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80 결정
* * *
“다 모였지?”
카리온, 엘로아, 페르세스, 카루아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모였다.
“그럼 이제 결정할 때야.”
이제 나는 공간 마법도 사용할 수 있다.
출발하려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릴 때라는 거다.
이곳에서 힘을 더 기르고 갈 건지.
아님 바로 들어갈 건지.
“이대로 간다면 갈 수야 있어. 하지만 갔다가 개죽음을 당할 수 있지.”
엘로아는 모두가 걱정하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했다.
에레보스가 말했던 사실.
주신을 이길 수 있으면 와라.
솔직히 주신을 제대로 본 건 엘로아 밖에 없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아는 건 엘로아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우리 상태를 보고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상대가 진짜 주신이라면 우린 진다. 비슷한 상대라면 모르겠지.”
우리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주신과 싸우면 진다는 사실을.
지금 내가 사용하는 힘도 엄청난데 이 힘을 마구잡이로 난사할 수 있는 존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안다고 단정 내릴 수는 없겠지.”
싸움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그날의 컨디션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기술의 상성까지.
이렇게 다수가 싸우는 싸움이라면 더욱 변수가 많아진다.
서로의 능력을 이해하고 협동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의 힘이 더하기가 될 수도 곱하기가 될 수도 있다.
“뭐 생각해본다면 미카엘이라는 사기급 능력을 얻었으니까 모든 미래를 파악하고 가도 되겠지.”
그것도 생각해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건 상대방이다.
정확히 언제 의식이 끝나는지는 우리가 모른다.
그렇다 보니, 그런 상황에서 모든 미래를 보는 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솔직히 모든 미래라는 걸 보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작은 행동만 바꾸더라도 바뀌는 게 미래였기 때문에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미래를 보고 가더라도 상대방이 우리가 본 미래대로 행동해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여기서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그냥 바로 가자는 소리지?”
페르세스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그런데 말을 왜 이렇게 길게 해?”
페르세스는 나와 카리온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냥 가자고 하면 다들 웃으면서 따라갈 텐데.”
“하하...”
맞는 말이었다.
“그냥 가자고.”
페르세스의 단결한 말에 굳었던 엘로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분위기도 가벼워졌다.
“그럼 나도 갈래.”
옆에 앉아있던 카루아가 손을 들었다.
“넌 여기 있어야지.”
“왜? 나도 갈래.”
카루아는 마치 떼를 쓰는 아이처럼 말했다.
“서류 처리나 다른 일들은 어떡하게?”
“지금 전부 망하게 생겼는데 서류처리가 문제야?”
카루아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저번부터 카루아도 우리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모두의 의견은 반대.
우리가 거기에 갔을 때 우리를 붙잡아두고 그들이 신계로 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다.
물론 다른 신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신들은 전투 쪽에는 잼병이었다.
싸울 줄 아는 신들도 있었지만 마신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엘로아의 말에 따르면 카루아도 마신만큼 강하기 때문에 남겨두는 거라고 한다.
엘로아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아마 많이 강하다는 소리인 거 같은데...
그런 강한 신이 남는 건 조금 아까웠다.
그래도 다들 생각이 있으니 카루아를 남기려는 거겠지만.
카루아의 입장에서는 이게 매우 억울한 거였다.
자기는 강하고 충분히 짐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거에다가 에레보스가 자신을 돌려보낸 게 매우 억울한 거 같았다.
돌아갈 생각도 없었는데 자기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리고 혼자 희생해버린 사실이 너무나 억울했던 거다.
그런 억울함 때문도 있고 자기만 안전하게 돌아온 거에 대한 미안함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건 너무 개인적인 이유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면 우리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루아는 가야 하는 이유라든지 그런 사족을 붙이지 않고 떼만 쓰고 있는 거다.
“나도!!!!!! 보내달라고!!!!!!!”
“절대 안돼.”
카루아는 마치 아이처럼 쇼파를 팡팡 치면서 떼를 썼다.
평소의 지적인 분위기를 가진 카루아의 이미지가 전부 망가지는 중이었다.
“나도!!!!!”
“차 가져왔습니다.”
로젤리아가 엘로아의 집무실에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카루아는 로젤리아를 보자마자 다시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
“...여기 있습니다.”
“고...고마워.”
로젤리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모두에게 차를 한 잔씩 놔주고 나갔다.
