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85 페르세스
* * *
가짜 로엔이 우리에게 근원을 날렸다.
우리는 피했다.
아주 작은 기운처럼 보였지만 로엔이 보여줬던 근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피하는 바람에 그 기운이 땅에 닿아 터졌다.
땅에 닿은 근원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엘로아 피해!”
나는 엘로아에게 소리질렀다.
“너나 조심해라.”
폭발로 시야가 가려졌고 엘로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엘로아 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의 모습도 안 보였다.
“천왕 솔로몬.”
천왕 솔로몬.
역대 천사들 중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천사의 수명은 1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죽을 때가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의 동의를 받아 육체의 시간을 멈춰서 내 이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줬다.
대신 내가 소환했을 때 싸울 수 있도록.
뭐 내가 소환할 때마다 수명이 달아서 그렇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지만 쓸모는 많았다.
귀족적인 옷을 입고 있는 바알과 다르게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다.
이 녀석은 완벽한 기사다.
나를 지키는 기사.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한손검을 들어 지키기 최적화된 장비.
바알이 내 검이라고 하면 솔로몬은 내 방패다,
분명 강한 녀석이긴 하지만...
가려진 시야에서 붉은 머리칼이 보였다.
“솔로몬 온다.”
“예.”
페르세스의 검이 연기 사이로 들어왔고 솔로몬은 들어오는 검을 방패로 받고 검으로 페르세스를 노렸다.
하지만 페르세스는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검을 쳐낸 후 발로 방패를 쳐서 솔로몬을 밀어냈다.
페르세스의 어느 정도까지 힘을 낼진 모르겠지만 움직임은 확실히 페르세스같네.
솔로몬이 저걸 받아낼 수 있으려나.
그것보다...
로엔과 페르세스에게도 나와 엘로아의 분신이 있을 텐데...
그 바보 두 명이 침착하게 잘 싸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고 다가왔다가 공격당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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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카리온 왜 그래!!”
“에...엘로아?”
나와 페르세스는 갑자기 나타난 카리온과 엘로아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에 카리온과 엘로아가 나타나자 살짝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기운이 아니라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간이 달라져서 느낌이 달라졌나 싶었다.
모습이 똑같은 건 물론이고 엘로아하고 카리온 한테 밖에 없는 게 있었다.
엘로아의 왕관과 카리온의 바알.
카리온 옆에는 바알이 서있었고 엘로아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쓰여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둘에게 달려갔더니 갑자기 그 둘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보야! 갑자기 달려가면 어떡해!”
바알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을 뻔한 걸 페르세스가 구해줬다.
“그...그치만 엘로아랑 카리온이...”
“가짜인거 같은데. 사용하는 힘은 비슷한 건가.”
페르세스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일단 근원은 쓰지 말고 신력으로만 대응하자. 가짜니까 약한 점이 있을 거야.”
“알았어.”
페르세스는 워해머를 집어넣고 칼리버를 꺼냈다.
“상성적으로 너무 안 좋은데...”
페르세스가 혼잣말했다.
그런데 그에 나도 동의했다.
내가 근원을 사용한다면 우리가 훨씬 유리하겠지만, 근원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너무 불리하다.
신력이나 마신의 기운을 사용하면 엘로아의 언령에 의해 전부 무효화 당할 거다.
그리고 근접으로 공격한다면 카리온의 소환수들이 대응할 거고.
미카미카를 사용해야 하나...
이미 근원을 좀 사용해서 솔직히 미카미카를 사용하는 것도 아끼고 싶었다.
“천왕 솔로몬.”
가짜 카리온이 말하자 카리온의 앞에 엄청난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나왔다.
“일부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는 건가.”
페르세스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천왕 솔로몬과 마왕 바알.
둘 만 있다면 상대할 만하지만 뒤에는 카리온도 있고 엘로아도 있다.
역시 근원을 사용해야 하나.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페르세스는 그런 나의 어깨를 툭 치고 앞으로 나섰다.
“넌 근원 아껴. 저 녀석들은 내가 상대한다.”
“뭐? 가능해?”
분명 페르세스가 강하긴 하지만 엘로아랑 카리온과 다를 바 없는 가짜를 전부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내가 걱정하는 얼굴을 하자 페르세스는 나에게 말했다.
“가능하고 말고는 해봐야 아는 거지.”
그리고 씨익 웃었다.
“그 정도 근성 없이 주신을 이길 수 없지.”
그 말을 하자 솔로몬과 바알이 동시에 페르세스에게 달려들었다.
“반달 베기.”
페르세스는 나에게 알려줬던 검술을 사용했다.
