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81 열리는 포탈
* * *
“뭐야! 난 단단히 준비하고 왔는데 왜 다들 빈손이야!”
“무슨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바리바리 싸왔어?”
그렇게 많이 가져오지도 않았다.
그냥 잠깐 거기서 머물 때 필요한 몇 가지만 쌌다.
작은 배낭 정도?
그런데 다들 그냥 빈손으로 왔다 보니 나 혼자서 양이 많아 보이기는 했다.
“로엔 답게 쌌네.”
“소풍은 아니고 여행가는 정도 느낌이네.”
다들 내 배낭을 보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흐잉...”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짐 말고도 몇 가지 준비했다.
그런데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모이면 나만 허탈하잖아!
“무슨 준비해야 한다면서! 근데 왜 다들 하나도 안 달라졌어!”
“난 원래 준비할 게 없는데?”
“카리온은...”
카리온은 어차피 필요한 게 전부 이공간에 들어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럼 페르세스는!”
“난 내 무기만 가져왔는데?”
“무기?”
나는 페르세스를 쭈욱 둘러보았다.
달라진 게...있나?아무리 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찾아야 한다.
분명 뭔가를 준비했는데 못 알아채면 실망하지 않겠는가.
나는 여자친구가 “나 뭐 달라진 거 없어?”라고 물은 심정으로 페르세스를 뚫어져라 봤다.
“귀걸이!”
귀걸이가 생겼다.
원래 어떤 장신구도 차지 않던 페르세스가 귀걸이를 차고 있었다.
원래 페르세스는 싸울 때나 단련할 때 걸리적거린다고 어떤 장신구도 차지 않았다.
별로 꾸미는 거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후후... 맞아.”
“그런데 그게 무기야?”
“저거 이래 봬도 중간계를 멸망시킬뻔한 무기야.”
“...저게?”
카리온의 말에 나는 다시 귀걸이를 봤다.
귀걸이는 십(?)자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무기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계를 멸망시킬 뻔한 무기라니까...
“그럼 엘로아는?”
“난 여기 있다.”
내 물음에 엘로아는 책상으로 갔다.
엘로아의 집무실에서 모였기에 엘로아의 책상이긴 한데...
“미리미리 챙겨둬야지! 까먹으면 어떡하려고!”
“아 그래.”
“로엔... 무슨 엄마도 아니고...”
“으...”
긴장했다보니까 자꾸 딴소리를 하는 거 같았다.
당연히 긴장되지 않겠는가.
적의 본진에 쳐들어가는 건데.
엘로아는 책상 서랍을 열어서 뭔가를 꺼냈다.
엘로아가 꺼낸 건 왕관이었다.
오래 쓰지 않았는지 먼지가 묻어있었다.
그래도 먼지에 그 빛이 감춰지지는 않았다.
번쩍번쩍거리는 황금의 빛.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아름다워보였다.
“왕관?”
“이게 내 무기다.”
“...던져서 맞추는 거야?”
“로엔. 저건 왕관이라는 건데, 머리에 쓰는 거야. 보통 왕이나 여왕들이...”
“나도 알아!”
카리온은 7살짜리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천천히 말했다.
“아니 그래서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나 왔다.”
내가 말하고 있자 카루아가 방에 들어왔다.
“오우 저 새낀 진짜 여행가네.”
페르세스는 욕을 내뱉었다.
“저건 여행이 아니라 이사 아니야?”
카루아는 엄청난 크기의 배낭 하나를 등에 메고 양손에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거기서 며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는 챙겨야지.”
“미안하다 로엔. 너는 정상이었어.”
“아니야. 너희가 날 보는 느낌이 저런 거였구나.”
카루아 덕분에 티격태격댔던 것들이 모두 풀려버렸다.
우리 사이를 좋게 하려고 저런 광대 짓을 한 건가?
“아니 로엔이 잠도 자고 밥도 먹는다면서 페르세스도 밥 먹고 엘로아는 잠을 자니까 그거에 필요한거 다 들고왔지.”
