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72 계획
* * *
“엘리시를 구해야 할 텐데...”
“대충 예상 가는 곳이 있기는 해.”
“예상 가는 곳?”
내가 묻자 엘로아가 대답했다.
“아마 광신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제일... 가까운 곳?”
“예를 들면 너가 갔던...”
“우악! 뭐야?”
엘로아가 말하는 도중 우리의 사이에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찢어져 있는 옷.
피로 물들어 옷의 원래 색도 알아보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빛나는 금색 머리를 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업혀있는 사람도.
“카루아...? 엘리시...?”
“하아...하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카루아 이게 뭐지?”
엘로아는 살벌한 목소리로 물었다.
“엘로아 왜 그래?”
“카루아. 대답해라. 에레보스는 어디 가고 엘리시가 있는 거지?”
“후우...후우...”
“엘로아 일단 카루아를 치료하고...”
갑작스러운 엘로아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카루아의 치료가 먼저라고 생각해 카루아와 엘리시를 편한 곳에 눕혔다.
시간이 좀 지나자 카루아가 정신을 차렸다.
“으... 엘로아...”
“어떻게 된 거지?”
“카루아가 좀 진정된 다음에 이야기하자.”
카리온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괜찮아...”
카루아는 몸을 일으켰다.
“에레보스가... 자진해서 잡혔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자진해서... 잡혔다고?”
우리 모두는 당황했다.
그 강한 에레보스가 잡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자진해서?
“나도 당황스러워. 갑자기 에레보스가 자진해서 잡히겠다고 했다.”
“그걸 가만히 내버려두고 온 거냐?”
“...그럼 어떡해 자기가 그러겠다는데.”
“뭐?”
우리는 어이없어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엘로아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더니 카루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윽!!”
“엘로아!!”
우리는 엘로아를 붙잡아 더 때리려는 거를 말렸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하... 씨발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뭐? 씨발? 이 개...!”
“그만!!!!”
나는 소리쳤다.
“그만 좀 해. 말 좀 듣자. 에레보스가 잡히는 걸 듣는 것만으로 충격적인데 그걸 직접 본 카루아는 어떤 기분이겠어.”
“로엔. 저 자식이...!”
“알아. 나도. 지금 카루아도 혼란스러워서 말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그만하고 이야기라도 들어보자. 응?”
나는 흥분한 엘로아를 달래듯이 말했다.
“엘로아. 로엔도 저렇게 말하는데 계속 그럴 거야?”
카리온도 이어서 말했다.
엘로아는 카루아를 패려던 주먹을 내렸다.
“그래 계속 말해봐.”
“나랑 에레보스는 에레보스의 성물인 성배를 통해 차원의 틈으로 가는 통로에서 광신도들을 찾았어.”
엘로아의 말이 맞네...
아마 에레보스와 카루아도 간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거기서 처음에는 후각의 신관장과 교황이라 불리는 놈만 있었는데 싸우기 시작하니까 다른 신관장들도 다 모였다.”
“우리랑 싸우던 녀석들이 사라진 이유가 그건가 보군.”
“그래도 밀리지 않았다. 신관장들도 큰 상처를 입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걸리는 거?”
“교황. 그 녀석은 제대로 싸우지 않았어.”
“뭐?”
“에레보스의 큰 공격들이나 허를 찌르는 공격들만 막을 뿐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럼 끝까지 힘을 숨겼다는 거야?”
끝까지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에레보스와 카루아가 비슷하게 싸웠다.
그럼 교황이 직접 같이 싸웠다면 졌다는 건가?
“근데 나는 에레보스도 모든 힘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아마 교황 자식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니까 힘을 숨겼겠지. 마지막 까지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고.”
“그런데 왜 잡힌 건데.”
엘로아는 살벌한 말투로 물었다.
“나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어. 에레보스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있어.”
“말?”
“주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와라.”
주신을 이길...수 있으면?
그 말을 하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못...못 이겨!”
“뭐 가능성이라는 건 있으니까.”
“난 조금씩 기운을 꺼내서 쓰는 건데 주신은 이 힘을 몸에 지니고 있는 거잖아!”
“그럼 에레보스를 구하러 안 갈 거야?”
“...갈 거야...”
페르세스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너 혼자 보낸다는 소리가 아니야.”
엘로아는 우리들과 눈을 마주쳤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눈 같았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생각은 비슷한 거 같네.”
“우리 스타일이 이것저것 재면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페르세스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나올 때 너희를 믿는다고 전해 달랬어.”
