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75 계획
* * *
“요정 여왕?”
엘로아의 방에 돌아온 우리는 엘로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주신의 정신체라고 알려졌던 건 사실 미카엘이라는 프로그램이고 주신의 정신체가 아니었다는 것.
처음에는 놀랐지만 조금 있으니 담담해졌다.
아니 담담해졌다기보단 좋아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엘로아는 그 전부터 그 프로그램을 주신이라고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는 의문을 가졌다.
그럼 진짜 주신의 정신체는 어디로 간 것인가.
육체를 바쳐 중간계를 만들고 에레보스를 봉인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주신의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인가.
주신의 정신이 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조금 토론을 해봤지만, 결론은 알 수가 없었다.
뭐 급한 건 주신의 정신을 찾는 거 보다 차원의 틈으로 들어가는 게 더 급했으니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나는 엘로아에게 요정여왕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냥 그 녀석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어... 그냥 만나면 되는 건 아니고 내가 신계에서 마법에 관한 걸 배우고 가야 해.”
“마법?”
“응! 내가 마법을 배우는 장면이 있더라고.”
“마법을 배워?”
계속 의문을 던지는 엘로아의 말에 나는 왜 그러나 싶었다.
“로엔. 너 마법 사용할 줄 몰라?”
“그냥 간단한 마법만? 아! 그냥 마법을 다 배우는 게 아니라 공간 마법 계열 마법만 배우는 거야.”
“...”
“페르세스...”
무슨 일이지?“페르세스는 어색하게 허공을 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흠흠~”
“너가 로엔에게 힘을 교육하는 담당이었잖아.”
“너 마법 쪽 안 알려줬어?”
잘못된 게 있나?
나는 페르세스에게 마법에 기본적인 면만 배웠다.
그 후에 배웠던 건 검술 같은 무술류.
뭐 신력이나 마신의 기운을 다루는 방법도 같이 배우긴 했지만 주로 배웠던 건 무술 쪽이었다.
“페르세스...”
카리온이 페르세스의 이름을 부르자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아니... 다들 마법이나 마신의 기운만 다루고 무술을 단련하는 신들은 없잖아. 그래서 나도 나랑 같은 관심사를 가진 신이 필요했다구...”
“그렇다고 마법을 안 가르치면 어떡해!”
“아니... 나도 가르치려고 했긴 했는데.”
“했는데?”
카리온이 말했다.
“그... 나도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아니고?”
엘로아가 말했다.
“알았어! 내가 가르칠게! 미안해! 미안하다고!”
평소에 당당하던 페르세스의 태도와 다르게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내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하...”
“그런데 왜 공간 마법을 배우는 건데?”
“아 내가 좌표 역추적 마법에 대해 배워야 하거든.”
“좌표 역추적?”
“내가 아까 청각의 사제장과 싸웠을 때 어떤 공간에서 포탈을 열었거든?”
청각의 사제장이 내 신력과 근원을 다른 공간으로 날렸을 때.
그때의 그 공간.
그 공간으로 가야 한다.
그 공간이 차원의 틈은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가면 답이 나왔다.
좌표 역추적 마법.
그 마법을 사용해서 차원에 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공간은 어떤 공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제장들이 그 공간의 포탈을 열어 차원에 틈에 간 적이 있던 거 같았다.
그래서 일단 역 추적 마법으로 내가 열었던 포탈을 역추적한다.
그리고 청각의 사제장이 내 기운을 보냈던 공간으로 간다.
그 다음 그 공간에서 사제장들이 열었던 포탈을 역 추적해서 차원의 틈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좌표 역추적 마법은 신들도 사용할 수 있지만 남의 포탈을 역추적하는 마법은 사용할 수 있는 이가 별로 없다.
신들은 언령이 있어서 마법에 그리 능통한 편은 아니었다.
마법의 이론과 언령의 힘을 합친다면 더 뛰어난 능력을 발현할 수 있음에도 마법에 대해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이 아닌 마법 이론에 뛰어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그 중 한 명이 아마 요정 여왕인 거 같았다.
다른 미래를 봤다면 요정 여왕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미래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
뭐 근데 지금 다른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으악!!!”
“어우 뭐야?”
“이게 무슨...”
갑자기 쇼파에 누워있던 엘리시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여기가 어디야?”
“내 집무실이다.”
엘로아가 일어난 엘리시에게 말했다.
“어? 엘로아! 카리온에 로엔 후배까지!! 다들 날 구하러 와줬구나!”
“아니 우리도 잡혔어.”
카리온이 담담하게 말하자 엘리시의 얼굴이 절망에 빠졌다.
“뭐...뭐? 그럼 우리 전부 잡힌 거야?”
“어 맞아.”
“으...으... 이 멍청이들아!! 니네 그렇게 강하다면서 왜 잡혔어!!”
