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2 카루아
* * *
나는 언제나 과거의 사람들과 비교당했다.
주신이 죽고 태어난 나.
그리고 주신의 이름까지 받은 나였다.
카루아라는 이름은 나에게 너무 무거웠다.
모든 신들이 나와 주신을 비교하는 듯했다.
어떻게 주신님이 사라지고 내가 생겼냐는 말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주변 신들이 하는 이야기나 다른 말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외면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나에게 지어진 부담감은 그 정도로 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노력했다.
일반 신들보다 더 일을 많이 했고 틈이 날 때마다 신력을 연습했다.
다른 신들과 달라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신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신력도 더 잘 다루게 되었다.
나는 정신적으로 점점 힘들어졌지만, 내가 이렇게 한다면 다른 신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주변의 말들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어떤 대단한 일을 하더라도 주신과 비교되었다.
아니.
힘든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주신과 비교당했다.
주신이었으면...
만약 주신님이었으면...
이런 말들이 계속 돌았다.
그래서 나는 절망했다.
더 이상 이런 힘든 일들을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그저 평범한 일반 신으로 태어났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왜 내가 카루아라는 이름을 받았을까.
나는 결국 포기했다.
누군가와 비교하면 뛰어난 신이 되었지만 그게 다였다.
비범한 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포기가 답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포기한다고 주변의 말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포기를 했더니 죄책감만 더 커졌다.
그저 패배자가 되려고 내가 신 자리에 앉아있는 건가?
이런 의문이 내 속에서 울렸다.
결국에 나는 환생을 하는 게 답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이런 위치에서 있는 건 나에게 맞지 않는 거 같았다.
내가 환생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누구에게 말할까 하다가 에레보스에게 말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마신들과 접점은 없었다.
그렇지만 에레보스는 모든 신들에게 존경을 받는 신이니까 해결책을 내줄거라고 생각했다.
에레보스에게는 중간계를 멸망시킬 뻔했다는 오명이 있었지만, 그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신은 맞았다.
그렇게 난 처음으로 마신들의 집무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 간 곳이었지만 일반 신들의 집무실 쪽과 별 다를 게 없어서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엥? 넌 누구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뒤를 돌자 붉은 머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마신들이 있는 곳에 붉은 머리 여성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파괴의 신 페르세스.
“길 잃은 천사냐? 여긴 마신의 집무실이 있는 데야. 저리 가 훠이!”
아마 날 천사족으로 착각한 거 같았다.
그게 가능한가?
날 모르나?
“안 가고 뭐해?”
“아 전 카루아입니다.”
나를 모르는거 같기에 나는 나의 이름을 밝혔다.
“그런데?”
“네?”
이 신은 정말 날 모르는 거 같았다.
어떻게 카루아의 이름을 말했는데도 모르지?
뭔가를 원하고 밝힌 이름은 아니었지만 저런 태도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얘가 왜 이리 맹하냐?”
“크윽...”
나를 모르는 신인데도 내가 멍청하다고 느끼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신들 이름도 모르는 신한테 멍청하다고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2배로 나빴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고 페르세스에게 물었다.
“에레보스의 집무실이 어디입니까.”
“에레보스? 아 에레보스 찾으러 온 거였어?”
그러자 복도 끝을 가리켰다.
“저 쪽 끝으로 가면 있을 거야. 돌아갈 때는 길 잃어버리지 말고.”
“잃어버린 적 없었습니다.”
내가 말을 했지만, 페르세스는 귓등으로 들은 채도 안 하고 가버렸다.
“허...”
저런 신도 있구나.
나는 페르세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끝 방에 노크를 했다.
“계십니까.”
“어~ 들어와.”
안에서 에레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갔더니 친근한 모습의 아저씨가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카루아인가?”
“네 맞습니다.”
“마침 잘 왔다.”
“네?”
“이 문서 좀 볼래?”
그 말과 함께 한 서류를 가지고 내 쪽으로 왔다.
“이...이게 뭡니까?”
갑자기 막무가내로 서류를 들이미는 상황에 당황했다.
마신들은 다 이런가?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페르세스 때도 그렇고 막무가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마신들이 당황스러웠다.
어질어질하네...
일단 난 에레보스가 넘겨준 서류를 봤다.
그 서류의 내용은 신들이 중간계에서 지내는 프로젝트였다.
100년 정도 중간계에서 지내서 중간계에 사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프로젝트.
“나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중간계를 가본 적 없는 나에게는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험을 하면 그만큼 식견도 높아지고 좋으니까.
“그런가? 다행이네. 첫 대상이 너거든.”
“저...저 말입니까?”
“너가 가장 최근에 태어난 신이니까. 막내부터 챙겨주는 게 보기 좋잖아.”
에레보스는 나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럼 그거에 관련된 회의는 언제 하실 겁니까.”