카루아는 주섬주섬 배낭에 있는 걸 꺼내면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아마 분위기를 풀려고 그런 건 아닌거 같았다.
진짜 엄마 같은 느낌.
“쟤가 진짜 소풍 가는 느낌으로 왔네.”
“로엔 미안하다...”
엘로아조차 나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가 나에게 가방을 가져왔다고 뭐라 한거에 대한 사과인지 아니면 저런 동료를 두었다는 거에 대한 사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카루아는 안 가는 거 아니었어?”
“그러게 가지도 않는 카루아가 왜 제일 신났데?”
페르세스는 카루아에게 가서 비아냥댔다.
“후...”
“언제까지 이러고 있냐. 슬슬 출발하자.”
엘로아는 그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는 원래 포탈을 열기로 했던 장소로 갔다.
신계 구석에 있는 빈 공터.
개발이 덜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실 여기에 사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기에 신계에는 빈 공간이 많았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
“로엔 시작해.”
“알았어.”
나는 집중하고 마법을 시전했다.
‘저번에 포탈을 열었던 곳...’
나는 내가 열었던 포탈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원래 다른 사람의 포탈이라면 열었던 장소로 가야 하지만 내가 열었던 포탈이니 그냥 몸 안에 남아있는 흔적을 뒤지면 됐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연게 아니라 근원이 연거였지만 그 기술을 시전할 때 남아있던 흔적은 내 몸 안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이용해 나는 포탈을 열기 시작했다.
어?
“이거... 좀 이상한데?”
“왜?”
그 물음과 함께 포탈이 열렸다.
“그냥 마법진을 사전 시키기만 했는데 바로 발동해버렸어.”
“마법진을 시전하면 발동하는 게 맞지.”
카루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음...”
내가 뭐라고 설명하려고 하자 그 포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로엔 왜 포탈 크기를...”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마법이 시전된다니까?”
“뭐?”
포탈은 계속 커지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크기의 포탈이 된 후 커지기를 멈췄다.
“로엔 느낌이 이상하다. 포탈 닫아.”
“아...알았어.”
내가 포탈을 닫으려고 하자 뭔가에 막힌 듯 포탈이 닫히지 않았다.
“포탈이... 안 닫혀?”
“뭐?”
“그 누가 손으로 포탈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마나를 끊으면 되잖아.”
“마나를 처음에만 넣고 그 이후로는 마나를 넣은 적도 없어.”
“...”
모두 어이없는 얼굴로 포탈을 봤다.
그러자 포탈에서 누군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청난 큰 귀를 가진 가고일.
몸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기괴한 얼굴과 가진 기운이 엄청났다.
“어? 저거 나 본 적 있는데.”
“나도 본 적 있어.”
나와 페르세스의 말에 카리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고일의 모습은 우리가 광신도 제단들을 돌아다닐 때 있었던 석상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저런 큰 귀의 가고일은 본 적 없지만 비슷한 모습의 가고일들은 본 적이 있다.
미각의 신관이 있는 곳에서는 큰 입을 가진 가고일이...
시각의 신관이 있는 곳에서는 큰 눈을 가진 가고일이...
“그럼 시발... 저 녀석 청각의...?”
내 말과 함께 그 녀석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윽!!!!!!”
“뭐야 시발!!”
우리는 엄청난 소리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에 탄식을 내뱉었다.
“시발 좆같네.”
포탈에서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중에서는 처음 만났던 동물 두계골을 하고 로브를 입고 있는 괴물들이.
땅에서는 여러 가지의 마물들과 청각의 사제장이 끌고 나왔던 괴물들이.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마치 지옥이 연상되었다.
지옥과 현실이 이어진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엘로아는 그 괴물들을 유심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 가고일과 포탈이 연결되어있다.”
엘로아의 말을 듣고 다시 유심히 보니까 희미하게 연결된 흐름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럼 저 녀석이 강제로 열고 있다는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데 저 녀석 혼자서 열고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혼자서 열고 있었더라면 강한 흐름으로 느껴졌을 텐데 그렇지 않을 걸 보니 다른 녀석들도 있다.”
