다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로아가 약한 건 아니었다.
엘로아는 본인도 마신의 기운이 없다면 싸울 때 불리하다는 걸 알았다.
언젠간 자신이 싸워야 할 때 다른 마신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기에 다른 무기를 갈고 닦아왔다.
언령.
엘로아는 신력이나 마신의 기운을 이용하는 신들과 다르게 언령을 연습했다.
아무리 바쁘고 다른 일이 있더라도 언령을 수련하는 것만큼은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다.
리시아는 그런 노력하는 엘로아를 봤다.
그런 신이 저런 돼지한테 질리가 없다.
"엘로아님 다치지 말고 오셔야합니다. 생채기도 나면 안되요."
엘로아는 귀엽게 다그치는 리시아를 보고 싱긋 웃어줬다.
리시아가 멀어지는 걸 보자 엘로아는 신관장을 쳐다봤다.
“이제 제대로 싸워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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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에레보스는 산 정상에 있는 신전에 들어갔다.
“누가 이런 곳에 성물을 가져다 놓는 거야?”
자신이 소중히 다루라고 준 성물을 이런 창고 같은 곳에 가져다 놓은 게 불만인 듯 투덜거렸다.
그리고 에레보스는 눈으로 얼어붙은 로브를 벗었다.
“음?”
로브를 벗고 앞을 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생각이 맞았군요.”
“하... 시벌...”
그 익숙한 얼굴은 카루아였다.
“잡으러 온 거냐?”
에레보스는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언령으로 하면 한 마디만에 올 수 있었지만 다른 신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기운까지 꼭꼭 숨기고 올라왔는데 하필 정상에 카루아가 있었다.
“아뇨.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뭐?”
“대충 아시고 오신거 아닙니까.”
카루아는 성배를 가리켰다.
“이게 통로가 아닌 문이라는 걸.”
“너도 알고 온 거냐?”
에레보스는 자신의 기운을 내렸다.
한동안 에레보스는 이리나에게 심어둔 자신의 기운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찾는 도중에 페르세스도 잠깐 만났었다.
페르세스 또한 많은 곳을 들렸었지만,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에레보스는 생각했다.
자신의 기운을 심어두고 추적하더라도 찾을 수 없는 곳.
그런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차원의 틈.
하지만 차원의 틈에는 자신이 봉인되어있다.
그리고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차원의 틈으로 가는 통로다.
저번에 로엔이 광신을 만났을 때 이 성배가 차원의 틈으로 가는 통로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이 성물이 통로가 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통로란 어떤 공간을 말한다.
어떤 공간으로 가기 위한 공간.
하지만 로엔의 말대로라면 로엔은 어떤 공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광신을 만났다.
차원의 틈으로 가는 구조를 그렇게 만든 적이 없었다.
그저 마신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원의 틈에 끌려들어 가는 구조는 누가 생각하더라도 위험한 구조다.
너무 광신을 접하기 좋은 구조.
그럼 한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 일부러 로엔이 있다는 걸 알고 문을 열어 통로를 거치지 않고 광신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럼 한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통로에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로엔을 끌어들였다.
“같이 들어가시죠.”
카루아는 웃으면서 성배에 손을 댔다.
“싫다면?”
“신계로 가셔야죠.”
“에휴...”
에레보스는 성배에 손을 올렸다.
에레보스의 기운을 성배에 넣자 성배는 빛을 냈다.
그리고 그 둘의 모습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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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통로인가.”
에레보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엄청난 크기의 제단이 세워져 있는 공간이었다.
많은 수의 계단들 위에 보는 것만으로 불쾌한 모습의 5개의 괴물들 석상이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광신의 기운 농도가 강했다.
“토 나올 것 같네요.”
카루아는 비위가 상한다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네요.”
제단 위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넌 누구지?”
“저는 후각의 사제장입니다.”
“뭐 저런 쓰레기는 신경쓰지 말고 이 제단만 부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맞지?”
“하하... 그런 살벌한 소리를...”
후각의 사제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사제장 뒤에서 한 남자와 이리나가 나타났다.
그 뒤에서 나타난 남자는 에레보스와 카루아에게 물었다.
“엘리시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엘리시? 무슨 일 있었냐?”
“저도 신계에서 나온 지 좀 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남자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그냥 오셨다는 말이시군요.”
“뭐 엘리시가 잡혔는지 뭐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니네 다 죽이면 끝나는 거 아니야?”
에레보스는 자신의 기운으로 여러 개의 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루아 또한 신력을 끌어올렸다.
남자는 피식 웃엇다.
“제물이야 많으면 좋으니까 전부 잡아야겠군요.”
"어이가 없네..."
에레보스는 그 남자의 말에 살벌한 얼굴로 말했다.
“니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난 에레보스야. 이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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