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3 주신의 정신체?
* * *
“그런데 이걸로 어떻게 한다는 소리야?”
“아까 말했듯이 이건 주신의 지식과 경험의 집합체야.”
"그런데?"
"그런거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거지."
“아 그럼 우리가 물어본 거에 답해준다는 거야?”
오 생각보다 좋은데...
“그런데 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뭐 이것도 인과율 같은 거라도 걸려있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맞아?”
그냥 한 말이었는데...
의외로 나한테 찍기 재능이 있을지도?
“인과율과 관련된 개념이야.”
“관련된 개념?”
“인과가 뭔지 알지.”
“원인과 결과 아니야?”
카리온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말하면 그 결과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진짜? 그럼 엄청 좋은 거 아니야? 왜 다들 안 쓰려고 하는 거야?”
“대신 이건 과정을 신경 쓰지 않아.”
“과...정?”
“예를 들어 너가 10골드를 버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고 해봐. 그럼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야.”
“그런데?”
“그 행동이 어떤 일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거야. 10골드를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 예를 들어 숲에다가 함정을 파면된다고 정신체가 알려줬다고 해봐. 그런데 그 함정에 동물이 빠져서 죽는 게 아니라 10골드를 가진 사람이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거지.”
“아...”
과정을 무시한 결과.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해도 과정 동안 결과보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럼 광신에 대해서 이거한테 안 물어본 이유가...”
“모든 세계가 멸망해버리거나, 중간계 전부가 멸망시켜버리는 시나리오를 걱정한 거지. 그런 일이 일어나면 막은 건만 못하는 전개니까.”
“...”
“그런 이유 때문에 엘로아가 이걸 더 싫어하게 된 거지.”
“더 싫어해?”
“과정을 생각한다는 건 지능을 가진 생물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
지성체 만의 행동.
“과정의 도덕성 같은 과정의 정당성. 동물이나 마물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거든. 그저 결과만을 볼 뿐.”
나는 카리온의 말을 듣고 다시 흰색 구를 바라봤다.
“그런 점에서 더 주신 같지 않다고 느낀 건가...?”
“그렇지.”
“그럼 주신님은 왜 이런 걸 남긴 걸까? 본인도 분명 그런 걸 알고 남겼을 텐데.”
“그건 나도 모르겠네...”
주신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까지 중간계를 지키려고 했고 그 누구보다 모두를 지키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만을 낳는 기계를 만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신들이 세상을 멸망시켜버릴 원인을 주는.
뭔가 모순되지 않는가.
“나 한 번 사용해봐도 돼?”
“되긴 하는데... 어떤 걸 물어보게?”
“에레보스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음... 그렇게 물어보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거 같고 차라리 차원의 틈에 들어가는 방법을 물어보는 게 어때?”
“음... 그럴까?”
“근데 하나 주의할 점이 그 질문을 한 번 하면 더 이상 그 질문은 못 해.”
“어? 그래? 음... 그런데 별 상관없지 않아?”
“아니. 정신체한테 질문을 하면 그 사람이 할 행동을 말해주는 거야. 한 마디로 사람마다 다른 답을 준다는 거지. 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더 쉽게 결과에 다다를 수 있는 답을 줄 수도 있고.”
카리온이 설명하고 있자 페르세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아직도 반대야. 해봤자 좋을 게 없어.”
“어? 왜?”
“저게 너한테 어떤 답을 준다면 너는 무조건 그걸 할 거 아니야.”
“... 좀 이상하다 싶으면 안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걸 판단할 수 있으면 이걸 맨날 썼겠지. 그걸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이 기계의 최대 단점이야. 그리고 너가 이 기계한테 어떤 방법을 들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가?”
생각해보니 페르세스의 말이 맞았다.
코앞에 답이 있는데 베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른 걸 한다고 하더라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겠지.
쉬운 방법이 있는데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이 기계가 말해준 대로 해도 문제고 이 기계가 말해준 행동의 반대로 하더라도 문제다.
그저 이 기계에게 휘둘릴 뿐.
“듣다 보니까 이 기계는 안 좋은 점밖에 없는데 주신님은 대체 이런 기계를 왜 만든 거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이 흰색 구... 흰색 구... 흰색 구?
“어?”
“왜?”