“그럼 포탈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들을 죽이면 포탈이 닫힌다는 거지?”
“뭐 그렇겠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단에서 본 녀석이니 5마리일 가능성이 크지.”
“그럼 포탈 안에 4마리가 더 있다는 소리겠네.”
그렇게 우리는 말하며 무기를 꺼냈다.
“성검 칼리버.”
그리고 페르세스는 귀걸이를 만지고 말하더니 그 귀걸이가 검으로 변했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장검이었다.
저 귀걸이 저런 기능이었어?
그리고 엘로아는 작은 가방에 넣어놨던 왕관을 머리에 썼다.
뭔가 작은 소녀 같은 엘로아가 왕관을 쓰니까 귀여운 공주님의 모습이었지만 앞의 상황 때문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나와라 바알.”
카리온은 자신의 소환수를 꺼냈다.
8장의 날개를 가진 악마가 하늘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나는 근원을 다섯 방울 정도 꺼내고 마신의 기운으로 검을 만들었다.
“그럼 각 두 당 한 마리씩 잡으면 되겠네.”
페르세스는 호기 넘치는 말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시발 그럼 가보자고.”
그리고 우리는 달려들 준비를 했다.
“내가 뚫는다. 따라와!!!!”
크아아아아아!!!!!!!!
페르세스의 외침과 함께 엄청난 마수 무리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울부짖고 끔찍했다.
저번에 했었던 전쟁이 떠올랐다.
엄청난 수의 무리들이 먼지 구름을 내며 다가왔다.
뛰어왔다.
우리는 그에 겁먹지 않았다.
저번에는 조금 무서웠지만, 이번엔 무섭지 않다.
그 때는 내가 모든 걸 책임진다는 느낌이었지만 이번엔 아니다.
내 뒤, 내 앞에는 동료가 있다.
그 때도 동료가 있었지만, 그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 때의 동료는 내가 지켜야할 존재들이라면 이번엔 나와 같이 싸우는 존재들이다.
그저 목표만, 목표만을 생각했다.
“로엔 바로 간다.”
엘로아의 말과 함께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이 시발 새끼들아!!!!!”
페르세스는 소리 질렀다.
검을 횡으로 한 번 휘둘렀다.
검에서 큰 검격이 나갔다.
크...크캬아아아아!!
내가 쓰던 검술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검격이었다.
아름다울 정도의 횡 베기였다.
그리고 위력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앞에 있던 수십 괴물들이 검격 한 방에 베어나갔다.
“우리는 이 괴물들을 무시하고 포탈로 들어간다.”
“알았어! 입구만 뚫을게!”
페르세스는 뒤따라오는 엘로아의 말에 대답했다.
“잠시만! 그럼 이 괴물들은?”
“저기 뒤에 안 따라오는 놈 있잖아.”
뒤를 보자, 한숨을 쉬고 있는 카루아가 보였다.
“자기도 자기 역할을 알고 있는 거지.”
“카루아가 이걸 전부 혼자서 막는다고?”
우리는 발을 멈추지 않고 말을 했다.
페르세스의 페이스에 늦춰지지 않도록 달렸다.
빠르게 달렸다.
“저 녀석은 일 대 다수일 때 빛을 발하니까.”
“일 대 다수일 때? 무슨 능력이길래?”
“기계 장치 위의 신이라고 들어봤어?”
기계... 장치 위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세상의 모든 거를 다루고 모든 것 위에서 조종한다는 신.
소설이나 다른 매체들에서 나오는 최고의 존재.
“카...카루아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그럼 엄청난 신이라고?
이름만 주신과 똑같은 게 아니라 힘도 주신급이었어?
아니 마신보다 부족하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기 보단...”
엘로아가 말하기 전에 옆에 있던 카리온이 끼어들었다.
“뭔 기계 장치 위의 신이야. 그냥 메카 덕후지. 그냥 기계밖에 모르는 새끼야.”
그리고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뒤에는 혼자서 카루아가 서 있지 않았다.
요새...
엄청난 수의 대포들을 달고 있는 요새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