어차피 난 환생할 거니까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인 거 같았다.
회의도 내가 환생하고 난 이후면 더 상관없는 이야기고.
“뭐 회의를 굳이 해야 하나?”
“네?”
에레보스는 자기의 도장을 가져오더니 그 서류에 쾅하고 찍어버렸다.
“어...?”
“가는 사람 허락은 받았고 내가 허락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러더니 내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잘 다녀와.”
“네? 갑자기요?”
그러더니 난 어디론가로 이동되어버렸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가 하려던 말은 하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남겨진 에레보스는...
“아 맞다. 근데 왜 온 거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넘겨버렸다.
어차피 이미 보내버렸는데 돌이킬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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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중간계로 와버렸다.
정말 어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환생을 하면 중간계에 태어날 텐데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엄청난 기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내려온 곳은 기계도시였다.
기계 문명이 엄청나게 발달된 19차원.
나는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그냥 인간처럼 지냈다.
기계 관련된 걸 배워서 공방에도 들어가고 엔지니어까지 되었다.
기계를 만드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기계를 만들 때는 주변의 어떤 소리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오직 기계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난 기계에 푹 빠져 기계만을 만들었다.
그렇게 100년이 지났다.
그리고 에레보스를 찾아갔다.
“오랜만입니다.”
“오! 카루아! 여행은 즐거웠어?”
에레보스는 반갑게 날 맞이했다.
“너무 즐거웠습니다.”
계속 거기에 있고 싶을 만큼 즐거웠다.
“그건 정말 다행이네.”
에레보스는 나에게 차를 한잔내어줬다.
“뭘 느꼈어?”
나는 잠깐 고민했다.
거기서 느낀 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저를 찾은 거 같습니다.”
나는 거기서 나를 찾았다.
주신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내가 아닌 그저 나로서의 나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았고 남에게 보여지는 내가 아닌 그대로의 나를 봤다.
즐거움을 얻었다.
추억을 얻었다.
나를 얻었다.
정말 많은 걸 얻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오호... 예상한 거보다 만족스러워 보여서 보기 좋은데?”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조금 쉬러 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에레보스의 방에서 나갔다.
더 이상 환생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기에서 느끼는 즐거움 때문에 더 환생하고 싶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거기서 느낀 건 즐거움만이 아니었다.
내가 있음으로서 바뀌는 사람들을 봤다.
행복해지는 사람들을 봤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으로서 여기에 있는 것도 이런 큰 영향을 끼치는데 신으로서는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오직 나를 위해서 일을 했었지만 이젠 다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집무실로 돌아갔다.
“처음 봤을 때랑 많이 달라졌네.”
집무실에 남겨진 에레보스의 입은 호선을 만들었다.
에레보스가 처음 카루아를 봤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한 죽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욱 먼...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목표가 있어 보였다.
“다행이네.”
@
“하...시발.”
나는 저 멀리 달려나가는 마신들을 봤다.
옛날부터 저랬다.
막무가내.
맨날 저런 사람들의 뒤처리는 내 담당이었다.
이대로 밀려들어 오는 괴물들을 내버려두고 포탈 안으로 들어간다면 신계는 박살이 나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달려들어 가지 않고 지킨다면 나는 포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안에서 언제 포탈을 닫을지 모르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MK107 요새 가동.”
MK107 가동합니다.
나는 마신들에 비해 약하다.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잘하는 게 있고 나의 역할이 있다.
지금은 지키는 역할.
그리고 저 다수의 괴물들을 없애버리는 역할.
그리고 내가 잘하는 거.
나는 마신들보다 신력 형상화를 잘했다.
신력으로 섬세한 부품을 생각하고 그걸 신력으로 구현 화하는 것.
나는 미리 만들어놨던 요새를 키에 넣어두고 거기에 맞는 양의 신력을 넣으면 그게 구현화 된다.
지잉 지잉 철컥철컥철컥철컥.
신력이 뿌려졌고 부품 하나하나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고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요새가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이동.]”
그리고 나는 요새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대공포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폭격기 173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중앙 미사일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대전포 준비 완료되었습...
준비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울렸다.
나는 그냥 그런 소리를 다 무시하고 말했다.
“저 씹새끼들 다 죽여버려.”
명령 받들겠습니다.
“아 마신들 안 맞도록 조심해.”
알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모든 함포들이 목표를 조준했다.
그리고 포들은 불을 뿜었다.
쾅!!!!!!!!!!!!!!!!!!!!!!!!!!!!!!!!!!!!!!!!!
펑펑펑펑펑펑!!!!!!!!!!!!!!!!!
폭격기 출동합니다.
“보기 좋구만.”
카루아는 자리에 앉아 화면을 봤다.
엄청난 폭격들이 괴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려가는 마신들의 등을 봤다.
“조심히 다녀와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