페르세스의 원조를 보니 내 검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나는 그냥 따라하는 느낌이었다는 게 와 닿았다.
페르세스의 검이 지나간 곳은 마치 검이 지나갔다고 흔적이 남는 것 같았다.
흔들림 없는 정교한 선.
그런 선이 검이 지나간 곳에 그려졌다.
솔로몬은 페르세스의 검을 맞고 물러났다.
“절(?).”
그 후 밀려난 솔로몬에게 바로 비기를 사용했다.
절(?).
검이 지나간 곳을 베어버리는 페르세스의 비기.
검이 지나간 곳을 베어버린다는 게 당연한 사실이긴 했지만, 절(?)의 의미는 공간, 시간, 존재까지 베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절(?)은 그저 베어지기 전에 피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하지만 이미 페르세스의 검을 맞고 밀려난 솔로몬에겐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동하라.]”
엘로아의 언령에 솔로몬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타이밍이 늦었다.
절(?)로 방패가 반으로 잘려나갔다.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방패까지만 잘리고 갑옷까지는 검이 가지 못했다.
페르세스는 이를 예측이라도 한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절(?)로 하려던 일이 방패를 부수려고 했던 일인 듯 했다.
그리고 페르세스는 외쳤다.
“천향검무(???).”
천향(?)이란 지옥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검무.
페르세스가 천향검무(???)를 사용하자 페르세스의 등 뒤에 유령이 보이는 듯했다.
그 유령은 검을 들고 있는 유령이었다.
그리고 페르세스가 검을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로엔 알아서 피해.”
페르세스는 그 말을 하고 엄청난 속도로 주변을 베었다.
검무.
페르세스의 검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고 검은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에 그게 아름답다고 느낀 거였다.
페르세스가 엄청난 속도로 곡선을 만들 때 페르세스 뒤에 있는 유령도 똑같이 움직인다.
엄청난 크기와 감당 못 할 속도로 움직이니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모든 공격을 막지 못했다.
솔로몬은 방패로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반으로 갈라진 방패로는 주변을 지키지도 못하고 자신의 몸조차 지키지 못했다.
또 바알은 공격을 받아치거나 피하려고 했지만 둘 다 성공하지 못했다.
유령만 공격하는 거에서 끝났다면 공격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페르세스의 움직임 대로 유령은 공격하고 페르세스가 움직였던 곡선들은 검격이 되어 날아간다.
한마디로 유령의 공격을 막더라도 페르세스의 검격이 한 번 더 날아간다는 소리다.
유령은 크기와 함께 둔탁한 타격을 줘서 방어를 못하도록 막았고, 페르세스의 날카로운 검은 상대방의 목을 노렸다.
콰가가가가가가!!!!
페르세스가 나에게 피하라고 말을 했지만 내가 있는 걸 고려해서 공격했는지 내 쪽으로 그렇게 많은 공격이 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주변은 엄청난 공격들이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돌들은 계속되는 참격들에 갈려나갔고 마치 페르세스가 있는 위치 말고 일정한 거리까지 모두 소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어억...”
“하악...”
바알과 솔로몬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 둘은 마치 갈려나간 돌 같이 엄청난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가짜 카리온과 엘로아도 피해를 입었는지 옷에 좀 잘려나가고 생채기들이 있는 게 보였다.
“가짜는 가짜네.”
페르세스는 작게 말했다.
나는 그런 페르세스에게 달려갔다.
“페르세스 괜찮아?”
내가 묻자 페르세스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었다.
“무기 변경. 롱기누스.”
이번엔 페르세스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창으로 바뀌었다.
그 창은 다른 무기들처럼 화려하긴 했지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느껴졌다.
마치 창이 내 심장을 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짜 카리온은 솔로몬과 바알이 쓰러진 걸 보고 다른 포탈을 열어 이상한 녀석들을 소환했다.
악마나 천사.
괴물과 드래곤.
이런 저런 녀석들이 나왔지만, 페르세스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가 점점 더 강해졌다.
오직 기세로만 저 녀석들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였다.
소환된 녀석들 전부 페르세스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페르세스는 소환된 존재들이 하려는 행동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창의 끝에는 가짜 카리온과 엘로아가 있었다.
“로엔, 내가 간지난다고 했던 기술. 보여줄게.”
페르세스는 창을 양손으로 들고 자세를 잡았다.
“페르세스류. 극의.”
페르세스가 말하자 마치 공기가 멈춘 느낌이었다.
공기 흐름조차 허락받지 못한 듯했다.
그저 페르세스의 움직임만 있을 뿐이었다.
“신 죽이기.”
* * *