“이거 그러고 보니 주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기구 아니야?”
“응?”
나는 흰색 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기운을 느꼈다.
청량한 기운.
친근한 기운들이 모두 같이 있는 듯한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근원'
즉 주신의 기운이다.
“맞네!”
기계 같은 말투.
그리고 내 기운들이 마치 인공지능처럼 움직였던 것.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건 주신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인공지능이었다.
주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뭐... 주신이 만들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그럼 이건 주신의 정신체가 아니라는 소리인데?”
“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거... 혹시 내가 이 기운 사용해봐도 돼?”
“뭐? 너가?”
“어차피 주신의 기운이니까 내가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주신의 정신체가 아니라 기운이라면...
정신체가 말해준다는 사실과 주신이 만든 기운이 말해주는 사실은 차원이 달랐다.
정신체에게는 그저 묻는 것밖에 못하겠지만, 기운이라면 이걸 이용할 수 있다.
그저 묻기만 한다면 말하는 사실에 우리가 이용되는 거다.
그저 우린 결과만을 원하게 되고 이 정신체가 말한 거 대로 행동하게 되는.
하지만 기운은 도구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
카리온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봤다.
"주신이 만들어 놓은 정신체를 자기가 다룬다라..."
"좀... 그런가?"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한 적 없겠지...
주신을 이용한다는 사실부터가 너무 이상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건 주신의 정신이 아니잖아!
“크크... 로엔 역시 넌 어디로 튈지 몰라서 좋아.”
페르세스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한 번 해봐! 별일 있겠어?”
“꼭 이럴 때 사고가 일어나던데...”
카리온은 불안한 얼굴로 날 봤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겠지. 해 봐.”
그리고 이내 나를 보며 웃어줬다.
“해볼게.”
나는 내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흰색 구에 손을 댔다.
이걸 어떻게 이용하지.
내가 만든 주신의 기운을 이용할 때는 그 안에 내 기운이 들어있어서 그냥 내 몸의 일부 같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기운은 그런 느낌이 아니니까.
마신의 기운을 넣으면 되려나?
나는 눈을 감고 마신의 기운을 구에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주신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 떼십시오.”
갑자기 내 주위가 검으로 둘러싸였다.
“뭐...뭐야!!”
“로엔 손 떼.”
카리온과 페르세스가 기운을 끌어올린 채 말했다.
둘의 기운이 내 몸에 둘러쌓여있는 게 느껴졌다.
검이 생기자 마자 내 몸을 보호해준 것 같았다.
나는 슬쩍 손을 뗐다.
손을 떼자 주위의 검들이 흰색 구에 스며들었다.
“열쇠가 없으면 저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주신님 이외에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셔야 합니다.”
“그...그래?”
잠깐.
““열쇠?””
우리 셋은 동시에 그 말을 했다.
“열쇠라니?”
내가 묻자 정신체 아니 주신의 기운이 말했다.
“열쇠는 열쇠입니다.”
“그니까 그게 뭐냐고.”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허...참 나도 적게 산 편은 아닌데 이런 일은 처음이네.”
카리온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주신님이 이렇게 이상한 기구를 막 만들어 놓을 리가 없지!”
“넌 카루아랑 만난 적도 없잖아.”
“아...아냐 한 번 있어. 그 광신한테 잡혀갔을 때...”
“그거야 광신이 꾸민 주신의... 잠시만.”
카리온은 웃으면서 말하다가 갑자기 멈췄다.
“주신이랑... 만났다고?”
“어... 그런데?”
카리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냐 아무것도.”
“엥?”
“일단 난 대충 열쇠에 대해서 알 거 같거든?”
카리온이 무슨 생각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구에 대한 게 먼저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상황을 봤을 때 명확한 답이 있었다.
마신의 기운을 저기다 넣었을 때 막혔다는 것.
그리고 주신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나와 카리온이 웃자 페르세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니네끼리만 웃지 말고 나도 좀 알려줘.”
나는 카리온에게 답을 말했다.
“근원. 그게 열쇠 맞지?”
“후후... 한 번 해봐.”
나는 팔에서 근원을 꺼내 흰색 구에 넣었다.
그러자 흰색 구에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로엔 님을 사용자로 등록합니다. 정상적으로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소리가 나왔다.
“프로그램 미카엘. 가동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