“아...진짜...”
카루아는 그게 현자타임이 왔는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가는 건 정해진 건가?”
“하...”
“바로 가기는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가지는 않는다. 다들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준비가 됐을 때 모이도록 하자.”
엘로아의 말과 함께 우리는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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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시간.
“프로그램 미카엘. 가동합니다.”
“쉿! 쉿! 조용히 해!”
내가 뭐라고 하자 미카엘은 작은 소리로 다시 말했다.
“가동합니다...”
저번에 봤던 것처럼 방을 흰색 빛이 감쌌다.
나는 모두와 헤어지고 저번에 사용했던 근원들을 다시 채우기 위해 바로 정령계에 갔다.
“흐음... 뭔가 다른 걸 가지고 싶은데...”
“넌... 욕심도 많네. 그 정도 능력이면 웬만한 녀석들이랑 싸우더라도 안 진다.”
노아스가 내 옆에 누워 느릿하게 말했다.
“그래도! 저가 싸우는 녀석들은 웬만한 녀석들이 아니라구요.”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왜 알바가 아니에요! 광신이 소환되면 다 망한다니까요?”
“망하면 망하는 거고... 안 망하면 안 망하는 거고...”
노아스는 그냥 무심하게 말했다.
“너무한 발언이에요.”
“에휴...”
노아스는 귀찮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다가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죽지는 마. 얼굴 본 신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나도 좀 그러니까.”
“싸우러 간다니까 서비스해주시는 거에요?”
사후 서비스 같은 건가...
“이건 진심이니까 조심히 다녀와.”
노아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래도 뭔가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보니까 진심이긴 한 거 같았다.
뭔가 이런 노아스를 보니 조언해주는 든든한 누나 같아 보였다.
조언을 해주지는 않지만...
조언...
조언...?
“아...!”
“왜?”
“필살기...아니 필살기라고 하면 좀 그렇긴 한데 좋은 생각이 난거 같아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바로 신계로 갔다.
다른 누구를 만나지 않고 미카엘에게 바로 갔다.
“내가 하나 궁금한게 있어서 그런데.”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너를 내 기운에 담을 수 있어?”
나는 내 근원을 꺼냈다.
조금만 꺼낸 게 아니라 아주 큰 한 덩어리를 꺼냈다.
내가 생각한 건 미카엘을 내 근원에 담는 거였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 때 다른 곳에서 미카엘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았다.
미카엘이 담겨있는 곳이 이미 주신의 기운, 근원이기도 했고.
가능할 거 같았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어 그래?”
이런 대답도 하네?
“시도해봐도 좋다고 하시면 해보겠습니다.”
“그래 해 봐!”
내가 말하자 저번에 봤던 쇠 공이 빛났다.
그리고 쇠 공에서 기운이 나오더니 내 근원으로 들어갔다.
근원과 내 몸이 이어져 있었기에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몸속에 뭔가 들어와서 꿈틀거리는 느낌?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가능 할 거 같습니다.”
“어 진짜?”
“능력 전부를 사용할 수는 없고 일부만 사용할 수 있지만 가능은 합니다.”
“그것만이라도 좋아!”
“아마 제 능력을 사용하시면 기운이 소모될 겁니다.”
“어? 그럼 여기서는 소모되지 않았다는 소리야?”
“맞습니다. 여기는 이미 주신님이 충분히 기운을 놓고 가셨기에 주신님이 남겨주신 기운을 대부분 사용합니다.”
하긴 근원을 한 방울 밖에 안 넣고 미래를 그렇게 많이 본 게 이상하긴 했다.
혹시 사용하면 근원이 팍팍 깎이는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사용하면 돼?”
“그냥 말을 거시면 대답합니다.”
“그 미카엘?”
“미카미카라고 불러주세요!”
근원이 반짝반짝 빛나며 말했다.
“미...미카미카?”
누구의 작명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그러네?
“미카미카는 미카엘의 프로토 버전이에요!”
“그...그래.”
미카엘의 말투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라서 이질적이었다.
미카엘이 사람이었으면 어렸을 때의 모습이 이랬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어?”
새...생각이 입 밖으로 나갔나?
“그런 건 아니고 지금 미카미카로 저와 로엔님이 이어져 있어서 생각이 저한테 들어옵니다.”
“그...그렇구나.”
뭐 어쨌든 나는 든든한 동료를 품에 안고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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