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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80화 (80/138)

〈 80화 〉 #79 카리온

* * *

내 옆에는 붉은 머리의 여성, 페르세스가 있었고 앞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 찬 에레보스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모습이었다.

“중간계의 모든 이를 죽여라.”

그리고 내가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저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다.

마치 아기 새가 처음 본 이를 어미라고 인식하듯 나는 처음 들었던 그 명령이 당연한 소리인 줄 알았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와 페르세스는 중간계에 내려가서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모든 이를 죽였다.

사람을 점점 죽이다 보니 죽이는 요령도 익히기 시작했다.

페르세스는 주변에 집히는 물건들을 전부 무기로 사용해서 죽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서 죽이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마물들을 창조했다.

그들을 탄생시킬 때 그들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죽이는데 효율적인 모습을 추구했다.

보는 것만으로 공포감이 조성되고 그들이 다루는 능력에 어울리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페르세스도 나의 방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페르세스는 창조하기보단 마족들을 이용했다.

나는 내가 창조한 마물들로 인간을 죽였고 페르세스는 마족들과 함께 다니면서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

당연한 행동들이었다.

사람이 살려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한다는 세상의 이치같이 우리는 중간계, 모든 이를 죽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살고 있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그저 살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에레보스가 왔다.

“미안하다...”

우리 둘 뒤에 많은 마족과 마물이 있음에도 에레보스는 우리 둘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우리는 왜 그가 사죄하는지도 몰랐다.

이 신이 왜 우리에게 무릎을 꿇는 거지?왜?

뭘 잘못했다고?대체 왜?

그 이후로 우리는 그저 신계에 있을 뿐이었다.

분명 우리를 근신한 거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굳이 근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저 집무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우리의 목표를 잃었으니 당연한 거였다.

삶의 원동력이 없다.

뭘 해야 할 지 몰랐다.

나는 그저 모든 커튼을 치고 어두운 방에서 그저 누워있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었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행동만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그런 내 방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을 통해 본 것은 에레보스, 페르세스, 엘로아였다.

페르세스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니 나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죽어있는 눈.

생기가 없는 얼굴.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에레보스는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일어나. 일하러 가야지.”

엘로아는 무덤덤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일...?”

“니가 벌려놓은 마물들 니가 처리해야지.”

그 말에 나는 드디어 삶의 의욕을 느꼈다.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그게 생긴 거다.

그 날부터 나는 중간계에 뿌려져 있는 모든 마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저 자기 구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녀석들은 내버려두고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녀석들은 죽였다.

그리고 페르세스는 인간, 엘프 등등 중간계에 있는 지성체들에게 무술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무술들을...

하지만 그렇게 죽이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를 느꼈다.

중간계가 한둘이 아니었고 내가 직접 나서지 않는 곳에서는 줄어들기보다는 번식을 통해 늘어나는 양이 더 많았다.

나는 그래서 한 가지 방안을 생각했다.

어떤 공간을 만들어서 그 공간에 감당이 안 되는 마물만을 가둬버리는 거였다.

내가 에레보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에레보스는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아공간 마법을 알려줬다.

그 이공간에 포악하고 다루기 어려운 모든 마물을 가두고 나니 에레보스는 그 공간을 봉인하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그 의견을 승낙했고 결국에 나도 못 여는 공간이 되었다.

이 일 이후 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분명 마물들을 처리하라고 시킨 거는 엘로아였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떤 명령도 듣지 못했다.

나를 방치시킨 후 내 행동에 어떠한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서 생각했다.

사망자는 최소한으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

굳이 죽일 필요 없는 마물들은 현상 유지.

등등.

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왜 이 녀석들이 여기에 있냐, 이 말이지.”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시체가 된 마물들을 쳐다봤다.

“분명 봉인했을 텐데.”

내가 아공간을 만들고 봉인한 후 이 공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봉인을 강화하고 누군가 침입할 수 없도록 빈틈없이 막아두었다.

“어이없는 녀석들이군.”

전적으로 이런 녀석들을 만든 내 실수가 맞긴 하지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 폭탄이 있어서 내 집에다가 꼭꼭 숨겨뒀더니 강도가 들어와 폭탄을 들고 나간 격이 아닌가.

그것도 그 강도는 일부러 폭탄을 훔치러 들어온 강도다.

어쩌다가 가지고 나간 것도 빡치는데 일부러 가지고 나간 녀석이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그것보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내가 중간계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사용했던 마물들을 아공간에 가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신들은 몇몇 있지만, 이 공간에 들어오거나 관여할 수 있는 신들은 몇 없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입구 말고는 다른 포탈을 안에다가 열어본 적도 없었기에 더욱 들어갈 수 없었다.

이 공간에 들어와 봤던 신들 빼고는.

아니 신 말고 다른 존재가 하나 더 있긴 하다.

가브리엘.

기록하는 자.

그 녀석은 자신을 이렇게 밝혔다.

마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 내 앞에 나타났다.

자신들이 기록했던 내용을 자기가 사용해도 되느냐고.

