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74 미래를 보다
* * *
그 말과 함께 방이 새하얀 공간으로 바뀌었다.
중앙에 선반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쇠로 된 공이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쇠로 된 공은 굉장히 특이한 생김새를 띄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글자들이 세겨져 있고 그 안에서는 엄청난 기운들이 느껴졌다.
“뭐지?”
내가 선반에 다가가 공을 만지자 공이 빛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공에 적혀있는 글자들이 빛났다.
그리고 목소리가 울렸다.
“프로그램 미카엘입니다. 사용 방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게 뭐야?”
나한테만 들리는 소리가 아닌지 페르세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프로그램 미카엘은 일어날 미래를 예측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미래를 말씀해주시면 어떤 행동을 할 때 일어날 일들을 예측해줍니다.”
“모든 일을 예측해주는 거야?”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 과정들을 전부 다 보여준다는 소리인 건가?”
“맞습니다.”
“이런 기능이 있었네...”
밖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다르게 극 상위호환의 기술.
정말로 미래를 말하면 그 미래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니...
아마 밖에서 사용할 수 있던 건 한 가지만 랜덤으로 보여주던 거 같았다.
체험판 같은 느낌?
“한 번 사용해볼까?”
“저 프로그램이 말한 대로라면 아무런 손해가 없는 거 같긴 한데...”
카리온은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나도 불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
이런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아무런 손해도 없이 할 수 있다니.
그래도 주신의 능력이니 믿을 만했다.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한 주신인데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처음부터 큰 걸로 간다.”
나는 쇠 공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광신을 이기는 방법... 알려줘.”
“광신을 이기는 법. 탐색합니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엄청난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마치 그림이 그려지듯 상황들이 그려졌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과 그 뒤의 상황까지.
우리가 예측했던 대로 끔찍한 결과를 낳는 상황들이 보였다.
세계가 멸망하는 시나리오도 있었고, 모든 신이 죽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중간계가 멸망하는 시나리오도 보였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로엔!!!”
“어?”
내가 여러 가지 장면을 보던 중 갑자기 카리온이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놀라서 쇠 공에 손을 떼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로엔 너 코에서...”
내가 코를 만지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엄청나게 어지러워졌다.
“어... 윽...”
내가 휘청거리는 걸 카리온이 붙잡아줬다.
“괜찮아?”
“어...어...윽...”
어지럼증 다음은 두통이었다.
머리가 엄청나게 아파왔다.
“야! 프로그램!! 로엔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 모습을 보고 페르세스가 하늘을 보고 소리쳤다.
“미래를 예측할 때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는 사용자의 정신력을 소모합니다. 아마 그 과정에서 과부하가 온 것 같습니다.”
“나... 괜찮아.”
잠깐 시간이 지나자 상태가 괜찮아졌다.
역시 너무 간편하고 좋은 기능이었다.
솔직히 정신력만 소모한다는 사실도 굉장히 사기적인 능력이긴 했지만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에레보스가 사용하면 사기 능력이 될 수 있겠네...”
에레보스의 가장 큰 장점이 정신력이니까...
에레보스의 능력은 정신력을 이용해서 마신의 기운을 세세한 컨트롤을 하는 능력이다.
근원을 제외한 능력들은 정신력을 이용해서 조종할 수 있다.
뭐 정신력을 이용한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라 그냥 생각으로 조종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세하게 조종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집중해서 신경 써야 하지만 에레보스는 좀 달랐다.
마치 여러 개의 뇌를 가진 듯한 느낌.
보통 다른 사람들은 세세한 컨트롤로 하나를 다루기도 벅차지만, 에레보스는 그런 능력들을 여러 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없으니까...”
내가 에레보스처럼 정신력을 단련하려고 하면 하루 이틀은 당연하고 몇 십년... 아니 셀 수 없을 정도의 긴 기간을 단련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같이 타임어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련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 미카엘씨? 이렇게 부르시면 되나요?”
“아무렇게나 불러주시면 됩니다.”
쇠 공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력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없나요?”
“가까운 미래나 간단한 미래를 보시면 됩니다.”
가까운 미래는 알겠는데 간단한 미래?
“간단한 미래는 뭐야?”
“일어날 경우의 수가 적은 미래입니다.”
미카엘의 말에 카리온이 덧붙여 말했다.
“뭐 그냥 쉬운 미래를 말하는 거겠지. 우리가 엘로아를 만날 미래 같은 거. 곧 만나러 갈 예정이니까 경우의 수가 적을 거 아니야.”
“그럼... 뭘 물어보는 게 좋을까?”