엘리시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었다.
“이 바보들!!!! 진짜... 흑...”
“거짓말인데?”
“흑...흐...응? 거...거짓말이라고?”
“어 구라야.”
“...”
엘리시는 어이없는 얼굴로 카리온을 봤다.
엘로아도 카리온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말을 했다.
“에휴... 엘리시 너 잡혀갔던 거 구한 거야.”
“그...그럼 페나랑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은 많이 죽었지만 페나는 무사해.”
내가 엘리시에게 말했다.
“그럼 청각의 사제장은?”
내가 말하기 전에 페르세스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로엔이 죽였어.”
“에?”
“페나인가? 그 사람들을 구한 것도 로엔이고 청각의 사제장을 죽인 것도 로엔이야. 너를 구한 건 에레보스긴 하지만.”
“로엔 후배...! 진짜야?”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엘리시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았다.
“고마워...! 페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러자 갑자기 엘로아가 엘리시를 쥐어박았다.
“악! 왜 그래!”
“우리 바쁘니까 떨어지라고. 그리고 약해 빠진 주제에 신관장한테 덤벼? 죽으려고?”
“으..."
엘리시는 풀이 죽은 채로 엘로아의 핀잔을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혼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엘로아는 한숨을 푹 쉬고 때렸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잘했다. 무모한 건 좀 그렇지만 이제야 좀 신 같아진 거 같네.”
그렇게 말하자 엘리시는 고개를 들었다.
“에...엘로아...”
“고생했어.”
“으...”
“그래도 중간계에서 실현을 사용한 처벌은 내려질 거다.”
“뭐?”
“중간계에서 허락 없이 실현한 건 맞잖아.”
“어???”
엘리시는 억울하다며 소리쳤지만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하...”
아 그러고 보니...
“페나도 걱정할 텐데 페나라도 만나러 가실래요?”
“어 그럴까?”
“징계 받기 전에 빨리 얼굴이라도 보고 와.”
“응!”
엘리시는 징계를 받는다는 말을 들어도 페나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기뻐보였다.
나도 중간계에 내려가서 별일 없었다고 말해줘야 하니까.
“나도 잠깐 중간계에 들렀다 올게.”
“그래 조심히 다녀와.”
엘로아의 말과 함께 나와 엘리시가 중간계로 가려 했다.
그러자 카리온이 끼어들었다.
“어? 같이 가게?”
“나도 같이 가서 아래 상황 좀 보고 와야겠다.”
“그래? 별로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닐 텐데.”
“그래도 거기에 무슨 단서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뭐 같이 가면 좋지 뭐.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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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
“엘...엘리시님!!!”
엘리시는 페나에게 달려가 페나를 안았다.
“뭐야? 엘리시님은 잡혀간 거 아니었어?”
옆에 있던 카론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볼을 긁으면서 말했다.
“아 조금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어.”
“잘 해결 된 거야?”
“잘...은 아니야.”
에레보스가 잡혔으니까...
나는 긴 사정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여기 일들을 처리하는데 바쁠 애들한테 걱정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 여기는...”
그러고 보니 뭐라고 설명하지...
그냥 카리온이라고 말하면 되나?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카리온이 먼저 대답했다.
“나는 혼돈의 신 카리온이다.”
“...”
“...”
물었던 카론과 옆에 있던 렌이 멍한 채로 카리온을 봤다.
“카리온이다.”
카리온이 카론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론은 놀라서 카리온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카...카론입니다!”
“그래.”
카리온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주 엉망이네.”
“그... 그렇게 됐습니다.”
카론은 마치 자기가 잘못한 거처럼 카리온의 말에 대답했다.
원래 조금 가벼운 느낌의 분위기를 가진 카리온이었는데 평범한 사람들 앞에 서자 엄격한 분위기 같아 보였다.
마치 현장에 나온 회장님 같은 느낌?카론은 현장 담당자로서 혼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카리온이 둘러보는 걸 보고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카리온 어차피 할 일 없지?”
“뭐? 지금 바쁜 거 알면서 그래?”
“그건 내가 바쁜거고 넌 한가하잖아.”
“...할려면 할 일은 많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카리온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할 일 없어.”
“그럼 여기 복구하는 것 좀 도와. 어차피 이 주변 조사한다고 했었고, 너 소환수들 이용하면 금방 복구할 수 있잖아.”
“...나를 그런 일로 이용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왜? 이 정도 일은 나름 큰일을 도와달라고 한 거 같은데?”
아무리 신이긴 해도 이 정도는 은근 큰일 아닌가?
“알았어. 그럼 난 여기서 남을 테니까 너도 어느 정도 일 끝나면 연락해.”
“고마워!”
나는 눈웃음을 짓고 다시 신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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