처음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에게 계속 부탁했다.

이런 역사가 기록되어야 나중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고.

그 말을 듣자 나는 마음이 움직여 허락했다.

나도 이런 일이 또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일은 저지른 사람도, 겪은 사람도, 보고만 있었던 사람도 고통스러웠던 사건이니까.

“그럴 만한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제대로 녀석을 알아보지 않고 허락했던 게 문제였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극복할 뿐,

“브베베베브브베베벱.”

“조용히 해라. 로엔에게 방해된다.”

“크으으윽.그...그럼 나 좀 놔줘!!”

“내가 직접적인 벌을 내리지 않고 이 정도로 끝낸다는 거에 감사하게 생각해라.”

엘로아는 에루를 물에다가 담갔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담그지는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물에 담갔다 빼다 보니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았다.

뭐 옆에 신이 둘이나 있고 본인도 요정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녀석이니까 목숨이 위험하다든지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 거 같았다.

엘로아도 책만 보다가 심심해서 저러는 거 같기도 하고...

“으아!! 그만!!!”

“조용히 해.”

“꼬르르륵...”

그것치고는 좀 살벌한 거 같기도 하고...

에루에게 금지된 연구를 한 것에 대해 엘로아는 조금 화났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어차피 에루에게 화풀이를 해봤자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일말의 희망이 있기는 했다.

에루가 말했던 마법을 우리도 다룰 수 있으면 훨씬 편하게 그곳에 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 남은 연구 자료는 어디 있지?”

“어? 없는데?”

에루의 말에 따르면 요정계에 있던 연구 자료를 전부 광신도 녀석들에게 넘기고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구 자료를 다 뺏기니 다시 처음부터 하기도 벅찼고, 했던 행동들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마법에 대해 즐기는 녀석들이지만, 흥미가 떨어지면 바로 다른 걸 찾으러 떠나는 녀석들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그에 대한 화풀이인지 뭐인지 에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끄에에엑!!!”

“엘로아, 나 시험 볼 게!”

내가 말하자 엘로아는 에루를 고문하던 걸 멈추고 나에게 왔다.

“콜록 콜록! 로엔 늦어...!”

에루는 물을 뱉으면서 나에게 칭얼댔다.

유일하게 에루 괴롭히는 걸 멈추는 시간.

내가 시험 볼 때였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하다가 알 거 같다 싶으면 나는 엘로아에게 시험을 봤다.

없어진 포탈의 흔적을 찾고 그 반대쪽 좌표를 알아내는 시험.

“그럼 한 번 해볼까?”

엘로아는 한 개의 포탈을 열고 바로 닫아버렸다.

“해볼까.”

이미 한 번 사용된 마법이라면 그 흔적을 없애지 않는 이상 남아있기 마련.

흔적을 없앨 수도 있긴 했지만, 흔적을 없앤다면 원래 사용하던 사람도 그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이미 한 번 사용한 흔적이 있으면 그 흔적을 따라서 다시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흔적을 없앤다면 처음 사용하듯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우리가 추측하기에는 분명 그 녀석들도 그걸 알기에 흔적을 지우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나는 집중하고 마나의 흔적을 되짚었다.

그 마나의 흔적을 찾고 흐름을 붙잡는다.

흐름을 붙잡는다고 끝은 아니었다.

어떤 마법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마법의 실행자에 따라 마법의 형태는 달라진다.

똑같은 마법이라도 많은 실행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 마법진의 형태 또한 분석해야 한다.

‘이런 마법진이면 마나 공급 부분을 살짝 추가해야겠다... 그리고 보호 마법이 걸린 부분이 있으니까...’

나는 분석을 끝낸 후 알려줬던 마법진을 실행했다.

내 앞에 큰 마법진이 생겨났고 나는 거기에 마나를 적절히 공급했다.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마나를 적절히 공급해주는 부분이다.

마법진에는 마나를 공급하는 부분이 여러 곳이 있어 적절히 마나를 공급해줘야 마법진이 발동된다.

"흐흐..."

이런 부분에 있어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근원을 만들 때 모든 기운들이 적절하게 분배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다.

이런 마법진에 마나를 넣는 정도야 일정 오차는 무시해도 됐기에, 근원을 만드는 거에 비해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호오...”

“얘 마법 처음 배운거 맞아?”

엘로아와 에루의 말에 입꼬리가 치솟을 거 같았지만, 마법에 집중했다.

여기서부터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내 마법진도 유지하면서 상대의 마법진을 끄집어내야 한다.

“으...”

머리가 깨질 거 같았다.

직접적인 고통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돼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후...”

“수고했어.”

“로엔!!”

내 앞에 한 개의 포탈이 만들어졌다.

엘로아가 만들었던 포탈.

그 좌표를 추적해서 만들어냈다.

“뭐 처음 성공이 어렵지 두 세 번만 더 하면 쉬워질 거야.”

엘로아는 미소를 지었다.

“헤헤헤...”

나도 엘로아와 에루의 칭찬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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