“더 물어보게? 그냥 쉬지? 안 그래도 청각의 사제장과 싸우고 왔었잖아. 그냥 그만하지?”
페르세스는 걱정되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야. 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응! 난 튼튼하다고!”
둘이서 나를 살짝 노려봤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럼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어때?”
“알았어. 그럼 그걸로 해볼게.”
나는 다시 쇠 공에 다가가 손을 댔다.
“조금 아니다 싶으면 바로 손 떼.”
페르세스의 말에 알았다는 의미로 방긋 웃어 보였다.
“차원의 틈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줘.”
“차원의 틈으로 가는 법. 탐색합니다.”
미카엘의 말과 함께 머릿속에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아까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미래만 보였다.
누군가 죽거나 큰일 나는 미래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오래 걸리는 미래와 적게 걸리지만 리스크가 큰 미래들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래는 우리가 차원의 틈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힘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하는 미래들이었다.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로엔 못 찾아도 돼.”
“아냐 거의 다 찾은 거 같은데...”
그 말을 한 후 다음 미래를 보고 있는데 어떤 장면을 봤다.
“요정... 여왕?”
지끈!
“윽...!”
갑자기 두통이 심하게 와서 쇠공에서 손을 떼버렸다.
“으...”
그리고 또 코피가 나버렸다.
하루에 코피가 몇 번이 나는 거야...
“로엔 괜찮아?”
“어 어! 괜찮아.”
괜찮긴 한데...
미래를 보다가 전부 보지는 못했다...
제일 유력한 후보처럼 보였는데.
“이제 그만하자. 그러다가 너 과부하라도 와버리면 아무것도 못한다.”
“나 조금만 더 보면 되는데...”
“아냐.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될 때지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몸이라도 상하면 어떻게 하려고.”
페르세스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내가 혼잣말을 하자 미카엘이 내 말에 대답해줬다.
“프로그램 종료를 외쳐주시면 됩니다.”
“나중에 여기 다시 올 수 있지?”
“로엔!”
“네 가능합니다. 나중에도 열쇠를 넣어주시면 됩니다.”
“알았어. 프로그램 종료!”
그러자 흰색 배경이 걷히며 아까의 방이 나타났다.
“그래도 좋은 정보는 많이 얻은 거 같아서 다행이다.”
“뭐 무슨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나중에라도 여기 와서 더 볼 생각하지마. 더 해야할 일이 있으면 우리랑 같이 와서 해.”
“흐잉... 알았어...”
나는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몰래 한 번 더 와서 미래를 전부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뭘 봤어?”
“그... 두 가지 정도 괜찮은 방법이 있었는데...”
“생각한 거보다 종류가 적네?”
“본 건 한 100가지 이상 미래가 있긴 해.”
“뭐?”
“100가지? 어떤 과정이 일어나는지 아는 미래가?”
“응. 전부 다 본 건 아니야.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들도 있었고... 그것들을 제외하면 몇 가지 없어.”
“그럼 그 두 가지가 뭔데?”
“아 말하기 전에.”
페르세스와 카리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가지는 도박성이 있고 한 가지는 확실한데 그렇게 좋은 선택지는 아니야.”
“도박성이 왜 있어? 과정을 다 본 거 아니야?”
“그... 마지막에 보다가 끊겼어...”
“하필?”
페르세스는 눈이 동그래진 채로 물었다.
나도 어이가 없긴 했다.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그런 중요한 장면에서 끊어버리냐고.
“나도 끊길 줄 몰랐지...”
“뭐 그럼 과정을 다 본 거부터 말해봐.”
“한 가지는 강제로 들어가는 방법이야.”
“강제로? 강제로 들어갈 수가 있어?”
“들어갈 수가 있더라고. 다들 에레보스의 성물을 문이라고 표현했잖아.”
“그렇지?”
“이 방법은 그 문을 강제로 여는 방법이야.”
내가 말하자 카리온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방법을 사용하면 보는 손해는?”
“카리온이 같이 못 가.”
“어?”
“카리온은 강제로 문을 열고 있는 역할을 맡아줘야 해. 문을 열고 있는 사람은 못 들어오거든.”
페르세스가 피식 웃었다.
“이런~ 카리온은 같이 못 가겠네~”
“그럼 무조건 후자로 해야겠네. 다른 방법은 뭔데.”
“요정 여왕을 만나러 가는 거야.”
“요정 여왕? 엄청 오랜만에 듣네. 그 녀석을 만나서 어떻게 하는데?”
“내가 포탈을 역 추적하는 방법을 배우면 돼.”
“역 추적?”
“일단 이 이야기는 엘로아도 들어야 할 거 같으니까 엘로아하고 같이 이야기하자.”
“그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