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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79화 (79/138)

〈 79화 〉 #78 공간 마법

* * *

“저 신 성격 엄청 나쁘지...?”

에루가 엘로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평소의 엘로아를 생각했다.

카루아와 에레보스가 일을 맡기고 도망쳐도 별 화를 안 내고... 뭐 다른 일들이 있어도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엄청 착한데...?”

내 말에 에루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쓰레기인데...”

“들린다.”

“흡!”

저 멀리서 책을 읽고 있던 엘로아의 말에 에루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에루는 나름 엘로아랑도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몇 번 에루가 엘로아에게 대들어서 얻어터지곤 했긴 했다.

상처는 내가 몰래 치료를 해줬는데 엘로아가 알고 있음에도 치료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치료해줄 걸 알고 팬 거 같았다.

그렇게 내가 에루에게 마법을 배운 지 며칠이 지났다.

에루는 생각보다 마법 이론에 대해 빠삭히 알고 있었다.

평소의 행동들은 정말 어린 아이 같은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마법을 가르쳐줄 때만큼은 진지한 모습이었다.

“에루는 왜 마법을 배운 거야?”

내가 묻자 에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재밌으니까?”

“그래? 마법은 어렵잖아.”

“어려우니까 더 재미있는 거지. 그리고 응용할 방법들도 많고.”

“그런가?”

“마법을 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람들을 골탕먹이기 더 좋다고.”

“나랑은 잘 안 맞는 거 같아... 너무 어렵기도 하고.”

그러자 에루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역 추적 마법은 왜 배우는 거야? 좋아서 배우는 거 같지는 않고.”

나는 살짝 곤란한 얼굴로 엘로아를 쳐다봤다.

엘로아는 그냥 별 반응 없이 책을 읽었다.

아마 말해도 된다는 뜻이겠지?

“지금 다른 차원에서는 광신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데 그 녀석을 잡으려면 이 능력이 필요하거든.”

“광신?”

에루는 놀란 얼굴로 날 봤다.

그리고 화난 얼굴로 씩씩대기 시작했다.

“맞아! 그 녀석! 내가 그 녀석들 때문에 얼마나 화났는데!”

“어? 알아?”

에루는 뭔가 분한지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내가 너희를 의심한 것도 그 녀석들 때문이야! 그 녀석들이 여기에 와서 자기가 신이라고 했다고!”

“뭐?”

“자세히 말해봐라.”

엘로아는 읽던 책을 덮고 우리 근처로 걸어왔다.

“아니 그러니까... 말해주면 뭐해줄 건데?”

갑자기 엘로아가 가까이 오자 장난스러운 얼굴로 엘로아에게 말했다.

“또 맞고 싶은 거냐?”

“아닙니닷! 말하겠습니닷!”

에루는 엘로아의 말에 충성 자세를 취했다.

“그 녀석들이 여기에 와서 자기가 주신이라면서 공간 마법 연구 자료를 내놓으라고 했어.”

“공간 마법?”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공간 마법은 최고잖아. 어떤 토끼 자식하고 자기가 주신이라고 자칭하는 여자가 와서 공간 마법을 내놓으라고 했다니까?”

토끼는 아마 청각의 사제장인거 같고... 주신이라 자칭하는 여자?

그게 누구지?

“그래서?"

“뭐 줬지.”

“뭐?”

엘로아는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힘으로 협박하는데 어떡해? 우린 공격마법은 잘 모른다고.”

“그럼 다른 신들에게는 왜 말 안 했지?”

“우리가 뭐 신들이랑 그렇게 안부 전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그냥 연구 자료를 주니까 별일 없이 가더라고. 갔으니 된 거 아니야?”

“...”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공간 마법이라...

“그 녀석들이 왜 공간 마법을 가져간 걸까?”

내가 엘로아에게 묻자 엘로아는 잠깐 고민을 했다.

“그 연구 자료가 뭐지?”

“어...”

그걸 묻자 에루는 아차 싶은지 말을 멈췄다.

“금지된 연구를 했군.”

“아...그... 그냥 장난기가 도져서... 아니 그렇게 엄청난 연구는 아니었어...”

“그래서 그게 무슨 연구였지?”

“그... 포탈을 못 여는 곳에 포탈을 열 수 있게 하는 연구...”

포탈을 못 여는 곳.

그런 공간은 생각보다 몇 곳 없다.

예를 들면 신계나 정령계.

그리고 차원의 틈이나 봉인으로 막아놓은 공간.

엘로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에루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 로엔!! 살려줘!!”

“금지된 연구는 금지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니!! 우리는 나쁜 곳에 사용하려고 한게 아니라 신들한테 장난이라도 쳐볼까 해서 그런 거야!!”

“너희가 악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안 다른 사람들이 악용한다.”

엘로아는 굉장히 화나 보였다.

“신들한테 말하지 않은 이유도 그런 거 때문이었군.”

“아니 갑자기 연락 안하던 친구한테 돈 빌려달라고 연락하는 느낌이라서 안 한 거야!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한거라고!”

“연락 안 하던 친구의 돈을 털어먹은 거나 다름 없는데 뭐가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한거냐.”