“믿는다라...”
“뭐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거 같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에레보스는 엘리시와 카루아를 구하고 희생한다는 느낌으로 붙잡힌 게 아니다.
어떤 계획이 있다.
그게 무슨 계획인지는 우리가 직접 가봐야지 알 것 같았지만...
그리고 주신을 이겨야 한다는 말.
우리가 그곳에 간다면 주신급의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교황이라고 대충 추측을 하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에레보스가 그곳에서 싸우다 보니 어떤 걸 발견해서 그곳에 남았을 수도 있다.
이기는 방법이라든지...
그 방법이 자기가 그곳에 남는 거였을 수도 있고.
어떤 걸 보고 그곳에 남은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같을 거다.
에레보스가 우리에게 오라고 말했다.
오지 말라고 말했어도 갔겠지만 직접 오라고 했다.
그 앞의 조건이 어쨌든.
그렇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가볼까?”
“바로?”
“못 갈 거다.”
카루아는 우리의 말을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왜 못 가는데. 성배를 통해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아까 말했지. 성배는 문이라고. 통로 쪽에서 문을 막으면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
“그럼 너는 어떻게 들어갔는데.”
“아마 운이 좋았겠지. 신관장들이 왔다갔다하는 중이라서 문이 열려있었을 수도 있고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열어놨을 수도 있겠지.”
“일단 가보기라도 하자고.”
우리는 곧장 성배로 향했다.
뭐 마신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기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데 겨우 그런 걸 신경 쓰겠는가.
우리는 성배에다가 마신의 기운을 넣어보기도 하고 여러 일을 해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카루아의 말대로 닫힌 건가?”
“그런 거 같네.”
“골치 아프네...”
페르세스는 짜증 난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우리는 다시 신계로 돌아와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원의 틈을 가는 방법이라...”
“뭐 방법이 딱 떠오르지는 않네.”
“없지는 않지.”
카리온이 말하자 모두가 카리온을 쳐다봤다.
“에?”
“그럼 있어?”
“주신 정신체가 있잖아.”
“정신체?”
“그건 별로...”
“나도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르세스와 엘로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더 궁금해졌다.
“주신 정신체가 뭔데?”
“예전에 너가 탄생했을 때 에레보스가 주신의 말을 듣고 왔다고 했잖아.”
“그랬던가?”
이제 시간이 좀 지난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주신은 자신의 몸에 에레보스의 정신을 봉인한 거고 자신의 정신은 신계에 놔뒀거든.”
“뭐? 그럼 주신님은 살아계셨어?”
“아니 살아있는 거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상태라서...”
“애매한 상태?”
“마치 기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 같은 느낌은 아니야.”
흐음...
그게 무슨 말이지?
“뭐 직접 보는 게 더 좋겠지. 이렇게 앉아서 고민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그럼 나는 여기서 서류 작업이나 더 하도록 하겠다.”
“알았어. 우리끼리 다녀올게.”
나는 엘로아도 같이 가자고 말하려 했지만 카루아와 페르세스가 날 끌고 가는 바람에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엘로아를 놓고 우리는 일반 신 건물 꼭대기로 향했다.
“엘로아도 같이 오지...무슨 이용? 그걸 하려면 엘로아의 동의도 있으면 좋을 거 아니야.”
“그... 엘로아가 이걸 보기에는 좀 불편할 수가 있어.”
“불편하다니?”
“아까도 말했듯 주신의 정신체는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거든.”
우리는 꼭대기에 다다른 뒷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흰색 빛을 내고 있는 한 개의 구가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카루아님. 페르세스님. 로엔님.”
그리고 그 구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광신이 주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의 목소리와 같았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카리온이 왜 기계 같다고 말했는지 알 거 같았다.
엘로아가 오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도.
사람이 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무미건조하고 아주 딱딱한 말투.
마치 기계가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루아님 잘 지냈어?”
카리온이 어색하게 인사하자 그 구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지냈습니다.”
“이게 주신의 정신체야?”
“응. 말 그대로 주신의 지식과 선구안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물체? 기계? 말하기 좀 어려운 그런 거야.”
나는 다시 구를 바라봤다.
왜 엘로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내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상대방은 감정도 그동안의 정도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태를 내가 겪는다면 나도 굉장히 괴로울 것 같았다.
그저 무미건조한 이런 목소리만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없고 이런 목소리만...
“안타깝네...”
“뭐 그렇지...”
우리는 흰색 구를 바라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