“그...그런가?”

나도 한숨을 푹 쉬었다.

그저 요정의 장난이 원인이 된 건가...

“그럼 광신이 봉인된 공간에 공간을 열어서 광신을 꺼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 그건 불가능할 거다. 봉인된 공간에 구멍은 낼 수 있겠지만, 광신은 그 공간에 봉인된 채로 묶여있으니까. 그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이야.”

“그럼 왜 가져간 거지?”

“그 녀석들이 지금 차원의 틈 통로에 숨어있을 수 있었던 이유겠지.”

“아...”

“뭐가 이상하긴 했다. 에레보스의 성배가 문으로 이용된다는 걸 아는 것도 이상했고.”

“그러고 보니까 성배가 문으로 이용되는데 왜 신계로 안 가지고 오는 거야? 그냥 처음부터 신계에 있었으면 됐잖아.”

“방어선이다.”

“방어선?”

“광신의 봉인이 풀릴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풀린다면 마치 차원의 틈에 봉인했던 거처럼 그 차원에 광신을 봉인하는 거다.”

“뭐? 그럼 그 차원에 사는 사람들은...”

“광신이 봉인되었으니 그 땅은 오염된다. 아마 살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차원이 봉인되었으니 신의 은혜나 정령들의 영향이 끊기겠지.”

살 수 없는 땅이 돼버린다는 뜻인가...

“한 번 봉인을 풀었으면 또 봉인을 풀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니야?”

“그럴 때는 그 차원을 폭파시키면 된다. 차원이 붕괴하였을 때 끼치는 영향은 너도 알 거 아니야. 그 인과율을 최대한으로 비틀어서 차원 자체를 폭파시켜버리면 광신도 죽는다.”

“인과율을 비틀려면...”

그 차원에 신이 직접 가야 된다.

그것도 신 한 둘로 인과율이 최대로 비틀어지지 않는다.

그냥 차원축이 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붕괴까지 가려면...

“그러니까 절대 봉인이 풀려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중간계 전체를 날려야 하는 수도 있다.”

“중간계 전체를... 그럼 봉인하는 방법 말고 광신을 없애버리는 방법은 없어?”

“몇 번 연구해본 적은 있지만, 실행은 불가능했다. 직접 실험을 해보러 그곳에 들어갈 미친 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크니까.”

그럼 결국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는 소리인가...

“나무는 이쪽으로 가져와라!”

“이쪽 돌이 부족해!”

“보고만 있어도 신기하네요...”

“그러게... 신기하네...”

페나와 카론은 카리온 옆에 쪼그려 앉아 도시가 정리되는 걸 보고 있었다.

카리온이 오기 전까지는 바쁘게 움직였던 카론과 페나였지만 카리온이 온 이후로 그저 백수가 되었다.

일을 하려면 할 수 있긴 했지만, 카리온이 자신들을 자기 옆에 데려다 두고 다른 데로 못 가게 막았다.

로엔의 부탁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솔직히 일을 안해도 될 거 같아 보였다.

미노타우르스와 오크들이 돌과 나무를 옮기고 드워프들이 집을 짓는다.

슬라임들이 물을 떠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웨어울프들이 사냥해온 동물들로 식량을 채운다.

정말 어디서도 보지 못하는 광경.

각각 마물들의 특징을 살려 일들을 효율적으로 해 나간다.

인간들만 움직여서 일을 할 때하고 속도가 차원이 달랐다.

이 모든 게 카리온이 이공간을 열어 나온 마물들이었다.

카리온은 큰 부분만 명령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로엔과 카론이 모아놓은 시체들을 봤다.

그 시체들은 거의 다 마물의 시체였다.

청각의 사제장이 열었던 포탈에서 내려온 마물들.

“이게 청각의사제장이 소환했다던 마물인가?”

“네. 맞습니다.”

카리온은 자세를 낮추고 시체 조각을 들었다.

“이상하군...”

분명 이 마물들은 자신이 봉인해둔 마물들이다.

정확하게 봉인은 아니고 다른 이공간에 가둬놓은 녀석들이다.

자신이 꺼내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녀석들일 텐데.

과거에 만들어 놨던 마물들.

자신이 탄생하자마자 만든 마물들이다.

미숙할 때 만들었다 보니 자기가 제대로 조종할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 녀석들은 그저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

어떠한 명령도 듣지 않고 인간을 죽이기만 하는 녀석들.

어떻게 꺼낸 지는 모르겠지만...

“카리온 언제까지 여기 있게!”

페나의 뒤에 숨은 채로 엘리시가 소리쳤다.

“로엔의 부탁으로 여기 있는 거다.”

“빨리 돌아가! 애들이 무서워하잖아!”

“무서워하는 건 엘리시님 같은데요...?”

카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론의 말에 카리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는데?"

카리온의 말에엘리시는 씩씩대면서 말했다.

“내가? 내가 뭘 무서워해! 너희를 배려해주는 거 아니야!”

자기가 배려하는 거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어린 페나의 뒤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작은 소녀를 방패로 하고 큰 소리를 내는 모습은 그렇게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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